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부대문학상 단편 소설 부문 출품작입니다. 아쉽게 최종심에서 낙선하였습니다. 

생애 처음 쓴 소설인데, 좋은 심사평을 받은 거로 만족합니다. 부족한 글을 올려봅니다.





01.



원호와 민수는 대학 전공수업 조별과제를 통해 우연히 만났다. 원호는 철학과에서 전과를 했고, 민수는 옆 학교 출신 편입생이었다. 소속을 바꾸는데 이십 대의 전반부를 쏟아부었던 이 전과생과 편입생은 늦깎이면서 동갑내기였다. 텃새가 강한 과로 옮겨온 터라, 서로를 알아보고 짝을 짓는 데는 그다지 큰 노력이 들지 않았다. 대학이 좋은 점은 불편한 사람과 강제로 짝지어주는 담임 선생님이 불필요하다는 데 있었고, 이들은 그 사실에 안도했다. 굴러온 돌에게 대인관계의 자유란 그저 소극적으로 행사하는 게 가급적 좋다는 것을 남들보다 조금 더 먹은 나이가 본능으로 알려준 터였다.

 


원호와 민수는 어차피 학과의 성골(聖骨)은 되지 못했다. 그들의 자의식은 철저한 6두품이었다. , 자신들에게 주어진 위치란 학과를 겉돌다 스쳐 가는 외곽일 뿐이라 믿었다. 그러나 혼혈의 세계에도 위계는 있었다. 원호와 민수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바깥 세계의 주축이 되었다. 비슷한 처지의 학생 몇몇이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원칙에 따라 연장자인 그들 사이에 부록으로 딸려 들어왔다.

 


굴러온 돌 무리에도 나름의 관습법이 생겨났다. 일단은 낯선 이들과의 조별과제가 주는 독강의 공포감이 수업 시간표를 같게 만들었다. 수업의 여집합은 공강이었으므로 허기가 돌 때마다 옆 사람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명시적으로 밥 약속을 잡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떼밥은 일종의 암묵적 관행이자, 혼밥의 초라함과 밥 약속 잡는 데 낭비될 시간으로부터 자존심을 지켜줄 '식사 동맹' 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맹의 역할은 확대되었다. 그들은 예비군 훈련도 같이, 시험공부도 함께했다. 함께(com) (pan)을 먹던 시간이 벽돌이 되었고, 그 벽돌에 잔정이 달라붙더니 마침내 우정이라는 교량이 착공되었다.

 


새 학기의 첫 달은 오로지 적응에만 심력을 쏟았다. 숨만 쉬어도 남들보다 두 배의 눈치가 쓰였으므로, 시시각각 졸음이 쏟아졌다. 고작 겨우 몇 살 더 많았을 뿐인데, 노쇠해진 신체가 자신을 탓해달라 가쁘게 울어댔고, 그때마다 원호와 민수는 젊음의 3대 명약이라는 카페인과 니코틴, 알코올을 찾았다. 담배는 일과의 경계를 쪼개주며 낯선 이들과 소소한 일회용 친목을 가져다주었다. 카페인은 내일의 힘을 저리(低利)로 대출해줘 육신의 피로는 무디게, 정신의 집중력은 맑게끔 융통해주었다.

 


무엇보다 공원 개천 돌다리에 앉아 마시는 술이 최고였다. 카페인으로 깨운 정신은 알콜로 잠재울 필요가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육림은 없었으나 단돈 3천 원에 편의점은 캔맥주를 알선해주었고, 맥주는 대충 깔린 신문지 두어 장 위에서 용량껏 기막힌 접대를 선사했다. 알콜이 적당히 분위기를 돋우면, 감정의 통행료를 지불하지 않고도 쉽게 신세 한탄이나 앞으로의 포부 따위를 우스갯소리를 섞어 말할 수 있었다. 과연 술의 장점은 역시 대화의 중간 과정을 생략해주는데 있었다. 내면을 조금씩 들출 때마다 원호와 민수는 자신들의 초라한 경력처럼 짧은 우정에도 죽마(竹馬)가 달리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우린 다 잘 될거야"

 


가벼운 술자리가 파하고 각자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원호는 항상 나지막이 주문처럼 긍정의 복음을 외우곤 했다. 민수는 그 말이 자신에겐 너무나도 낯뜨거워 그냥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었지만, 내심 그것이 꽤 긍정적인 기분을 불어넣는 것 같아 이따금 속 발음으로 조심조심 그 말을 따라했다. '그래, 잘 될거야.' 그러면서도 괜시리 혹 누가 엿듣는 것은 아닌지 주위를 재빨리 살피며 걸음을 재촉했다.

 

 


02.

 

 

