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의 역사 - 문학과 예술을 통해 본 동성애, 그 탄압과 금기의 기록
플로랑스 타마뉴 지음, 이상빈 옮김 / 이마고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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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이 분야에 약간의 관심이 있던터라 이 책을 샀다. 사실 평소 내가 동성애를 접한것은 주로 만화책을 통한 과장된 표현들이었고 그런 것들을 보며 즐겼지만 실체를 알고싶다는 생각에 이 책을 샀다.

결과는 실망이다. 첫째로 내용이 너무 짧다. 그런데도 로마시대부터 쭉~다루고 있으니 그럴바에야 차라리 현대로 집중시켜서 쓰는편이 나을것같아. 수박 겉?기에도 정도란게 있건만은.. 게다가 왜 그렇게 다른 예술작품을 예로 드는지 모르겠다. 내용의 반절에서 그림이나 책 그리고 영화등으로 예를 들고 있다. 말하자면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누구누구의 이러이러한 그림, 누구씨의 이러한 작품이 나오기에 이른다. 뭐 이런글들 말이다. 근데 그 그림들을 알아야 무슨 분위긴지 알것이며 그 책들 또한 어떻게 다 알겠는가? 어느 정도면 넘어가겠는데 그런 말들이 너무 많다. 책 맨뒤에 붙은 주석도 너무 많아서 걸린다. 차라리 페이지밑에 달던가 아니면 달지 말던가. 일일이 책 뒤를 뒤져가며 읽으란 말인가. 현대로 나오면 이번에 단체 이름들의 홍수다. 그것도 처음에만 어떤 단체지 나오고 뒤에는 다 약자로 나오는데 그 많은 단체이름의 약자를 다 외우며 책을 보기도 힘들다.

전체적으로 너무 산만한 책이다. 그다지 어려운 내용을 다룬것도 아님에도 술술 넘어가며 읽히지도 않는다. 아마도 작가분이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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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 2007-08-15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에 대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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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체적으로 아주 멋진 분위기의 글이었다. 주인공인 리세도 레이지도 너무 멋있었다. 나는 리세가 좋았다. 가냘픈듯 흔들리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자신을 찾지 못해 방황하면서 흔들거리는 그 모습이 제목에 나온 그 모습 그대로 본문의 시 그대로인듯하여 황홀할 지경이었다.

차라리 결말을 읽지 않았다면...그랬다면....끝 부분은 이야기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거니와 그 부분의 리세는 마치 리세가 아닌것같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매력적인 부분이 다 사라지고 정말이지 다른 인간이 되어버린듯한 느낌. 유리도 요한도 그들의 매력이 완전히 부서진 느낌이었다. 끝까지 매력적인 인물은 레이지 뿐이었다. 그가 마지막까지 매력적일수 있었던것은 그가 마지막이 오기전에 끝을 봤기 때문일것이다. 너무나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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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다의 환상 - 상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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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온다 리쿠라는 작가 어떠한가 하여 조사하여 보니 저 단어가 따라다녔다. 여기서의 노스텔지어란게 도대체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한번쯤은..하는 생각에 맨 처음 산 책이 밤의 피크닉이다. 다른 책들에 비해 똑 떨어진 책이고 최근의 신간이어서였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지만 정말 괜찮은 느낌을 주었다. 마침 1,000원의 쿠폰을 발생하기에 이 작가의 현재 나온 모든 책을 다 샀다. 좀 무모했던것같다. 좋은 글이지만 연이어 읽기에는 좀 무리였기에. 읽으려니 문제. 어떤 순서로 읽지? 연대순으로 결정했다.

처음은 첫 작품이라는 여섯번째 사요코. 웬지 정리되지 않은 느낌의 글이었다. 그 다음으로 삼월은 붉은 구렁. 웬지 엉성하고 휑한 느낌의 글이었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이 삼월은 붉은 구렁에서 뻣어나온 가지들. 보리의 바다와 흑과 다의 환상. 보리의 바다는 결말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 전체는 정말 좋았는데 결말이 이 책의 좋은 느낌을 다 덮어버린 느낌이었다. 그에 비해 흑과 다의 환상은 마지막까지 좋았다. 각각 다른 인생을 살아온 네 명의 친구. 이들이 비일상을 찾아간 나흘간의 여행.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복귀다. 그저 그뿐인 얘기지만 정말이지 이 작가. 내가 생각하는 노스텔지어를 잘 표현하고 있다. 노스텔지어의 사전적 의미는 향수. 과거에의 그림움으로 나온다. 내가 느끼는 노스텔지어는 웬지 모를 아련함이다. 어슴푸레하고 아련하고 뭔지 정확히 정의할 수 없지만 시린듯한 느낌.

