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드림모노로그 >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너없는 그자리》

6년 전 리뷰인데
왜 오늘 쓴 것처럼
내 맘이 읽혀지지?
난 예전이나 지금이나
바보처럼 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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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는 못하지만
알라딘에 엄청난 다독가가 있었다.
매번 서재 달인 1위에 오르시는 분이었는데
그분은 친절하게 내 글에 늘 공감을 눌러주시곤 했다.
댓글에 답할 시간은 없었지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더랬다.
한동안 보이지 않으시길래
비록 익명으로 소통하는 처지였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으로는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곤 했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비보를
알라딘 서재의 글을 통해 알게 되자
머리속이 멍해졌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익숙지 않아서인지 마음이 먹먹해진다.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그곳에서도 그토록 좋아하시던
책과 함께 하시길요.
안녕 ‘그장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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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3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3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문
#부치지 못한 편지가 가슴 아픈 이유

가장 잊히지 않는 로맨스 영화를 꼽으라면 나는 언제나 『원데이』를 꼽는다.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는 재미로 사는 덱스터에게 유일한 친구 엠마. 덱스터와 엠마는 사랑과 우정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은 채 그저 그런 관계를 유지해 간다. 그러나, 둘은 마치 커다란 원이 잃어버린 작은 조각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덱스터의 망가진 삶 저편에 항상 엠마가 기다리고 있다. 덱스터가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이혼을 하는 동안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채워가는 엠마는 늘 그렇듯이 공부를 하고 학위를 따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만이 전부인 것으로 삶을 채워간다. 늘 방황만 일삼던 덱스터에게 변함없는 엠마의 사랑은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던 덱스터를 변화시키게 하는 원동력으로 자리잡아 가고 오랫동안 평행선만 그리던 두 사람은 서로의 선을 구부려 사랑하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그러나, 엠마에게 예고없이 찾아온 불행은 덱스터에게 또다른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 준다.

사랑했던 그 순간도
사랑하던 그 시간도

영화는 엠마와의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며 힘든 언덕을 오르는 덱스터의 회상으로 끝이 난다.
마치 구름 뒤에 숨어있는 해의 모습이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처럼, 엠마의 죽음으로 철저히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던 덱스터는 엠마가 죽음으로써 그제서야 세상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여는 것으로 남은 생을 후회와 미련으로 가득 채운다.

여기서 원더풀 커플의 아름다움이 있다. 전혀 다른 두 사람, 덱스터와 엠마의 사랑을 통해 전혀 다르지만 둘의 사랑은 하나라는 것이다. 엠마의 소극적이고 어리숙함을 이해하지 못했던 덱스터는 엠마가 죽고 난 뒤에야 그녀의 숭고한 정신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성복 시인은 자신이 사랑한 여인에게 매일 편지를 쓰면서도 그녀가 자신의 사랑고백이 담긴 편지가 도착하기 전의 평온함까지 질투한다.

겨울산은 위험하다. 비가 눈이 되어 얼어붙어 있는 등산로도 위험하지만, 나무에서 떨어지는 비가 되어 떨어지는 눈의 무게는 일반적인 비의 무게보다 더 무겁다. 쩍하고 떨어지거나 후두둑 떨어지는 비의 무게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비가 화가 나면 얼마나 무서워지는 줄 모르는 사람이다. 비의 무게도 경험하지 못하였다면 한 시인이 사랑의 무게에 힘겨워 쓴 『잘 있지 말아요』 조차 이해하지 못할 무게이다.

한 시인이 사랑하는 이에게 애절한 편지를 쓴다.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편함이 가득 차도록 우체부가 오지 않자, 시인의 편지는 바람에 날려 남의 집 담벼락에 붙거나 아이들이 종이비행기로 변신하여 허공을 날아다닌다. 그걸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만 애가 탄다. 그래서 또 편지를 쓴다. 잘 있지 말라고..

안녕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편지 전해줄 방법이 없소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이성복 [편지]

부치지 않은 편지처럼 애상에 잠겨 있는 수많은 말들. 아무리 상대가 밉다 하여도 잘 지내라는 인사를 미덕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시인은 제발 자신의 고통과 슬픔과 편지가 닿기 전의 애절함까지 합하여 잘 있지 말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반어법과는 다르다. 사랑의 반어법이라는 것은 마음과는 다른 표현을 말함이니 시인은 잘 있지 말아요, 대신에 제발 잘 있어 달라는 언어로 파생되어 각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알랭 바우디는 사랑을 둘의 경험이라 말한다. 둘의 경험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서로에게 주인공이 되는 경험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이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랑은 도처에 있다. 그러나, 내 삶에 개입되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유일하게 ‘나‘의 경험과 나만이 주인공일 수 있는 사랑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둘 만의 경험이 사랑이라 한다면, 나와 상대 외에는 절대 눈에 들어오지도 , 들어 올 수도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엠마의 지칠 줄 모르던 사랑이, 이성복 시인의 닿지 못하는 편지는 그래서 가슴 아프다.