원호는 학과 생활에 쉽게 적응했다. 잘생긴 외모에 외향적인 성품을 가진 덕에, 원호는 타인의 호감을 쉽게 얻는 방법을 깨우쳤다. 넉넉한 집안이 부족함 없이 자신을 뒷받침하는 터라, 그에게선 이십 대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쉽게 일어나는 특유의 조바심 대신 마음의 여유가 풍겨나왔다. 원호는 "입보다 지갑을 열라"는 너스레 섞인, 영남지방 유서 깊은 가문의 부계에서 유전된 생활신조를 곧장 실천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자신 사이의 어색함은 오직 밥이 허물어준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대화를 이끌어가는 솜씨와 붙임성이 일품이었던 원호의 밥은 곧장 상대방의 '보은 커피'를 이끌어냈다. 아니 원호는 상대방을 아쉽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고 말하는 쪽이 더 정확할 것이다. 상대방이 커피건 술이건 매달리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그를 쉽게 좋아했고 어렵게 싫어했다. 그래서 원호에겐 언젠가 뭐든 크게 한 건 할 것 같다는 평판이 뒤따랐다. 원호를 보면 자신감이라는 감정조차도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성질의 것이라는 점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그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반면에 민수는 나쁜 의미로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좋게 말하면 무난했고 나쁘게 말하자면 존재감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민수는 어떤 위치를 자처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언제 어디를 가든 무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는 잘 쳐줘야 누군가의 분신이나 그림자였다. 민수는 수더분했고 내성적이었으며, 쉽게 당황해서 종종 말을 더듬었다. 특히 자신감과는 영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민수를 떠올리는데 꽤나 어려움을 겪었다. 흔한 이름에 차림새나 맵시도 특출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뇌리에 민수의 존재가 부각되기 위해서는 한참의 뜸이 필요했다. 그러나 '원호 친구'라 단서를 달아주는 순간 곧바로 회로에 번갯불이 들어와 민수의 존재가 호명(呼名)됐다. 원호는 항성처럼 독자적으로 존재의 빛을 내뿜었으나, 민수는 위성처럼 관계 속에서만 겨우 존재할 수 있었다. 민수는 당차지 못한 자신이 영 맘에 들지 않았으나, 막상 집중된 관심을 받지 않아도 되는 삶에 안도했다. 민수는 항상 자신이 이율배반적인 사람이라고 느꼈다. 때때로 돋보이고 싶었지만, 돋보여 얻는 후광에 몸서리 치는, 오지도 않을 상상의 영광으로도 스스로 떳떳지 못해 그늘을 찾아 몸을 숨기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민수였다. 민수는 군중의 일부였으나, 군중의 시선이 두려운 사람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학과에 완벽히 녹아든 원호는 귀가 밝고 발도 넓어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는 귀담아들을 만한 정보를 그냥 들려주곤 했다. 그는 이제 호의를 무료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정보에 대한 답례라곤 고작 "고마워. 나중에 커피나 한잔하자!" 한마디면 충분했다. 사람들은 원호의 웃는 표정과 기분을 샀다. 원호는 연기가 늘어 대충 고마워도 진심인 것 마냥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민수에게 남과 단둘이 이야기한다는 행위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특별한 중대사에 해당했다. 민수는 의전과 예식에 과하게 마음을 붓는 사람이었다.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먼저 과하게 잘해주곤 했다. 그래서 그는 상대방과 해야 할 말을 미리 고르고 연습해야 했으며, "나중에 커피나 한잔하자"라는 말을 듣거든 그것이 빈말일지라도 꼬박 반나절은 달력을 보며 고민했다. 어디서 만나 어느 메뉴를 시켜 어느 자리에 앉아서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할지 로봇마냥 입력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타인과의 텅 빈 약속을 홀로 자신과 조율하곤 했다.

 


당연하게도 커피나 한잔하자던 그 언제는 민수에게 좀처럼 오지 않았다. 적어도 민수의 세계에서는 약속과 빈말은 동의어였다. 민수는 빈말과 진담을 잘 구분하지 못했고, 항상 의례적으로 던지는 인사치레용 빈 볼에 풀스윙을 날리곤 했다. 약속이라는 운동장에서 민수는 형편없이 낮은 타율의 후보 타자였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했던 민수는 그 관계 속에서 항상 빈곤했다.

 


인정이 고플 때마다 어떻게 주린 가슴을 달랠 수 있는 것인지, 민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이따금 차라리 그것이 자격증이나 면허 같아서, 학원에 성실히 나가 열심히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길 바란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수다를 떨면서 다른 사람들의 소식에 대해 떠들다가도, 민수가 다가갈 때마다 멋쩍게 웃으며 입을 닫곤 했다. 원호에겐 접근의 자유가 있는 공간이 민수에게는 기밀 딱지가 붙은 비밀의 방이 되곤 했다.

 


그런 민수에게 항상 원호는 너무나 흔쾌히 곁을 내어주곤 했다. 원호는 대개 학과 내 소식이나 교수의 성향과 스타일 따위의 '고급 정보'를 제공했고, 민수는 학사일정이나 유머 사이트 베스트 게시물 따위의 성실성만 있다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식을 나열했다. 원호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들이었지만, 굳이 민수에게만큼은 꼭 "고마워 잘 알아둘게"라고 답했다. 내심 쉽게 주눅이 드는 민수의 기를 살려준다는 선의도 있었으나, 대개는 '널 챙기는 것은 나'라는 위선의 발로에서 비롯된 겉치레였다. 형식적 주권의 평등이라는 가녀린 위장막이 챙기는 쪽과 챙김받는 쪽의 비대칭 권력관계를 연약하게 가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학내 가십거리조차 쉽게 얻지 못했던 민수는 원호에게 그런 '고급정보'를 전해 들을 때마다 민수는 괜히 멋쩍고 황송해져서 "내가 커피라도 살게"를 입버릇처럼 반복했다. 매번 원호가 물가에서 사금을 주어오면, 민수 자신은 길가에서 폐지를 줍는 것만 같았다. 비교가 열등감과 손을 잡았고, '등가교환'이라는 개념으로 민수의 내면에서 열등감의 곰팡내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민수는 심적인 후달림을 해소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원호에게 건네는 커피 따위의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벌충하려 했다. 원호에게 줄 이유 없는 선물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려 할 때마다, 민수는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 이런 것인가 하고 자각하곤 했다.

