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주의 - 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 한국 자본주의 1
장하성 지음 / 헤이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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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국 자본주의] 바르게 알아야 해법을 찾는다

  

경제에서 사람은 노동이고 돈은 자본이다. 경제는 노동과 자본이 결합해서 생산을 하고 성장한다. 그러나 노동과 자본이함께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로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노동과 자본이 분배의 문제로 대립하고, 자본이 노동을 지배하고 억압해 온 것이 자본주의의 역사다.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만들기 위해서는무엇보다도 자본이 정의로워야 한다. 자본이 만들어내는 문제는 자본을 가진 사람이 만드는 것이지 자본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칼이 사람을 베는 것이 아니라 칼을 쥔 사람이 베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한민국의 자본주의가 정의롭게 작동하려면, 노동으로 삶을 꾸리는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민주적인 정치 절차를 통해 자본가들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단 그것부터 해봐야 한다. - 후기 中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전 세계적 고민이 계속 되어오고 있다. 기세등등해진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외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보다 자본주의의 생명력은 질기며, 자본주의는 종말의 대상이 아니라 고쳐서 다시 쓸 대상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이러한 세계 경제 상황 하에서 우리가 당면한 한국 경제의 현안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이다. 개혁을 외치고 정권을 교체하며 한국 경제를 망친 자와 살릴 자를 찾아왔다. 현재 핫한 이론과 처방들을 신속하게 가져와 적용해왔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호들갑과 책임 미루기만 가득해 시끄러울 뿐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거나 더 실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 경제는 모르면서 애먼 외국에만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이다. 지금 한국 경제, 한국 자본주의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어떤 답도 얻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기획 및 구상에 1년, 집필에 3년 해서 꼬박 4년에 걸쳐 쓴 책이라 하였다. 전공서를 보는 듯한 두툼한 두께(700페이지 이상)에 주석도 700개가 넘어 간다. 가장 놀랐던 것은 장하준 교수의 ‘첫 책’이란 점이었다. 그만큼 단단히 작정하고 쓴 책이다. 때를 기다렸다고 하였다. 작가는 우리나라가 계획경제 기조를 완전히 버리고 완전 자본주의로 돌아선 것은 1994년에 와서라고 하였다. 20년 정도 되었으니 비로소 한국 자본주의의 면면들을 조목조목 따져볼 때가 되지 않을까 용단을 내린 듯싶다. 또한 안철수 캠프 참여 이후로 더욱 불거진 세간의 질문 공세에 대해 빠른 시일 내에 정치적경제적 입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던 차였다. 그는 김대중, 손학규, 안철수의 싱크탱크를 자처했고, 많은 대중들로부터 존경받는 대표적인 이 시대의 ‘실천하는 지식인’인 동시에 기업저격수 혹은 신자유주의와 외국투기자본의 앞잡이로 불렸다.

 

이번에 출간된 <한국 자본주의>를 통해 독자는 저자에 대한 궁금증을 거의 풀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저자는 정치적으로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중도로 볼 수 있고 책 출간 이후 가진 인터뷰들에서 정치인을 할 생각은 없다고 분명히 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케인지언이라기보다는 주류경제학 입장에서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되 정의롭고 정상적인 시장의 회복을 고민하는 개혁적 경제학자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요즘 국제사회에서 핫한 피케티의 자본세 도입이나 기타 정부 규제나 각종 사회주의적 기제는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해법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초과 내부유보세를 통한 기업 자금 흐름의 정상화가 저자가 가장 꼽는 한국 자본주의의 난항 타개 해법이고, 사회민주주의의 경제정책모델들을 대안까진 아니더라도 참고 정도는 괜찮다고 말한다. 이 첫 책을 통해 저자가 쓰고 싶고 써야 했던 글은 모두 표현했다고 본다.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책은 아니지만, 저자의 주장에 갑론을박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례없는 전 지구적인 정책 대응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 6년이 경과한 현재까지도 세계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올 뚜렷한 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경기 부양책이나 부분적인 금융 규제의 개혁으로 극복될 수 있는 일시적인 경기순환상의 침체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모순이 금융 위기를 통해서 현실화된 것으로 보는 견해들이 지배적이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대안 체제의 모색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정도로 자본주의는 전례 없이 심각한 체제 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 p.19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한 이후 일부에서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견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금융 위기를 계기로 노출된 문제들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자본주의로 진화해 나갈 방향과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p.265

