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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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지은 집] 대침체의 처음과 끝, 가계부채

 

 

 

대중교통비와 담배값 인상, 도서정가제 실시 등 각종 가격 정책의 시행 혹은 시행 예고를 두고 민심이 심란하다. 재정 누적 적자 해소, 세수 확보, 산업 활성화 등 타당하거나 선의의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상 이상으로 국민들이 반발하고 원하는 정책 효과가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 정책들이 안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 소비 침체에 더욱 기름을 붙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 실질임금 상승률이 6개 분기 연속 하락세 끝에 0%가 되었고 저임금 임시직은 심지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노동생산성 둔화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아도 고용을 늘리려면 저부가가치·저임금 서비스업 직종 채용을 늘릴 수밖에 없다. 취업시장에서는 이미 정규직 1명을 채용하면 비정규직 일자리 두세개가 없어진다고 구직자를 세뇌하고 있고, 단순 아르바이트도 수습이 등장하였다. 올해의 경우 세월호 경기 위축이라고 시사용어가 등장했을 정도로 반년 정도 요식업과 문화산업 등에 타격이 있기도 하였다.

 

 

소비 위축을 우려하는 이유는 경제 선순환의 핵심이 소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자 경제 동향은 쉽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의 각종 악재도 있지만 더욱 걱정인 것은 겉잡을 수 없는 정도로 증가하고 있는 가계부채이다. 10년도 채 안 돼 가계부채 규모가 500조에서 1000조로 2배가 되었다. 어느 대부업체가 사채 받아서 고급 레스토랑에서 외식도 해보고 비싼 옷도 입어 보라는 광고를 해서 격렬한 비난을 받은 것처럼 본능적으로 인간은 저축을 좋아하고 대출을 싫어한다. 그러나 카지노 자본주의라는 표현처럼 산업과 경제의 고속성장의 결과, 현대 자본주의는 실물부문이 아닌 금융이 주도하는 양상을 보였다. ‘돈이 돈을 만든다’가 시대의 상식이 되고 금융기관은 앞 다투어 파생상품 판매와 대출 권장에 열을 올렸다. 기업 뿐 아니라 일반 가정도 어느 정도 빚이 있는 게 이상하지 않고,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풍조가 형성되었다. 그러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19세기 말의 대불황과 1930년대의 대공황과 견주어 미국발 글로벌 금융 이후 현재를 ‘대침체’라고 부르고 있는 것처럼 상황은 심각하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경제철학은 재편되고 있으며 경제물리학 등의 대안 학문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미국 경제의 들썩임이 전 세계에 파장을 미친 것은 세계 경제에 미치는 미국 자본의 힘이 엄청난 것도 있지만 미국에서 만든 경제 모델과 처방들을 수많은 나라들이 따라했기 때문도 있다. 혹자는 미국이나 세계가 이제는 대침체를 넘어갔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중산층 가정의 81%가 15년 전보다 수입이 낮으며, 빈곤율이 15%를 넘어섰으며 SNAP(식품 지원)나 TANF(재정 지원)에 등록된 저소득자가 점점 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올해 5월, 미국에서 흥미로운 경제서가 출간되었다.

 

 

IMF가 선정한 45세 이하 차세대 경제학자 25인에 속한 두 경제학자 아티프 미안과 아미르 수피가 8년간의 실증 분석 끝에 경제에 미치는 가계부채의 위력을 낱낱이 밝힌 역작을 내놓은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계부채가 나쁘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상식적으로 모두 아는 사실이고 관련 서적도 많다. 하지만 데이터로 명확한 실증을 제시하고, 가계부채 한 주제에만 집중해 이만큼 분량의 책으로 나온 것은 거의 없다. 압권은 이 책의 결론인데 ‘심각한 경제 침체 이전에는 반드시 가계부채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대침체의 시작도 끝도 가계부채라고 못 박은 것이다. 그래서 파이낸셜 타임즈는 일찌감치 이 책을 올해의 책 최종 후보로 올리기도 하였는데, 발간 6개월이 채 안 돼 열린책들에서 한국어 번역판을 내주어 반갑고 고마웠다. 이번 번역은 저자 중 한 명인 아티프 미안 교수 아래서 박사 학위를 받았던 연세대 경제학과 박기영 교수가 맡았다.

   

 

미국처럼 경제적 재앙 이전에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소비 지출이 급감하는 패턴은 다른 나라에서도 널리 찾아볼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새로운 사실을 하나 더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가계부채가 더욱 크게 증가할수록, 소비 지출 또한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 p.20

 

은행 위기로 인해 촉발된 불황 이전의 부채 증가량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무려 다섯 배에 이른다. 그리고 은행 위기로 촉발된 불황이더라도 민간 부채가 낮았을 경우에는 경제적 여파가 일반적인 불황의 충격과 비슷함을 알 수 있었다. - p.23

 

빚은 보험과 정반대로 위험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빚은 주택 소유와 관련된 위험을 분산시키기는커녕 그 위험을 감당할 능력이 가장 적은 사람들에게 위험을 전가시킨다. 빚은 대침체기 동안 부의 불평등을 두드러지게 심화시켰다. 빚은 또한 압류를 통해 자산 가격을 떨어뜨린다. 떨어진 자산 가격은 모기지 대출을 이용한 주택 소유자의 순자산을 크게 감소시키며 이는 또 다른 재앙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의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 p.51

 

레버리지가 높은 가계일수록 집값 변화에 따른 한계 소비 성향이 높다. - p.66

 

결국 경제 상황은 수요에 의해 주도된다. - p.83

 

빚은 거품의 생성뿐만 아니라 팽창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 p.166

 

 

두 저자는 이번 연구를 통해 대내 채무, 대외 채무 모두에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레버드 로스 (프레임워크) 이론(모델)을 주창하였다. 그리고 이 책에서 논의하는 모든 내용의 이론적 기반을 여기에 두고 있다. 빚을 지다leveraged와 지렛대lever의 중의적 의미를 담은 이 이론은 ‘빚 때문에 발생했고 그로 인해 피해가 증폭된 손실’에 관한 이론이다. 한 경제의 구성원은 빚의 유무에 따라 이질적이며, 빚을 진 가계들이 급격하게 소비를 줄이게 만드는 경제 전체에 대한 충격이 있다고 가정한다. 이 두 가지 요인으로 부동산 가격의 하락이 소비에 미치는 효과가 증폭되는데 그 양상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주택 자산의 가치가 변할 때 소비를 가장 크게 변화시키는 계층, 즉 빚진 사람들에게 손실이 집중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압률 인해 집값 하락의 충격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비를 줄이지 않고도 손실로 인한 충격을 더 쉽게 완화시키려면 채무자가 아닌 순자산이 많은 저축자가 되어야 한다.