 


민수가 마련한 식사자리에서 원호는 마치 혁명 집단의 수뇌가 된 듯 일장연설을 하곤 했다. 그는 한국의 정치현황부터 시작해서, 구직 시장의 트렌드, 학과 내의 치정 관계에 이르기까지 인간 세상의 대소사를 가감 없이 말했다. 그것은 철저히 밀담이었으나, 민수에겐 전율을 일으키는 위대한 선언이었다. 이따금 민수는 원호의 말이 미심쩍기도 했다. 그러나 분위기를 해칠 발언의 진위 여부 따위는 그렇게 중요치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배당된 특별한 느낌, 영혼의 동업자가 되었다는 느낌, 그것에 민수는 마음을 사로잡혔다. 원호와 함께 있노라면 그는 작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소심한 우물 안 세계의 위대한 위인전. 마르크스에게 엥겔스가, 카스트로에게 체 게바라가 있다면, 원호에게는 민수가 있었다. 후대는 그렇게 전하리라.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34로 시작하는 새내기들은 우리를 학과의 '전설'로 기억하리라. 원호는 위대했고, 민수는 훌륭히 그를 보좌했노라. 민수는 그 헛된 상상의 기쁨에 사로잡혀 시종일관 원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원호가 민수에게 속내를 털어놓은 이유는 그저 민수가 자신에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못한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원호에게 민수란 국가기밀을 빼돌려도 절대 발설하지 않을 만큼 나약한 상대였다. 오히려 민수라면 기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 밤잠을 설칠 그런 종류의 인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고장난 수신기를 가지고 있던 민수는 그 신호를 원호가 최측근에게 베풀 수 있는 '최혜국 대우'라 느꼈다. 모두가 좋아하는 원호의 속내를 아는 유일한 내부자가 된듯한 별 것 아닌 특별함. 내심 학창시절 수학여행 관광버스 맨 뒷자리를 점령한 잘나가는 친구들의 일원이 된듯한 특별함. 그들에게 담배를 조공하고 화장실의 한편에서 어깨를 피고 다니던 끄나풀의 권력. 그것이 유치하다고 여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늘 잘 나가는 울타리를 선망했던 초라한 자신.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함께 빛나는 것만 같은 원호의 존재. 원호가 가끔식 던져주는 공치사(空致辭). 민수의 경우를 보면, 착각이란 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하는 것이었다.

 

 

03.


민수가 그런 특별한 우정 따위가 사실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깨닫게 된 순간은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뀌고 나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런 것에 시간을 쏟는 나이가 지나버려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철없는 때가 있듯이, 그때의 민수는 원호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살아오면서 그에게 그만한 친구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민수는 원호 옆에만 있노라면 세상만사가 다 간결해졌다. 불안한 마음도 쉽게 안심이 되었고, 원호가 쏟아내는 말의 청산유수에 자신이 고무보트로 급류타기를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민수는 원호에게 쉽게 위로받았고, 원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엇다. 원호의 얼굴에는 항상 미래가 그려져 있었고, 민수는 그 그림을 좋아했다. 아니 좋아하기보다 선망했다. 자신은 감히 품을 수 없는 욕망이었으므로. 원호가 주로 말하는 쪽이었다면, 민수는 주로 듣는 쪽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사용하는 쪽이 있다면, 감탄사로 인지하는 쪽이 있었다. 그것은 항상 대화의 얼굴을 한 강의였다.

 


언젠가부터 민수는 자신이 자연스레 원호를 대장으로 여기고 있음을 발견했다. 원호와 민수의 친구 관계는 어느새 주종관계로 변하고 있었다. 평등한 우정과 불균등한 자존감 사이의 동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원호와 민수는 평소처럼 일과를 마치고 감자칩 한 봉지를 뜯어 맥주 한 캔을 곁들이고 있었다. 시원한 목 넘김과 함께 찾아오는 은은한 알딸딸함을 틈타 원호는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 앞으로 너 뭐 해먹고 살 거냐?"

 

민수가 쭈뼛거리며 답했다.

".. 글쎄..그게..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네.. 내가 잘하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어서..."

 

"에이 세상 뭐 별거 있다고. 그러지 말고 너 시험치자 나랑같이"

"무슨 시험?"

 

"로스쿨 어때? 남자로 태어났으면 크게 한 번 놀아봐야 할 거 아냐 짜샤. 번듯한 양복 입고 남들 존경받으면서 돈도 잘 벌고. 이 정도 대학까지 나왔으면 그런 꿈 꿀 자격 있지."

 


원호는 민수에게 사실 지난달부터 로스쿨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누구에게도, 심지어 여자친구와 부모님에게조차도 말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원호는 민수에게 자신이 준비하는 시험을 권했다. 그것은 단순한 권유에 불과했지만, 감히 거절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일었다. 원호를 실망시킬까봐, 혹여나 나약한 모습을 들켜 못난 취급을 당할까 조바심이 일었다. 한 인격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수는 고민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아니 그 순간은 기가 막히게 파고든 원호가 생각할 타이밍을 빼앗아 버렸다고 보는 쪽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원호는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힌 데.. 너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어" 라고 민수를 능숙하게 안심시켰다. 그러고는 인생역전의 시나리오를 쓴 한국 개천의 용들의 일대기를 무협지처럼 읊기 시작했다. 마치 원호는 벌써 이름난 대형 로펌에 취직한 중견 변호사라도 된 것처럼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마디 보탰다. "우리. 먼저 붙는 사람이 꼭 도와주기다? 잘되는 사람이 꼭 도와주자. 다 잘될 거야." 원호는 '우리'라는 말에 습관적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원호 특유의 강조법을 표현하는 몸짓이었다.

 

 

04.

 


'감히 나 따위가 로스쿨이라니... 학점도 그렇고 토익도 별론데...'

 

민수는 자신의 합격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민수의 직관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헛수고가 될 것이라는 이성의 경고가 뭉게뭉게 마음속을 뿌옇게 어지럽혔다. 그러나 "다 잘될 거야"라는 원호의 말은 연막 속의 한 줄기 섬광 같았다. 민수는 어둠 속에서 빛줄기를 잡고자 했다. 그것이 구원의 동아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먹구름 위에서 원호가 밧줄을 내리고 있었다. 원호는 기적의 구세주였다. 민수는 원호의 응원과 원호의 판단에 따르기로 했다. 욱하는 마음이 일었고 한 번 해보겠다 그답지 않은 자신감으로 말했다. "할게 시험."

 

 

사실 꽤 오래전부터 민수는 원호가 내심 자신을 깔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전에 누군가 원호에게 민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자 원호는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이렇게 답했다.

 


"민수? 착하지..”