선택은 ‘자본주의 대안 찾기’ 아니면 ‘자본주의 어떤 고쳐 쓰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p.405

 

최근 출판·언론계에 조용히 유행 타는 단어가 ‘톺다’이다. <한국 자본주의>에서 장하성의 글쓰기는 이 단어가 몹시 어울린다. 저자는 이 책을 3부로 구성하여 한국 자본주의를 톺아보고, 따져 묻고, 고쳐 쓰고 있다. 두께 때문에 지레 겁먹기 쉬운 책이나 글씨 크기가 크고 특별한 경제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도 신문 기사 읽는 정도 수준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을 보고 감탄하였다. 읽다가 앞 내용을 잊어버린 독자를 위한 배려인 건지 후반부로 가면서 동어반복이 나타나는데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 글자 크기도 좀 더 줄이고 반양장으로 갔으면 100쪽 이상 적고 휴대하며 들고 다니기 편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읽어보았지만 역시 책상에 앉아 자분자분 읽거나 침대 맡 머리맡에 두고 자기 전에 읽기 좋지,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읽기는 대단히 불편하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국이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규제나 신자유주의가 넘쳐서가 아니라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공정한 경쟁조차 구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p.138

한국에 투자를 한 외국인을 투기꾼으로 규정하고 그들이 돈을 벌고 떠나면 국부가 유출된다는 주장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애국적이 아니라 오히려 망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p.297

지금의 자본주의가 위기에 봉착하고 회의론이 제기된 가장 큰 이유가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를 위해서 사회민주주의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은 것이다. - p.418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에서의 정의란 첫째,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절차와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함께 잘살 수 있도록 하는 분배의 정의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p.426

 

글쓰기에 욕심 있는 경제경영서 저자 중엔 우화와 비유로 푸는 것에 집착하는 이가 많다. 클리셰 작법이기도 하고, 그나마 일반 대중을 배려하는 저자들이 가장 만만하게 선택하는 방법이다. <한국 자본주의>에선 중후반부에 실려 있는 ‘한마을 이야기’가 그렇다. 저자가 우스갯소리로 책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재밌는 부분’이라고 하는데 각자 판단해보길 바란다. 학부에서 경제학 공부하며 가장 아쉬웠던 점이 이론과 테크닉 숙지에 정신없어 정작 한국경제사나 한국자본주의론은 배울 엄두를 못 내고 학과에서도 전공보다 교양 강의로 개설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업 듣는 기분으로 잠깐이나마 학생 기분 내며 즐겁고 심각하게 읽었다. 

이 책을 최장집 교수가 추천해서 관심을 갖는 독자도 있을 것 같다. 저자가 후반부에 경제학은 원래 정치경제학으로 출발한, 정치학과 한 몸인 학문이라는 환기하고 강조한다. 그래서 현상의 본질보다 이념적 기제로 접근하는 것이 방법론적으로는 틀렸지 않다고 말한다. 다만 몰이해했던 게 문제이고 위정자의 이율배반적인 정책기조가 문제이다. 박정희의 국가주도 계획경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신자유주의에 충실했던 김대중,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등 곰곰이 따져보면 한국 자본주의는 대통령들의 면면만 봐도 이상하다. 이번 출간이 우리 경제와 특수성을 바로 보고 정의경제를 고민하는 데 기폭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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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다시 그린다면 철학하는 아이 2
다니엘 피쿨리 지음, 김주경 옮김, 나탈리 노비 그림, 김용택 해설 / 이마주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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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다시 그린다면] 많은 아이들이 그리고 톺았으면

 

 

 

 