 

책 제목이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인 이유는 여러 가지로 해석해볼 수 있다. 먼저 이 책의 출발이 되는 미국의 경제 대침체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대표되는 가계의 무분별하고 폭발적인 주택 대출 때문에 시작되었다. 또 가계부채의 주요인이 주택 대출 때문이다. 가계 경제에 있어 ‘내 집’의 의미와 총자산에서의 비중이 상당한 만큼 가계 ‘경제(개인 소비자)=집’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과장이 아닌데, 그 집이 빚으로 이룩한 것이라면 그 존재가 사상누각처럼 얼마나 위태로운가. 저자는 국가 경제의 탄탄한 기반은 정부나 기업이 아닌 가계에 달렸다고 본다. 그렇기에 ‘빚으로 지은 집’(의 증가)은 크게 해석하면 ‘국가 부실화’의 비유로까지 확장 연결할 수 있다.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가계부채의 요인이 주택 대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제목을 <빚으로 지은 집>으로 지은 것은 이러한 상징성 때문이다.

 

 

가계부채의 중요성에 회의적인 경제학자들도 많다. 그들의 시각은 크게 셋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시각은 경제의 펀더멘털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비합리적이고 자주 변하는 기대 때문에 경기 변동이 발생한다는 야수적 충동 가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채의 누적이 문제가 아니라 부채의 흐름을 멈추는 것이 문제로 금융 부문을 강화하여 은행이 가계와 기업들에 계속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자금의 흐름이 원활하다면 경기를 복구할 수 있다는 은행 중심적 시각을 들 수 있다. 앞선 두 시각은 결국 불황은 경제가 자연스럽게 돌아가면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딱히 해결법이 없다. 마지막 시각이 대침체기 동안 정책 입안자들의 주 기조인데 알다시피 그 정책들은 실패하였다. 저자들은 경제적 재앙에 대처하고 이를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 원인을 ‘가계부채’로 보고 책의 전 장에 거쳐 조목조목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2002년에서 2005년 전례가 없을 정도로 모기지 대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평균 소득은 점점 감소하는데 대출은 더해주며 비상식이 횡횡했던 디트로이트 서쪽 지역의 사례는 대침체 전 가계 대출에 대한 금융기관의 행각과 사회 풍조가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빚으로 지은 집>은 이러한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그 해법까지 제시함으로써 완벽한 가계부채 단행본을 목표로 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막연히 위험하다고 느꼈던 가계부채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문제는 흔히 원대한 야망을 품은 연구나 저서들의 공통적인 문제, 해법의 부실함이다. 거시 경제 정책의 기본은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이다. 치밀한 분석 끝에 저자들은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 모두 가계부채 감소에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뾰족한 수가 얼마나 되냐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해법은 단 하나이고, 가계의 주택 대출의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 ‘책임 분담 모기지’라는 새로운 모기지 계약 형태이다. 책임 분담 모기지엔 하방 위험 보호 조항과 자본 이득 공유 조항이 있다. 전자는 주택 가격이 구매 시점보다 떨어질 때 낙폭에 비례해 상환금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연동 국채 등을 생각해보면 아주 터무니없는 시도도 아니다. 후자는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이득의 일부를 채권자에게 지급함으로써 채권자의 위험을 줄인다. 정도를 5%로 두고 비과세로 처리해 채무자도 부담이 적다. 저자들은 책임 분담 모기지가 주택 순자산의 감소를 줄이고 연쇄 효과로 높은 가계 지출과 적은 일자리 손실을 촉발한다고 전망한다. 소비가 증가해 경제가 바닥에 있어도 총수요를 지탱할 수 있다면 그만큼의 일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저자들은 책임 분담 모기지를 통해 시장 거품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다만 지금까지 책임 분담 모기지가 나오지 않은 이유는 그동안 정부가 빚을 이용한 자금조달에 대대적인 정책적 보조(광범위한 세제 혜택)로 대출 제도 개선과 혁신에 게을렀기 때문이다.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위험과 고통을 분담하는, 이타적인 정책이 유일하고 강력한 해법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우리가 책에서 했던 분석들 대부분은 미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빚이 거시 경제와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최상의 미시 데이터를 구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결론과 시사점들은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 지역의 최근 불황은 미국의 경우와 매우 비슷한 경로를 따르고 있습니다. (...) 빚의 무서운 파괴력을 겪은 지역으로 아시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 한국은 대외 채무의 위험성을 잘 관리했지만, 국내의 높은 민간 채무로부터 비롯된 문제에는 여전히 노출되어 있습니다. (...) 동아시아 위기 이후 한국의 가계부채는 급속하게 증가해 왔습니다. 가계부채의 증가세는 가처분 소득의 증가세를 크게 앞질렀습니다.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동아시아 위기 이후 두 배로 증가했습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OECD 국가 평균은 133퍼센트이나 한국은 164퍼센트에 이릅니다. 국내 수요를 증가시키기 위해 가계부채의 증가에 너무 크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200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우려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한국 경제가 당면한 위험은우리가 해외의 여러 역사적 사례들에서 살펴본 경우와 유사합니다. 주택 시장이 침체하기의 총수요는 부정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저자들의 한국어판 특별 서문 中

 

 

해법은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막연한 해법 여러 개보다 확실한 해법 하나가 낫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저자들의 글쓰기 취향이 얼마나 깔끔한지 알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해법 제시도 시원스럽다. 다만 읽는 이의 관점에 따라 저자들의 ‘유일 필승법’이 무릎을 탁 칠만큼 감탄스러울 수도 있고 다른 것은 없나 싶어 부실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저자들이 한국어판 특별 서문에서 우리 경제에 대한 분석을 살짝 첨언해둔 것처럼 <빚으로 지은 집>에서 논의하는 가계부채 분석은 미국에만 국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참고하고 따라한 모든 나라들에 적용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가계부채 증가율과 경기 상황은 영 심상치가 않다. 열린책들이 서둘러 이 책을 번역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연말, 각종 트렌드 분석서나 재테크서를 읽으며 내년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다. 당장의 생활에 적용하는 실용서도 좋지만 꾸준히 경제경영서를 찾고 읽는 이유가 시장을 보는 통찰력과 감각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서인 바, <빚으로 지은 집> 같은 책도 함께 읽으면 더욱 뇌가 배부른 겨울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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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의 역사 북멘토 그래픽노블 톡 1
리쿤우 지음, 김택규 옮김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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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가족의 역사] 화가가 끔찍한 상처를 그려 남기는 이유는

 

 

 

 

역사에 대한 기억은 현실을 향한 응시이자 미래를 향한 전망입니다.