 


문자 그대로만 보면 크게 나무랄 게 없었다. 그러나 착하다라는 말에는 사전적 정의와 사회적 정의가 있다는 것을 민수는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이 착한 것과 가격이 착한 것은 엄연히 뉘앙스가 달랐고, 민수는 자신이 후자의 착함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싸게 쓰다 버리기에 알맞다는 뜻이 아니던가? 원호의 인물평에 민수의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나 극도로 열이 오른 순간이 지나면, 어느새 원호를 이해하려 들고 있었다. 오히려 다시 쓸모있는 인간으로 인정받고자 동기가 잔뜩 부여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래서 때로는 원호가 자신보다 잘나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곤 했다. 자신이 원호 옆에 있어서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도 할 수 있어." 민수는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어느새 해야 한다로 얼굴을 갈았다. 민수가 요구받은 역할은 사실 원호의 '페이스 메이커'였다. 원호는 합격을 목적으로 공부했으나, 민수는 원호에게 인정받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 공부가 오래갈 리가.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여기서도 배역이 있었다. 원호가 생각하고 결정하는 머리의 일을 맡고, 민수가 행동으로 완성하는 손발의 일을 맡았다. 원호가 스터디를 구하자 결정을 내리면, 민수는 스터디원을 구하고 스터디 장소를 예약하며, 프린트물을 뽑아오는 잡일을 맡는 식이었다. 시험 트렌드를 캐치하는 쪽도, 인터넷 강사를 추천하고 교재를 고르는 안목도 다 원호의 역할이었다. 고급정보는 원호에게만 찾아오니까. 그것은 공정한 역할 분담이라고 믿었다.

 


원호는 자신의 편의를 위해 민수를 꼬득였던 터라 자잘한 부탁을 많이 요구했다. 동생에게도 시킬 수 없는 잔심부름이었으나 부탁의 이름으로 하니 꽤나 그럴듯해 보였다. "이왕 준비하는 거 내것도 같이해줘." 원호는 이 말을 꼭 덧붙였다. "항상 고맙다" 원호가 '부탁하는' 잡일로 귀찮고 피곤할 때마다, 민수는 그것이 당연한 등가교환이라 믿으며 아무런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이따금 음료 진동벨이 오르면 "내가 받아올게!" 하고 후다닥 뛰쳐나가는 원호가 고맙고 듬직하기도 했다. 사실 그 둘의 관계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다. 좋게 말하면 스터디 장과 스터디 원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대감과 머슴이었다. 속된 말로 조건없는 조건만남이라 표하면 적절할지 모르겠다.

 

 

 

05.

 


원호는 민수보다 빨리 배웠다. 사실 시험의 합격에 빨리 배우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 정확히 배워 정확히 푸는 것이 중요하다. 어찌 됐건 뭐든 반복해서 숙달하는 루틴을 익히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빨리 배운다는 것은 소심한 사람에게는 기가 죽게 만드는, 심리적 우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묘한 마력을 제공했다. 항상 가르치는 쪽이 원호였고, 나머지 수업을 듣는 쪽은 민수였다. 민수의 호승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흥미도 없고 관심도 없던 터라 시험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매번 앞서가는 원호의 뒤꽁무니를 보는 일이 싫어졌다. 본래 약자가 자의식(自意識)을 갖는 순간부터 권력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했던가.

 


민수는 이제 사소하게 저항하는 법을 배웠다. 민수의 무기는 우울감과 무력증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자신을 달래러 오는 원호의 시간을 빼앗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수가 풀죽은 표정으로 그만두겠다고 말할 때 마다, 원호는 민수를 달랬다. "너 할 수 있어. 네가 네 잠재력을 몰라서 그래. 나랑 같이하면 돼. 계속하자.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면 아깝잖아. 야 그러지 말고 이따 맥주나 한잔하자." 알콜은 인간의 신체적 면역뿐만 아니라 심리적 저항력을 떨어뜨리는 효능이 있었다. 원호의 달램에 민수는 또다시 약해져 마음이 동했다. 민수는 특히나 '긍정의 복음'에 취약했다. 미래, 가능성, 정의(justice) 따위의 말에 쉽게 무장해제 되었다.

 


안마방이나 경마장에 가는 일탈이나 탈선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친구로서 공부를 열심히 같이해서 좋은 직장 얻어보자는 게 그렇게 나쁜 말인가. 불만이 수그러든 민수는 그럴 때마다 매번 자신의 '주권(主權)'을 원호에게 내어놓았다. 원호는 부드럽게 주권을 움켜쥐었고, 그때마다 민수는 불만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원호의 반복되는 타이름에 길이 든 민수는 시험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자의식의 방향은 자발적 복종을 향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시험이 한 달도 채 남지 않게 다가오자, 강자의 자의식 또한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름날의 무더위에 원호 또한 지쳐갔다. 장점이라고 할 수 있던 마음의 여유가 점점 줄어갔다. 시험은 능력과 노력이 행운을 만나야 가능한 것이지, 호기(浩氣)로 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큰소리를 당당하게 쳤던 원호의 목소리는 점차 데시벨이 줄어갔고, 사소한 일에도 쉽사리 평정심을 잃곤 했다. 그때부터였다. 원호가 민수에게 손가락질하며 훈계하는 날들이 시작된 것은 말이다. 민수의 풀죽은 얼굴은 기능이 바뀌었다. 그것은 시간을 뺏는 저항의 무기라기 보다는 화풀이의 표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원호가 민수의 공부 자세를 꾸짖는 빈도가 늘어났다. 평등한 관계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태도를 나무랄 수 있었던가?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욕설을 비롯해 험한 말도 섞여 날아왔다. . 친할수록 욕설은 필수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원호는 민수가 게으르고 나태하다 했다. 자신의 늦잠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였으나, 민수의 낮잠은 의지박약의 증거라고 말했다. 원호의 지각은 불가항력이었으나, 민수의 지각은 벌금형에 처해야할 중죄였다. 민수가 조금이라도 무능함을 드러내면 원호는 남들앞에서 은근히, 조금씩, 그러다 아주 두드러지게 그것을 부각했다. 왜 맨날 같은 유형을 반복해서 틀리냐고 물었고, 공부하기 싫으면 때려치우라고 말했다. 깊은 한숨을 쉴 때마다 민수의 자존감이 풍화(風化)되었다. 너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거냐고. 나는 분명 그때 이렇게하라고 미리 일러줬는데 왜 말을 들어먹지 않느냐고. 친하게 지내줬다고 이젠 내가 같잖게 보이냐고. 너 표정을 보면 공부가 하기 싫다고 말이다. 니가 나 아니었으면 이 정도 까지 했을 것 같으냐. 나중에 뭐해먹고 살려고 그러냐. 피아니시모는 포르티시모로, 서서히 시작해 연달아 압박해 목을 죄곤 했다. 다 쏘아붙인 후에는 항상 몇 마디를 덧붙였다.



