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운 사랑들 밀란 쿤데라 전집 2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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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을 가린 채 현재를 지나간다. 기껏해야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것을 얼핏 느끼거나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중에서야, 눈을 가렸던 붕대가 풀리고 과거를 살펴볼 때가 돼서야 우리는 우리가 겪은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p.12)

 

막다른 골목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영감의 장소다. (p.32) 

 

그 여자가 아름다웠다고 하시는데 그건 아무것도 알려 주는 게 없지 않습니까? 공장장 동지가 자투레츠키 씨에게 정중하게 일러 주었다. "예쁜 여자들은 많아요! 키가 컸나요, 작았나요?" "컸어요." 자투레츠키 씨가 말했다. "갈색 머리였나요 금발이었나요?" "금발이었어요." 잠시 망설이다가 자투레츠키 씨가 답했다. 내 이야기의 이 부분은 아름다움의 위력에 대한 우화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자투레츠키 씨가 우리 집에서 클라라를 봤던 날 그는 그 정도로 눈이 부셨고 놀랐다. 아름다움이 그의 눈앞에 불투명한 막을 가로막아 놓았던 것이다. 베일처럼 그녀를 가려 버린 빛의 가로막을. 왜냐하면 클라라는 키가 크지도 않았고 금발도 아니었다. 단지 아름다움 속에 깃든 위대함이 자투레츠키 씨의 두 눈에 그녀가 신체적으로 키가 커 보이게 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움으로부터 퍼져 나오는 빛이 그녀 머리를 황금빛으로 보이게 했던 것이다. 그 작은 남자는 마침내 클라라가 밤색 작업복 차림으로 치마 원단들 위로 몸을 오그리고 있는 쪽에 도달했을 때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그녀를 아예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pp.37~38) 

 

"사람들의 삶에는 모두 헤아릴 수 없는 의미들이 있어요." 교수는 말했다. "우리 중 그 누구의 과거든 사람들이 제시하는 방식에 따라 아주 사랑받는 국가 원수의 전기가 될 수도 있고 범죄자의 전기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p.42)

 

살다 보면 후퇴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사활이 걸린 입장들을 지켜 내기 위해 덜 중요한 입장들을 버려야 하는 순간, 그런데 나한테 최후의 입장은 내 사랑인 것 같았다. (p.49)

 

나는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모험이라는 말에 안장을 맸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스스로 방향을 잡아 말을 달린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환상일 뿐임을. 그 모험들은 어쩌면 전혀 우리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외부로부터 부과된 것임을. 그 모험들은 전혀 우리를 특징지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그 모험들의 기이한 흐름에 전혀 책임이 없음을. 그 모험들 자체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상한 힘에 의해, 알 수 없는 어떤 곳에서부터 다른 어디로 향한 채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 (p.56)



제목을 <농담>으로 지어도 전혀 무방한, 밀란 쿤데라의 또다른 농담 버전의 단편이다. 

 

그가 정직한 사람이었고 상대방은 아프겠지만 더 큰 발전을 위해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의 모습 속에서 나의 모습, 내가 만난 사람들의 감출 수 없는 숨은 마음들, 본능을 본다. 늘 그렇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상황들을 모면하기 위해 해가 되지 않을 거짓말을 하면서, 그리고 직면한 문제는 피해 다니기 바쁜 우리네 모습들, 말이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존경하는 사람을 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시작된 그의 모호한 처신들, 그것을 덮기 위한 모함과 거짓말들이 끝내는 그를, 계속해서 푹푹 꺼지는 땅을 걷게 하는 결론으로 이끌어간다. 그 모든 것을 농담이었다고 해도 이제는 아무도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나도 우리가 중요한 일을 논의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불쑥 농담을 던져 의심을 불러일으켰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 의심들은 당장은 잊히지만 오늘 과거 속에서 다시 건져 올리게 되면 갑자기 정확한 의미를 담게 되는 겁니다. (p.42) 


때를 놓친 진실과 정직의 발언은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 때를 놓치면 모든 시간이 거짓과 또다른 거짓으로 물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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