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대의만큼이나 사랑도 중요하다.
#콜로니아 #엠마왓슨 #다니엘브륄
#영화
잠 못 이루는 밤에 영화처럼 시간 보내기 좋은 미디어는 없다. 오랜만의 영화고 해리 포터 소녀였던 헤르미온느가 선택한 영화가 의외로 정치적인 소재의 영화라는 사실이 살짝 흥미로와 선택하였다. 엠마 왓슨의 간헐적인 사회적 이슈가 다른 여배우와는 달리 소신 있고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이끄는 활동을 지지해 왔으니 어쩌면 정치소재의 영화는 그녀의 배우로서 지향점이나 다름없기도 할 것이다. 그런 기대 때문인지 영화를 다 보고는 엠마 왓슨이라는 배우가 멋지게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소름끼치도록 군사정권의 사회를 데칼코마니처럼 보여주고 있는 칠레의 현실은 우리나라의 독재정권시절을 쉽게 떠올리게 한다. 민주사회를 지향하며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젊은이들은 밤마다 집회를 열고 데모를 하고 전단지를 흩뿌리며 혁명을 꿈꾼다. 다니엘 브륄은 독일인으로 이들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온 외국인이다. 포스터를 만들어주며 혁명 전단지는 모두 다니엘이 만들고 있고 혁명군 사이에서 실질적인 브레인역을 담당하고 있다.
스튜어디스인 레나는 휴가를 맞이하여 칠레에 있는 연인 다니엘을 만나러 가고, 짧은 재회에서도 서로의 사랑이 견고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레나와 다니엘은 거리로 나가 사진도 찍고 칠레의 분위기를 만끽하려 하지만, 혁명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잡혀 가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자 다니엘과 레나는 조용히 도망가려 한다.
하지만, 다니엘이 몰래 사진 찍는 장면이 군인들에게 발각되면서 정체모를 차에 실려 간다. 돌아오지 않는 다니엘을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콜로니아라는 종교공동체에 다니엘이 잡혀갔다는 말을 듣게 되고 레나는 봉사자로 자원하여 찾아간다. 그곳에서 레나는 억압과 통제에 길들여져 광적인 신도가 되어 버린 이들과 하루 종일 막노동에 가까운 농사일을 견뎌내며 연인 다니엘만을 찾아다닌다.
사이비종교공동체인 콜로니아 교주인 폴 쉐퍼는 어린 남자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며 무조건적인 복종을 위해 사람들에게 최면알약을 먹인다. 감금과 학대와 착취, 서로를 감시하게 만들고 가족적 유대관계를 두려워해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를 철저히 관리 감독한다. 폴 쉐퍼의 권력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권력과 맞먹는 것이기에 콜로니아에서 살아가고 있는 신도들은 무조건적인 복종에 길들여져있다. 랑시에르의 자발적 복종이란 말처럼 이들의 복종에는 길들여짐 외에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삶이다. 게다가 폴 쉐퍼는 콜로니아 신도들의 노동력 착취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독재정권에 무기를 상납하고 있었기에 칠레에서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이는 전무한 상태였다.
이렇게 정치와 연대한 폴 쉐퍼의 지하실에는 반국가 혁명자들이 숱하게 끌려와 고문하는 장비들이 있었고 그곳에 다니엘까지 끌려왔던 것이었다. 구타와 전기고문 등 수많은 폭행으로 망가질대로 망가진 다니엘은 뇌까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저능아가 된 다니엘. 누구나 죽어나가는 곳에서 저능아가 되었기에 그나마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렇게 다니엘은 겨우 살아남았다.
레나는 노동에 혹사당하며 비정상적인 종교행위를 강요받으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면서도 다니엘을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연히 마주한 다니엘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정말 혐오스러운 캐릭터가 폴 쉐퍼인데 아마 세계적으로 공통된 사이비종교 교주가 빙의한 것처럼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이렇게 영화는 풍자와 재연을 완벽하게 ‘콜로니아’라는 사이비종교의 단면을 잘 살려냈다. 억압과 착취에 무표정한 얼굴을 한 여인들, 종교집회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열광하는 광신도들의 모습, 교주를 향한 맹목적인 복종, 서로를 감시하고 미워하게 만들며 어린아이들의 냉소적인 표정들이 현실 사이비종교집단의 표정들과 오버랩 된다.
그 안에 부와 권력으로 편제된 사회에서 약자에게는 한없이 가혹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자가 되는 룰을 이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런 기계적 구조 속에서 다니엘이 살아남는 방법으로 선택한 저능아 역은 가혹함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나는 행위이기에 살아남기가 가능했다. 저능아 흉내를 내며 머릿속으로는 콜로니아의 약도를 그려가며 혁명가의 기질을 발휘해 사진까지 찍어놓은 다니엘은 탈출할 기회만을 노린다.
우여곡절 끝에 레나와 다니엘은 탈출에 성공하지만 이미 모든 분야에 걸쳐 있던 폴 쉐퍼는 독일대사관까지 이들을 따라온다. 권력자들은 이 둘을 칠레에서 떠나지 못하게 방해를 하지만, 결국 레나와 다니엘의 기지로 무사히 떠나고 콜로니아의 비리역시도 전 세계에 밝혀지게 된다. 영화를 통해 기득권층과 공권력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며 이들과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새삼 우리의 역사에서 떠올려 볼 수 있다. 지금의 자유는 수많은 혁명가들의 피와 눈물의 결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권력자들의 통제와 억압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대의만큼이나 사랑도 중요하다는 것을, 레나와 다니엘을 통해서 보게 되었다. 이들의 노력에 의해서인지 이후 17년후 칠레 독재정권은 막을 내린다. 폴 쉐퍼는 도망다니다 83세에 징역 33년을 선고받고 5년후에 사망하였다. 아직 이 영화를 못 만나보았다면 이 여름이 가기 전에 꼭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