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식 포스터)


최대한 서술에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내용이 연상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뒤로 가기를 눌러도 괜찮습니다. 영화가 끝물이니 관계없을 거라고 봅니다. 시작하겠습니다. 



공포가 쌓아 올린 허상의 모래 탑, 그러나 일단 한번 굳히기에 돌입하면, 한 두 사람의 비뚤어진 집착이 순식간에 권력의 철퇴가 되는, 그래서 평범한 다수의 보통의 일상을 파괴하고야 마는 폭압성. 전체주의란 그런 것이다.


권력자의 권력의지와 민중들의 일반의지(general will)간의 싸움. 저마다의 끓는 점이 각자의 이유로 자신만의 각오가 될 때까지, 소심과 침묵과 인내가 정의감으로 타오를때 까지, 무척이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희생과 죽음과 고통을 청구한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한 데 쏟아져 나오는 모래알들의 반란은 철옹성 같았던 권력의 마구니 탑을 안에서 부터 무너뜨린다.혁명이란 그런 것이다. 


 (@ 영화제공 스틸컷)


박종철은 박종운의 행방을 불지 않고 고문 받다 사망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87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한열의 죽음은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나 87혁명은 양 김의 분열로 인해 , 양복을 입은 반란군의 2인자 '보통 사람' 노태우의 당선으로 퇴색되었으며, 박종철의 죽음은 박종운이 고문 독재세력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 낙선함으로써 씁쓸한 결말을 안게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 민주주의, 그 좌절의 역사는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님을 너무나 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혁명의 열정은 끝까지 부릅뜨고 지켜보지  않으면 이렇게나 쉽게 배반된다.   


(@오마이 뉴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구멍가게 매대에 촛불을 진열하는 87학번 신입생 연희의 말은, 시간과 공간을 굽이쳐 2016년 겨울 전국의 광장을 가득 메웠던 수많은 촛불 시민들의  의지를 북돋는다. 87혁명은 시민들의 힘을 모아 문제적 헌법을 바꿔냈다면,  촛불혁명은 멀쩡한 헌법의 수호를 열망했다. 촛불의 힘은 헌법의 절차적 방법에 따라 탄핵안을 가결 시키고,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판결을 이끌어 냈으며, 새로운 정권을 안착시켰다. 



     (@PrismMaker. 2016년 부산 서면, 겨울비에도 시민들의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바람 앞의 촛불' 새 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1년도 지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촛불 시민들의 단합된 힘으로 위기를 그럭저럭 잘 넘겨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엊그제, 뇌물공여 혐의가 있던 이재용은 1년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성폭행 검사들의 낯뜨거움, 보복기사를 휘두르는 적폐언론들, 민주주의는 여전히 비뚤어진 권력과 그 추종자들, 그곳에 결탁했던 자본의 성채 앞에 여전히 위태롭다. 방심은 이르다.




과연 촛불의 의지는 김정은의 '북풍', 보수세력의 '우풍' 에도 굳건히 타오를 수 있을 것인가. 한 번은 최루탄과 한번은 물대포와 맞서 일궈낸 시민혁명, 각오를 품기도 어렵지만  그 의지를 유지하기는 더 어렵다. "또 민주화 운동이야 ?" 하고 입을 비죽 내밀었던 나부터 반성하게 된다. 아직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2018.02.03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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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1993


※ 본 감상문에는 내용상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혐오가 광기를 낳는다광기는 이성을 표백 시킨다그 시대 나치의 만행을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다아렌트는 사유하지 않음으로써 악이 평범해졌기 때문이라 말한다그렇기에 아이히만 같이 열심히 살아가는 순진한 살인기계들이 도처에 널리게 되었다고 말한다이 영화는 정확히 그 반대 케이스를 말한다오스카 쉰들러의 이야기다.



