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 - 짜게 본 역사, 간을 친 문화
유승훈 지음 / 푸른역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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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을 다니다보면 꼭 빠뜨리는 물건이 있다. 이상하게 소금이 없으면 불편한 줄 알지만, 막상 챙겨지지 않는 조미료 중의 하나가 소금이다. 너무도 친숙해서 중요성을 가끔 잊게 되는 소금. 우리 집은 소금 한 포대를 사서 2년 정도 간수를 뺀 소금을 사용하는데, 다른 화학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소금을 사용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실제로 간수를 뺀 소금으로 찌개나 국을 끓이면 국물 맛이 정말 깔끔하다. 며칠 전 소금이 떨어져서 궁여지책으로 마트에서 천일염을 사려고 갔더니 소금가격에 놀라서 그냥 빈손으로 돌아왔다. 물가가 어디 소금 값만 올랐을까, 태풍으로 인해 상추 값이 고기 값보다 비싸니 가정경제에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재작년인가, 천일염을 주제로 다큐 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 내용인즉슨 환경오염으로 인해 이제 소금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간수를 뺀 소금을 알아보다가 눈에 띈 책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은 책 소개 글에 소금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나라 최초의 소금 문화사라는 글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1짜게 본 역사에서는 소금을 둘러싼 역사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과거 소금은 유일한 생계수단이자, 금과 같은 부의 척도이며, 서민생활의 중심이었다. 그런 소금 최고의 소금 교통로는 바로 강이었는데 조선시대 풍경화속에 자주 등장하는 소금배를 보면 왠지 목가적이고 친숙하게 느껴지곤 하였는데 그 모습이 바로 서민들의 생활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역은 주로 소금과 곡물을 교환하거나, 소금과 어류 따위를 거래하였는데 당시 낙동강에서는 경상도 해안가의 소금이나 어물, 내륙의 곡물이 서로 물물 교환되는 시스템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중국 최초의 소금 전매론자인 관중의 역사와 , 이어 한나라의 염철회의로 유래된 염장법, 충선왕이 시행한 각염법까지 소금의 역사를 살펴보는데 충선왕의 각염법의 특징은 모든 소금가마를 국고로 귀속한 점이다. 이 법으로 인해 10년 동안 백성들은 소금을 받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는데 충선왕이 세자로 원나라에 머무르면서 원나라가 염세수익으로 대제국을 형성시키는 디딤돌이 된 것을 보게 되자, 충선왕이 소금 전매제의 중요성을 깨닫고 고려에서 시행하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각염법으로 인해 백성들은 나라에서 소금을 얻지 못하자 사사 매매가 성행하게 되며 백성들의 원한이 높아지게 되자,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내놓을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고려백성들의 바람은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듯 저자는 작은 소금이 역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는데 소금으로 살펴보는 역사는 기존의 역사와는 다른 시각을 제안해준다. 조금 더 경제적 시각이라고 할까(소금이니까).

 

 

 

