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동화처럼
#목련후기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한다. 음악을 듣다가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이 떠올랐다.
김경욱의 『동화처럼』에는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이 사랑이라는 접점을 향하는 과정을 그린다. 엄마의 괴팍한 성격으로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낸 장미와 아버지의 인색함 아래 우울하게 자란 명제. 그런 둘이 만나 사랑을 했다. 결혼까지 했지만, 사소한 말다툼으로 이혼을 하고, 다시 만나 사랑하고, 다시 또 이혼을 한다. 둘은 매번 실패했고 매번 다시 사랑을 했다.
이 둘의 사랑은 결혼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동화 같은 꿈으로 이루어지지만 매번 부딪히는 현실의 힘겨움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헤어진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헤어지고 오해가 풀리면 다시 사랑을 하고 이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세 번째 결혼하는 것으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이후에 이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사랑은 전혀 다른 타자가 내 안에 들어오는 일이다. 이때 타자는 내 안에 타자의 짐을 짊어질 수 있을 정도의 나를 키워낸다. 장미와 명제는 두 번의 이별을 통해 타자를 위한 짐을 짊어지는 방법을 배워간다. 처음에는 미성숙한 어린 아이와도 같았던 이들은 세 번째의 만남에서야 서로를 향한 이상의 파편을 깨고 사랑의 현실을 받아들인다. 사랑은 전혀 다른 한 사람을 통해 타인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일이며 그 일은 상대의 무거운 짐도 같이 짊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간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단순하고 유쾌한 필치의 소설이면서도 사랑과 결혼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보기에 충분했던 소설로 기억된다. 우리가 이상적이라 말하는 아름다운 사랑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엔딩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 ‘나‘를 내려놓고 타자의 짐을 같이 들어줄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 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복효근, <목련 후기>
장미와 명제의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사랑이 가지고 있는 속성, 타자의 짐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사랑이 이루어 질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시인 복효근은 사랑을 호되게 앓아보라 한다. 호되게 앓다보면 알게 될 것이다. 쉽게 잊을 수 있는 상처는 사랑이 아니었음을, 목련꽃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지는 모습은 그에 못지않게 지저분하며 순백의 눈이 지닌 순수함만큼이나 질척이어야만 하는 것이 순리이며 진정한 사랑은 그것조차 사랑해야 한다는 순정함의 표현이라는 것을. 사랑에 쿨함이란 존재하지 않는 단어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