이 만화의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 리쿤우

 

우리 가족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상처가 다시 드러났다...

전쟁 속의 인간은 선택권이 없다...

상처는 너무나 깊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오랜 세월 단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떤 역사는 잊어서는 안 되며 곡해는 더더욱 금물이다.,,

시대의 흔적인 동시에 기억이 내 삶 속에 새긴 콤플렉스...

해묵은 감정을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억을 되새기는 것이다...

- 서문을 대신한 저자(리쿤우)의 창작노트 中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는 며칠 전 <기획회의> 12월호를 발행하며 올해의 출판계 주요 키워드 30개를 뽑고 그 중 최고의 키워드로 ‘추억의 반추(역사)’를 꼽았다. 고동석 <기획회의> 편집주간의 말처럼 한 사회가 집단적으로 반추하는 추억을 우리는 ‘역사’라고 말한다. 올해는 ‘역사’를 바라보는 책이 여럿 나오고 큰 인기를 누렸는데 단순한 역사책 열풍이 아니라 장르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 개인적인 시선의 미시사라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변호인>과 <명량> 등 상당히 허구를 가미한 ‘보고 싶은 대로의 역사’ 영화에 쏠린 광풍과도 맥을 함께 한다. 개인으로서의 무력함과 리더다운 리더에 대한 목마름, 그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를 드높이고픈 욕망이 다양한 방식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소설로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황석영의 <투명인간>이 유의미했고, 외국 소설로는 일자무식 스웨덴 사내가 온갖 20세기 세계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의 주인공이었다는 코미디물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꾸준히 베스트셀러 랭킹을 지켰다. 이러한 흐름을 대변하는 가장 상징적인 책으로. 정계 은퇴 후 안정적으로 작가로 컴백한 유시민의 <나의 한국 근현대사>를 꼽고 싶다.

 

 

역사가가 아닌 이상 개인에게 역사와 시대는 자신이 겪어 온 시간 덩어리로, 기억으로 기록되고 저장된다. 그래서 그들의 역사적 서술은 자의적이고 사적이게 마련이다. 자신과 뗄 수 없고 집안이나 가족과 뗄 수 없는 사건일수록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리쿤우의 그래픽노블 <내 가족의 역사>를 읽으며 떠오르는 추억 하나가 있었다. 대학 졸업 여행 겸 중국에 11일 동안 체류했던 경험이다. 3,200만원 4년 등록금 중 300만원도 채 회수하지 못했던 비루한 부모 등골 브레이커가 장학금을 털어 떠났던 유일한 해외여행 경험이었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거부감 등 평소 그리 좋아하는 나라도 아니었고, 현지에서도 그 짧은 기간 동안 별의별 사건에 물과 공기가 너무 안 맞아 술과 차로 연명했던 지난한 여정이었음에도 감행하고 즐겼던 이유는 중국 곳곳에 산재한 우리 독립운동유적지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임시정부조차도 국가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 우리 같은 민간의 지속적인 방문과 우리보다 몇 백배 반일감정이 강한 중국 인민들의 오지랖 덕에 겨우겨우 보존해오고 있다. 홍커우 공원에서 조깅하다 윤봉길 의사 찾다 하며 일상적으로 윤봉길을 상기하는 인민들, 우리와 되도 않는 영어와 보디랭귀지로 난징대학살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눴던 대학생 등 역사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기억욕은 대단하였다. 대도시 한복판에 판잣집처럼 있던 독립유적지들에도 애써 참던 눈물이 터져 나왔던 것은 태양산 등 1930년대 한중 연합 무장독립전쟁 관련 유적지들에서였다. 그늘 하나 없이 작열하는 민둥산에서도 총알받이를 각오하고서라도 싸웠다는 충격적 사실, 무너진 벽들에 70년이 지난 지금도 한이 절절히 느껴지는 표어 등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광경에 온 마음이 무너졌었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척박하고 외진 내륙 지역에서도 조상들을 자랑스러워하며 그 끔찍한 흔적들을 보존하며 대대손손 기억하는 현지인들이었다. 그래서 <내 가족의 역사>의 창작 동기와 작가의 정서 역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작가인, 중국의 화가 겸 만화가인 리쿤우는 1955년생이다. <내 가족의 역사>의 큰 중심소재는 1894년에서 1895년 벌어졌던 청일전쟁과 1937년에서 1945년 벌어졌던 중일전쟁이다. 즉 그 후 출생한 리쿤우의 역사는 아니기에 ‘내 가족의 역사’다. 특히 책 후반부 중일 전쟁에 대한 부분은 작가의 장인이 겪은 1938년 쿤밍 대폭격과도 이어지기 때문에 청일전쟁보다 더 직접적인 ‘내 가족의 역사’이다. 리쿤우는 다양한 분야에서 미술활동을 해온 중국 미술계의 거목이다. 그리고 <중국인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전적 역사 만화를 그리면서 프랑스와 벨기에에 이름을 알렸다. 현대사를 소재로 한 <중국인 이야기>와 <내 가족의 역사>는 사회 고발적 성격이 강하다. 그의 자전적 역사 만화 시리즈가 몇 작품으로 끝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지금의 창작 행보는 반드시 할 만큼 하고 살 풀어야 하는 일종의 인생의 소명 같은 것이다. 그래서 역사물보다 저널리즘 르포 같은 분위기가 더 짙다. 만화의 모티브가 된, 아예 스캔까지 해버린 청일전쟁 관련 그림과 복사를 할 방법이 없어 하루 종일 걸려 일일이 사진을 찍은 중일전쟁 관련 사진의 상당 부분이 만화에 직접 삽입되다보니 더 그런 느낌이 강하다.