이에 고려왕조가 소금을 전매 했던 각염법을 폐지하고 소금 개혁을 시도하는 조선 왕조. 새로 개국한 조선 태조는 염장을 설치해 소금을 구워 부족한 소금의 물량을 높이고 쌀과 베의 질을 묻지 않고 소금과 바꿔주는 방책을 내세운다. 소금을 먼저 공급하고 대가로 쌀과 베를 받았은 이유는 민심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개혁이다. 조선 왕조에서 가장 큰 폐단을 남겼던 염철사제도는 류성룡이 주장한 것으로 조선의 역사에 가장 많은 폐단을 남겼던 세 가지 -전쟁과 재정부담, 염철사-는  서로 떼어낼 수 없는 불행한 관계였다고 한다. 이에 다산 정약용이 백성을 위한 염법, 즉 평미레 개혁안과 소금세를 줄여서 소금세를 늘이는 역발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다산의 염법은 국가와 백성 모두에게 좋은 최고의 실천방법이었지만, 실행되지 못한 채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받게 된다. 이렇듯 우리의 역사와 소금은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부에서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소금에 대한 자염의 생산비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지금은 천일염이 가장 좋은 소금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원래 가장 좋은 소금은 '자염'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닷물을 끓여서 만드는 자염은 연료비의 문제로 근대이후 천일염으로 대체하게 된 것이다. 자염이 천일염보다 더 좋은 이유는 자염 생산 시 갯벌에서 하는 써레질을 통해 갯벌 속의 유기물이 염분과 화학반을 일으키며 합성이 되면서  우리 신체에 필요한 다양한 유기물이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염은 덜 짜고 밋밋하면서 약간 단맛이 느껴진다고 한다. 갯벌에서 생성된 다양한 미네랄 성분이 자염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자염이 위축될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닷물을 끓여서 만드는 자염에 드는 연료비를 감당하지 못하기에 바람과 햇볕에 의하여 말리는 천일염이 자염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인체의 혈액이 바닷물과 비슷한 성분을 지니고 있는 것은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가 바다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소금은 인간의 신체 속에서 근원적 바다를 지탱해 주고 있다. 인간이 짠맛을 추구하는 이유는 이렇게 내부의 세포가 품고 있는 바다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2부에는 자염의 생산비법뿐아니라 소금장수와 얽혀있는 민담이나 설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소금장수들을 엽기적인 성적 변태나 대단한 정력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러고보니 변강쇠도 소금장수? 

저자는 설화나 민담에서 정력가로 그려지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성적으로 소외된 취약계층이었으며 늘 무거운 소금을 지니고 다니면서도 성적 욕망을 해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직업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저자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게다가 소금과 연관된 다양한 이야기, 오줌 싼 아이에게 소금을 주거나, 상가집에 갔다오면 소금을 뿌리는 이유등이 아주 흥미롭게 펼쳐진다.

소금으로 보는 한국사라는 독특한 설정과 더불어 소금의 전래와 소금생산지에 직접 찾아가 담아있는 답사기까지 소금에 대한 역사와 문화 등 아주 색다르고 재밌는 소금 문화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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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레전드 시리즈 1
마리 루 지음, 이지수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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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사가 대세다. 과거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던 영웅의 세계에서 이제는 섹시하고 도전적인 그러나, 아름다운 여전사 캐릭터가 세계를 지배하는 기분이다. 아닌게 아니라 세계는 지금 Hero가 아닌 Heroine에 열광하고 있다. 최근 개봉된 블록버스터급의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부분이 여전사들이다. 한마디로 먼 미래에 세계를 구원하는 사람조차 남자가 아닌 여자인 것이다. 남자 캐릭터도 시쳇말로 짐승남이라든지 마초남이 아닌 다분히 부드럽고 다정한, 이미지의 엄친아를 선호한다고 하니 , 이러다 먼 미래에는 전세계가 여성화?를 지향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최근 인상적으로 읽은 판타지소설은 대부분이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헝거게임>,<퓨어>,<트와일라잇>,<블러드 레드 로드>,<레전드>등 이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모두 여전사라는 것과 디스토피아의 미래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자본주의의 이면에는 언제나 지배층과 피지배층이라는 불평등 이념이 바탕이 되어 있고 급변하는 디지털 속도에 불안감을 감지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불확실한 미래와 측정할 수 없는 미래는 말 그대로 "디스토피아" 를 느끼게 한다. 최근에 들어 급증하는 영화장르나 문학에서도 디스토피아의 미래가 자주 점쳐지는 것 또한 자본주의의 미래를 예측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맞닿게 되는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이라는 양분화 된 사회, 엘리트 집단만이 살아남은 미래사회에는 약자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강자의 사회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런 점에서 『레전드』의 미래의 모습도 기존의 많은 디스토피아 영화와 소설을 닮아 있다. 그리고 내가 최근에 읽은 소설들과도 많은 부분이 접목되고 있다.