"나니까 너한테 그런 말 하는 거지. 너 아니었으면 그냥 모른 척하고 자기 공부에 집중할 사람이야 내가. 내가 뭐 자선 사업하냐? 다 너 잘 돼라고 하는 거지.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러나 실상 원호는 민수를 흠집 내어 자신의 불안함을 달랬던 것이었다. 원호는 자신의 무능을 숨기기 위해, 자식을 패며 권위를 확인하는 못난 가장처럼 굴었다. 잠이 많아지고 생활패턴이 흔들릴 때마다, 집중력이 떨어져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마다, 결과가 불안해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시험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전화를 걸어 민수를 나무랐다. 전화를 빨리 받으면 공부에 집중하지 않고 빨리 받는다고, 늦게 받으면 늦게 받는다고 트집을 잡아 몰아세웠다. 원호는 속을 풀기 위해 자기와 같은 실수를 더 빈번하게 저지르는 민수를 책망했다.

 


그럴 때마다 민수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수긍하고 납득하는 것 외에 별도리가 없다고 느꼈다. 그것은 일종의 오래된 항복의 표시였다. 수긍과 납득 외에 딱히 뭐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말다툼하여 이길 자신도 없었고, 이기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이 하자 많은 인간이고, 매번 실수하는 인간이기에, 이번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겠거니 생각했다. 민수는 잘못의 출처를 정확히 확인하며 따지고 들기보다는, 빠른 납득으로 자신을 파먹었다. 파먹을수록 자신의 허기는 커져만 갔다. 늘 자신의 실수를 따끔하게 '보듬어 주는' 원호가 감히 자기가 더 불안해 그러는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이유는 간명했다. 자신이 못났고 원호는 잘났으므로, 그것은 뒤바뀔 수 없는 성질의 주어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운명 따위에 거역하는 것은 힘만 들고 별 소득도 없는 일뿐이다.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 내내 민수는 원호의 자신감이 흔들릴 때마다 깔봄 당하는 충실한 바닥의 기준점이 되어 주었다. '그래도 쟤보단 내가 낫지. 어휴 저 한심한 것' 사실 잘나 보이는 원호도 민수의 자존감을 훔쳐서 살고 있었다. 민수는 원호에게 의존했지만, 원호는 민수에게 기생했다. 주먹으로 하는 사랑이 있다면, 욕설로 표현하는 우정도 있으리라.

 

 

06.

 

 

원호와 민수는 사이좋게 세 번 떨어졌다. 원호는 간발의 차로 아쉽게, 민수는 보란 듯이 낙방했다. 로스쿨에 떨어졌어도 민수에게는 마음의 동요나 조금의 슬픔도 없었다. 원호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원호가 하지 못한 걸 자신이 해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원호는 이제 민수의 천장이었다. 동시에 민수는 원호의 바닥이기도 했다. 그들이 종목을 바꿨다는 소식이 들렸다. 바꿨어야 하는 것은 친구였는데 말이다. 이 둘은 결코 같이 놀면 안 되는 사이임이 명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을 하지 않고 착취만 해서는 누구도 진보하지 못한다. 그것은 세상의 이치이자 관계의 법칙이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아무도 탈출하지 못하고,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어떤 것도 잘되지 못했다. 잘된 사람이 없었으므로 도와줄 의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들의 우정 계약은 효력이 없어서 우정의 계급은 어제처럼 유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포장해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청춘을 땡처리하게 만들었던, 소박하지만 거대한 하나의 사기극이었다.

 


사실 원호는 민수보다 크게 나을 게 없는 인간이었다. 자신의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민수를 깔아뭉갰던 원호도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원호가 철없던 시절에 잠깐 반짝했으나,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라기보다는 장거리 마라톤이었다. 관뚜껑에 못질하기 전까지 아무도 그 승부를 모르는 세상에서 시작이 빠르다고 지나치게 주눅이 들었음을 지내다 보니 민수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데도 민수는 원호가 자신과 똑같은 하나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두려웠다. 원호가 별거 아닌 사람이라는 것이 들통날 수록, 그에게 의지했던 지난날 자신의 인생과 마음이 견딜 수 없이 초라해졌기 때문이다.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전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민수는 원호와 잠시 해외여행을 떠났다. 원호는 활기차게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며 입을 놀렸고, 민수는 "볕이 잘 들도록 쥐구멍을 파두겠다"며 우스갯소리를 덧붙였다. 나이에 넉살이 붙었지만, 이들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귀국하자마자 민수는 자발적으로 새로운 스터디 결성을 위해 모교를 찾아 발품을 팔았다. 원호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민수는 이제 나름 자기주장을 할 줄 아는 베테랑 스터디원이 되어있었다. 스터디 만들기로 급여를 준다면, 성과급을 잔뜩 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19학번이 가득한 학교에 발을 들이니, 09학번인 자신의 존재가 다소 어색하고 낡게 걸려있는 것만 같았다. 지독하게 느껴지는 생기에 짓눌려 종종걸음으로 교정을 걷는 민수는 오늘따라 자신이 더욱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약속시간보다 항상 20분씩 일찍 준비해야 떳떳했던 민수는 오늘도 일찍 약속장소인 중앙 도서관 앞에 도착했다. 근처를 서성이던 민수는 시험 준비하느라 한동안 연락이 끊긴 친한 후배를 우연히 마주쳤다. 후배가 민수에게 예의상 인사를 건네며 웃는 낯으로 물었다. "요새 뭐하고 지내세요?" 민수는 우물거리며 답했다.

