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책이 가지는 의미는 그저 남이 읽은 적이 있는 책만이 아니다. 헌 책이란 다른 누군가가 읽고는 마음에 들지 않아, 즉 소장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내놓은 책이란 점이다. 물론 여러가지 사정이 있어서일수도 있다. 좁은 곳으로 이사를 한다던지, 먼 곳으로 간다던지, 경제적으로 어렵다던지 등등의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말 소중하다면 끝까지 간직하지 않겠는가. 이유가 어떻든 헌 책으로 팔았다는 것은 그 책에서 소장할만한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보인다. 적어도 내게는..이제 막 새로운 책을 사서 그 책과 첫 만남을 가지려는 사람에게 이 책은 다른 누군가가 보기에는 매력이 없었어 라는 선입관은 웬지 모르게 그 책에게 선뜻 정을 주기 어렵게 만든다. 특히나 여러권의 재고가 있는 헌 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재미없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아무래도 손이 가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책을 내가 아주 재미있게 봤을때는 다른 고민이 생긴다. 아니 남들은 재미없어한 책이 내겐 왜 이리 좋은 거야? 내가 이상한가? 취향이 독특한가? 하는 고민. 너무 비싸서 헌 책이라도 사야지 하는 책의 헌 책이 없을때는 실망스러움과 뿌듯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아무렴 내가 잘골랐지 하는 생각. 물론 그 책이 너무 인기가 없어서 아예 산 사람이 없어서 헌 책이 없을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도 가끔은 들지만 말이다.
첫 정이 무섭다는 말이 있는데 내게는 책에도 아니 물건에도 해당된다. 더러 이 책은 다시 볼일은 없을것 같아 싶어도 내가 이 책을 처음 샀을때의 기분이, 박스 포장을 뜯고 그 희고 순결한 책장의 첫 장을 펼치던 순간이 생각나면 아무래도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 남에게 빌려줄때도 그렇다. 나 말고는 아무도 그 책에 손 댄적 없는데. 저이가 내 책에 나도 남긴적 없는 상처나 흔적을 남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무래도 노심초사하게 된다. 마치 내 자식 나도 손 한번 댄적 없는데 하는 심정과 비슷하달까. 그에 비해 헌 책은 다소 쉽게 남에게 빌려준다. 나 전에 다른 사람이 이미 손 댔는데 뭘 하는 생각에. 얼마전 산 헌책의 첫 속지에 누군가가 글을 써놓았다. 정말 악필이라서 무슨 말인지 잘 알수 없었지만 아내에게 선물로 준 책같았다. 와이프라는 글이 있었으니까. 그 글을 봤을때의 기분이란. 뭐랄까. 실망이랄지 환멸이랄지...누군가 내 책에 낙서를 했어라는 울고 싶은 기분. 아니 그 아내라는 여자는 어떤 여자길래 남편이 선물로 준 책을 갔다 팔어하는 환멸스러운 기분. (후에 혹시 이혼했나 라는 생각을 하긴했다) 순간적이지만 그 책에 대한 정이 뚝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난 친구에게 선물하는 책에조차 따로 메모를 넣었지 속지에 쓰지 않았는데 라는 생각과 정말 울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에서 보면 그녀는 책 속지의 그런 내용을 보며 책의 역사를 유추하며 즐거워하던데 나는 울고 싶어지다니... 내가 너무 속물적인가 하는 생각과 그래도 싫다라는 생각에 오래도록 그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