 

 『헝거 게임』과 『퓨어』에서는 지배측이 군림하고 있는 도시를 '판엠'과 ‘돔’이라 칭하고 있고, 『레전드』에서는 지배층을 리퍼블릭이라고 한다.

 

 

지배층과 피지배층, 부유층과 빈곤층만이 존재하는 계급사회가 바로 우리의 미래다. 지배층의 엘리트들은 부와 자유, 그리고 권력이 보장되지만, 빈곤층은 강력한 통제와 지배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 리퍼블릭에서는 열살이 되면 무조건 트라이얼이라는 시험을 거쳐야 한다. 쉽게 말해 일종의 공무원 시험 같은 것인데, 이 트라이얼 시험의 합격 점수로 미래의 직업이 결정되어 진다. 그.러.나...불합격 시에는 시체처리장에 버려지거나 빈민가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아가야 한다,

 

 

트라이얼 시험에 만점을 받은 유일한 영재 준은 리퍼블릭의 엘리트과정을 거치며, 유일한 피붙이이며 젊은 지휘관인 오빠 메이셔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오빠에게서 정의와 사회를 배운다. 정의로왔던 오빠는 준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려 했지만, 작전이 있다며 나간 오빠는 데이에게 당하여 시체로 돌아온다. 오빠를 대신해 지휘관으로 군에 투입된 준에게 데이를 생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준은 오빠의 복수를 위해 데이를 찾아 빈민가로 나선다. 데이를 처음 본 순간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히는 준, 오빠를 죽인 원수라 하기에는 데이는 천사처럼 아름다운 소년이다.

 

“난 너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어. 가끔씩은 우리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인데 각자 상반된 세계에서 태어났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어.”

 

 

반대로 트라이얼 시험에 만점을 받았으나 불합격 처리로 시체처리장에 보내진 데이는 살아남았다. 리퍼블릭에 온갖 해악을 입히는 범죄자로 악명이 높은 데이는  지명수배자이기도 하지만, 아무도 데이를 본 사람조차 없다. 그도 그럴것이 데이는 트리이얼 시험이 있는 날, 사망자 신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본명을 아무도 모르기에 데이의 존재는 더욱 베일에 싸인 존재이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라 당국에서는  전염병에 걸린 환자가 있는 집에 X자 표시로 관리를 하였는데, 어느 날, 데이의 집에도 X 가 표시된다. 먼 발치에서 언제나 엄마와 형, 동생을 바라보며 훔친 돈을 가져다 주곤 하였던 데이는 자신의 집에도  표시가 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기존의 표시와는 달리 ? 자 표시였다. 집의 누군가가 아프다는 생각에 데이는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병원을 습격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마주친 지휘관 메이셔스에게 칼을 던지고 도망친다.

 

“사람은 빛 속에서 살려고 노력하지.”

 

 

지배층의 준과 빈민층의 데이가 각각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인지,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라든지 심리변화가 세세하게 느껴지며, 상황전개가 빨라 몰입이 무척 잘 되는 소설이다. 탄탄한 스토리와 매력적인 준과 데이의 로맨스는 그야말로 기대 이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이 발간되자마자,「트와일라잇」제작진이 영화 판권을 계약하여 2013년에 영화로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 속에 보여주는 계급사회는 머지 않은 미래를 보는 것 같은 기분에 현실의 부조리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디스토피아 문학의 매력이 돋보이는 소설이었으며, 현실의 울림을 그대로 반영해주는 무척 매력적인 소설이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더욱 볼 만할 것 같다. 왜냐하면 주인공들이 참 이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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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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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자라는 아이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나중에는 꼭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들려달라고 조른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 하나씩 하고 나서 아이에게 동화하나 만들어 보라고 했더니, 이런 이야기를 만든다. 감자탕과 아이스크림이 서로 사랑을 하는데 이들을 방해하는 마녀 이름은 슬러시이다. 슬러시의 방해에도 자탕과 아이스크림은 사랑을 이룬다는 뻔한 동화같은 결말이지만, 이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모습은 꽤나 진지하다. 그리고 아이가 동화속에 숨겨진 , 사랑은 어떤 어려움과 고난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때 완성된다는 진리가 내포 되어 있음을 아이가 알고 있는 듯하여 슬며시 웃음이 났다. 이야기가 가진 힘은 마음 깊은 곳의 감성을 건드린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야기의 힘은 최근 교육, 정치, 외교, 홍보, 사업, 경영 등 각종 방면에서 주목하고 있다. 무언가를 설명할 때나, 수업을 할 때, 제품을 설명할 때나, 이야기(스토리)와 함께 하면 상대방의 기억 속에 더 잘 각인된다. 이야기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 ,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전설을 믿고 신화를 말하고,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고 남기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삶인지도 모르겠다.