 


"나 원호 준비하는 거.. 그거 같이 준비해.."

"? 원호 형? 원호 형이 뭐 준비해요?"

"..공무원"

 

"언제 커피나 한잔 하자


민수는 어색하게 후배를 흘려보냈다.



이제 민수도 아무렇게나 빈볼을 던질 줄 알게 되었다. 기약 없는 약속을 잡을 만큼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돌아서는 발걸음마다 웬지 모를 찝찝함이 묻어나왔다. “뭐하고 지내세요?” 근황을 묻던 후배의 목소리가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로스쿨을 준비하면 로스쿨을, 공무원을 준비하면 공무원을 준비한다고, 노무사면 노무사를 준비한다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도 있었다. 청년실업이 대세인 세상에서 뭐 자기가 특별나게 유일무이한 백수도 아니었다. 그러나 민수는 자신의 도전에 떳떳하지 못했다. 자신이 자기 의지로 이 시험을 준비하고있다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또다시 원호의 이름을 빌고 말았다.

 


"부르르르-" 갑자기 민수의 오른 주머니에 진동이 울렸다. 이 진동은 민수가 또다시 자신의 삶을, 자기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성찰할 타이밍을 도둑질하고 말았던 것이다.

 


휴대폰 상단 알림창에는 7급 공무원 시험 접수공고가 떴다.

 


2019년 현재, 민수는 원호와 함께 네 번째 시험에 도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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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된 세상의 비릿한 죽음을 애도하며


언젠가 평론가 신형철이 이렇게 말했다. 죽은 노무현은 희화화할 수 있어도, 노무현의 죽음은 희화화해서는 안 된다고. 그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극단적인 폭력이자 시신의 훼손이라고 말이다. 이 한 구절을 두고 나는 한국 사회의 몇 가지 도착과 그 비극적 결말을 떠올린다.

먼저 사퇴한 조국을 비웃을 수는 있어도 조국의 사퇴는 비웃을 수 없다. 개인으로서 조국 일가가 몇몇 얄미운 짓으로 인한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면야 충분히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개혁을 하려다 개혁대상의 폭력적인 압력에 못 이겨 물러난 그의 사퇴를 조롱할 수는 없다. 사퇴한 조국은 흠결 있는 개인이지만, 조국의 사퇴는 기득권에 의한 개혁 의지의 축출이기 때문이다.


하나 더 있다. 설리의 죽음은 그 자체로 한 개인의, 나아가 한국 사회가 낳은 비극이다. 그러나 언론이 죽은 설리의 사진을 찍어 전시하는 행위는 그보다 더 큰 비극이다. 그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비윤리다. 아니 몰윤리다. 이는 한 인간의 죽음을 극단적으로 훼손하는 행위이자, 개념으로서의 인간의 존엄 그 자체를 망가뜨리는 행위기 때문이다. 사체를 전시하여 돈벌이로 삼는 짓은 결코 언론의 자유가 될 수 없다.

또 하나의 비극이 더 발생했다. 구하라의 죽음이다. 노무현의 죽음과 조국의 사퇴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면, 이 두 죽음은 사선의 근처에 있던 모두가 염려하던 예견된 죽음이었다. 우리 사회 모두가 한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연이어 목격하였다. 끝끝내 82년생 김지영에게 부정했던 혐오는 94년생 설리와 91년생 구하라에겐 엄연히 실존했던 폭력이었다. 죽은 구하라는 법의 '복수'를 기대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와 자유로운 인신공격, 죽음으로 이끈 표현과 죽음이 다 표현하지 못한 이 세상의 부조리들. 도착된 세상에서 죽어가는 이들과 살아가고 있는 자들의 비릿함. 인터넷의 몇 바이트 남짓한 활자가 그녀들의 가슴에 남긴 것을 보아라. 우리 시대의 칼은 6인치의 액정과 108자의 키보드다. 연예인은 보호받지 못한 노동자였고, 악플은 산업재해였다.


정치의 발전은 누군가를 축출해서, 의식의 발전은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쫓아야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왜 이 세상은 선한 의지를 가진 이들을 세상에서 쫓아내고자 하는가. 왜 자꾸 세상은 누군가의 부재로 존재의 소중함을 깨우치려 하는가. 죽음이 윤리의 교본이 되기 전에, 윤리가 죽음을 막아주어야 하지 않는가. 또 한 번 보아라. 모든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시대 어느 한 귀퉁이가 썩어가는 대한민국에서 모두들 안녕들 하시길 바란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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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고문입니다. 

<반일 종족주의> 이전부터 한번 총체적으로 정리를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15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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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치하겠다는 청년들은 하나같이 양복 차림일까? 교복도 자율화가 이루어진 마당에 ‘양복의 교복화’ 현상이 눈에 자꾸 밟힌다. 두발 규제도 사라진 마당에 2대 8의 머리칼 분배는 국정 가르마라도 되는 것인가. 도덕 교과서적인 발성법은 어째서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연장자를 예우하고자 빼입었다는 궁색한 대답은 듣고 싶지가 않다. 청년 세대의 정치혐오를 생각할 때면, 나는 왜 정치 지망생들의 차림새부터 떠올리는 것일까?




