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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서재를 서성이다가 문학동네 전집 사이에서 한국인 이름을 발견했다. 한국계 최초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순교자》라는 작품을 향한 펄벅과 필립 로스의 찬사는 순교자를 읽는데 주저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낯선 이름의 작가 김은국의 약력을 보니 <태백산맥>에서 평등주의사상을 가지고 있던 주인공 김범우의 운명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이대위와도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김범우가 사회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이데올로기이전에 봉건주의 타파와 민족평등이 먼저였던 것처럼 김은국 작가는 《순교자》를 통해 이데올로기라는 이념적 대립 앞에서 인간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1950년 서울에서 인류문명사를 공부하던 박군과 이군은 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지원하게 된다. 박군은 해병대로 이군은 육군본부 평양 파견대에 가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들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평양에서 목사들이 북한 공산당에 의해 집단 처형된 사건 때문이다. 발견된 열 두구의 시체에는 박군의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박군이 아버지의 죽음을 애통해하기 보다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평소의 ‘광신자의 오만한 얼굴, 자기가 옳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자길 패배시킬 수 없다는 신념에 잔뜩 도취된 자의 얼굴’이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발굴된 열 두구의 시신을 둘러싸고 육본 파견대 정치정보국장 장대령은 북한 괴뢰 정권에 희생당한 순결하고 성스러운 희생자로서의 <순교자>라는 상징을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는 위원회를 만든다. 이름하여 ‘합동추도예배’인데 이 예배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국군의 홍보와 공산주의의 부정한 이미지를 심겨주기 위한 것이 군의 목적이다. 장대령에 의해 임시 책임자가 된 이대위는 목사들의 집단 처형 가운데 두 명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살아 돌아온 두 목사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되면서 사건이면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집단 처형 당일 있었던 진실, 모두 총살당하고 두 명만 살아남은 진실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 목사와 신 목사가 살아남은 이유를 둘러싸고 교회와 신도들 사이에는 온갖 억측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작 살아남은 이들은 침묵할 뿐이었다. 이들이 살아남은 이유를 장대령은 국가 이익의 보호와 군의 선전 목적에 이용하기 위해서 신 목사에게 이대위를 보낸 것이고 이대위는 그저 순수하게 신 목사라는 인간미에 이끌려서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는데 신목사의 친구 고군목의 등장으로 신목사의 입지는 다시 좁아지게 된다.
첫째는 그가 거짓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양심은 깨끗할 대로 깨끗하다는 거고,
둘째는 그의 양심이 썩을 대로 썩었다는 거야.
합동추도예배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각종 신문에서는 기독교인들의 성스러움과 순교자들을 찬양하는 선전이 도배를 하고 합동추도예배에서 설교를 하게 된 신목사는 처형 당일에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는 열 두명을 배신하였기 때문이며 그 열 두명의 목사들은 모두 자신의 배신을 용서하고 거룩하게 죽었다는 설교를 함으로써 스스로 십자가를 진다. 이로 인해 신도들은 분노하여 신 목사를 ‘유다’라 부르며 폭동을 일으키게 되고 신 목사를 타도하기 위해 합심하는데 , 허나 진실은 그 반대였다. 처형을 주도하였던 정소좌가 포로로 잡혀오면서 사건당일의 진실이 드러나는데 , 정소좌가 두 사람을 살려 준 이유는 열 두명의 목사들이 죽음 앞에서 모두 신을 부정하였으나, 한 사람은 이미 미쳤고(미친사람은 쏘지 않는다는 불문율 때문에), 오로지 한 사람만이 죽음 앞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인 유일한 신앙인이었다는 이유로 살려두었다는 말을 남긴다.
“난 평생 신을 찾아 헤매었소. 그러나, 내가 찾아낸 것은 고통받는 인간......
무정한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뿐이었소.”
‘절망은 이 피곤한 생의 질병이오. 무의미한 고난으로 가득 찬 이 삶이 질병입니다. 우린 절망과 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우린 그 절망을 때려 부수어 그것이 인간의 삶을 타락시키고 인간을 단순한 겁쟁이로 쪼그라뜨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전쟁은 민족상잔의 비극만 낳았을 뿐 아니라, 절망도 낳았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가운데 종교조차도 그 빛을 잃었다. 동료 목사들의 죽음을 목격하며 신의 부재에 절망한 한 목사의 미친 울분의 소리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는 신 목사의 절규는 시대의 아픔과 인간에 대한 동정이 묻어난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전에 , 종교이전에 전쟁이 만들어낸 포화속에서 인간실존에 대한 작가의 사유는 《순교자》안에서 미학적으로 완벽하게 형상화 된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고 하였듯이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비극 앞에서 희망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만들어주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신 목사에게서 종교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참된 신앙의 길이란 무엇인가를 떠올려 보게 되었던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산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 어쩌면 같은 말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