 

삶만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는 위대한 손이다.

 

변화경영사상가인 구본형의 <깊은 인생>을 읽으면서 인생을 바라보는 깊이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었는데 그가 새롭게 도전하는 신화경영의 첫 결실인  <구본형의 신화를 읽는 시간>은 기존에 깊은 인생의 경영철학과 더불어 철학, 심리학, 문학, 미술 등 다채로운 시각으로 더욱 깊어진 인생을 사유토록 안내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장점 '감성을 자극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최대한 잘 살려내었고 그리스 신화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 인간은 무엇인가?' 에 대한 성찰로 이끌어주고 있다.  

 

저자는 신화라는 신비로운 세계에 들어가려면 그 세계를 여는 열쇠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신화를 읽는 기초적인 독법(열쇠)로 그리스 신화의 세계에 들어가면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따라서, 그리스 신화를 독법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신화는 은유이기 때문이며, 자연과 우주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신화는 갖가지 문화에 의해 왜곡되기 전 인류의 원형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원시적인 신들의 이야기는 결국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날것들을 신에게 뒤집어씌운 이야기이므로 그리스 신화를 통해 인간의 미덕과 삶에 대한 통찰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모든 신화에는 과거를 죽이고 새롭게 태어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진정한 변화의 정수가 숨겨져 있다. 결국 판도라의 상자 속의 불행과 악덕을 이겨내고 진정한 나의 세계를 창조해가는 과정이 이 책 안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에게 화가 난 신들은 여자 판도라를 만들고 제우스는 판도라와 함께 작은 상자를  프로메테우스에게 보낸다. 제우스가 주는 것은 아무것도 받지 말라는 프로메테우스의 경고를 저버리고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와 결혼까지 한다. 에피메테우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제우스가 보낸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본 판도라는 상자속에서 튀어나온 가지가지의 불행과 악들에 놀라서 뚜껑을 닫는데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희망만은 그 상자에서 나오지 못하였다.

 

 

여기서 저자는 판도라는 여자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삶 자체를 상징한다고 한다. 판도라부터 시작된 인간의 삶, 신들의 선물꾸러미인 인간 선물상자인 판도라는 삶이라는 시련을 말한다. 세계와 자신, 삶과 여인에 대한 의식이 생겨나면서부터 고난과 시련을 느끼게 되고 삶 속에 수많이 내포되어 있는 모든 종류의 미해결 수수께끼들이 우리가 인생에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모험들인 것이다.

 

판도라 마음상자 뚜껑을 열자마자 튀어나온 것은 바로 ‘시간’이다. 두 번째 악덕은 ‘욕정’이다.우라노스의 잘려진 성기로부터 크로노스의 '시간'과 아프로디테 '애욕'이 생겨났다. 시간의 흘러감에 따라 애욕도 속절없이 사라져가지만, 시간과 애욕이 영혼의 사랑과 합일하게 될 때, 인간은 시간을 넘어 대를 잇게 된다.