이와 비슷한 대중가요도 있다. 엠씨 더 맥스의 행복하지 말아요라는 노래인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외친다. 제발 행복하지 말라고,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절대 미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건 사랑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이기적인 반어법, 잘 있지 말아요의 또다른 표기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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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동화처럼
#목련후기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한다. 음악을 듣다가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이 떠올랐다.
김경욱의 『동화처럼』에는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이 사랑이라는 접점을 향하는 과정을 그린다. 엄마의 괴팍한 성격으로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낸 장미와 아버지의 인색함 아래 우울하게 자란 명제. 그런 둘이 만나 사랑을 했다. 결혼까지 했지만, 사소한 말다툼으로 이혼을 하고, 다시 만나 사랑하고, 다시 또 이혼을 한다. 둘은 매번 실패했고 매번 다시 사랑을 했다.
이 둘의 사랑은 결혼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동화 같은 꿈으로 이루어지지만 매번 부딪히는 현실의 힘겨움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헤어진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헤어지고 오해가 풀리면 다시 사랑을 하고 이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세 번째 결혼하는 것으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이후에 이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사랑은 전혀 다른 타자가 내 안에 들어오는 일이다. 이때 타자는 내 안에 타자의 짐을 짊어질 수 있을 정도의 나를 키워낸다. 장미와 명제는 두 번의 이별을 통해 타자를 위한 짐을 짊어지는 방법을 배워간다. 처음에는 미성숙한 어린 아이와도 같았던 이들은 세 번째의 만남에서야 서로를 향한 이상의 파편을 깨고 사랑의 현실을 받아들인다. 사랑은 전혀 다른 한 사람을 통해 타인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일이며 그 일은 상대의 무거운 짐도 같이 짊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간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단순하고 유쾌한 필치의 소설이면서도 사랑과 결혼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보기에 충분했던 소설로 기억된다. 우리가 이상적이라 말하는 아름다운 사랑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엔딩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 ‘나‘를 내려놓고 타자의 짐을 같이 들어줄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 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복효근, <목련 후기>

장미와 명제의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사랑이 가지고 있는 속성, 타자의 짐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사랑이 이루어 질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시인 복효근은 사랑을 호되게 앓아보라 한다. 호되게 앓다보면 알게 될 것이다. 쉽게 잊을 수 있는 상처는 사랑이 아니었음을, 목련꽃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지는 모습은 그에 못지않게 지저분하며 순백의 눈이 지닌 순수함만큼이나 질척이어야만 하는 것이 순리이며 진정한 사랑은 그것조차 사랑해야 한다는 순정함의 표현이라는 것을. 사랑에 쿨함이란 존재하지 않는 단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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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속물에대하여
#로맹가리와김수영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고독은 나일론재킷이다.
고독은 바늘 끝만치라도 내색을 하면
그만큼 손해를 보고 탈락한다.
원래가 속물이 된 중요한 여건 하나가,
이 사회가 고독을 향유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속물이 된 후에 어떻게 또 고독을 주장하겠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속물은 나일론 재킷을 입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재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이 글 제목대로 ‘거룩한 속물‘ 
즉 고급 속물의 범주에는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은 
저급 속물이지 고급 속물은 아니다. 
고급 속물은 반드시 자기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고급 속물이란 자폭을 할 줄 아는 속물, 
즉 진정한 의미에서는 속물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아무래도 나는 고급 속물을 미화하고 정당화시킴으로써 자기 변명을 하려는 속셈이 있는 것 같다. 
이쯤되면 초고급 속물이라고나 할까. 
인간의 심연은 무한하다. 
속물을 규정하는 척도도 무한하다.

-김수영 전집 1에서 -


‘거룩한 속물들‘이라는 김수영의 글을 읽다가
김수영이 참 재밌는 시인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 단락이 제일 재밌는 것 같다.
그동안 순수문학을 하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그가
돈이 궁색해지자 통속적인 시와 문학,즉 사람들 입맛에 맞는
글을 쓰자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인기작가가 된다.
그런 김수영에게 속물론 주제로 원고청탁을 하자

김수영이 하는 말이
과거 자신이 순수한 문학을 하고 있을 때는 
자신의 속물론에 귀기울여주지 않더니
완전무결한 속물이 되자, 속물론을 써달라는 말에
너무 잔인한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속물이 속물을 평가할 때 속물은 이미 자신에 대한 변명거리와
속물론을 미화하려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속물이라는 걸 아는 한
초고급 속물이라는 해석은 정말 재밌는 표현이다.
자폭을 할 줄 아는 자, 자기를 아는 자는 초고급 속물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저급 속물이다.
결국 인간은 모두 속물이지만
자기를 아는 인간과 자기를 모르는 인간으로 구분될 뿐이다.

로맹가리라는 프랑스 작가 있었다.
<하늘의 뿌리>로 콩쿠르 상을 수상했지만
언제부턴가 평론가들은 로맹가리는 한물 간 작가라며
앞다투어 씹어대기 시작했다.
그때 혜성같이 나타난 작가가 에밀 아자르이다.
<자기앞의 생>으로 콩쿠르 상을 수상하면서
이후 출간하는 책마다 격찬을 받았다.
그와 비교대상은 항상 로맹가리였다.
평론가들은 로맹가리의 소설은 혹평하면서
에밀 아자르는 천재라고 했다.
이후 로맹가리가 자기 입에 권총을 넣고 자살한 후
그의 유고작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통해
로맹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인임이 밝혀진다.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은 물론이다
그의 유작에는 평론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속물론에는 자폭할 줄 아는자는 속물이 아니라는 표현이 나온다.
김수영의 순수문학에는 냉혹한 시선을 보내다가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쓸때야 비로소 자신의 문학의 가치를 인정해준 속물들에 대한 김수영의 속물론은
로맹가리가 평론가들 머리위에서 익명으로서만
자신의 문학성을 인정받았을 때
세상을 향한 배신감의 깊이는
속물론 만큼이나 냉소적인 것일테다.

김수영이나 로맹가리가
나일론 재킷을 입고
속물들을 향한 일침의 글은
그래서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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