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다시 그린다면 철학하는 아이 2
다니엘 피쿨리 지음, 김주경 옮김, 나탈리 노비 그림, 김용택 해설 / 이마주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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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다시 그린다면] 많은 아이들이 그리고 톺았으면

 

 

 

 

어릴 적 지도는 우리 남매의 질리지 않는 마성의 장난감이었다. 특히 초등학교 3학년 때 사회과 부도라고 학교 교과서로도 지도책을 받던 날 얼마나 흥분되던지, 고가였던 지구본이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저가의 보급본이 마구 풀리던 날 둘이 주거니 받거니 품으며 집으로 뛰어오던 날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아버지는 별별 종류의 지도를 곧잘 구해주셨는데, 백날 우리가 그림 그리고 가고 싶은 곳 표시해도 뭐라 하기는커녕 더 많은 지도를 가져다 주셨다. 우리가 어디 놀러갈 때 지도 안 챙겨 가면 호되게 야단칠 만큼 지도를 중시 여기는 성격이기에 그랬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어쨌든 그런 아버지 덕분에 우리는 어릴 적부터 신나게 지도로 세상을 보고 읽고 지도에 그림을 그리며 각자의 미래를 꿈꾸곤 하였다. 90년대 초중반 초등학교를 강타했던 놀이 중 하나가 아이 엠 그라운드 나라 이름 혹은 도시 이름 대기였는데 글씨 알기 전부터 지도 갖고 놀던 우리 남매에겐 껌이었다. 지금은 그 20%도 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를 만큼 그 땐 쌩쌩 돌아가는 머리로 줄줄 외고 다녔다.

 

 

프랑스 동화 <세상을 다시 그린다면>을 읽으면서 우리 남매와 똑같은 생각을 한 작가들이 우리 남매와 똑같은 어린 날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그린 것을 보고 몹시 반가웠다. 책 속에서 영국, 이탈리아, 중앙 유럽, 아프리카, 몽골, 북극, 남아메리카 등 세계의 곳곳 아이들이 ‘내가 만일 세상을 다시 그린다면’하면서 지도 위에 꿈을 꼽아보고 있다. 국경을 뛰어넘는 밝은 이야기들이 가득했으면 하는 아이,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아이, 목마름도 배고픔도 없었으면 하는 아이 등등 저마다 한껏 부푼 곱고 착한 꿈들을 꾼다. 그러나 아이가 무작정 천진난만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자기 꿈에 사람들이 걸 딴지들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다. 다만 사람들이 뭐라 초를 치더라도 자기 생각은 따르노라 꼭 그런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세상을 다시 그린다면>은 조선일보의 출판 임프린트 이마주에서 철학동화 시리즈 ‘철학하는 아이’로 기획·번역·출간한 책이다. 그래서 이번에 번역본을 내며 책 뒤에 김용택 시인의 해설을 실었다. 해설에서 김용택 시인은 “80년까지 사는 지금 어른들의 세상과 120년을 살 여러분의 세상은 달라도 한참 달라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아직 경력 10년이 채 안 된 어린 어른이지만, 어른으로 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한 부채감이 있다. 양차 세계대전을 겪고 다음 세계대전은 핵전쟁이기에 참고 또 참고 있지만 내가 아이였을 때 벌어지던 수많은 내전과 지역전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거나 다시 벌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환경은 더욱 오염되었고, 꼬마 때 굶고 아픈 아이들을 TV에서 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장난감 사려고 모은 돼지 배를 가르던 일을 지금 우리 아이들도 하고 있다.

 

 

동화의 마지막 문장이 여운 있었다. “어른들이 망쳐 놓은 세상을 다시 그리는 것. 그게 바로 아이들이 할 일이야. 그래 맞아, 쉬운 일은 아니지. 하지만 뭐 어째. 어렵다고 못할 것 없잖아!” 그와 어우러진 삽화는 ‘내가 그린 세계 지도’란 제목이 붙은, 세계지도를 임으로 오리고 붙여 아이들이 땅을 밟고 손에 손잡고 뛰는 모습을 구현한 콜라주였다.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이 각자 나름의 이상적인 세상을 많이 꿈꾸고 톺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다니엘 피클리의 글과 나탈리 노비의 그림은 마치 한 사람이 쓰고 그린 것처럼 잘 어울려 읽는 이의 상상력과 마음을 더욱 자극한다. 두 번째 읽는 이마주의 ‘철학하는 아이’ 시리즈, 50쪽 내외에 얇은 동화들인데 생각할 거리를 주고 매력 넘치는 삽화와 그림이 있어 앞으로 나올 책들도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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