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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평점 :

추사고택에 갔었다. 어릴 적에 가족과 함께였다. 이제는 빛바랜 기억이지만, 이상하게도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어린 나에게조차 온몸으로 다가오는 그것. 추사가 심었다는 백송에까지 서린 높은 향과 깊은 기였다. 아마도 추사의 문자향서권기(文子香書卷氣)였으리라.
외할머니댁에 추사의 대련이 있었다. 어느 명절에 가니, 있었다. 아마도 외삼촌께서 마련하신 것 같았다. 어린 나는 몇 자를 자세히 보다가 역부족인지라 무슨 뜻인지 더 궁금해졌다. 외삼촌께서는 화목한 가족을 뜻한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추사의 '대팽고회'를 본뜬 작품이었다. 추사고택의 백송에서 느꼈던 문자향서권기를 그 작품에서도 느꼈다. 요즘도 화목한 가족을 생각하며, 그때의 기억을 함께 떠오르고는 한다.
나에게 그런 추사였다. 그리고 그런 추사일 것이고. 그런 추사에 대한 글을 만났다. 추사의 삶과 뜻. 그리고 그 안에서 그와 이어진 사람들.
'족손인 김승렬이 쓴 「완당 김정희 선생 묘비문」을 보면 그의 평소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 구절이 있다.
풍채가 뛰어나고 도량이 화평해서 사람과 마주 말할 때면 화기애애하여 모두 기뻐함을 얻었다. 그러나 무릇 의리냐 이욕이냐 하는 데 이르러서는 그 논조가 우레나 창끝 같아서 감히 막을 자가 없었다.
이런 성격의 추사였기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없이 존경했고 싫어하는 사람은 아주 싫어했다.' -20쪽.
'(사랑은) (중략)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중략)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중략) -성경 고린도전서 13장 5~6절.
의리와 이욕. 나에게 주어진 한 세상을 살면서 의리를 지키고, 이욕을 버리려고 한다. 추사의 삶도 그랬던 것 같고. 성경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과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니 추사의 그런 삶은 사랑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람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 그렇기에 청나라에까지 그의 벗이 있게 되었고. 물론, 그런 그를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사람과 삶에 대한 사랑으로 학문과 예술을 했던 추사. 그렇지만, 쓰라림 많은 삶도 살았다. 제주도와 북청에서의 유배 생활. 그 아픔을 견디어 냈기에 더 아름다운 학문과 예술을 이룬 것 같다. 상처를 이겨낸 비자반(榧子盤)이 가장 좋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