 

 

<내 가족의 역사>를 읽으며 비장함마저 느끼는 것은 판화를 보는 듯한 진한 만화체인 것도 한 몫 한다. 한술 더 떠 <내 가족의 역사>의 경우 후반부 장인의 회고 부분은 아예 굳이 일일이 판화를 제작해 페이지를 구성하였다. 줄거리 자체는 단순한 그래픽노블이다. 골동품 시장에서 얻게 된 귀한 전쟁 자료로 직업정신을 살려 만화로 남긴다는 이야기. 머리도 식힐 겸 골동품 시장 산책에 나선 리(작가)는 자신을 그저 라오치(형제 중 일곱째)라고만 부르라는 묘한 장사치를 만나고, 이상하게 리에게 강한 호감과 신뢰를 느끼는 라오치는 리에게 자신이 ‘애국주의의 국보’로 친다는 일본의 전쟁기록화를 며칠 유상 대여한다. 작업실에 돌아온 리는 조수의 도움(번역)으로 그 그림이 청일전쟁을 아주 세세히 그림으로 그린 걸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전율을 느끼며 몰래 스캔을 뜬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림을 반납하고 대여금을 더 쳐주면서 스캔 사실을 이실직고한다. 라오치는 잠시 당황했다가, 이런 쪽에 관심이 있다면 스승님의 소장품을 소개하고 싶다고 스승님 댁으로 리를 데려가는데 그곳엔 스승이 평생 모았다는 엄청난 양의 중일전쟁 기록 사진집이 있었다.

 

 

그 사진집을 복사할 방법이 없어 일일이 사진을 찍고 인화하는데 그 사진뭉치만 5kg, 조수가 일일이 번역해 1937년에서 1938년 위주의 자료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국주의에 온 열도가 미쳐 날뛰던 시대, 뉴스에 일희일비하는 국민들을 위해 온 전쟁터를 함께 다니며, 병사보다 더 앞서고 방독면을 써서라도 사진을 다 남긴 일본인 종군기자들의 직업정신이 남긴 ‘치욕스러운 보물’이었다. 라오치의 스승이 워낙 좋은 물건을 구했고 보존도 탁월해, 사진을 사진으로 찍은 것만 보고 있노라도 마치 그 시대를 겪고 있는 듯 생생하였다. 사정없이 적에게 잔인한 일본군이 어떤 중국인 장교의 죽음엔 묵념한 것에 의아하기도 하고, 일본군의 점령에 투항한 것까진 좋은데 일본군보다 더 악랄하게 중국인을 착취한 매국노에 분노하기도 하고 조수의 번역을 들으며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쯤 장인이 겪었다는 1938년 쿤밍 대폭격 기사를 보게 된다. 그 길로 장인을 찾아가 설득하고 설득한 끝에 장인이 죽기 전 가까스로 회고담을 듣고 만다. 그 때가 1998년이었다. 그리고 2012년에야 한 권 분량의 그래픽노블로 완성할 수 있었다.

 

 

결말이 무척 극적이라(드라마에선 흔하지만 현실에선 흔하지 않는) 이 만화가 전부 사실인 게 맞는 건지, 팩션이라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떤 부분이 허구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한국어판 제목의 이유가 짐작은 가지만 왜 굳이 원제를 바꿨는지 모르겠다. 원제인 <상흔傷痕>이 훨씬 작품의 주제의식과 정체성을 명확히 표현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골동품 시장에서 우연히 겪은 기묘한 경험과 인연은 잊고 있던 상처를 건드린다. 애써 세월이 이겨냈지만 완전히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하고 흉터를 남겼다. 그 흔적을 다시 외면하지 않고 들췄다. 누군가는 놀라고 누군가는 찡그리고 누군가는 그 흉터를 더 건드리며 생채기를 낸다. 누구는 새살이 솔솔 나는 연고를 가지고 뛰어올 것이고 누구는 말없이 안아줄 것이며 누구는 그저 한참을 서서 울다 갈 것이다. 그게 인간이다. 아픔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존재, 그래서 함께 견뎌 이겨낼 수 있는 존재. 같은 내용을 글만 쓰지 않고 일일이 그림으로 표현하면 시간이 몇 배나 들고 힘들다. 내용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화가는 펜과 함께 붓을 잡았고, 그도 성에 안차 판화까지 새겼다. 책 속의 문장처럼 한 개인의 가장 아픈 상처이자 한 가족의 역사에서 가장 침통한 한 페이지(p.257)일지라도 알리고 남겨서 ‘같이’ 기억하고 싶었다.

 

 

<내 가족의 역사>는 북멘토 출판사의 그래픽노블 시리즈 ‘톡’의 첫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고, 두 번째 책으론 한국전쟁을 다룬 우리 그래픽노블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가제, 근간)>이 예정되어 있다. 여러 출판사들이 10여년 가까이 고군분투한 끝에 우리나라도 그래픽노블을 꾸준히 찾는 독자층이 형성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북멘토의 ‘톡’ 시리즈는 색깔이 독특한데 ‘십 대와 어른이 함께 읽는 만화’라는 콘셉트로 평화, 인권, 노동, 생태 등을 다룬 사회성 강한 그래픽노블을 출간할 계획이라니 기대가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경구를 그렇게 좋아라하며 마구 인용하면서도, 나라가 앞장서 역사 교육을 홀대하는 우리 사회. 이 책도 ‘추억의 반추’ 유행이 역사 관심을 자극한 김에 올해가 가기 전 읽어볼 만하다고 적극 추천해본다.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인보다 심하게 일본의 착취를 받은 우리가 더 생각과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기 좋은 책이기도 하고, 청일전쟁과 중일전쟁은 우리 역사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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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지음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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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건투를 비는 물건

 

  

1983년생인 롯데 빼빼로, 기억이 희미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 과자가 1971년생인 농심 새우깡과 함께 아기 시절 처음 접하고 가장 흔히 먹었던 가공과자였던 것 같다. 쑥하고 아래 앞니 오르고 추접스럽게 이유식을 곱씹으며 어른처럼 야무지게 제 몫의 쌀밥을 먹는 그날을 기다릴 때부터였다. 한손에 꼭 잡히고 녹여 먹을 수도 있는 짭짤한 새우과자와 달리 반드시 오독오독 씹어 먹어야 하는 초코 발린 막대과자를 어른들이 건넨 것은 빨리 이 아기가 이와 턱을 단련시켜 사람구실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걸까. 어쨌든 오물오물한 그 작은 입에도 잘 들어오는 슬림한 몸매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초콜릿이 묻힌 그 과자를 굳이 마다할 일이 없었다.

