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량이 솔직해지는 때가 있어. 오기로 버티고 부풀려 지어낸 스무 살의 주량과 헤어지는 거지. 그날의 우리 알콜 따위한테 지기 싫었잖아. 외로워도 슬퍼도 끝끝내 굳세 보이고 싶었잖아. 문제없어.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자연스런 생애주기니까. 몸이 늙어 버린 게 아니야. 비로소 마음이 내 한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거지. 편하잖아. 돈도 아끼고 시간도 남고.
어릴 때는 세상을 계산할 수 있었어. 이를테면 성적 같은 거 있잖아. 안 해서 그렇지 조금만 노력하면 그런 건 엇비슷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거니까. 어린 날의 세계는 좁잖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충분하지. 그치만 늘 세상은 나보다 한 박자씩 빨리 자라더라고. 이제 좀 컸다고 내 통제범위를 훌쩍 넘는 것들이 나보다 더 어깨가 넓더라. 괜찮아.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적당한 체념은 당연한 정서야. 몇 개는 그냥 던져버리자고. 남들이 알아서 줍겠지.
애도 어른도 아닌 시기가 길어지는 것 같아. 나는 요즘 “할 수 있어”란 말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어. 할 수 있다 말해놓고 못 하면 진짜 조빱 되는 거잖아. 그건 응원이 아니야 무책임이지. 그보다는 ‘나 이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입니다. 나에게 꿈과 희망을 팔지 마세요. 그런 거 안 사요. <절망에서 존버하기>라면 고민해볼게요. 잔소리는 무음 처리 가능한가요?’라고 누가 대신 말해줬으면 좋겠어.
뭘 못해도 괜찮고 하고 싶은 게 없어도 괜찮아.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지만,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간다고 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비참한 과거 따위에 항소 같은 거 하지 말자고. 더는 인생을 갈아 넣는 무모한 도전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랄게. 억지로 늘린 주량은 너를 평생 괴롭힐 거야. 야망이나 낭만 따위가 의미 있는 건 적당히 먹고 살 때야. 그러니까 지금 당장 치킨을 시켜. 배가 부르면 좀 나을 거야. 너를 구원하는 건 어렴풋한 희망이 아니라 한 모금의 시원한 콜라라구.
사람이 갈 때까지 가버리면 남의 가난까지 부러워하게 되더라구. 누가 뭘 자랑하건 신경을 껐으면 해. 안 그래도 부족한 집중력 그런데 낭비하면 아깝잖아. 그보다는 온전히 네 행복에 집중해. 그게 뭔지 모른다면 사소한 소비나 흔한 과식이나 충동적인 구매도 좋아. 일상의 의미들이 너를 반겨 줄 거야. 기왕이면 책이나 영화도 찾아 봐. 거긴 대놓고 세상이치가 적혀있는 곳이니까. 급할 때 먹는 비타민 영양제 같은 그런 거야. 내가 쓴 거면 더 좋고. 그래도 허무하다고? 어쩔 수 없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니까. 그렇다면 그건 너의 문제가 아니야. 자본주의를 택한 인류의 업보인 거지.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주제 파악이 될 때 주량은 솔직해져. 사람에게는 모두 미래 가치라는 게 있잖아. 저성장시대 모두가 공평하게 불행한 세상에서, 성실히 납세하면서 뭐라도 해서 먹고 살고 있다면 그자체로 성공 인거야. 서로 흠잡고 탓하지 말자고. 여기까지가 떠날 때를 놓친 사람의 슬픈 방백이었어. 잘 읽었다면 글풍선 보내줘. 3천 원 정도면 나쁘지 않지? 나도 치킨 좀 먹자. 배달비가 모자라거든. [신한 110-427-817704 나호선]
- 나호선 단편, <아모르파티>
2018-11-10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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