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푸른 수염] 근세남과 현대녀의 콜라보레이션 발칙동화

 

 

 

<푸른 수염>은 특정 작가의 창작품이 아니다. 당시 구전돼오고 있던 민담에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여 정리한 것이고, 특정 국가에서 태동했다기보다 유럽 전체가 공유하고 있던 이야기였다. 대표적인 정리자로 프랑스의 샤를 페로와 독일의 그림 형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푸른 수염>을 그림 형제의 동화보다 샤를 페로의 동화로 더 익숙하게 알고 있다. 400개 이상의 민담을 수집하고 정리하였으나 <푸른 수염>을 포함과 제외를 반복했던(최종 판본엔 결국 제외) 그림 형제와 달리, 단 여덟 편의 민담 만을 선별해 자신의 동화로 만들었던 샤를 페로였기 때문이다.

    

 

2012년 출간된 아멜리 노통브의 <푸른 수염> 역시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을 의식한 소설로 보인다. 그의 조국 프랑스에서 스페인 남자와 벨기에 여자가 벌이는 21세기판 <푸른 수염>이라니, 기본 설정부터 노통브스럽다. 17세기의 <푸른 수염> 여주인공이 철없고 순박한 어린 시골 처녀고 노골적인 구애와 재력에 혹해 성으로 들어갔다면, 21세기 <푸른 수염>의 여주인공 사튀르닌은 역시 젊지만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에 하우스 푸어라서 연쇄 살인자일 가능성이 농후한 푸른 수염의 성을 제발로 들어간다. 여자 세입자만 받는 집, 그리고 8명의 세입자 전부 실종된 집임에도 파리에서 방값 걱정만 안할 수 있으면 상관 없다. 생명보다 돈인 현대 자본주의의 풍경이다.

  

 

사실 책 제목이 <푸른 수염>이여서 그렇지 노통브의 푸른 수염 돈 엘레미리오 니발 이 밀카르의 수염은 파라지 않다. 그저 잘생긴 40대 중반의 미남자인데, 안쓰럽게도 젊은 나이에 스스로 자기만의 성에 갖힌 인물이다. 금의 나라 스페인 남자답게 세상에서 금과 금의 색인 노랑을 가장 사랑하고, 명문 귀족의 풍요로운 삶을 맘껏 즐기며 아무것도 안 하기로 세월을 버티고 있다.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다는 소문은 있는데 그의 사진을 본 사람이 없다. 그가 히키코모리가 된 이유는 첫째는 16세기보다 더 멋진 문화가 없건만 세상은 16세기에 관심도 없고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순수한 사랑을 원하지만 남다른 배경과 외모 때문에 미친 듯이 꼬이는 여자들이 끔찍하게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레미리오는 독특한 자신의 연애법을 고안한다. 매우 싼 가격에 방을 세놓고 여자 세입자만 받은 다음 지원자들을 인터뷰해 가장 마음에 드는 여자을 선택하고 그녀와 동거부터 하는 것이다. 그는 모든 여자가 자신에게 반한다고 굳게 믿는 이다. 가톨릭의 교리에는 어긋나지만 금을 주면 기꺼이 출장 고해성사를 하며 그의 죄를 사해주는 신부와 면죄부 밀매를 해오고 있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은 없다. 그렇게 8명의 세입자가 그의 성에 들어왔고, 그는 그녀들을 진심을 다해 사랑했다. 짧게는 3주부터 길게는 반년까지였다. 그럼 그 후 그녀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일단 엘레미리오와 계약하긴 했지만 사튀르닌은 당황스럽다. 어떻게 한 번보고 대놓고 사랑한다며 같이 살자고 하는 건지, 자기를 곧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무엇인지 말이다. 심지어 사튀르닌이 자신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사튀르닌도 엘레미리오 못지 않게 대책 없고 독특한 여자다. 열아홉살 많은 이상한 오빠한테 한 치도지지 않고 남다른 먹성과 붙임성으로 밥맛이 좋다며 맛나게 샴페인과 식사를 즐긴다. 특히 계란 노른자 크림을 아주 맛나게 먹는 샤튀르닌을 보고 더욱 그녀에게 홀딱 반한 엘레미리오는 20년 동안 끊었던 샴페인을 다시 만들고 그녀를 위해 최고급 벨벳으로 황금빛 롱치마를 손수 만들어 선물한다. 엘레미리오는 하루라도 빨리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

