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편견과 소통에 대해 말한다. 부정적인 견해만 편견인 것은 아니다. 내가 몸으로 체험하지 못한 앎, 한 번도 반성해보지 않은 앎은 모두 편견일 수 있다. 이를테면 맹인이 아닌 자가 맹인에 대해 갖고 있는 견해란 것은 제아무리 발버둥쳐도 편견의 테두리 밖에 있기 어렵다. 그 편견은 어떻게 깨어지는가.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은 많다. 그러나 편견이 녹아 내리는 과정을 이렇게 자연스럽고 힘 있게 그려내는 소설은 많지 않다.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가끔 주제넘은 충고를 한다. 나 자신은 소설을 단 한 줄도 써본 바 없으면서 말이다. "인물의 내면을 말로 설명하겠다는 생각을 접어라. 굳이 말해야 한다면, 아름답게 말하려 하지 말고 정확하게 말해라. 아름답게 쓰려는 욕망은 중언부언을 낳는다. 중언부언의 진실은 하나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을 장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장악한 것을 향해 최단거리로 가라. 특히 내면에 대해서라면, 문장을 만들지 말고 상황을 만들어라." 그러고는 덧붙인다. "카버를 읽어라."


- 신형철 산문, 『느낌의 공동체』중에서.

 

"자네 인생에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겠지. 그렇지 않나, 이 사람아? 그러기에 삶이란 희한한 걸세. 잘 알다시피. 계속해 멈추지 말고." (p.309)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p.311)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중에서. 
















그는 맹인 로버트에게 대성당에 대해 말로 설명해보려 하지만 실패한다. 처음으로 시도하는 맹인과의 소통이 힘겹다. 그런 그에게 로버트는 대성당을 함께 그림으로 그려보자고 제의하고 그의 손에 로버트 자신의 손을 얹어 함께 그림을 그리기(그가 그리는대로 로버트는 따라가는) 시작한다. 그러는 과정 중에, 로버트는 그에게 눈을 감은 채 계속 그림을 그려보라고 한다. 맹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으로 로버트가 그를 이끌고 들어가는 장면이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신형철 평론가의 말을 빌어 "내가 몸으로 체험하지 못한 앎"에 대한 그의 "편견이 녹아내리는 장면"인 것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산문,『느낌의 공동체』중에 레이먼드 카버 편을 읽다가 다시『대성당』을 펼쳐 읽었다. "부정적인 견해만 편견인 것은 아니다. 내가 몸으로 체험하지 못한 앎, 한 번도 반성해보지 않은 앎은 모두 편견일 수 있다." 라는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듯 하다. 오늘 밤, 정성스레 마음에 새겨본다. 



201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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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운 사랑들 밀란 쿤데라 전집 2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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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을 가린 채 현재를 지나간다. 기껏해야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것을 얼핏 느끼거나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중에서야, 눈을 가렸던 붕대가 풀리고 과거를 살펴볼 때가 돼서야 우리는 우리가 겪은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p.12)

 

막다른 골목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영감의 장소다. (p.32) 

 

그 여자가 아름다웠다고 하시는데 그건 아무것도 알려 주는 게 없지 않습니까? 공장장 동지가 자투레츠키 씨에게 정중하게 일러 주었다. "예쁜 여자들은 많아요! 키가 컸나요, 작았나요?" "컸어요." 자투레츠키 씨가 말했다. "갈색 머리였나요 금발이었나요?" "금발이었어요." 잠시 망설이다가 자투레츠키 씨가 답했다. 내 이야기의 이 부분은 아름다움의 위력에 대한 우화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자투레츠키 씨가 우리 집에서 클라라를 봤던 날 그는 그 정도로 눈이 부셨고 놀랐다. 아름다움이 그의 눈앞에 불투명한 막을 가로막아 놓았던 것이다. 베일처럼 그녀를 가려 버린 빛의 가로막을. 왜냐하면 클라라는 키가 크지도 않았고 금발도 아니었다. 단지 아름다움 속에 깃든 위대함이 자투레츠키 씨의 두 눈에 그녀가 신체적으로 키가 커 보이게 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움으로부터 퍼져 나오는 빛이 그녀 머리를 황금빛으로 보이게 했던 것이다. 그 작은 남자는 마침내 클라라가 밤색 작업복 차림으로 치마 원단들 위로 몸을 오그리고 있는 쪽에 도달했을 때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그녀를 아예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pp.37~38) 