어릴 적 지도는 우리 남매의 질리지 않는 마성의 장난감이었다. 특히 초등학교 3학년 때 사회과 부도라고 학교 교과서로도 지도책을 받던 날 얼마나 흥분되던지, 고가였던 지구본이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저가의 보급본이 마구 풀리던 날 둘이 주거니 받거니 품으며 집으로 뛰어오던 날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아버지는 별별 종류의 지도를 곧잘 구해주셨는데, 백날 우리가 그림 그리고 가고 싶은 곳 표시해도 뭐라 하기는커녕 더 많은 지도를 가져다 주셨다. 우리가 어디 놀러갈 때 지도 안 챙겨 가면 호되게 야단칠 만큼 지도를 중시 여기는 성격이기에 그랬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어쨌든 그런 아버지 덕분에 우리는 어릴 적부터 신나게 지도로 세상을 보고 읽고 지도에 그림을 그리며 각자의 미래를 꿈꾸곤 하였다. 90년대 초중반 초등학교를 강타했던 놀이 중 하나가 아이 엠 그라운드 나라 이름 혹은 도시 이름 대기였는데 글씨 알기 전부터 지도 갖고 놀던 우리 남매에겐 껌이었다. 지금은 그 20%도 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를 만큼 그 땐 쌩쌩 돌아가는 머리로 줄줄 외고 다녔다.

 

 

프랑스 동화 <세상을 다시 그린다면>을 읽으면서 우리 남매와 똑같은 생각을 한 작가들이 우리 남매와 똑같은 어린 날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그린 것을 보고 몹시 반가웠다. 책 속에서 영국, 이탈리아, 중앙 유럽, 아프리카, 몽골, 북극, 남아메리카 등 세계의 곳곳 아이들이 ‘내가 만일 세상을 다시 그린다면’하면서 지도 위에 꿈을 꼽아보고 있다. 국경을 뛰어넘는 밝은 이야기들이 가득했으면 하는 아이,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아이, 목마름도 배고픔도 없었으면 하는 아이 등등 저마다 한껏 부푼 곱고 착한 꿈들을 꾼다. 그러나 아이가 무작정 천진난만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자기 꿈에 사람들이 걸 딴지들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다. 다만 사람들이 뭐라 초를 치더라도 자기 생각은 따르노라 꼭 그런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세상을 다시 그린다면>은 조선일보의 출판 임프린트 이마주에서 철학동화 시리즈 ‘철학하는 아이’로 기획·번역·출간한 책이다. 그래서 이번에 번역본을 내며 책 뒤에 김용택 시인의 해설을 실었다. 해설에서 김용택 시인은 “80년까지 사는 지금 어른들의 세상과 120년을 살 여러분의 세상은 달라도 한참 달라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아직 경력 10년이 채 안 된 어린 어른이지만, 어른으로 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한 부채감이 있다. 양차 세계대전을 겪고 다음 세계대전은 핵전쟁이기에 참고 또 참고 있지만 내가 아이였을 때 벌어지던 수많은 내전과 지역전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거나 다시 벌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환경은 더욱 오염되었고, 꼬마 때 굶고 아픈 아이들을 TV에서 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장난감 사려고 모은 돼지 배를 가르던 일을 지금 우리 아이들도 하고 있다.

 

 

동화의 마지막 문장이 여운 있었다. “어른들이 망쳐 놓은 세상을 다시 그리는 것. 그게 바로 아이들이 할 일이야. 그래 맞아, 쉬운 일은 아니지. 하지만 뭐 어째. 어렵다고 못할 것 없잖아!” 그와 어우러진 삽화는 ‘내가 그린 세계 지도’란 제목이 붙은, 세계지도를 임으로 오리고 붙여 아이들이 땅을 밟고 손에 손잡고 뛰는 모습을 구현한 콜라주였다.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이 각자 나름의 이상적인 세상을 많이 꿈꾸고 톺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다니엘 피클리의 글과 나탈리 노비의 그림은 마치 한 사람이 쓰고 그린 것처럼 잘 어울려 읽는 이의 상상력과 마음을 더욱 자극한다. 두 번째 읽는 이마주의 ‘철학하는 아이’ 시리즈, 50쪽 내외에 얇은 동화들인데 생각할 거리를 주고 매력 넘치는 삽화와 그림이 있어 앞으로 나올 책들도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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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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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 근세남과 현대녀의 콜라보레이션 발칙동화

 

 

 