    

 

문제는 사튀르닌 또한 먹다가 싸우다가 정들었는지 엘레미리오가 진심으로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욕망이 생긴 것이다. 절대 열어서는 안 되는 방과 8명의 실종된 여자들에 대한 궁금증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진 것도 이때부터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 위해 우리의 사튀르닌은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새벽 2시에 헐벗은 채로 칼을 쥐고 엘레미리오의 침실에 찾아가 협박을 한다. 엘레미리오도 자기 인생에 이렇게 괴상한 여자는 없었기에 더욱 그녀에게 눈먼 사랑의 노예가 되어 친절하게 비밀을 알려준다. 7+2의 운명에 선 사튀르닌, 이름이 사튀르닌이라서 슬픈 날에 사건을 터뜨린다.

 

 

어린이 문학이란 개념이 따로 없던 시절 어린이를 위한 책을 쓴 샤를 페로는 오늘날 프랑스 어린이 문학의 아버지로 평가된다. 그는 <푸른 수염>의 교훈은 호기심은 후회라는 대가를 치르며, 여성들에게 쓸데없는 호기심은 아주 경박한 쾌락이다.”라고 못박았는데 그러면서 이제는 (푸른 수염) 같은 남편이 없다.”는 말을 덧붙인다. 흔히 <푸른 수염>을 잔혹동화로 평가하는 이유는 멈추지 않는 피여성 신체 전시라는 소재로 여성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샤를 페로가 덧붙인 말을 보면 새로운 여성상에 대한 공포, 여성에 의한 거세 혹은 살해 공포도 함께 내포한 동화가 <푸른 수염>임을 알 수 있다. , 푸른 수염의 잔인함은 과잉 자기보호 때문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한편 <푸른 수염>은 아멜리 노통브가 데뷔 20주년에 쓴 스무번째 장편 소설이란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벨기에 출신인 그녀가 1992년 스물 다섯에 등단한 것처럼, 20년 후에 쓴 <푸른 수염>의 사르튀닌 역시 스물 다섯의 벨기에 여자라는 설정도 꽤나 눈길이 간다.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 두 가지를 꼽자면 미녀와 야수의 테마반전 결말인데, 이번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화를 재해석하면서도 여과 없이 그녀의 표식을 남겼다. 엘레미리오와 사튀르닌의 결합이자 샤를 페로와 아멜리 노통브의 결합이기도 한 이번 <푸른 수염>, 근세남과 현대녀의 발칙동화이다.

    

 

이번 <푸른 수염>에서 샤를 페로의 작은 황금 열쇠는 엘레미리오의 황금에 대한 광적 집착을 통해 과장되고, 샤를 페로의 결말은 여성의 시선에서의 대답의 형태로 재구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세기를 넘나드는 콜라보레이션 속에 동화의 재구성과 재해석이 가리키는 마지막 지점은 사랑의 본질이다. 사튀르닌과 엘레미리오가 서로에게 보여준 행동은 기괴하지만 자신만의 사랑 표현법이다. 비극은 서로 이해하고 물러서지 않고 각자의 방식을 밀어붙였기 때문에 일어났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랑이 어느 옛날 동화를 떠올리게 하고 그 결말이 좋지 않음을 안다. 특유의 감성과 표현으로 과장한 상징일 뿐, 인간의 사랑이 그런 것 같다.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인지 알고 있음에도, ‘나의욕망이 먼저다. 노통브가 <푸른 수염>을 통해 꼬집고 싶었던 것도 가장 이타적인 행위라고 믿는 사랑의 이기성은 아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