 

특정 회사의 상품을 전 국민이 대놓고 소비하는 날, 기억이 맞다면 이 괴이한 날은 별의별 궤변을 늘어놓으며 호들갑 떨던 세기말에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뜬금없이 등장했는데 이상하게 온 국민이 별 저항 없이 즐기기 시작하더니 오늘에 이르렀다. 1995년 수능이니 1994년 날씬해지라는 선물 따위의 도시전설은 막상 그해를 겪은 내 기억엔 없고 21세기에 와서 주워들은 소리다. 이상하게 그 전에는 아무 때나 먹던 이 과자를 데이가 생기고 나선 별일 없으면 매년 특정 며칠만 먹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 데이를 별로 의식하는 것도 아니다. 생기면 먹고, 심심하면 만들거나 사고, 가래떡이든 빼빼로든 맛있으면 다 좋고 둘 다 못 먹고 돼지국밥에 부추를 한 가득 넣어 야무지게 퍼먹어도 상관없다.

  

두 형광색의 보색대비가 찬란한 이 물건의 존재를 안 것은 10월 말 열린책들 출판사 카페에 올라 온 한 남자의 1인 시위 현장이라는 대놓고 다른 의도(신간 홍보)가 드러나는 게시글 때문이었다. 그 남자가 사진에서 들고 있던 책 제목 캘리그래피는 그대로 책 표지에 쓰였다. 신인인가, 재밌는 필명이군하며 업데이트되는 추가 정보를 확인해보니 기성작가였다. 본명 대신 새 필명을 지은 <수상한 식모들>의 박진규, 아 그 작가. 지금은 종합출판사지만 열린책들의 출발이자 대표 정체성은 외국’ ‘문학이었다. 외국 문학 번역 전문 출판사에서 종합출판사로 거듭난 이후에도 문학에 있어선 지금껏 한 번도 한국 문학을 다루지 않았다. 출판사에겐 처음 내는 한국 문학책이고, 작가에겐 새 필명으로 처음 내는 소설이다. 잘 되어야 하는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박생강이라는 필명이 무척 친근하였다. 성자saint와 악당gang의 혼성이라거나 생각의 강이라는 그의 진의는 전혀 짐작하지 못하였다. 작가도 처음 생강이 몸에 좋다는 것에 충동적으로 지었다는 것처럼 이 독자에게 생강은 생강이었다. 반가운 이유는 저자와 정반대로 익명성과 무책임성을 드러내는 모든 네티즌 활동에서 굳이 이름을 입력해야 할 땐 무조건 김오뎅이니 김감자니하면서 김씨 성과 두 글자 음식의 조합으로 짓는 나였기 때문이다. 음식 작명 좋아하는구나하며 혼자 반가워라 하고 혼자 엉길 수 있는 것은 대면이 아닌 그가 낳은 책으로 그를 접하는 방구석 독자의 망측한 특권.

  

나는 그럴듯한 소설을 쓸 생각이 없다. 대신 그럴듯함과 그럴듯하지 않음 사이에서 꿈틀대는 어떤 자리들을 발견하고 또 찾아보려 애쓰겠다. (...)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는 이런 발견들에 대한 소설가 박생강의 첫 번째 보고서다. 눈물과 울림의 시약 대신 랑그와 파롤을 으깨 만든 달콤한 독을 페이지 곳곳에 묻혔다. 그리고 앞으로도 정결함과 천박함과 마주하는 은밀하지만 시끄러운 문학의 장소로 당신을 인도할 것이다. 그곳에 엄숙한 성소도 없다. 비빌 언덕도 없다. 어쩌면 세계의 똥 위에 주저앉은 채 실실거리며 웃는, 뿔 위에 꽃 꽂은 소 한 마리쯤이야 있겠지만. - 작가의 말

 

똘기 충만한 이 물건은 한숨에 읽는 것이 가장 맛났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만감과 함께 본문이 끝났음을 확인하고 후식을 즐기기 위해 작가의 말을 읽기 시작했다. 한 장의 그 사족을 읽고 모든 것이 명쾌해졌다. 그리고 그럴듯한 서평을 쓸 생각을 접고 내 식대로의 엉망과 예의 사이에서 꿈틀대는 어떤 독후감으로 답하기로 마음먹었다. <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를 읽으며 느꼈던 지배적인 감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놓고 한국적인 소재와 PPL임에도 소설의 정서가 의외로 한국적이지 않다는 느낌이었고, 다른 하나는 많은 생각들을 생각 없이 썼다는 느낌이었다.

 

한국소설 중에 톡톡 튀는 단편이야 수두룩하지만 이 책처럼 완결성 있고 긴 호흡으로 똘기를 유지하는 장편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이 책과 가장 정서적으로 가깝다고 느낀 것은 프랑스의 아멜리 노통브였고, 좀 더 확장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와도 접점이 있었다. 자신의 책이 외국이나 100년 후에 어떻게 읽힐까, 문장과 어휘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선별하는 구석도 없었다. 온 책으로 소설은 일단 당장 읽어 재밌는 것이 미덕이라고, 예술과 구조미학보다는 발상과 재미가 우선한다고 포효하는 듯하였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엮으며 열심히 쓴 티를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느껴짐에도 읽는 감을 가볍고 경쾌하게 만들어놓았다. 

 

 

이 시대의 인간은 어쩌면 빼빼로 피플이네. 인간은 태어나기를 딱딱하고 맛없는 존재로 태어났지.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개성이란 달콤한 초콜릿을 묻히지. 타인을 유혹할 수 있는 존재로 특별해지기 위해. 하지만 그 개성의 비율 역시 언제나 적당한 비율, 손에 개똥같은 초코가 묻어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 적정선의 비율로 필요하네. 그게 넘어가면 괴짜라거나 변태 취급을 받기 쉽지. 그렇게 이 시대의 인간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양 착각하지만 실은 모두 똑같은 봉지 안에 든, 더 나아가, 똑같은 박스 안에 포장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초코 과자 빼빼로와 비슷하다네.” - pp.145~146 

어쩌면 21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빼빼로>가 아닐까? 빼빼로라는 소설이 있기에 어쩌면 사람들은 소설을 읽지 않는 게 아닐까?”