<푸른 수염>은 특정 작가의 창작품이 아니다. 당시 구전돼오고 있던 민담에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여 정리한 것이고, 특정 국가에서 태동했다기보다 유럽 전체가 공유하고 있던 이야기였다. 대표적인 정리자로 프랑스의 샤를 페로와 독일의 그림 형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푸른 수염>을 그림 형제의 동화보다 샤를 페로의 동화로 더 익숙하게 알고 있다. 400개 이상의 민담을 수집하고 정리하였으나 <푸른 수염>을 포함과 제외를 반복했던(최종 판본엔 결국 제외) 그림 형제와 달리, 단 여덟 편의 민담 만을 선별해 자신의 동화로 만들었던 샤를 페로였기 때문이다.

    

 

2012년 출간된 아멜리 노통브의 <푸른 수염> 역시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을 의식한 소설로 보인다. 그의 조국 프랑스에서 스페인 남자와 벨기에 여자가 벌이는 21세기판 <푸른 수염>이라니, 기본 설정부터 노통브스럽다. 17세기의 <푸른 수염> 여주인공이 철없고 순박한 어린 시골 처녀고 노골적인 구애와 재력에 혹해 성으로 들어갔다면, 21세기 <푸른 수염>의 여주인공 사튀르닌은 역시 젊지만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에 하우스 푸어라서 연쇄 살인자일 가능성이 농후한 푸른 수염의 성을 제발로 들어간다. 여자 세입자만 받는 집, 그리고 8명의 세입자 전부 실종된 집임에도 파리에서 방값 걱정만 안할 수 있으면 상관 없다. 생명보다 돈인 현대 자본주의의 풍경이다.

  

 

사실 책 제목이 <푸른 수염>이여서 그렇지 노통브의 푸른 수염 돈 엘레미리오 니발 이 밀카르의 수염은 파라지 않다. 그저 잘생긴 40대 중반의 미남자인데, 안쓰럽게도 젊은 나이에 스스로 자기만의 성에 갖힌 인물이다. 금의 나라 스페인 남자답게 세상에서 금과 금의 색인 노랑을 가장 사랑하고, 명문 귀족의 풍요로운 삶을 맘껏 즐기며 아무것도 안 하기로 세월을 버티고 있다.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다는 소문은 있는데 그의 사진을 본 사람이 없다. 그가 히키코모리가 된 이유는 첫째는 16세기보다 더 멋진 문화가 없건만 세상은 16세기에 관심도 없고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순수한 사랑을 원하지만 남다른 배경과 외모 때문에 미친 듯이 꼬이는 여자들이 끔찍하게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레미리오는 독특한 자신의 연애법을 고안한다. 매우 싼 가격에 방을 세놓고 여자 세입자만 받은 다음 지원자들을 인터뷰해 가장 마음에 드는 여자을 선택하고 그녀와 동거부터 하는 것이다. 그는 모든 여자가 자신에게 반한다고 굳게 믿는 이다. 가톨릭의 교리에는 어긋나지만 금을 주면 기꺼이 출장 고해성사를 하며 그의 죄를 사해주는 신부와 면죄부 밀매를 해오고 있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은 없다. 그렇게 8명의 세입자가 그의 성에 들어왔고, 그는 그녀들을 진심을 다해 사랑했다. 짧게는 3주부터 길게는 반년까지였다. 그럼 그 후 그녀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일단 엘레미리오와 계약하긴 했지만 사튀르닌은 당황스럽다. 어떻게 한 번보고 대놓고 사랑한다며 같이 살자고 하는 건지, 자기를 곧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무엇인지 말이다. 심지어 사튀르닌이 자신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사튀르닌도 엘레미리오 못지 않게 대책 없고 독특한 여자다. 열아홉살 많은 이상한 오빠한테 한 치도지지 않고 남다른 먹성과 붙임성으로 밥맛이 좋다며 맛나게 샴페인과 식사를 즐긴다. 특히 계란 노른자 크림을 아주 맛나게 먹는 샤튀르닌을 보고 더욱 그녀에게 홀딱 반한 엘레미리오는 20년 동안 끊었던 샴페인을 다시 만들고 그녀를 위해 최고급 벨벳으로 황금빛 롱치마를 손수 만들어 선물한다. 엘레미리오는 하루라도 빨리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