정치가 영화와 닮았다면, 정치 지망생들도 ‘정치인’이라는 캐릭터를 해석한다. 문제는 그 해석이 양복에 갇혔다는 것이다. 빈약하고 획일적이며 낡은 내가 난다. 으레 정치인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지레짐작들이 모여 굳어진 일종의 업계 상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눈여겨볼 점은 젊은 정치 지망생이 기존 문법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오히려 강박적으로 선호한다는 점이다. 다 큰 어른에 대한 복장 지적이 양복이 상징하는 비릿한 청년 정치의 한 단면으로 드러났으면 한다.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가장 기분 나쁜 순간은 “시장은 유능하고 정치는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다. 그러나 현실을 직접 목도하고 있노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최소 인재풀에서 만큼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공시생이 시험공부를 할 때, 취준생이 사회 경험을 쌓을 때, 정치 지망생은 자신의 시간을 어디에 투자했을까? 행사에 기웃거려 가방을 들고, 술잔을 따르며 불콰한 사진 찍는 허드렛일 외에 특기할 것이 없다. 이른바 ‘존재 노동’도 노동이라면 노동이지만, 이력서의 공란처럼 헛되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 일회용 존재 노동의 필수품이 양복이라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실제로 청년 정치 지망생은 동년배 취업 준비생보다 확연히 스펙과 역량이 뒤떨어진다. 사실 청년이라는 기회를 이용했으나 사실 그게 전부기 때문이다. 어리다고 하대 받을 이유가 없다면, 사실 젊어서 우대받을 이유도 없다. 젊음은 사회가 특별히 배려하는 하나의 상태일 뿐이지, 정치의 이유나 자격이 될 수 없다. 생물학적 청년이 꼭 청년의 사회 문제를 잘 푼다는 보장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귀속된 정체성이기보다는 자질과 능력이다. 무엇이든 업(業)이 되려면, 시각이 독특하거나, 컨텐츠가 새롭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남들 하는 것을 더 잘해야 한다. 정치도 그렇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청춘이면 아파야 한다로 둔갑하더니, 청년 정치가 필요하다니까 정치 청년들만 몰려온다. 청년성을 양복에 포장하는데 급급한 정치풍토의 범람에서, 나는 공부하는 청년 정치인을 보고 싶다. 기성 정치인은 학창 시절 사회 운동에 전념하느라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손 쳐도, 우리가 이끌어갈 새로운 시대의 정치인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자기자본과 원천기술 없는 기업이 오래 버티지 못하듯이, 자기 분야가 없는 청년 정치인이 자라 정치 자영업자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청년을 위한 것과 청년에 의한 것은 다른 개념이다. 준비 부족이 기회 부족의 변명거리가 될 수 없다. 세상이 청년 정치를 일회용으로 소비할지라도, 정치 지망생들은 배움을 멈춰선 안 된다. 그래서 한 정치학도가 다른 정치 지망생들에게 감히 고하고 싶다. 취준생들과 자신을 구별 짓기 전에, 최소한 취준생만큼은 공부하시라고. 적어도 알맹이 없는 정치의 시대는 우리 손으로 끝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나호선(정치외교학 석사 17)  press@pusan.ac.kr


<저작권자 © 부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_ 본문은 필자가 <부대신문>에 보낸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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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일 종족주의>에서 군데군데 녹아있는 묘사처럼, 조선시대에 여성인권, 특히 시골처녀들의 인권이 극악이었던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유교 근본주의에 희생된 여성들이 시골농촌이라는 폐쇄적 우물에 갇혀 온갖 잡일을 도맡아했던 것은 아마도 안타깝고 부끄러운 사실이었을 것이다.
 
당대 여성들에게는 혼인 선택권도 없었고, 가정폭력도 심했을 것이고, 항상 가난했기에, 입이라도 덜자는 가족의 결단에 제일 먼저 집에서 방출되어 돈벌이의 역마살에 떠돌아야 했던 처지였을 것이다. 이렇듯 위안부-정신대 문제에는 민족 요소만큼 젠더 문제가 상당부분 들어가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날의 지방의 여학생들이 서울로 떠나고 싶듯이, 해외를 선망하듯이, 당시의 조선 처녀들도 시골과 집구석이라는 지옥을 떠나고 싶어했을 것이다. 시대가 하수상하여, 그것을 교묘하고 악랄하게 이용해먹고, 남의 비극을 팔아 장사하던 브로커들이 있었을 것이고 배움이 모자라거나 세상을 잘 알지못한 어린 처녀들, 혹은 아버지나 집안의 성급한 결정따위로 인해 발을 떠난 처녀들의 숱한 동기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납득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이다.
 
  
2. 
 
그렇게 가난과 가정폭력을 피해 열악한 환경을 탈출한 처녀들은 한마디로 취업사기를 당했다. 오늘날에도 가출한 여중생이 성매매로 이어져 인격을 파괴당하듯이, 취업사기의 끝은 인신매매였으며, 본질적으로 전쟁과 식민지라는 거대폭력에 저항할 수 없는 성적인 착취였다. 미국의 노예 12년 처럼 밧줄에 채찍을 가해야만 꼭 노예인것인가. 노예와 노동자의 차이를 모르거나, 그런 구분따위가 필요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가능한 발상인가 싶다. 
 
작은 비극을 피하려다 더 큰 재앙을 만난 이들의 서사가 어떻게 '자발적' , '설렘', '로망', '고수익 직장' 따위로 포장되고 단정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란 말인가. 비극 앞에 나타난 또 다른 비극은. 비극의 허위를 증명하는 사료가 아니라, '비극의 중첩'을 나타내는 또 다른 증거일 뿐이다. 일반적인 수난을 교묘하게 덧칠해서, 작달만한 능동성을 부각해 시대적 참상을 희석시키고자 하는 이영훈 류의 헛소리에는 평소 사람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가 녹아있어 정말 역겨울 따름이다.
 


3. 
 
이 책에선 요시다 세이지의 거짓말을 아주 중요한 사실로 다룬다[pp.347-351]. 그것은 팩트가 맞다. 그러나 이 책은 한 사람의 과장된 거짓말이 어떻게 시대의 왜곡으로 이어지게 되는지에는 납득할 설명을 고의적으로 누락하고 있다. 
 
