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 - 김화영 평론집
김화영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매일 싸운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파도 같은 격정들이 일렁일 때마다 습관처럼 책에 의지할 때마다 내면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일어난다. 현실을 외면하는 내가 비겁한 것일까 아니면 현실이 팍팍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요즘 부쩍 늘었다. 책을 밥 먹고 자는 일처럼 습관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책을 읽어가는 일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어쩌면 리진에서처럼 전근대적인 여자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 여자가 읽는 것을 배웠을 때, 여자의 문제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라는 마리 폰 에브너 에셴바흐의 말처럼 전근대적인 여자 서씨와 리진이  서책을 가까이 하여  그저 보통의 여자가 아닌 삶을 살게 된 여자의 일생은 책이 주는 파장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내가 점점 책읽기가 힘들어지는 이유도 아마 현실에서 느껴지는 부조리로 인해 맘속에 일렁이는 어떤 신념이나 의지 같은 것들이 자꾸 생겨나 마구잡이로 나를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육체는 슬프도다, 오호라,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읽었노라.

La chair est triste, helas! et j'ai lu tous les livres.

 

그래도 때론 책을 읽는 것이  노화의 슬픔을 이겨내기도 하고, 현실의 고통을 잠시 모른 척 하게 해주어서 아무래도 좋았다책을 읽는 내 뒤의 시간의 배경이 봄에서 여름, 가을, 이어서 겨울이 오고 지나고 다시 봄이 되어서 시간을 헤아리는 것도 하나의 기쁨이었다. 책은 그렇게 내 삶의 새로운 무늬를 짜주고 있었다. 문학이라는 씨실과 인문이라는 날실의 짜임으로 꽉 채운 내 서재. 그 서재안에 문학이 주는 황홀감에 도취되어 살아가는 기분, 아마도 그 기분은 아이가 처음 태어나서 맛본 모유와 같은 황홀감과 같을 것이다. 저자가 다음 소설은 시간처럼 파도처럼 시간의 밀물처럼 왔다라는 고백을 하듯이 책은 시간처럼 파도처럼 내 삶을 채워갔다. 그 사이 내 곁의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고, 새로운 인연들이 찾아왔고 다시 떠나갔다. 그리고 나는 늘 남겨졌다. 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는 내가 지나온 책이라는 숲을 다시 한 번 거닐게 하는 나그네의 우수가 깃들어 있는 감성의 숲이다.  

 

물리학에서 중력의 법칙을 모르면 무식하다 하겠지만 프랑스 문학에서 악의 꽃을 읽지 못한 사람은 무식하다. 루소, 스탕달, 프루스트는 현재의 유명한 비평이론가들의 이름이나 그 개념구조들이 다 잊힌 뒤에도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남을 것이다.”

 

소설의 맨 끝에는 문학평론가의 글이 실려 있다. 이런 문학평론은 난해하거나 어려운 소설을 읽을 때는 상당한 도움을 주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소설에 대한 해석에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같은 책을 읽었음에도 범접하지 못할 텍스트의 해석은 경이로움과 함께 더 깊고 넓은 문학의 세계가 저너머에 있음을 느끼게 하였다. 그래서 시간이 되면 문학평론가들의 평론집으로 소설 저너머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었고 나는 저너머의 세계를 오랫동안 흠모해왔었다. 

 

마침표가 찍히면서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의 손으로 넘어온 텍스트는 하나의 닫힌 기호체계다.그 텍스트의 의미는 다양한 층위에 걸쳐 그 기호체계의 구성요소들 사이 상관관계로 생산되는 잠재적 의미들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텍스트는 폐쇄된 세계다. 그것은 그 자체만의 내적 관계로 충족된다는 인상을 준다. 텍스트는 의미의 잠재적 가능성 그 자체다. 이 체계는 가능성의 세계일 뿐 독자의 의식이 개입하기 전에는 부동의 대상에 불과하다. 

 