    

 

문제는 사튀르닌 또한 먹다가 싸우다가 정들었는지 엘레미리오가 진심으로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욕망이 생긴 것이다. 절대 열어서는 안 되는 방과 8명의 실종된 여자들에 대한 궁금증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진 것도 이때부터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 위해 우리의 사튀르닌은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새벽 2시에 헐벗은 채로 칼을 쥐고 엘레미리오의 침실에 찾아가 협박을 한다. 엘레미리오도 자기 인생에 이렇게 괴상한 여자는 없었기에 더욱 그녀에게 눈먼 사랑의 노예가 되어 친절하게 비밀을 알려준다. 7+2의 운명에 선 사튀르닌, 이름이 사튀르닌이라서 슬픈 날에 사건을 터뜨린다.

 

 

어린이 문학이란 개념이 따로 없던 시절 어린이를 위한 책을 쓴 샤를 페로는 오늘날 프랑스 어린이 문학의 아버지로 평가된다. 그는 <푸른 수염>의 교훈은 호기심은 후회라는 대가를 치르며, 여성들에게 쓸데없는 호기심은 아주 경박한 쾌락이다.”라고 못박았는데 그러면서 이제는 (푸른 수염) 같은 남편이 없다.”는 말을 덧붙인다. 흔히 <푸른 수염>을 잔혹동화로 평가하는 이유는 멈추지 않는 피여성 신체 전시라는 소재로 여성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샤를 페로가 덧붙인 말을 보면 새로운 여성상에 대한 공포, 여성에 의한 거세 혹은 살해 공포도 함께 내포한 동화가 <푸른 수염>임을 알 수 있다. , 푸른 수염의 잔인함은 과잉 자기보호 때문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한편 <푸른 수염>은 아멜리 노통브가 데뷔 20주년에 쓴 스무번째 장편 소설이란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벨기에 출신인 그녀가 1992년 스물 다섯에 등단한 것처럼, 20년 후에 쓴 <푸른 수염>의 사르튀닌 역시 스물 다섯의 벨기에 여자라는 설정도 꽤나 눈길이 간다.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 두 가지를 꼽자면 미녀와 야수의 테마반전 결말인데, 이번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화를 재해석하면서도 여과 없이 그녀의 표식을 남겼다. 엘레미리오와 사튀르닌의 결합이자 샤를 페로와 아멜리 노통브의 결합이기도 한 이번 <푸른 수염>, 근세남과 현대녀의 발칙동화이다.

    

 

이번 <푸른 수염>에서 샤를 페로의 작은 황금 열쇠는 엘레미리오의 황금에 대한 광적 집착을 통해 과장되고, 샤를 페로의 결말은 여성의 시선에서의 대답의 형태로 재구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세기를 넘나드는 콜라보레이션 속에 동화의 재구성과 재해석이 가리키는 마지막 지점은 사랑의 본질이다. 사튀르닌과 엘레미리오가 서로에게 보여준 행동은 기괴하지만 자신만의 사랑 표현법이다. 비극은 서로 이해하고 물러서지 않고 각자의 방식을 밀어붙였기 때문에 일어났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랑이 어느 옛날 동화를 떠올리게 하고 그 결말이 좋지 않음을 안다. 특유의 감성과 표현으로 과장한 상징일 뿐, 인간의 사랑이 그런 것 같다.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인지 알고 있음에도, ‘나의욕망이 먼저다. 노통브가 <푸른 수염>을 통해 꼬집고 싶었던 것도 가장 이타적인 행위라고 믿는 사랑의 이기성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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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다 -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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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다] 특별하게 발생했으나 사라지게 둘 수 없는 글들

 

