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 낮에는 약간 구름이 낀 정도였는데 퇴근시간부터 비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내렸다.
유대지불, 보험료 지불, 곽차장 시재정리를 해주고 전표정리를 한 후에 점심을 먹었다. 김치찌게, 우리 식당은 정말 엄청나게 음식이 맛이 없다. 오후부터 밤까지 며칠전부터 앞부분만 조금씩 읽다 말았던 책들을 모아서 다 읽었다.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장, 바보상자의 역습, 대한민국 병원 사용설명서, 다른 늑대도 있다까지 총 네 권. 퇴근하는데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옷이 다 젖었다. 우산이 소용없을 지경이라 차라리 맞고 가는게 더 나았을테지만 가방때문에...
다른 늑대도 있다는 판타지 단편 모음인데 중간에 마음에 안드는 내용이 있어서 멈췄다가 오늘 저녁에 다 읽었다. 나는 단편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여러작가의 단편 모음은 더 그렇다. 수준의 차이도 있고 내용의 차이도 있어서 좋은것도 있지만 어중간한것부터 진짜 싫은것까지 다 같이 있는게 문제다. 좋아하는 내용을 다시 한 번 보려고 하면 싫어하는 것까지 같이 보게되기 때문에 별로 사지 않는 편이다. 근데 저번에 산 닐 게이먼의 원더 월드 그린북, 레드북이 원체 좋았다. 마침 이 책도 닐 게이먼외 라고 되어있길래 기대감을 안고 샀는데 웬걸 별로인 작품이 훨씬 많았다. 좋은 건 두어편이고 나머지는 다 마음에 들지않았다. 중고로 팔까 했는데 그 좋은 두어편은 정말 마음에 들더란 말이다. 고민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마음에 든 두 내용이 다 성배를 찾는 기사에 대한 내용이다. 놔두고 좀 더 고민해보고 싶지만 책장이 워낙 포화상태인지라...
바보상자의 역습은 우리가 티비를 바보상자라고 부르면 폄하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거. 티비가 오히려 사람들을 똑똑하게 만들어준다는 내용이다. 영화 올드보이를 보면 최민식이 십몇년을 갇혔다가 나오지만 매일 티비를 봤던 까닭에 세상살이 모르는게 하나도 없는걸로 나온다. 사실 그런게 히말라야 산꼭대기에 있어도 티비만 있으면 전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알수 있는 세상이다. 사람들이 티비를 바보상자라고 부르는건 티비가 주는 정보를 분석하지 않고 멍하니 받아만 들인다는데서 비롯된 인식인데 이건 정보가 어떤것이든 마찬가지다. 신문도 내용 그대로 다 믿기 어려운 세상이고 책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보든지 정보 제공자의 사견이 들어가있지 않는 정보가 없고 언론이란 더더욱 그렇다. 대부분 현정권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런 정보들도 생각지 않고 받아들이긴 마찬가진데 티비가 유독 그런 오명을 쓰는것은 아마도 드라마나 쇼, 연예프로그램등을 생각한 말이겠지만 이걸 가지고 바보상자라고 하는건 솔직히 우습다. 이런 장르는 원래가 정보를 주기위함이 아니라 재미를 위한것이고 오락에서 뭘 더 원하겠나. 이런 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책이 더 두뇌에 좋고 티비는 나쁘고 어쩌고 하는건 다 흰소리다라는게 이 책의 요지다.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아닌데 싶은 부분도 있고. 사실 티비와 인터넷, 게임등의 아주 근대에 태어난 물건이다. 아직 탄생년도가 한세기를 넘지 않는 물건이니 이것들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상황이니 좀 더 두고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 병원 사용설명서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딱히 손대지 못하는 내용이다. 사실 대수롭지 않은 병으로라도 병원에만 가면 약자가 되는게 환자다. 그러니 큰병이라도 걸리면 그거야 말로 고양이 앞에 쥐랄지 뭐 그런 신세가 되지 않겠다. 사실 의료에 대한 고질병을 고치는 제일 큰 문제는 제도와 법률이전에 인식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환자를 돈벌이로 보지 않는 것, 의술이 정말 인술이 되는 것. 의사와 간호사들이 진짜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이런 인식을 가진다면 제도는 따라오는것이다. 그 어떤 법이라도 빠져나갈 구멍은 다 있기 마련이다. 세상이 좀 더 나은곳이 되려면 강력한 법제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바라고 지향하는 우리의 자세가 더욱더 선행되어야 할 문제다. 다만 정말 어려운 문제다. 저자의 말처럼 돈이면 부모도 판다는 세상이다. 돈, 돈 거리는 세상부터 바뀌어야겠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책장에 고이 모셔두었지만 앞으로도 절대 이 책이 필요한 일이 안생기길 내심 바란다.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은 참 따뜻한 책이다. 파리에 사는 미국인이 지나는 길에 피아노 수리라고 쓰여있는 공방을 본다. 궁금증에 중고 피아노를 한대 사려한다며 들어가지만 가게 주인은 쉽사리 그 안을 보여주지 않는다. 파리는 그런 곳이란다. 물건을 더 팔려고 호들갑떨지 않는 그런 곳. 아는 사람의 보증으로 피아노 공방의 안으로 들어간 곳에서 저자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그곳의 주민들이 드디어 그를 한 일원으로 맞아들여 준것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으며 각종 피아노를 구경하고 만나보던 중 그 중 한대를 가족의 일원으로 맞아든인다. 피아노는 단순히 가구가 아닌것이다. 이제와 대가가 될 생각도 소질도 없지만 그는 자신만을 위한 음악을 즐기기 위해 피아노 레슨을 받고 꾸준히 연습을 한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에세이다. 항상 느끼는 건데 피아노는 웬지 사람 가슴을 설레게 하는 점이 있다. 어린시절 클라리넷을 불고 싶다거나 바이올린을 치고 싶다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애들은 참 많았다. 지금도 피아노를 보면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거의 말이다. 떼를 쓰면 되기야 하겠지만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피아노 학원을 찾기도 어렵고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이제와 새로이 피아노를 배우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즐기기 위해서라지만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려면 연습은 필수고 그러려면 집에 피아노가 있어야 하는데 돈은 둘째치고 둘 공간과 이웃사람들이 문제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어린시절 친구집에 있는 피아노를 무척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거 한번 참 처보고싶었는데 어찌나 못되고 굴면서 손도 못대게 하던지...(이런거 보면 성선설은 다 거짓말이다. 애들이란 대게 못되고 잔인하고 싸가지가 없다) 웬지 아련한 향수가 느껴지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