 

"사람들의 삶에는 모두 헤아릴 수 없는 의미들이 있어요." 교수는 말했다. "우리 중 그 누구의 과거든 사람들이 제시하는 방식에 따라 아주 사랑받는 국가 원수의 전기가 될 수도 있고 범죄자의 전기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p.42)

 

살다 보면 후퇴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사활이 걸린 입장들을 지켜 내기 위해 덜 중요한 입장들을 버려야 하는 순간, 그런데 나한테 최후의 입장은 내 사랑인 것 같았다. (p.49)

 

나는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모험이라는 말에 안장을 맸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스스로 방향을 잡아 말을 달린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환상일 뿐임을. 그 모험들은 어쩌면 전혀 우리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외부로부터 부과된 것임을. 그 모험들은 전혀 우리를 특징지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그 모험들의 기이한 흐름에 전혀 책임이 없음을. 그 모험들 자체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상한 힘에 의해, 알 수 없는 어떤 곳에서부터 다른 어디로 향한 채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 (p.56)



제목을 <농담>으로 지어도 전혀 무방한, 밀란 쿤데라의 또다른 농담 버전의 단편이다. 

 

그가 정직한 사람이었고 상대방은 아프겠지만 더 큰 발전을 위해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의 모습 속에서 나의 모습, 내가 만난 사람들의 감출 수 없는 숨은 마음들, 본능을 본다. 늘 그렇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상황들을 모면하기 위해 해가 되지 않을 거짓말을 하면서, 그리고 직면한 문제는 피해 다니기 바쁜 우리네 모습들, 말이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존경하는 사람을 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시작된 그의 모호한 처신들, 그것을 덮기 위한 모함과 거짓말들이 끝내는 그를, 계속해서 푹푹 꺼지는 땅을 걷게 하는 결론으로 이끌어간다. 그 모든 것을 농담이었다고 해도 이제는 아무도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나도 우리가 중요한 일을 논의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불쑥 농담을 던져 의심을 불러일으켰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 의심들은 당장은 잊히지만 오늘 과거 속에서 다시 건져 올리게 되면 갑자기 정확한 의미를 담게 되는 겁니다. (p.42) 


때를 놓친 진실과 정직의 발언은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 때를 놓치면 모든 시간이 거짓과 또다른 거짓으로 물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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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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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문제들은 결국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네. 
그동안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원칙이나 말을 내세워 변명하고, 이런 것들이 과연 중요할까?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질기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진정 무엇을 할 수 있었느냐? 


- 산도르 마라이, <열정> 중에서


오늘을 사는 나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나. 
물음에 대한 답을 정리하고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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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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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온다는 사실보다 때로 밤이 온다는 사실에 더 위안을 받는다. 
밤은 뒤척일 수 있다. 
아무 것도 안 할 수도, 울 수도, 잘 수도, 꼬박 샐 수도 있다. 
밤은 잉여다. 선물이고, 자유다.


박연준, 장석주 에세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중에서 
 

"밤은 잉여다. 선물이고, 자유다." 

밤이 되면 또다른 삶이 시작된다. 
낮의 피로는 밤의 새로운 에너지에 녹아 사라진다. 
책을 읽고,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공부를 하고, 일기를 쓴다. 

낮은 나를 요구하고 밤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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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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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사랑한다면 힘 닿는 데까지 자유롭게 해줘야 할 것이다. 상대의 모든 것을 알 필요가 없으니 상대의 사생활을 지켜준다. 아무리 가까워도 인간으로서의 예의의 선을 넘지 않도록 한다. 사랑으로 협박하지 않고 '내가 설치한 덫에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까' 라며 시험에 들게 하지 않는다. 그것을 결과적으로 자기 마음을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이다. 사랑은 이래야만 해, 라며 자꾸 사랑을 정의하고 좁히는 게 아니라, 이럴 수도 있다며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넓혀줘야 한다. 타인의 시선이나 주변의 상식과 기대치에 얽매이지도 말아야 한다.



임경선, <태도에 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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