요즘 웬지 일본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게되었다. 여행이 비일상이듯이 내게는 독서란 비일상이다. 한국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나는 도저히 비일상을 느낄수가 없다. 내가 한국소설을 잘 읽지 않는것은 그래서다. 작가님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들의 글은 나와 너무나도 가까워서 웬지 모르게 불쾌하다. 그에 반해 일본작가들의 글은 그들에겐 일상적인 일이라도 내겐 비일상적인 일로 다가온다. 내게서 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온다 리쿠의 책은 참으로 훌륭하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산것이 아닌가하였으나 후회하지는 않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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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글을 쓰는것은 손으로  쓰는것과는 아주 다르다. 아마도 속도의 차이일지 모르겠다. 같은 주제에 관한 글을 쓰더라도 손으로 쓰는것도 컴으로 쓰는것은 글의속도도 내용도 결말조차도 달라진다. 그렇다면 둘중 어느쪽의 얘기가 더 좋은걸까. 나는 이제 컴으로 글을 쓰는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손으로 글을 쓰는것이 낯설다. 때때로 아주 짦은 글조차도 말이다. 어쩌면 이토록이나 컴퓨터란 물건이 이렇게나 빨리 우리의 생활에 침투하게 되었을까. 컴이 처음 나온것은 내가 고3때였다. 구닥다리 286. 검은 화면에 초록색 글씨가 나오는 그야말로 계산서보다 조금 업그레이드 된 정도였다. 그러다 486이 되고 워드 프로세서가 나오고 도스가 나오고 윈도우가 나오고...이제 컴퓨터는 우리 생활에 없으면 안되는 존재가 된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것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것은 언제나 예쁘고 좋은 정장의 노트나 멋지고 부드러운 느낌의 펜을 보았을때라는 점이다. 내 책상에는 멋진 노트가 몇 권이있다. 문방구에서 보고 일기나 기타 등등 뭐든지 써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여 산 노트들이다. 이 노트들을 볼때마다 뭔가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낀다. 문제는 내가 막상 글을 쓰는것은 항상 컴퓨터라는 점이다. 워드 프로그램을 이용하는것도 아니다. 오로지 인터넷으로 연결된 공간에서만 글을 쓰려한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길 바라는것일까. 사실 이런 잡담에 가까운 글은 꼭 누가 읽어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럼에도 왜 꼭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만 글을 쓰려고 하는걸까? 누군가가 내 대신 내 글을 관리해 주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굳이 지우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기 때문일까?

아아, 또 이런식이다. 이 이상은 무슨 얘길 써야할지 모르겠다. 처음 글을 시작할때 내 안에는 글의 완결까지가 있었는데 쓰다보면 그 완결이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다. 끝맺음이란 언제나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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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니기때문일까. 그의 시선은 너무나도 날카롭고 예리하다. 또한 적나라하다. 우리의 아픈곳을 너무나도 날카롭게 찌른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정말로 나 또한 많은 부분 공감하는 내용이다. 대학. 늦깍이로 들어간 그곳에서 교수들의 횡포아닌 횡포와 기껏해야 학생대표라는 직함 하나 달았다고 그들이 행하는 비리를 보면서도 다 그렇고 그런거라면서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괜히 벌집 건들면 지내기 힘들어. 뭘 기대한것도 아닌데 걍 지내자는 말로 그 불의들을 그저 눈감고 보냈었다. 하고싶은 말은 많았지만 나는 약했고 또한 게을렀다. 그들이 가진 기득권에 대들기엔 약했고 맞서싸우기엔 너무나도 게을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속에는 불만으로 가득넘쳤고 학교라는 곳에 대한 혐오감으로 넘쳐 흘렀다. 대학에서의 2년은 내게 초, 중, 고를 지내면서 가졌던 선생과 학교라는곳에 대한 혐오감을 더욱 굳혀주었고 인간에 대한 불신을 더욱 깊게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하나 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도. 박노자의 글은 나의 아픈곳을 깊게 찔렀고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인종차별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현재 공장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우리 회사 앞에 있는 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했었다. 나는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그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 말로는 구박이 심했다고 한다. 상습적인 구타는 아니었으나 멸시하는 분위기가 짙었다고...타인의 회사이고 모르는 사람이니 내가 무어라 할수도 무엇을 해줄수도 없었으나 인간에 대한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씁쓸한 뒷말을 느끼게 했음을 말해 무었하랴. 이러는 나역시 사대주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수는 없어 티비속의 백인이 더 매력적인듯 하고 흑인은 어딘지 모자란듯 느끼고 있으니..

인류의 역사를 보자면 살인이 죄악이고 평등과 박애정신이 퍼진것은 정말이지 근래의 일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역사에 기록된 시기 자체가 그야말로 몇천년되지 않으니 더 말할것도 없다. 중세에는 마녀라 하여 산사람을 태워죽이는것은 죄도 아니었다. 유아유기나 영아살해가 큰 죄인것은 근대에 와서이며 그 근대에서도 50년전으로만 가도 불과 10세 근방의 아이들을 중노동으로 부려먹는것에 대해 아무도 비인간적이라 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다수의 나라에서 대다수의 어린이들이 중노동에 동원되고 있으며 그 사실을 버젓이 알면서도 자본주의의 원리로 그저 눈감고 귀막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다. 이런점을 보자면 인류의 역사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것 같다. 그래 간다고 확신치는 못하겠다. 허나 나은쪽으로 가는것 같다...(희망을 담아서 그리 바라고 있다) 우리 나라가 민족상잔의 비극에서 벗어난지 아직도 얼마되지 않았다. 같은 국민들끼리 죽이고 죽인 그 장면을 목격한 분들이 아직도 정정하시다. 그러니 우리가 아직도 민족적인 일종의 히스테리 상태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것이다. 앞으로 나아지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잘못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그에 대한 반성이 먼저 뒤따라야 할것이다. 우리가 우리라는 이유로 눈감아주고 감싸주는 잘못들에 대해서 이 책은 많은 것을 얘기하고 있다. 정말 많은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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