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 흐림
오늘의 책 : 단 한번도 비행기를 타지 않은 150일간의 세계일주. 부케 드 파리
비행기를 타지 않고 천천히 여행하기 위해 시작한 여행에서 배편을 맞추기 위해 열나게 뛰는 여행이라.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지. 그럴바에야 차라리 비행기를 타는게 낫겠다. 비행기를 버리고 느리게 움직이는 여행을 예찬하기 위해서라기에는 너무 불평이 많은 책이다. 보고 있자니 더더욱 비행기 없이 여행할수 없을것 같다. 하기사 시간과 돈만 충분하다면야 세상에는 선택사항이 무궁무진하다. 허나 보통사람들에게는 이 둘 다 몹시 어려운 사치다. 그걸 너무 잘 알고 있는 마당이라 이들의 얘기에 공감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부케 드 파리는 어쩌다가 보게 된 책이다. 본디 꽃을(시장에서 팔리는 재화로써의)꽃을 그닥 좋게 보는 편이 아니다. 꽃은 분명히 아주 아름다운 물건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이면에 걸리는게 너무 많다. 화훼 농가가 지불해야하는(그것도 외국에) 로열티, 이렇게 한 종류를 다량으로 꽃피우기 위해 들이는 농약과 환경파괴, 팔리지 않는 꽃들에게서 느껴지는 낭비, 샀을때는 아름다우나 시들어 감에 따라 느껴지는 약간의 서글픔과 그것을 버릴때 느껴지는 아까움등등. 요즘은 꽃도 꽃으로 즐기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자고로 꽃이란 들과 산에 피어있을때 보고 좋네~~하는게 제일이지 싶다. 겨울을 넘기고 새로 꽃을 피우는 작은 화분의 꽃도 괜찮다. 꽃보다 더 많이 드는 포장지와 온갖 장식들을 보노라면 꽃이 주인인지 포장이 주인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솔직히 꽃값은 너무 비싸다. 꽃다발 하나면 티셔츠 한 벌 값이다. 볼때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감탄스럽고 좋지만 사려면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한단 말이다. 요 놈의 물건은. 한정된 재화에서 가능한 최상의 선택을 해야만 하는 중산층의 위치에서(한국에서 중산층이란 요즘 참 아슬아슬한 위치다) 꽃은 아직도 너무나도 먼곳의 물건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책 속의 화려한 꽃다발들이 더 이상 그렇게 아름답게 비치지 않았다. 한번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 생각은 웬지 모든것이 삐딱하게 보인다. 한국에서도 제법 곱게 산듯한데다 파리에서 오르간 배우다 싫다고 때려치우고 플로라리스트 과정을 마칠 수 있는 내 생각에는 복을 타고 난듯한 저자의 고생담도 배부른 투정같아서 보기 싫다. 꽃 한송이의 여유를 강조하는 그의 말도 그래, 난 꽃 한 송이 못 살 정도로 여유가 없다 어쩔래 싶은 심통을 솟게 만든다. 아무도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기분 나쁜 경우가 있는 것처럼 좋은 주제에 아름다운 책인데 씁쓸한 마음을 들게 만든 책이다. 나도 한번쯤은 뭘 하다가 단지 싫다는 이유로 때려치워보고 싶다. 다른 모든것을 고려하지 않고 말이다. 요즘 왜 이렇게 심통이 느는지 모르겠다.
오늘 영이가 이사를 했다. 이사는 그 인간이 했는데 괜히 우리가 바쁘다. 그 놈의 냉장고가 뭐라고. 남이 쓰던거 뭐하러 가져올꺼라고 아득바득 악을 쓰는 엄마때문에 미칠것 같다. 그렇게 가져오고 싶으면 알아서 가져오던가 일하는데 전화해서는 화물차를 어디서 구하냐, 있는 냉장고는 어디에 버리냐, 냉장고가 커서 문으로 안나온다, 서비스 기사 불러다오, 화물차 불러다오 등등 스트레스 받아서 내가 죽을것 같다. 다음에 다시 이사갈때 동생들이 뭐 준다고 하면 때려 죽여버릴것같은 기분이다. 새것도 아니고 중고 냉장고를 가지고 일주일내내 전화를 몇십통이나 했는지.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정말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내 엄만데 어쩌면 이렇게 미울수 있는지 모르겠다. 사는게 정말 고행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