꾸준히 관심 대상이나 이상하게 연이 안 닿는 작가들이 꼭 있다. 긴긴 몸부림 끝에 드디어 에코의 책을 처음 잡게 되었다. 에세이집이라니 부담도 훨씬 덜했다. ‘특별한기회에 썼다는 글들이라 하였고 열네 편의 글이 실려 있었다. 7개 국어를 하며, 작가이자 철학자·기호학자·역사학자·미학자·사상가이니 학회다 강연이나 그를 부르는 곳은 너무나 많다. <적을 만들다>에 실린 글들은 그런 발표나 강연을 위해 쓴 원고들을 출간용으로 재편집한 글들로, 일부는 이미 다른 잡지나 책에 실린 경우도 있다. 분량은 제각각이나 300쪽 조금 넘는 책을 나눠 차지하는 그래봤자 짧은 글들이고, 주제는 제각각이나 서로 겹치지 않는다. 주제와 난이도와 상관없이 가독성이 좋은 편이고, 각각의 주제와 내용이 반짝반짝 독특한 것들이 많았다. 잠을 잘 기운도 없이 지쳤던 깊은 밤에 전채요리를 즐기듯 기운과 기분을 돋울 요량으로 한 꼭지만 읽고 덮으려 했다가 단숨에 읽어버리고 말았을 만큼 재밌던 책이었다.  

<적을 만들다>에 실린 글들은 꽤 오래되었다. 원서의 출간연도도 2011년이고, 2000년대에 이루어졌던 에세이들이다. 그럼에도 지금 읽어도 개성 넘치고, 읽는 이에게 풍부한 영감을 선사하는 글이었다. 그것이 에코의 저력이고 매력이다. 아주 진지하게 실재하지 않는 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는 가짜 서평이라던가([속담 따라 살기]), 위고와 조이스를 들었다 놓았다하는 신랄한 평가들([, 빅토르 위고! 과잉의 시학], [율리시스, 우린 그걸로 됐어요]), 시사적인 이슈에 대한 냉철한 통찰들([천국 밖의 배아들]. [위키리스크에 대한 고찰]) 등 한편 한편이 가볍게 묵직하고 무심하게 주옥같다  

특히 표제작인 [적을 만들다]는 저자 서문에서의 고백처럼 마케팅 차원에서 편집자가 밀어붙인 자극적이고 팔리는 제목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혹은 2000년대의 에코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글로 볼 수도 있다. 적은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 체계를 형성하는 중요 기제기에 치열하고 쉼 없이 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독특한 견해, 그리고 이 주장이 택시 기사의 사소한 말에서 발전했다는 점은 세상을 포착하는 에코의 혜안과 융통성 있는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어디를 굳이 밑줄을 쳐야할지 모를 만큼 감탄스러운 문장의 향연 속에 수그러들지 않고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기에, 나는 내 글이 망각 속으로 사라지게 둘 수 없었다,”라는 저자 서문 마지막 문장이 유독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특별하게 발생했으나 사라지게 둘 수 없는 글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제 글에 대한 애착과 욕망은 그런 것이다. <적을 만들다>2000년대 에코의 바로미터인 것처럼, 망각되지 않고 샘솟고 또 샘솟는 사상과 문장의 여정을 앞으로도 계속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싶다. 독자에게 관심 작가에 대한 애착과 욕망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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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사이드 MBA
마이클 매지오 & 폴 오이오 & 스콧 셰이퍼 지음, 노승영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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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사이드MBA] 길에서 배운 경영학 - 소상공인을 위한 MBA

경영학과가 있는 많은 학교들이 MBA를 설치한다. 일반대학원은 없고 MBA만 있는 학교도 많다. 그만큼 경영학이 실용학문이라는 반증이기도 하고, MBA가 수요도 많고 돈도 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마이클 매지오, 폴 오이어, 스콧 세이퍼는 MBA에서 비즈니스 전략을 가르치는 미시경제학자들이다. 현재 근무 학교는 다르지만 박사 학위를 받고 처음 임용했던 학교가 같은 세 교수는 계속 돈독한 우정을 유지한다. 어느 날 학회 후 비행기를 타기 전에 시간이 남아서 식사를 하고 소화 시킬 겸 한 신발가게에 들렸다가, 끈질기게 상품을 권하는 점원을 보며 전공병이 도진 세 사람은 질문공세를 퍼붓고 학회보다 두 배는 유익하고 소규모 업체의 경영 현실을 엿보는 신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문제의식을 갖는다. 경영학 학부와 대학원에서 다루는 기업 사례는 주로 대기업들이다. 그리고 그런 회사 취업을, 그런 회사에서의 경력관리를 목표로 수업을 듣는다. 특히 MBA는 더 그렇다. 하지만 세상엔 소기업, 기업 규모도 안 되는 일반 가게들이 훨씬 많다. 길에서 배운 경영학, 소상공인을 위한 MBA란 목표로 직접 발품 팔며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직접 사례를 수집하고 책 하나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그래서 탄생한 책이 <로드사이드 MBA>다. 마침 셋은 이혼을 했거나 이혼 위기여서 자유로웠고, 책을 집필할 목적이라고 하자 생각보다 많은 소기업·가게들이 방문 및 인터뷰에 응하였다.