 

필멸의 육체로 상징되는 거품, 바로 삶 자체를 사랑하게 될 때 시간을 결코 우리를 절멸시키지 못하리니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자. 불임이니 시간에 의해 절멸될 것이다. 사랑만이 사랑을 낳게 되고, 그 사랑을 이어감으로써 우리는 시간에 대항할 수 있게 된다. 육체가 죽어도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남아 있는 한, 그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 불멸이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남는 존재들이다.

 

 

세 번째 악덕은 바로 변화다. 그리스 신화속에서 변화의 신은 없다고 한다. 변화와 변신은 모든 신들의 공통된 속성이기에 특별히 변화의 신은 없다. 그러나, 신화속에서 제우스는 변신의 귀재이다. 자신의 애욕을 채우기위해 끊임없이 변신을 하였던 제우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저자는 영웅이란 주어진 변화에 창조적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인물들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으며, 평범한 인간안에는 신의 위대함이 씨앗처럼 들어있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신이 될 수 있다. 단, 자신안에 잠들어 있는 자아를 깨울수만 있다면 이라는 전재가 붙는다는 것!

 

네 번째 악덕은 ‘자아에 대한 무지’ 이다. 폴리페모스에게 ‘아무도 아닌’ 자로 말했다가 '도시의 파괴자‘라는 이름으로 결국에는 ’귀항하는 바다의 항해자‘로 진화를 거듭한 오디세우스에게서 이름이 가진 상징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아가는 모험을 시작할 때 자기 혁명이 시작되듯이 , ’아무도 아닌‘ 이름일때 오디세우스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도시의 파괴자를 뜻을 외쳤을 때, 그는 그 이름처럼 도시의 파괴자가 된다. 그러나 10년의 고난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이름을 찾게 되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통해 이름을 통해 상징이 된 사람만이 진짜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는 삶으로밖에는 보여줄 수 없다. 인생없이는 진짜 이름도 없다. 인생이 곧 이름이다.

 

삶이란 결국 자신의 정체성, 즉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아가는 기나긴 모험인 것이다.

삶의 모험이 없는 자, 아무도 아닌 자로 살 수밖에 없다.

   

나르키소스를 통해 다섯 번째 불행인 '자기애'를 에이직튼을 통해 '배고픔'이라는 저주에 걸린 인간의 삶과 아킬레우스가 분노와 슬픔에 사로잡혀 헥토르의 시신을 모독하고 트로이 포로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분노'를 통해 분노하기보다는 나를 위해 좋은 에너지로 바꿔내어 성장시키는 힘으로 정화시키는 법을 이야기한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가 진실일 수 밖에 없다.

배고픔의 상징성 중 하나는 자신을 몰아쳐 끊임없이 성공으로 치닫게 하는 것이다. 음식을 먹듯 , 성공과 승리를 먹어치운다.

여성을 혐오하였던 젊은 조각가 피그말리온을 통해 '혐오'라는 불행을,  무익하고도 희망이 없는 일을 매일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형벌을 통해 자신에게 배당된 삶의 바닥을 반항과 자유와 열정으로 맨 밑바닥이 드러날 때 까지 퍼올리며 사는 것이 바로 사람임을 인정하게 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익하고 희망없는 일에서 기쁨을 보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것이 인간의 삶이다.

 

이외 판도라 상자에서 튀어나온 불행은 스무가지가 넘는다.  허영,거짓말,과도함,집착,오만,탐욕,비뚤어진 웃음, 골육상쟁의 피,잔혹함, 폭력, 운명,불복종, 나도 모르는 나.사유 불능 ,이별, 복수, 마지막으로는 신들의 종합상자인 판도라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불균형이다. 이렇게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것들을 채집하는 과정 속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아 떠나는 흥미로운 모험이《구본형의 신화를 읽는 시간》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저자는 이런 무수한 악덕과 불행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것은 , 매번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산꼭대기로 밀어올려야 하는 시시포스가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비극 속에서도 깨어 있는 것이 인간의 참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화를 통해 보는 인간의 다양한 욕망과 본성과 철학, 심리학, 문학, 미술을 넘나드는 저자의 해박하고도 다채로운 시각은 깊은 인생으로 들어가는 자기경영법을 선사해준다.