작가의 손을 떠난 부동의 텍스트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의식이다. 오래 된 책들이나 고전으로 남겨져 있는 시대정신이 깃들어 있는 거인들의 텍스트들은 독자의 시대환경과 함께 변화하여 새롭게 생성된다. 잠들어 있는 공주를 깨우듯이 독자는 잠들어 있는 텍스트를 깨워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단순한 물건에 불과하던 것이 독자를 만남으로 생명체가 되어 오로지 현재를 부여받은 그 무엇이 된다. 이러한 문학의 텍스트를 새롭게 생성하는 작업은 1, 신경숙의 리진, 조경란의 , 윤대녕의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리진과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혀가 일깨우고 있는 감각의 제국, 윤대녕이 문학에서 표방하고 있는 문학 세계가 한낱 텍스트에 불과하였던 책이 어떻게 역사와 시대를 담아내며 독자적인 의지가 부여 된 문학으로서 새롭게 생성되는지를 볼 수 있다. 2부는 저자 김화영 교수가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선정작업에 참여하면서 특별한 관심과 지지를 보냈던 작품들을 엿볼 수 있는 장이다. ( 박완서, 박범신, 은희경, 하성란, 오정희, 전경린, 김영하, 윤성희, 김연수, 편혜영, 정한아 ) 3부에는 우리의 대부분의 시간들이 텔레비전에 의하여 유괴되고 있는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와 시인들의 가난함과 고단함을 담고 있는 시편들과 앞으로의 한국의 시단과 독서계의 일단을 짚어볼 수 있는 글들이 실려 있다. 여기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한 남자 베르나르 피보의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게 읽은 부분인데 15년 동안 5천권을 읽은 이 남자의 별명은 괴물’,‘신간서적의 달인’,‘독서의 마라토나라고 불린다. 이 남자가 많은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비결은 다름이 아닌 구멍이 많은 기억력 덕택이라고 한다. 

 

 “ 구멍이 많은 기억력을 가졌기 때문에- 나의 경우는 이것이 행운이었다- 일주일 동안 쌓인 찌꺼기들이 절로 없어진다. 가끔 나는 내 머릿속에 칠판이 하나 있어서 토요일 아침에 그저 지우개로 쓱 지우기만 하면 깨끗해지는 것이어서 또 새로운 주일의 독서내용을 새로 기록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

 

문학 읽기는 독서 주체인 자아와 텍스트로서의 세계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경험공간으로 세계를 향하여 우리의 자아를 조절하고 동화해 나가는 공간이다. 문학 평론은 그런 시공간과 경험공간을 줌 렌즈로 조작하여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개인의 삶과 역사 사이의 거리를 자유자재로 확대 축소를 반복하여 현실의 안과 밖 사이의 작은 틈새사이로 삶의 珍景진경을 엿보게 한다. 문학 저너머의 경이로움, 소설이라는 실물대의 지형을 찾아가는 모험이라 할 정도로 책읽기의 외연을 넓혀주는 김화영의 평론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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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9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2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ppletreeje 2013-06-30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림님의 이 아름다운 리뷰,를 읽고나니
아주 오래전 말라르메와 보들레에르에 경도되었던 그 시간들이 떠오르네요.
게다가 김화영,이라니.. . 책을 읽는 내 뒤의 시간의 배경이..에선 '즐거운 편지'까지.

'텍스트는 의미의 잠재적 가능성 그 자체다.'
'현실의 안과 밖 사이의 작은 틈새사이로 삶의 珍景진경을 엿보게 한다.'-

<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와 정말 맞춤 맞은
아름다운 리뷰와 서재 배경사진, 그리고 바뀐 프로필사진(미모의 가족사진`^^)으로
오늘도 드림님 덕분에,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다 갑니다.~^^
드림님! 좋은 주말 되세요.~

드림모노로그 2013-07-02 14:05   좋아요 0 | URL
ㅎㅎ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경험을 일깨워주는지 다시 한번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구요.
김화영님의 문학평론을 참 좋아했었는데 이렇게 평론집으로 다시 읽게 되어 매우 의미깊은 책 같아요.
ㅎㅎㅎ 나무늘보님께서는 정말 너무너무 좋은 글벗이신 것 같아요 ㅎㅎ
늘 정성스런 댓글과 좋은 향기 담긴 말들에 제가 더 감화되는 기분이 ^^

ㅋㅋㅋ 사진은 무슨 용기로 올렸는지는 모르나 저희 캠핑 대문사진을 밤새 만들었거군요 ㅎㅎ
그 기념으로다가 ㅋㅋ
제 사진은 실물과 많이 틀립니다 ㅋㅋ
지금은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와요 ㅋㅋ너무 더워서 머리를 자르고 싶은데 ㅋㅋ
긴 머리에 왜 자꾸 애착이 생기는지 모르겠어요 ㅎㅎㅎ
나무늘보님께서도 늘 행복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숲노래 2013-06-3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으면서,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제껏 몰랐던 너른 터전을 살피고
내 마음을 어떻게 가꾸어야 할까를
깨닫겠지요.

언제나 아름다운 이야기 마음에 담으소서.

드림모노로그 2013-07-02 14:07   좋아요 0 | URL
와 ~ 함께살기님 댓글 감사드려요 ^^
책을 읽으면서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아서인가봐요 ㅎㅎ
이웃들과 함께하고 좋은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해야 되는데...
저희 부족함을 새삼 깨닫기도 하였답니다 ㅎㅎ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 앞으로는 이웃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을 많이 가져야겠습니다 *^^*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