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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평점 :
사람은 혼자 일어서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한곳에서 기적처럼 만나서 그 순간의 힘으로 일어선다. 이제 조금 알아간다. 나는 혼자 살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 일어서는 중이라는 것을.
용윤선, 『울기 좋은 방』 중에서
평범한 일상을 잘 유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시간들을 잘 건너왔다는 뜻일 것이다. 고통과 슬픔의 시간을 건너온 자들에겐 햇살 한 줌도 감사하고, 매일 마주하는 이들과 나누는 눈빛 하나에도 감사하다. 이렇게,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마치 기적인 것처럼.
오래 전,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나를 견딜 수가 없는 날들이었지만 그렇게 살 수만은 없어서 새벽녘에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다. 며칠동안 침묵 속에서 만나는 모든 풍경들은 나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더욱 부각시킬 뿐이었고 그 어디에서도 위로를 얻을 수 없었다. 마지막 날 밤, 억수같이 비가 내렸고 여행지에서 차는 밀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때 흘러나온 라디오 오프닝 멘트에서 나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기어이 쏟아내고야 말았다. "사람은 다 투병 중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간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은 다 투병 중이라는 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되었을까.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 그제야 안심이 되어서 깊은 곳에 응어리진 것들이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왔던 것이었으리라... 슬픔과 절망 속에서 스스로 고통을 자처했던 날들이었다. 당신 때문에 내가 고통스럽고 내가 처한 상황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그 아픔을 내 안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나로 인한 고통이었다. 내 안에서 이해되고 해석되어지지 않으면 어떤 감정도 온전히 제 모습일 수 없고 언제까지나 내 안에서 나부끼며 나를 흔들어 댈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렇게도 밤마다 내 안의 아픔들과 씨름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세월을 상처 속에서 아파하면서 나는 내 안의 사막과 광야 속에서 헤매었고, 물도 없고 길도 없는 그 곳에서 나와 같이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게 되었다.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을 알아본다지 않는가. 이우와 태이가 서로를 알아본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웃는 미소 너머의 아픔을 알아보았고, 서로의 아픔을 인정하고 위로하면서 차츰 평범한 일상이라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당신의 아주 먼 섬>을 읽으면서 내가 잊고 있던 아픔들이 하나둘 소환되었고, 내가 어떻게 치유해갔는지 정모와 이우, 판도와 이삐 할미를 통해서 다시 되짚어볼 수 있었다. 책을 가만히 읽어나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그들의 섬에서 다시 치유의 과정을 겪는 것처럼 느껴졌고 첫 장을 열었을 때의 불안했던 마음이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일상이 기대가 되었다. 신형철 평론가는 "좋은 이야기는 그것이 끝나는 순간 삶 속에서 계속된다." 고 했다. 열린 결말인 이 소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물론 이우의 앞으로의 삶이 평탄하지만은 않을 것이고 정모, 판도의 삶 또한 지금보다 더 나아지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통해서 슬픔이라는 그릇이 따뜻할 수도 있음을 이미 경험했고,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들을 서로에게 털어놓으면서 마음의 응어리들을 풀어 놓을 수 있었다.
<울기 좋은 방>에서 용윤선 작가는 "사람은 혼자 일어서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한곳에서 기적처럼 만나서 그 순간의 힘으로 일어선다." 라고 이야기했다. 이우의 엄마인 연수가 그렇게도 돌아오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자서전에서조차 지우고 싶었던 그 섬에서 태이를 잃은 슬픔에 방황하던 이우는 시력을 잃어가는 중에 도망칠 곳이 필요해 섬으로 다시 돌아온 정모와 서커스장에 버려져 벙어리로 오인받고 그대로 말문을 닫은 판도를 기적처럼 만나 조금씩 일어서게 된다.