 

오직 불행속에만 희망이 있다. 지금 아픈 사람은 낫기를 희망한다. 지금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지금 헤어진 사람은 다시 만나기를 희망한다. 지금 감옥에 갇힌 사람은 풀려나기를 희망한다. 희망은 결핍과 불행과 고통 속에서만 자라나는 환각이다. 그러니, 희망이 있어야 할 자리는 모든 불행, 모든 악덕, 모든 결핍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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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 자연학자 이브 파칼레의 생명에 관한 철학 에세이
이브 파칼레 지음, 이세진 옮김 / 해나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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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의 답을 철학에서 찾아 본 이브 파칼레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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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 자연학자 이브 파칼레의 생명에 관한 철학 에세이
이브 파칼레 지음, 이세진 옮김 / 해나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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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생겨났고 어디로 갈 것인가? 이것은 철학자들이 언제나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다. 어쩌면 인간은 평생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이라는 형태로 보여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이것은 철학자 뿐만이 아니라 과학자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다. 끊임없는 사유속에서 증명되었던 진실처럼, 과거 우리가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이 언제나 이 물음으로 인해 진실을 찾아내듯이 말이다. 그런 사유속에서 증명된 가장 쉬운 예가 아마도 지구 중심의 사관이 진실인 마냥 인간이 오만함에 취해 있을 때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게 되었던 일이 아닐까 한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것 , 그것은  우주는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우주가 중심이라는 쇼킹한 사실로 인하여  지구는 우주의 중심점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포기해야 했다. 이와 같이 현재에 대한 물음은 언제나 진실을 추구하고 증명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발견으로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탈피하여 우주에서 우리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코페르니쿠스적 우주관'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에 현대적 의미의 우주론은 아인슈타인으로 시작되었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가설로 인해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가 졸지에 설자리를 잃게 되면서 아주 작은 무언가가 대대적인 폭발을 일으켜 우주가 탄생한 후 지금까지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빅뱅이론이 과학적 창조론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빅뱅이론은 현재 우주의 질량과 에너지에 맞먹는 엄청난 양의 원자재부터 확보해야하는데 빅뱅이론은 원자재의 출처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 다짜고짜 폭발부터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빅뱅이론은 우주탄생의 청사진으로서는 무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등장한 것이 최근의 다중우주론이다.

 

이렇게 우주에 대한 시각조차도 단 하나의 우주가 아닌 다중 우주론의 가능성을 제시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언제나 존재한다. 천동설을 깨고 지동설이, 상대성 이론에서 빅뱅이론, 다중우주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처럼 과학은 절대적이지 않다. 과학은 그만큼 유동적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프랑스의 자연학자이자 철학자인 이브 파칼레는 유물론자이자 무신론자이다. 물론 나는 유신론자이다. 과학자이자 무신론자이자 유물론자의 학문은 조금은 불편하다. 왜냐하면 신의 존재를 부정함으로 자아도취감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대부분의 무신론자이자 유물론자에 과학자들의 글은 자기기만 투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브 피칼레의 글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명료하며 겸허하다. 광대한 우주 속에 낱알 한 톨 같은 존재에 불과한 인간이라는 전재 때문인지 그에게는 어떤 기만이나 자아도취감은 보여 지지 않는다  

인간의 혼란스러운 정신은 과학을 다른 분야들과 함께 싸잡아 일종의 신념으로 보고자 한다.

과학은 종교와 달리 골치 아픈 질문 공세와 까다로운 검증을 사랑한다.