빼빼로는 문장 아닌 막대 과자로 구성된 과자 상자에 통과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1111일에 가까워 오면 그 과자를 통해 자신이 상상하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건 대개 사랑에 대한 환상이지만, 그 환상은 얼룩지고 음산해지며 종종 우울하게 가라앉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그때뿐이다. 시답잖은 베스트셀러를 읽은 뒤에 던져 버리듯 빼빼로데이가 지나면 이내 그 과자는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빼빼로라는 소설을 쓴 사람은 누구야? 아니면 이 과자를 만든 제과업체야? 아니면 이 과자를 통해 욕망하는 우리 모두야?” - p.245

 

 

제목에 충실해 처음 중간 끝 모두 골고루 빼빼로와 빼빼로포비아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운다. 빼빼로와 관련된 온갖 들과 철학이 휘돌고, 더러는 뜻밖의 애로나 예상할 수 있었던 농담과 결합하기도 한다. 소설은 19세 연상 빼빼로포비아 애인 때문에 고민인 스무살 대학생을 상담하는 민형기와 그 사실을 알고 3자 대면을 신청한 빼빼로포비아 당사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김만철이란 학생이 학교과제로 쓰고 있는 단편소설의 내용이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실재하는 김만철의 지인들에서 따왔고, 우연히 소설의 설정과 같은 인물이 나타나기까지 한다. 김만철의 소설과 현실이 교차하는 탓에 슬슬 긴장과 집중이 커질 때쯤 지금까지의 전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작가는 기상천외한 본론을 들이민다. ‘3단 반전쯤 있는 액자소설이라고 정의하면 될까.

  

사장님이 외계인이고 첫사랑이 외계인 혼혈이었다는 이야기가 펼쳐질 즈음 정신없이 펼쳐지는 SF활극에 잠시 빼빼로와 빼빼로포비아는 잊게 된다. 아니, 사실 책 전체를 읽으면 빼빼로와 빼빼로포비아를 생각 외로 독서 중에 인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의 입과 글을 통해 읊어지는 빼빼로에 대한 정보들 자체도 사실인지 아닌지 별 중요하지 않다. 빼빼로란 이름은 중요한 걸까. 열병처럼 몰두했다가 금세 식는 애정의 대상, 특별히 맛나고 사랑스러운 것 없이 죄다 비슷비슷한데도 자기는 예외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어떤 가늘고 길며 무언가 발라진 막대과자라는 설명만 있다면 삐삐로나 쿤타킨테 같은 이름이어도 어느 문화권, 어느 시대의 독자들도 소설을 이해하고 즐기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빼빼로를 싫어하고 혐오하는 포비아는 흔치 않더라도, 빼빼로 피플과 빼빼로 데이에 저항하는 이들은 숱하게 많다. 별에서 온 사장님과 강아지와 알약들이 벌이는 사건사고는 얼핏 빼빼로를 고민하는 지구인들을 위축시키는 것 같지만, 결국 이 기막히고 허무맹랑한 스토리텔링은 우리의 존재를 드높인다. 문제의식을 가질 줄 아는 살아 있는 지구인이라면 언젠가 김만철처럼 호송아트와 실리칸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소설보다 작가의 얼굴을 먼저 안 것은 조금 불행이었다. 얼핏 보고 넘어간 그의 얼굴과 책 속에 언급된 프로필이 어우러진 이미지가 소설을 읽으며 민형기, 김만철, 강사, 사장 모두에서 조금씩 나눠진 것 같다고 자꾸 자의적 해석하려 했기 때문이다.

 

다분히 빼빼로 데이를 의식하는 듯한 제목과 소재의 책, 그러나 출간일은 의외로 10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어쩌면 빼빼로 데이 전까지 책을 읽을 시간을 충분히 준, 출판사의 더 둔 한 수일지도 모른다. 김만철과 최향기의 상상처럼 사장은 정말 빼빼로포비아였을까, 어쨌든 그는 빼빼로보다 압도적으로 맛이 좋은 스윗 스틱이라는 막대과자를 만든다. 허구인 줄 알면서도 먹고 한낮 광화문 거리에서 눈물 아롱지고 싶었다. 작가도, 소설도, 캐릭터도 물건이었다. 가볍지만 그런 소설들이 주는 정크푸드 뒷맛이 없다. 실험성과 독창성을 내세우는 작가들이 흔히 저지르는 제 발상 주체 못함도 없다. 영리하고 깔끔하게 이야기와 색깔 모두 지킨다. 건투를 빈다,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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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 경영에서 반드시 직면할 질문과 해답 76가지
제임스 맥그래스 지음, 김재경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119 경영학 ; 역시 제임스 맥그래스 but 조금은 아쉬움

 

 

 

<삐뽀삐뽀 119 소아과>라는 책이 있다. 1,000쪽이 넘어가는 묵직한 분량 탓에 명성에 비해서는 가내 소장 정도가 적은 편이지만(70만부 정도 판매고), 15년 이상 국내 육아서 분야의 스테디셀러로 군림하고 있다. 작년엔 60대 이상 연령대에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화제가 되었으며, 어여쁜 이름과 달리 묵직묵직한 인문사회서를 주로 내왔던 출판사 그린비의 의외의 효자상품으로도 유명하다. 책 제목처럼 이 책이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 받은 것은 아이들이 아픈 수많은 경우에 그때그때 대처할 수 있는 요긴한 응급처방서였기 때문이다. 그런 경영서가 무척 필요하였고, 그래서 이 책의 출간을 무척 기다렸다.

 

경영학과 매우 가까운 전공이었고, 경영학과 교수들과의 교류가 많았음에도 다른 선후배동기처럼 경영학을 복수전공해하지 않았다. 리더십이나 경영관리자 관련 훈련도 대학 시절 꽤 많이 받았고 크고 작은 모임도 많이 이끌어봤기에 자신만만하였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 보니 나름 공부했다고 믿었던 것이 얼마나 일천하고 상당 부분이 삽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올해, 주특기를 틀어야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경영학을 공부해보기로 하였다. 아직은 입문 혹은 취미 수준의 깨작거림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처럼 학문의 얼개를 잡으며 초심으로 임하고 있다.

 

상반기에 읽었던 경영서 중 제임스 맥그래스와 밥 베이츠가 공저한 <모든 경영의 답>이란 책에 무척 많은 도움을 받았다. 경영학이 생각보다 행정학과 굉장히 많이 겹친다는 것을 알고 부담감도 많이 지울 수 있었고, 89개의 넘버링을 통해 경영학의 얼개를 머릿속에 쉽게 그리고 기억할 수 있었다. 천성 자체가 일할 때 주제와 핵심사항만 나열된 보고서를 좋아하는데 깔끔하고 간결한 군더더기 없는 본문과 넘버링, 독자에게 가르치는 바를 깔끔하고 정확하게 짚는 그들의 글쓰기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피로하지 않고 핵심 체크하며 읽기 좋은 책이었다. 그래서 지난 달 저자 중 한명이 쓴 또 다른 넘버링 경영서가 나온다는 소식에 덮어놓고 구해 읽어보았다. 그만큼 크게 신뢰하고 기대하는 저자였다.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의 저자는 맥그래스다. 그의 책을 가장 기대했던 이유는 그가 경영 컨설턴트이자 교육직업발달이라는 교육학과 경영학의 접점의 분야를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30년 이상 경력의 회계사였다는 점이었다.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회계용어로 두는 것을 보고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고, 책을 펼쳐서도 이 부분부터 먼저 읽었다. 회계는 대표적인 회사의 언어이고, 중요하나 모두가 능통하지 못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회계용어에 대한 장의 서술에 앞서 이 장의 내용은 경영자가 회계사와의 대화에서 어려움이 없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빈출 회계용어를 정리했으나 회계사와 많은 경영자에겐 이미 알아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고 못 박았다.

