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서울에 내 정주를 정한지 십여년이다. 내 삶의 1/3, 아마도 그 비율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내 삶의 어느 시점에 내가 있을 곳을 서울 아닌 곳으로 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때까지는 서울은 나의 거처가 될 것이다. 서울은 정녕 깊다. 천만이 넘는 사람들, 열몇개의 구, 수십개의 중심가, 그 속에서 우리는 과연 서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는 내가 지내고 있는 이 공간에 대해서 얼마만큼의 관심을 보이고 있을까. 이 책은 우리가 지나치는 서울의 역사성을 일깨워준다. 매일매일 서울은 뉴타운이다 뭐다 파헤쳐지고 새로워지는데 그 속에서 기록은 사라져가고 우리의 기억 역시 사라져간다. 공간은 그저 우리가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가 맺어지는 곳이며, 일상을 직조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의 삶이 이루어 지는 곳, 그 공간과 누누히 이어온 시간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는 다시 살아간다.
러일전쟁 후, 메이지시대의 일본이나 지금이나 변화무쌍한 사회의 변화 속에서 개인들은 휩쓸려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그것에 얼마나 감수성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느냐 그런 눈을 가진 작가를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느냐가 휩쓸리는 변화에서 반성적 성찰을 얻어내느냐를 가름할 것이다. 그 후, 모두 어찌 되었을까.
슬프다. 그의 마음 속 텅 빈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서는 바람소리가 구슬프다. 바람 지나간 자리 트고 갈라져 고름이 흐르고 다시 새살이 돋아나지만 그 선연한 자욱들 너무도 완연해 그저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하지만 도드라지는 그 자욱마다 너무 예민하기에 어루만짐이 도리어 상처가 되는데 아. 이렇게 바람은 지나가고 봄, 여름, 가을이 다되도록 숨죽여 그는 울고 있었네.
그가 줄기차게 노래하는 미풍, 바다바람, 산바람들..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처럼 삶은 그리도 미약하고 허무하다. 개념은 그저 물 위에 떠가는 햇살처럼, 물비늘 처럼 아득하고 그 속에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 별들, 인연들마저도 그저 아득하면 되는 느슨함 속에서 안주하고 있다. 바다와 전원으로 둘러쌓인 곳이라면 이 노래에 취해 즐거웠겠지만 하 수상한 세상의 잡음에 둘러쌓여서는 그와 같은 소리는 너무도 미약하더라. 박재삼의 시가 그렇게도 더디 읽혔던 것도 마음의 평안도 그리 쉽게 오지 않은 것도 내 마음에는 미풍이 아닌 북방의 삭풍이 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