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렇지만 대중 교양서 혹은 인문 에세이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것 같다. 마치 특히 페이스북을 위시한 일부 '책잘알' 계층에서는 이 책을 논문 비평하듯이 계보를 쫙 꿰면서 호되게 비평하는 데(물론 멋있다. 나도 저렇게 한 분야를 쫙 꿰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과하다고 생각한다. 한국같이 학계가 대중을 하대하는 사회에서, 학술 논문도 아닌 교양서에 굳이 저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다. 사실 학계는 대학 신입생을 가르칠 수준의 기초 입문서도 자체적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괜한 무게잡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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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차피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어렵다고 안팔리고, 쉽게 쓰면 수준 낮다 얻어 맞는게 이 영역이다. 목차를 구성하는데도 장사를 위해서는 이미 유명한 책, 최근 각광받는 책을 상당부분 깔고 들어가야한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책은 한 두권 추려 넣어야지 이것저것 다 넣자면 한도 끝도 없다. 이거야 말로 전문가/전공자들이 해야할 일이지 교양 작가에게 바랄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본인이 자신과 맞지 않은 책난이도를 골라놓고 거센 비평을 하는 건 꽤나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출판시장은 책을 극단적으로 많이 읽는 계층과 아예 안읽는 계층/어쩌다 한두권 읽는 계층으로 양분되어있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하는 난이도의 책을 낼 수 가 없다. 따라서 유시민이 겨냥하는 주요 독자층이 일반인, 고등학생 정도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것은 교양 인문학이라는 장르의 한계면서 , 동시에 책잘알 계층을 구조적으로 만족시킬 수 없는 탓이 크다. 쉽게 말해 비평의 번지수를 잘못 잡았다 뭐 그런셈인데, 고인물들은 브론즈 말고 상층부에서 노세요!! 라고 쉴드를 칠려해도 이 책은 여전히 유시민 특유의 문장의 힘과 울림이라는 점을 잘 못살렸다는 점에서 못썼다.
4. 이 책에 혹평을 하고있는 유시민의 열렬한 팬인 내가, 이 책에 관한 혹평 중 가장 기분 나빴던 것은 학계에 계신 사람들의 평이었다. 월드컵 기간 내내 축구 보는 눈 없다는 소리에는 분개하면서, 갑자기 교양서에서는 자기 전공이라며 수준과 영양가를 논평하는 게 무슨의미가 있는 지 잘 모르겠다.그냥 이 책의 대상은 뉴비인거고, 노는 물이 다른 것인데.. 학계에 있는 분이라면 수준 낮다 열올릴 에너지로 더 좋은 안내서를 쓰는데 좀 써주십사..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탁도 하고 싶기도 한데, 내로남불이면서...쓸데없는 권위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축구에 대한 전문가vs 일반인 논쟁을 보는 것 같달까? 442포메이션과 433의 상성관계라거나, 토털사커의 역사 및 현대축구에서 풀백의 중요성을 굳이 가볍게 즐길 사람,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에게 권하는 건 전문가가 아니라 그냥 지적 과시라고 생각한다. 교양서에 왜 이것 빼고 저건 피상적이고 이건 왜 이렇게 썼고 영양가 없다 따질 때가 아니다.
5.
학계는 자체적인 교양서 하나 대중의 언어로 쉽고 직관적으로 못 쓰면서(아니 쓸 관심이 없으면서) 수준 못따라온다며 구박하는 어떤 엘리트주의가 혐오스럽달까? 한국 교양 생태계가 이미 무너져서, 시민은 비롯하여 대학생들 조차 쉽게 쓰인 책들을 찾는 형편에 훈수질이라니.. 너무 속이 편하다.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학계에 발걸친 사람들이 그런 소리 하면 안되는 거다. 나는 중학교때 이런 책을 읽었는데 그 수준도 못미친다 말하는 사람이 계셨는데, 그냥 본인 잘난거 어필하는 거다.
뭐 우리 나라도 언젠가는 학계와 대중을 잇는, 학자와 작가가 혼합된, 재미와 깊이를 모두 갖춘 전문 저술가들이 탄생했으면 좋겠다. 그동안 유시민은 훌륭한 지식 소매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연필이 꽤 무뎌진 것 같다. 때마침 유시민의 썰전 하차 소식을 들었다. 그의 안식년을 응원한다. 이건 순 팬심이다. 더 좋은 책으로 다시 뵙기를 고대한다.
-2018.6.30 @PrismMa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