과학은 자신이 말한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앙이나 미신과 구별된다 

 

이브 피칼레는 생명의 탄생을 하나의 빅뱅이론처럼 물질이 복합되고 조직화되려는 내재적 성향, 엔트로피가 떨어져 죽음에 이르지 않게끔 맞서 싸우려는 성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생명은 기적이 아니라 충동에 가까운 양자 진공의 진동처럼 보는 것이다. 거대 분자들이 상하관계를 맺고 협력하여 전세포를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하고, 결국에는 진짜세포를 거쳐 생태계에 부합하는 유기체를 이루고 , 그 가운데에 인간이 탄생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이라는 종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인간이 사라져도 북극성 주위에는 아무 변화도 없을 것이요, 거대한 별 베텔게우스나 안드로메다 은하는 무사하고 평온하리라. ‘나비 효과도 지구와 그 변두리 너머까지 작용하지는 않는다! 미미하도다,

인간이여! 그렇지만 한편으로 당황스럽다.

 나의 유물론은 시적이면서도 반어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시 근원적이고도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하여 저자 이브 파칼레는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원자론과 유물론을 계승한 책),에서 발췌한 시와 더불어 철학하는 식의 구성으로 첫장 137억 년 전, 우주는 양자 진공의 경이로운 진동에서 비롯된다. 무에서 태어난 우주는 여전히 팽창을 거듭하고 가속화되어 더욱 커 졌다. 그런 와중에 우주가 10억살이 되자 별들의 시대가 시작된다. 45억년이 되자 태양계가 생기고, 445000만년에 드디어 생명이 깃들 수 있는 행성이 등장한다.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의 우둔함과 영광이 하나의 이미지 속에 새겨졌다. 미세한 은 입자들에 대한 빛의 장난으로..........지구는 결코 엄청난 세계가 아니다. 기껏해야 엄청난 농담일 뿐.

 

우주 40억년이 되자, 세포가 형성되었는데 인간의 DNA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과학자들은 DNA를 지닌 최초의 유기체를 바이러스라고 보는데 많이 바이러스들이 지니고 있는 핵산은 RNA. 저자 역시 바이러스를 생명의 기원으로 보고 있는데 바이러스를 생명체의 토대로 보는 것이 이 책의 가장 쇼킹한 부분이었다. 이 부분은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고 하는데, 이것을 저자가 시로 표현한 부분이 참 재미있다. (저자의 위트가 보이는 부분이기도 ^^;;)

 

우리 조상이 바이러스라면

우리의 못된 성품도 설명될 텐데

 

우리 조상이 바이러스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치명적 질병이 되려나?

 

우리조상이 바이러스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의

아이러니에 빠지게 되려나?

 

우리 조상이 바이러스라면

우리 철학자들은

연회를 떠날 때를 알게 되려나?

 

그러나, 이브 파칼레의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에는  이런 우주에 대한 사랑이 철학과 과학과 어우러져  우주의 위대함을 말하기엔 충분하지만,  슬프게도 오늘 신문에는 2011년도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인 브라이언 슈미트 교수가  "우주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생명이 기적이 아닌 하나의 입자운동으로, 우주가 무에서 창조되었다고 하는 이브 피칼레에 의하면 무에서 창조되었으니, 무로 돌아가는 것 또한 자연의 섭리 이겠지만 결국 언제가는 사라져갈 운명은 인간만이 아닌 것이리라... 이브 피칼레의 책은 처음 접하였으나, 위에 말했듯이 굉장히 위트있고 재치있어 방대한 분량이지만 무척 쉽게 읽힌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으로 시작된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는  루크레티우스의 시와 중간중간 철학자들의 사유와 과학자들의 우주론이 잘 어우러져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철학에세이이다. 저자는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에서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시적 유물론또는 반어적 유물론과 더불어 기획하였다고 밝히는데 그에게는 이제  마지막 인간에 대한 질문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 인간에 대한 물음은 그의 다음 책 <인간의 장편소설>에서 선보인다고 한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그의 특별한 사유가 돋보이는 책이었으며, 다음 작품도 기대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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