 

 인생을 방탕한 호색한으로 살아왔던 쉰들러는 야수적인 본능으로 시대의 돈 냄새를 맡는다. 전쟁과 유대인, 그리고 돈이 겹쳐 보인다. 그는 노벨 기회주의상이 있다면 반드시 수상했을 만큼, 특유의 넉살과 수완을 통해 군납 사업체를 꾸린다. 유대인 회계사 슈텐에게 실무를 맡기고 본인은 나치 간부와 군부를 뇌물과 향락으로 구워삶는다. 나치 독일이나 현대 한국이나 상관없이, 군납하면 3대가 먹고 사는걸 증명이라도 하듯 쉰들러는 일약 갑부로 도약한다.

 


▲흑백영화의 유일한 칼라, 붉음. 

피를 상징하는 색, 인간의 몸 안에 흘러 박동하는 색, 인류애를 각성시키는 색

(사진 출처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b=bullpen&id=2043184)



 벌어놓은 돈으로 승마를 즐기던 쉰들러는 유대인의 재산을 빼앗고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흑백영화에 유일하게 컬러로 등장하는 빨간 옷을 입은 소녀가 주검으로 발견된다. 쉰들러는 흔들린다. 마음에 무언가가 밟힌다. 그는 자신의 양심을 때로는 부정하지만, 점점 더 진심으로 유대인들을 도와주기 시작한다. 이후 그는 기회주의적 수완가가 양심을 장착했을 때의 진수를 보여준다. 독일 장교를 눈속임하던 로비 능력이 졸지에 구원의 능력이 된 것 이다.

 


그렇게 쉰들러는 1100명의 유대인을 구했다. 게슈타포의 감시를 피했고, 막심한 적자를 감수하며 구해냈다. 전쟁이 끝나자 기업은 도산했다. 그 동안 획득했던 모든 부를 잃었다. 이제 쉰들러는 나치당원이자 군납기업 대표로서 도망 쳐야 할 전범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더 구하지 못했음을 계속해서 후회했다. 늦게 깨달은 자신을 책망했다. 앞서 말한 아이히만은 그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무죄를 항변했다. 그런 그에게 어려운 말은 하지 않겠다. 다만 쉰들러의 존재자체가 당신에게 반례라고 나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혹자는 쉰들러가 한 것이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일이었다고 절하한다본인은 동의하지 않는다. 폭력적인 구조와 시대 속에서 나약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다고 본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개인이 양심을 발현하여 비뚫어진 시대의 빛이 될 수도 있음을 쉰들러는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미친 세상에 제 정신인 사람은 부패한 기회주의자였으니까. 역으로 부패한 기회주의자라도 의인으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니까.



▲가자지구 폭격을 구경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유난히 이스라엘 국기의 푸른 빛이 돋보인다.

영화가 묘사했던 마무리, 쉰들러의 죽음을 추모하며 돌을 놓고 가던 유대인들의 행렬.

빨간 코트와 푸른 별은 무엇을 대비하고 있을까?

(사진출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6295436)



다만 오늘 날, 그의 의로움이 퇴색되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과거 나치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하던 장면과 오늘 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폭격하며 환호하는 장면이 겹친다. 나치즘과 시오니즘. 이 분노와 증오의 샴 쌍둥이는 묘하게 이스라엘로 전해졌다. 이들은 쉰들러를 추모하면서, 아이히만의 길을 택했다. 생각 없이 살육하고 환호한다. 수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죄 없이 죽고 있다. 이스라엘은 역사를 망각하고 증오만을 기억했다.

 


세상의 모든 차별은 혐오를 낳는다. 혐오는 분노와 증오를 먹고 자라 광기가 된다. 미친 세상은 항상 약자를 표적해서 가격한다. 나는 역사를 그런 방식으로 읽는다. 그리고 항상 나를 반추한다. 내가 미쳐 약자를 때린 건 아닐지. 또 우리 사회를 반성한다.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이 멸시와 혐오의 표적이 된 것을 보면 우리는 다같이 미친 것 같다. 한 어른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살 사람은 살아야지. 잊자. 우린 역시 아이히만이다. 유대인들이 나치를 망각했듯이. 우리는 그렇게 잊으며 산다.    


2017.11.18
@PrismMaker

※본 에세이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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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그.. 택시..” 매표소 직원이 너무 예뻐서 말을 더듬었다. 오랜만에 어머니께 효도 좀 할 겸 영화를 보여드리러 갔다. 어찌저찌해서 할인과 포인트를 사용하니 기분 좋게 반값에 영화표를 샀다.