사람들이 떠올리는 노예 이미지는 노예사냥식 강제연행의 참거짓이 아니라, 성착취라는 본질적 요소 그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후의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아래와 같은 생각으로 이끌도록 몰아간다. 아 물론, 자칭 보수 유튜버들과 논객, 지식인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내가 추정한 내용임을 알린다.
 
'요시다 세이지의 거짓이 부각되어, 피해사실이 신격화 되었는데 그 타이밍이 묘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잠자코 있다가 90년대 갑자기 등장했다. 그래서 그 갑작스런 등장이 혹여나 정치적 선동목적의 기획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은 역사문제에 비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함으로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했다'고 말이다.
 
여기에도 큰 맥락이 누락되어 있다. 한국이 식민지 배상문제를 폭력적으로 마무리지은 한일 협정이 박정희 정권 때였고, 그 연장선인 전두환 - 노태우 군부정권이 92년까지 이어졌으며, 성노예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 사회통념상 어려운 시대였으며, 그 사이 민주화가 있었고,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 90년대 김영삼 정권에서 일어났으며, 위안부할머니들 분들이 인생을 정리할 노인이 되어 비로소 발언할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생각은 전혀하지 못한다. 
 
그 대신에 그녀들이 타협없는 강경한 근본주의로 인지되도록, 그래서 현실의 정치에 압력을 행사하여, 마치 한일관계를 좌지우지하는 막후 실력자인양 자연히 몰아가고 있다고 보인다.
 
위안부 정신대 할머니들이 근본주의였다면, 정말 폭탄이라도 들고 대사관으로 달려가 '지하드'를 벌였을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도 거짓이다. 신문기사 조금만 검색해봐도 나온다. 할머니들이 권력을 쥐었다면, 역사문제가 이랬겠나? 자기 주장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평화적인 시위조차 강성으로 몰고, 항의조차 근본주의로 몰아가는 평소의 인식이 반영 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4. 
 
정리하자면, 이쪽 계열의 학자들은 항상, ① 사소한 거짓을 발견하고 ② 그 사소한 거짓을 부각해 전체적인 맥락을 도외시하며 ③ 사회과학적 개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④ 사실은 우리가 거짓 신화 속에 살아왔다 선동한다. 한마디로 침소봉대가 아니라 침대봉소인 것이다.
  
나도 극일은 경계한다. 한일관계의 전환을 일으킨 김대중 대통령의 결단을 정말 높이 평가하고, 이전에도 현정부가 지나치게 대일외교를 직선적으로 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한다는 시각을 내비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다. 아무리 학문의 자유에 성역이 없다지만,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상처를 입혔다면, 해명보다 사과가 먼저였을 것이다. 자유에 성역이없다면 책임에도 성역이 없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상식이다. 
  
일제시대를 미화하는 것과 건조하게 그대로 인식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건조한 인식에는 문학적 표현이나, 흥분-욕설, 비유따위가 필요하지도 않다. 학문적인 자세도 아니다. 
  
피해사실의 신격화를 경계한다면서 막상 피해자의 마음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 도덕적 단죄에 저항한다면서, 먼저 도덕적인 공격을 가했다. 정당방위란 무엇인가. 학술적인 이야기라 해놓고 곳곳에 문학적 표현들이 눈에 보인다. 사회과학에서 '문학적'이라는 말이 얼마나 큰 모욕인지 아는 사람들이 저런다. 
   
박해에서 신앙이 깊어지고, 깊은 신앙이 순교로 이어지려는 모양이다 보니 아예 평정심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이영훈의 전작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래도 나름대로 참고할 부분이있는 학문적 최소요건을 갖춘 책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흑화의 끝. 졸작이라 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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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눈당달이 2019-08-20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가지 팩트와 데이터에 기반한 결론이 서평을 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영훈 교수가 이 책을 사회과학 학술서로 썼다고 명시한 적도 없는데
사회과학서에 문학적 표현을 썼다고 극렬히 비난하는 것은 쉐도우복싱일 뿐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그동안 좌파들이 여러 문학, 영화, 드라마를 통해
만들어온 일본에 대한 악마적 이미지가 거짓이었음을 처음으로 폭로했기 때문이다.

이 서평을 졸작이라 평하겠다.

유동국 2019-08-20 15:37   좋아요 4 | URL
이 사람이 생떼를 쓰는 것을 보니 잘 쓴 서평이 맞다.

프리즘메이커 2019-08-21 17:27   좋아요 1 | URL
˝우리가 오로지 기대하는 것은 우리가 범했을 수 있는 잘못에 대한 엄정한 학술적 비판입니다˝ -<반일 종족주의> , p.5 책머리에서 이영훈

프리즘메이커 2019-08-21 17:28   좋아요 1 | URL
이영훈씨가 책에 직접 밝히셨는데, 댓글 다신분은 책은 읽으시고 비판을 하든 옹호를 하건 댓글을 다셔야죠. 얼른 독서하십시오.

연짱 2019-08-25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마침 ‘그것이 알고싶다‘에 이영훈씨 외 이승만학당 일원들이 나왔습니다. 강제징용노동자상을 만든 조각가가 강제 징용을 상징하는 여러가지 요소를 상징적으로 반영하여 정해진 모델없이 만들었다고 말하는데도 그들은 모델이 자꾸 일본노동자라고 우깁니다,,만든 조각가가 아니라는데 자기들이 생각하고싶은대로 추측하고 뱉는것이지요..또, 15세에 위안부로 끌려가셨던 할머니께서 그때를 기억하시는데..그들은 위안부가 20세 이상의 여성만 참여했다고 주장합니다. 당사자 분들이 떡하니 계시고, 그날의 회상하는데도요..그들은 위안부할머니들의 기억 왜곡 가능성, 사회가 바라는대로 기억할 가능성을 주장합니다..같은 국민으로써 부끄럽고 참담합니다..저런인간들이 교수라고..ㅋㅋ

연짱 2019-08-25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영훈은 자아가 두개인가봅니다.

연짱 2019-08-25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s://youtu.be/1PGzh_RuA0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