이 섬 사람들 사는 형편은, 갓 잡은 학꽁치 옆구리처럼 말갛고 투명하기만 한 줄 알았다. 겹이 있고, 모퉁이가 있고, 닫힌 문 뒤가 있다. (p.130)
비밀 하나 없이 말갛고 투명하게 드러나는 섬이지만 인생의 소리없는 괴로움과 슬픔들이 조용하고도 깊게 몸에 새겨진 자들이 모여든 섬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물을 맛보며 슬픔의 농도를 이야기하며 서로의 아픔을 알아보는 자들이었고 그저 묵묵히 바라보며 조금씩 깊어진 관계였다. 그것은 아마도 처음부터 욕심없이 서로를 바라본 까닭일 것이다.
또한 이들을 더욱 하나로 묶어준 것은 도서관이며 책이다. 소금창고를 도서관으로 만들기 위해 추친하는 정모를 통해 판도와 이우는 책 안에서 쉬는 법을 배운다.
판도는 이런 순간이 좋았다. 마치 누군가가 나 대신 써놓은 일기장을 우연히 집어든 듯한. 그냥 읽어나가다 어떤 한 문장에 붙들려, 그 문장의 무엇에 붙들렸는지도 알 수 없는 채로 몇 번이나 다시 읽게 되는. (p.59)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알 것이다. 가장 숨기 좋은 곳이 바로 책이라는 것을. 사람을 알고 싶어 책을 파고드는데 결국 발견하는 것은 내 모습, 내 자신이라는 것을 번번이 깨달으면서 판도처럼 내 맘같은 한 줄을 만나면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마음에 새기기도 하고, 이우처럼 만화를 붙들고 그 안에서 일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재미와 웃음을 찾기도 한다.
어릴 땐 몰랐는데, 이 섬이 도서관이야. 시간의 도서관. 백 년 전이 바로 내 발아래 있고 천 년 전이 산자락에 남아 있어. 오천 년 전의 수메르 문자로부터 비롯된 책들이 깃들기엔 가장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이 새삼 드네 (p.126)
도망칠 곳이 필요해 다시 찾은 섬에서 시력을 잃어감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추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정모는 도서관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시력상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정모에게 깃든 이우와 판도에게 책을 통해 그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그 안에 있는 슬픔들을 조금 더 바깥으로 끌어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을 함께 도우면서 정모의 슬픔을 가까이에서 들여다 본 이우는 자신의 상황과 아픔 또한 정모처럼 조금씩 받아들이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도서관 준공 파티를 마친 정모와 이우의 모습은 이 섬을 처음 찾을 때의 그들이 더이상 아니었다.
"아저씨, 내가 올게. 당장은 아니어도, 돌아와서 책을 읽어줄게." (p.208)
떠나간 태이에 대한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가 더욱 막막하다 할지라도 내 맘 알아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에 대한 안정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들은 자주 만나지 못한다 할지라도 서로를 만난 섬을 기억할 것이고, 서로의 슬픔의 그릇을 따뜻하게 데워준 것을 기억할 것이고, 정말 다시 찾아와서 책을 읽어주며 더욱 마음을 보듬어 줄지도 모를 일이다.
바람소리가 바깥에 있을 때보다 더 세차게 들린다. 틈 사이로 스며든 바람이 거친 목관악기처럼 울어댔다. 불협화음은 불안한 대로 아름다웠다. (p.210)
작가는 불협화음의 삶일지라도 불안한 대로 아름다운 것임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 모두가 보기좋게 화음을 내는 삶의 모습이 아닐지라도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과 화해하고 내 안의 상처와 화해하면서 인생을 좀 더 아름답게 바라보기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또한 암이 발생한 지 한 달 만에 생을 달리한 작가 정미경, 어쩌면 그녀도 당신의 아주 먼 섬에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여기서 함께 줄넘기를 하자 여기서
여기서 함께 주먹밥을 먹자
여기서 그대를 사랑하리
여기 있으면서 모든 먼 것을 꿈꾸자 (p.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