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숙 장관이 해임되었다. 여수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현장에서 코를 막으며 얼굴을 찡그리는 것까지 뭐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윤진숙 장관이 여수 앞바다의 기름 유출 사고의 1차 피해자가 GS 칼텍스라고 한 발언은 아무리 생각해도 용납이 안되는 발언이다. 이런 발언이 해양수산부를 관리하는 총 책임자인 장관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주민보다 대기업이 더 우선시되는 사회의 풍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발언이자 , 국민이 믿고 따르는 정치인들의 도덕성까지도 의심하게 만드는 발언이다. 윤진숙 장관의 상식으로 예를 든다면 밭을 유조차가 덮쳐 작물과 밭을 못쓰게 된 상황에서 1차 피해자는 유조차 주인인 주유소 사장이라는 논리가 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식을 따른다면, 주유소 사장은 피해자 이전에 가해자이다.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가해자의 피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법은 대체 어느 나라 법인지 모르겠다. 하..... 피해자들의 적敵은 기름이 유출된 바다가 아니라, 피해자보다도 가해자를 먼저 걱정해주는 나라가 아닌가. 김수영이 그리운 날이다.(2014.2.7)
하…… 그림자가 없다/김수영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커크 더글러스나 리처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자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회사원이라고도 하고
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요릿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웃고 잡담하고
동정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
영화관에도 가고
애교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전선은 당게르크도 노르망디도 연희고지도 아니다
우리들의 전선은 지도책 속에는 없다
그것이 우리들의 집안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직장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동리인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의 모습은 초토작전이나
<건 힐의 혈투>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거리를 걸을 대도 환담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토목공사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대도 울 때도 웃을 대도
풋나물을 먹을 때도
시장에 가서 비린 생선 냄새를 맡을 대도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수업을 할 때도 퇴근시에도
사이렌소리에 시계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있다
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 그림자가 없다
하…… 그렇다……
하…… 그렇지……
암암 그렇구 말구…… 그렇지 그래……
응응…… 응…… 뭐?
아 그래…… 그래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