 

저자의 말을 숙지하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펼친 회계용어 장은 기대했던 것과 약간 달랐다. 평소 회계의 회자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이 너무나 친숙한 개념들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답답하였다. 이는 책 번역 전반에 있어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그래서 이 용어 약어가 뭐야, 알려주기 싫으면 영어라도 알려줘. 아무래도 경영서는 전공을 불문하고 많이 읽고 공부하다보니 다른 분야의 책에 비해 비전공자도 별 무리 없이 곧잘 번역을 한다.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역시 패션 전공의 미술 강사 겸 영문 번역가인 김재경이 번역했는데 경영서 번역 경력이 처음도 아니고, 깔끔하고 용어 옮김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뜻풀이를 보며 무슨 개념인지는 대충은 알겠는데 분명 현업에서 이걸 이 용어로 말하지 않았던 것 같은 게 여럿 있었다. 워낙 경제, 경영 용어는 우리말보다 영어 약어가 익숙한 게 많으니. 그래서 책을 보며 이 정도 내용이면 차라리 원서를 볼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의 구성에서 엿볼 수 있듯 영국에서 작년 겨울에 출간된 <모든 경영의 답>과 올 봄 출간된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는 여러모로 서로 상호 보완되는 시너지 책이다(출간 텀도 3개월 정도). 타깃 독자와 학습 목표도 비슷하다. 전자가 경영자나 경영자를 지망자들을 위해 속성으로 경영학의 기본기를 다지도록 돕는 책이라면, 이 책은 그들에게 경영에서 부딪치는 각종 상황별 대처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경영학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한 직장인들에게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는 사랑스러운 ‘삐뽀삐뽀 119’ 경영서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좀 더 경영용어의 원어 병기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 책도 원서도 따로 표시가 없는데 서지사항을 살펴보면 이 책이 1권이라고 되어 있다. 즉 어쩌면 시리즈가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환영이다. 안 그래도 모든 커리어를 정리하고 은퇴해서 여생을 전업 작가로 살겠다는 저자기에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그의 모든 노하우들이 계속 책으로 만들어 쏟아질 것이다. 아무래도 제한된 분량 안에(300쪽 이내) 크게는 7가지, 작게는 76가지 주제를 논하다보니 포괄적인 일반론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꽤 무릎을 치는 대목들이 있었고, 각 장이 시작할 때마다 <논어>를 인용하며 본론을 시작하는 것을 보며 동양인으로서 미묘한 경쟁감과 위기감도 적당히 느낄 수 있어서 즐거운 독서였다. 책을 읽다가 괜찮았던 문장들을 적어보며 서평을 갈음한다.

 

 

조직은 점점 더 이미 리더십이 있거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경영자를 찾고 있다. 고위급 직원이나 이사의 빈자리를 채울 사람을 찾을 때는 더욱 그렇다. - p.24

   

만약 한 시간 회의에 여섯 명의 직원이 참석한다고 하면 총 일곱 시간의 업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회의는 업무와 바꿀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회의는 현대 경영자의 삶에서 독과 같다. - p.53

 

<업무를 위임하는 4가지 방법>

지시하기; 업무를 하는 방법에 대한 기술적 지식이 부족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적은 사람에게 지도와 지원을 많이 한다.

지도하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은 있지만 업무 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게 지도를 많이 하고 지원은 적게 한다.

지원하기: 업무 능력에 신뢰가 가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거나 처음 하는 일에 관해 걱정하는 사람에게 지원을 많이 하고 지도는 적게 한다.

위임하기: 기술적으로 숙련됐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많은 사람에게 지원과 지도를 적게 한다. - p.60

 

경쟁하는 사람이 되라. 이직할 생각이 없어도 일 년에 최소한 한 번의 면접을 봐라. 일 년에 두 번이면 더 좋다. 정기적인 면접은 시장에 관한 정보를 얻고 다른 곳에서의 조건을 알 수 있는 기회다. 발전시켜야 하는 영역의 지식 혹은 기술도 파악하게 도와줄 것이다. - p.73

 

경영학이 배출한 최초의 천재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고 주장한다. : 직원 구성, 목표 설정, 직원의 동기부여, 결과를 목표와 비교해 모니터링하고 필요하다면 바로잡는 조처, 사람들과 자기 자신의 계발 – p.78

 

- 가능한 항상 내부에서 승진을 시켜라.

-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증명을 한 사람을 항상 선발하도록 하라. 다음과 같은 사람을 고용하라. : 자존심이 있어 자신을 실망시키는 일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고, 열심히 일하고, 신뢰가 가는 사람,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 상식이 있는 사람, 좋은 결정을 내리는 데 기본이 된다.

- 외부에서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면 자신의 업무에 긍지를 느끼고, 밝고, 붙임성 있고, 열정적이고, 흥미롭고, 공적에 대한 기록이 확실한 사람을 골라라.

 - p.79

 

당신이 싫든 좋든 간에 조직의 정치는 시행될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조직의 정치와 관련해서 두 가지 주요 문제가 있다. 첫째, 조직의 실제 업무를 방해한다. 둘째, 정치와 관련 없는 주변 사람들을 해치는 관습이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조직의 정치에 관심이 없더라도, 권력 게임에서 희생될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게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선 적을 이해해야 한다. 대부분의 주요 정치가는 마키아벨리의 이념을 따른다. 왜일까? 마키아벨리는 행동의 미덕은 목적을 성취하는 데에 있다고 주장하며 잔인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는데, 이러한 정당성은 정치가의 의식을 만족시켰다. - p.191

 

 

오타

p.73 중반부 : 정기적인면접은 → 정기적인 면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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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사과일까? 초등 저학년을 위한 그림동화 3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고향옥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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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정말 사과일까?] 사과, 어디까지 톺아봤니?