세 경제학자는 2010년부터 4년에 걸쳐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무조건 셋이 움직이기보다는 각자 일정에 맞춰 따로 또 같이 움직였기에 방문 여정은 뒤죽박죽이다. 셋 중 한 사람은 50개 주 완주도 성공한다. 그 중 추려서 23개 주 45개 소기업·가게의 사례를 담은 책이 <로드사이드 MBA>다. 올해 6월 출간되어 <이코노미스트> 선정 2014년 상반기 최고의 경영서로 꼽히기도 한 책인데, 청림출판이 워낙 남다른 속도와 양으로 경제경영서를 내긴 하지만 이 정도로 빨리 번역할 줄은 몰랐다. 한 그루의 나무가 모여 푸른 숲을 이루듯 수많은 책으로 삶을 풍요롭게 하겠다는 청림출판의 철학처럼 <로드사이드 MBA>는 재미와 유익 모두 잡은 양서이다.

 

 

매지오 법칙: 모든 전략 문제의 해답은 ‘그때그때 다르다’ - p.11/p.305

결론1. 관건은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결론2. 문제의 해답이 ‘그때그때 다르다’가 아니라면 그것은 전략 문제가 아니다.

결론3. 전략 문제에 해결이란 없다.

 

<로드사이드 MBA>의 모든 사례는 저자 중 한 명인 마이클 매지오가 주창한 ‘매지오’ 이라는 한 틀로 묶인다. 사업 규모, 진입장벽, 제품 차별화 전략, 가격 책정, 브랜드 관리, 효율적 협상, 채용, 직원 동기 부여, 권한 위임, 덩치들과 맞서기, 총 10장으로 구성된 <로드사이드 MBA>는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어떤 주의 어떤 기업을 돌아다녔는지 기록하고, 다시 한 소기업·가게마다 한 챕터씩 해서 방문한 소기업·가게와 거기서 배운 가장 핵심적인 교훈을 소제목으로 붙였다.

 

 

대부분의 경제학 교수들은 경영학 교수보다 더 학구적인 편인데 경제학과가 아닌 MBA에 몸담고 있어서인지 무척 사고도 유연하고 유쾌한 저자들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분량 상 2편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50개 주 이미 완주한 이도 있고 나머지 두 저자도 완주 목표를 세웠는데 이 책에선 일단 절반밖에 드러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경영학과 관련 전공에선 보통 조직 규모가 영세하며 운영의 모든 영역에서 열등하고 불리하다고 가르치곤 한다. 이 책을 쓴 저자들의 제자들에겐 여기의 사례가 그냥 수업 때 가볍게 듣고 지나가는, 자신의 진로와 별 상관없는 세계의 이야기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MBA다. 저자들이 학교를 나와 길을 나선 것도 그 때문이리라.

* 초판 한정인지 무조건 증정인지는 모르겠다. 현재 <로드사이드 MBA>는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경제학 명강의>라는 소책자와 함께 래핑 포장되어 판매하고 있다. 세 저자 중 한 명인 폴 마이어가 쓴 <짝찾기 경제학(2014년 4월 번역 출간)>에서 발췌한 것이다. 데이트 시장에 컴백한 돌싱남 폴 마이어가 자신을 실험체 삼아 쓴 데이트의 경제학이다. 이런 것 좋아하는 분들은 응용미시경제학 많이 사랑해주시길, 재밌는 것 많이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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