※ PC버전으로 감상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 가족과 영화 보러가는 일은 항상 즐겁다.)



광주역에 운집한 시민들이 나왔다. 알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복받쳤다. 한상 푸짐히 차려놓고 차린 게 없다고 너스레 떠는 사람. 남일을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사람. 정 많고 잘 부러워하고 눈에 자주 밟히는 사람. 내가 느껴온 전라도 사람. 차별과 핍박의 역사적 소용돌이에 부당하게 쓸려갔던 순박하고 평범한 사람들. 나는 1년 전 오월에 5·18 국립 민주묘지와 망월동 묘역에 방문했다. . 이 사람들이 여기서 졌겠구나.

 



삼수해서 그것도 정외과를 간다니까 어머니께서 신신당부했다. 데모하지 말라고. 잡혀간다고. 나는 어머니께 요즘 시대에 그런 게 어딨느냐 호들갑 좀 떨지 말라며 성내고, 종종 집회에 나갔다. 원래 사람 심리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이다. 처음엔 심심해서, 때로는 궁금해서, 어쩔 땐 누가 가자 길래, 탄핵 땐 열불 나서 데모 하러 갔다. 세월호 집회 때는 불법 채증 당할 뻔했다. 탄핵 땐 한겨울에 비를 맞았고, 아스팔트에 시린 엉덩이와 저린 발로 앉아있었다. 몇 번 안 나갔는데도 많은 일이 있었다.

 



( 차린게 별로 없어서... @택시운전사 공식 포토갤러리)




영화가 끝났다. 한껏 상기된 어머니는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전남 완도 출신이다. 어머니네 마을 회관 맞은편 집 아들내미가 그날의 5월에 광주 갔다 죽었다고 했다. 그 사람의 딸이 바로 175월 문 대통령이 껴안아준 광주 유족이라고 했다. 어머니 말로는 805월의 신군부는 고금도 충무리, 그 깡촌의 선착장마저 틀어막았다고 했다. 닫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닫으려 들었다고 했다. 빛고을 광주. 그 틈새에서 새어나온 한줄기 빛의 굴절. 사실이 영화를 좇는게 아니라, 영화가 사실을 흉내내는 굴절된 빛의 탈출사.

 



문 대통령이 유가족 손을 잡고 추도식에 입장한 날 광주가 뒤집어 졌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 단톡방이 요란했다. 우리에게 이런 날도 있다고. 한을 풀겠다고 했다. 멀쩡히 내 옆에도 나도 몰랐던 한 명의 광주가 살아있었다. 그 빛고을을 지켜본 어머니의 눈빛, 그 빛은 산란하며 세월호 때도 탄핵 때도 글을 쓰는 지금도 꼭 한마디씩 당부한다 잡혀가지 마라장난인 줄 알았더니 진심이었다. 광주의 겁을 갖고 있는 엄마가 반골 아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 가지 잡혀가지 마라였던 게다. 나는 돌아가는 버스에서 애처럼 배가 고프다 칭얼거렸다. 엄마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잡혀가지 말라면서. 그리고 여느 날처럼 차린 것 없다며 한 상 크게 내주셨다. 물론 설거지는 내가했다. 효도할랬다가 되려 사랑을 말로 받았다.



-2017.9.8 @PrismMaker


※ 본 에세이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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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dla2189 2017-09-08 2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화한편 더 본 느낌. 잘 읽었습니다.

프리즘메이커 2017-09-08 23:0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syo 2017-09-08 2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 틈새에서 새어나온 한 줄기 빛의 굴절. 사실이 영화를 좇는 게 아니라, 영화가 사실을 흉내내는 굴절된 빛의 탈출사˝

크- 너무 멋지고 적확한 문장이라 몇 번을 봤는지 외울 지경입니다. 글 정말 잘 쓰십니다.

프리즘메이커 2017-09-08 23:07   좋아요 1 | URL
칭찬 감사합니다!! 올해 안에 에세이 집을 출간하고 싶은데 좋은 반응 보여주셔서 용기가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