 

 

 

 

슬로 리딩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 10월 초에 EBS다큐프라임에서 다룬 바도 있고 신문 기사들도 나온 바 있어 아는 이도 있겠다. 혹자는 우리말로 순화하기 위해 지독(遲讀)이라는 신조어를 고안해 밀기도 한다. ‘슬로 리딩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일본의 교사 하시모토 다케시가 교육 효과를 높이고자 1960년대에 고안한 독서법으로 한 책을 여러 놀이를 하며 오랫동안 읽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음식, 패션 등 생활 전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슬로 운동의 한 양태로 하루에 한두 시간씩 종이책을 천천히 소리 내 읽으며 정신적 안정을 이루는 방법으로 뉴질랜드의 슬로 리딩 클럽이 대표적이다. 더 주목을 받는 것은 하시모토 다케시의 슬로 리딩이다. 도쿄대, 교토대 합격률 1위를 이룬 기적의 학습법으로 알려져 있어서이다. 또 많은 부모들이 어린 자식들에게 책을 물량공세로 승부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아동서의 특성상 두께도 얇고 금방 읽는데 가격은 돈 만원 기본이라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고 교육적으로도 자신의 방법이 바람직한지에 의문을 품고 있기에 솔깃한 독서법이다.

 

   

슬로 리딩에 관심이 많은 부모와 교사에게 요시타케 신스케의 <이게 정말 사과일까?>는 무척 매력적인 그림책이다. 사과를 소재로 아이들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유명 일본 그림책인 다다 히로시의 <사과가 쿵>이 떠오르기도 한다. 눈 앞에 사과가 있다. 연둣빛 아오리 사과도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의 볼처럼 발그스름하다. 빨간 사과, 껍질을 깎아 과즙이 흐르는 새콤달콤한 속살을 한 입 베어 물면 무척 맛이 좋다. 작황이 너무 좋아 보통 크기의 사과를 개당 500원 내외로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개당 1500원 정도는 줘야 그럭저럭 괜찮은 사과를 구하지만 그래도 365일 별로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과일이다. 안전칼로 자르고 요리를 해보며 촉각놀이를 해보기도 하고, 그냥 흔히 먹어서도 아이들이 금방 인지하는 과일 사과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묻는다. 눈앞에 있는 이 둥그렇고 빨간 물체가 정말 사과일까?

   

 

커다란 체리가 아닐까요?

사실은 어떤 동물의 알일지도 몰라요.

혹시 알아요? 키우면 커다란 집이 될지…….

스과, 상과, 슝과…….사과한테 형제나 자매가 있을지도 몰라요. 걔들은 네모나거나 삐죽할지도.

무슨 맛일까요? 어디서 왔을까요? 우리 집까지 오는 동안 사과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사과를 안 먹고 두면 팔다리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본문 中 -

 

 

 

요시타케 신스케는 원래부터 그림책 작가인 것은 아니었다. 미술을 전공하고 광고와 디자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해 온 전형적인 상업미술가였다. 그가 그림책을 만들게 된 동기는 많은 그림책 작가들이 그러듯 부모가 된 후 자신의 아이를 생각해서였다. 두 살 난 자식을 위해 만든 첫 그림책 <이게 정말 사과일까?>는 작년에 출간해 제6MOE 그림책 대상 1, 4회 리브로 그림책 대상 2, 2회 시즈오카 서점 대상 아동서 신간 부문 3, 61회 산케이 아동 출판문화상 미술상 등 각종 그림책 관련 상을 받고 22쇄 이상 찍으며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주 타깃 독자가 2세 정도의 영아인 것은 아니다. 이번에 우리말 번역본을 내놓은 주니어김영사도 초등학교 1-2학년 대상의 사고력, 상상력 계발 그림책으로 이 책을 규정하고 있고, 저자도 유치원생과 저학년 초등학생에게 이 책을 주로 권하고 있다. 저자는 일찌감치 자신의 그림책 공식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ringokamoshirenai)을 만들어 <이게 정말 사과일까?>를 비롯한 자신의 그림책과 함께 쓸 수 있는 학습지나 학습프로그램을 만들어 올리고, 독자들이 활용결과를 올린 인증샷도 전하고 있다. 올 가을에는 두 번째 그림책인 <ぼくのニセモノをつくるには나의 가짜를 만들기 위해서는>이 출간되었다. <이게 정말 사과일까?>와 같은 콘셉트라 조만간 우리말 번역본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현재 네이버책과 각종 온라인서점에 있는 출판사의 책 소개글엔

저자의 페이스북 주소가 https://ja-jp.facebook.com/ringokamoshirena로 되어 있다.

서평자로서 당연히 들어가봤는데 없는 페이지. 주소를 보다가 혹시 원제인 りんごかもしれない를 그대로 발음한(린고카모시레나이) 게

아닐까 하고 검색해보니 맞았다. 絵本(에호우)는 혹시 몰라 같이 검색해 본 그림책이란 단어.

"絵本『りんごかもしれない』(https://www.facebook.com/ringokamoshirenai)가 요시타케 신스케의 공식 페이스북 주소다.

주소창에 i를 하나 더 쓰세요!!

 

 

36페이지밖에 되지 않지만 일러스트가 엄청 다채로운 점이 인상적인 그림책이다. 소표지와 본문 앞뒤로 보통 빈 종이로 두는 간지(정확한 용어인지 모르겠다. 틀렸으면 지적해주시길)12가지 사과 사용법을 보듯 익살스러운 그림이 담겨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과로 당구나 볼링을 친다거나, 하늘에서 사과비가 내린다거나 하는 발상들. 사과를 소재로 해서 해볼 수 있는 모든 발상을 담을 기세인 책, 어떤 사물이라도 단순하게 보고 넘기지 않고 만지고 해체하고 관찰하고 상상하고 등 열심히 톺아보는 습관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어른의 입장에서도 이 책을 가지고 어떤 수업을 해볼까 짜낼 생각에 즐겁기도 하고 자신은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를 뽑아낼 수 있을까 저자와 상상력 겨루기를 하며 읽느라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책이었다. 한권을 읽더라도 야무지게 요리조리 살필 구석이 많은 책, 읽고 말하고 생각할 것이 많은 책, <이게 정말 사과일까?>같은 이런 일당백그림책이 계속계속 많이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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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리 2014-11-24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서평 멋지시네요. 꼭 잦아 읽어 봐야겠어요.

이섬 2014-11-26 09:0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