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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빚으로 지은 집] 대침체의 처음과 끝, 가계부채
대중교통비와 담배값 인상, 도서정가제 실시 등 각종 가격 정책의 시행 혹은 시행 예고를 두고 민심이 심란하다. 재정 누적 적자 해소, 세수 확보, 산업 활성화 등 타당하거나 선의의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상 이상으로 국민들이 반발하고 원하는 정책 효과가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 정책들이 안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 소비 침체에 더욱 기름을 붙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 실질임금 상승률이 6개 분기 연속 하락세 끝에 0%가 되었고 저임금 임시직은 심지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노동생산성 둔화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아도 고용을 늘리려면 저부가가치·저임금 서비스업 직종 채용을 늘릴 수밖에 없다. 취업시장에서는 이미 정규직 1명을 채용하면 비정규직 일자리 두세개가 없어진다고 구직자를 세뇌하고 있고, 단순 아르바이트도 수습이 등장하였다. 올해의 경우 세월호 경기 위축이라고 시사용어가 등장했을 정도로 반년 정도 요식업과 문화산업 등에 타격이 있기도 하였다.
소비 위축을 우려하는 이유는 경제 선순환의 핵심이 소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자 경제 동향은 쉽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의 각종 악재도 있지만 더욱 걱정인 것은 겉잡을 수 없는 정도로 증가하고 있는 가계부채이다. 10년도 채 안 돼 가계부채 규모가 500조에서 1000조로 2배가 되었다. 어느 대부업체가 사채 받아서 고급 레스토랑에서 외식도 해보고 비싼 옷도 입어 보라는 광고를 해서 격렬한 비난을 받은 것처럼 본능적으로 인간은 저축을 좋아하고 대출을 싫어한다. 그러나 카지노 자본주의라는 표현처럼 산업과 경제의 고속성장의 결과, 현대 자본주의는 실물부문이 아닌 금융이 주도하는 양상을 보였다. ‘돈이 돈을 만든다’가 시대의 상식이 되고 금융기관은 앞 다투어 파생상품 판매와 대출 권장에 열을 올렸다. 기업 뿐 아니라 일반 가정도 어느 정도 빚이 있는 게 이상하지 않고,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풍조가 형성되었다. 그러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19세기 말의 대불황과 1930년대의 대공황과 견주어 미국발 글로벌 금융 이후 현재를 ‘대침체’라고 부르고 있는 것처럼 상황은 심각하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경제철학은 재편되고 있으며 경제물리학 등의 대안 학문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미국 경제의 들썩임이 전 세계에 파장을 미친 것은 세계 경제에 미치는 미국 자본의 힘이 엄청난 것도 있지만 미국에서 만든 경제 모델과 처방들을 수많은 나라들이 따라했기 때문도 있다. 혹자는 미국이나 세계가 이제는 대침체를 넘어갔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중산층 가정의 81%가 15년 전보다 수입이 낮으며, 빈곤율이 15%를 넘어섰으며 SNAP(식품 지원)나 TANF(재정 지원)에 등록된 저소득자가 점점 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올해 5월, 미국에서 흥미로운 경제서가 출간되었다.
IMF가 선정한 45세 이하 차세대 경제학자 25인에 속한 두 경제학자 아티프 미안과 아미르 수피가 8년간의 실증 분석 끝에 경제에 미치는 가계부채의 위력을 낱낱이 밝힌 역작을 내놓은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계부채가 나쁘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상식적으로 모두 아는 사실이고 관련 서적도 많다. 하지만 데이터로 명확한 실증을 제시하고, 가계부채 한 주제에만 집중해 이만큼 분량의 책으로 나온 것은 거의 없다. 압권은 이 책의 결론인데 ‘심각한 경제 침체 이전에는 반드시 가계부채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대침체의 시작도 끝도 가계부채라고 못 박은 것이다. 그래서 파이낸셜 타임즈는 일찌감치 이 책을 올해의 책 최종 후보로 올리기도 하였는데, 발간 6개월이 채 안 돼 열린책들에서 한국어 번역판을 내주어 반갑고 고마웠다. 이번 번역은 저자 중 한 명인 아티프 미안 교수 아래서 박사 학위를 받았던 연세대 경제학과 박기영 교수가 맡았다.
미국처럼 경제적 재앙 이전에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소비 지출이 급감하는 패턴은 다른 나라에서도 널리 찾아볼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새로운 사실을 하나 더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가계부채가 더욱 크게 증가할수록, 소비 지출 또한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 p.20
은행 위기로 인해 촉발된 불황 이전의 부채 증가량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무려 다섯 배에 이른다. 그리고 은행 위기로 촉발된 불황이더라도 민간 부채가 낮았을 경우에는 경제적 여파가 일반적인 불황의 충격과 비슷함을 알 수 있었다. - p.23
빚은 보험과 정반대로 위험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빚은 주택 소유와 관련된 위험을 분산시키기는커녕 그 위험을 감당할 능력이 가장 적은 사람들에게 위험을 전가시킨다. 빚은 대침체기 동안 부의 불평등을 두드러지게 심화시켰다. 빚은 또한 압류를 통해 자산 가격을 떨어뜨린다. 떨어진 자산 가격은 모기지 대출을 이용한 주택 소유자의 순자산을 크게 감소시키며 이는 또 다른 재앙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의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 p.51
레버리지가 높은 가계일수록 집값 변화에 따른 한계 소비 성향이 높다. - p.66
결국 경제 상황은 수요에 의해 주도된다. - p.83
빚은 거품의 생성뿐만 아니라 팽창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 p.166
두 저자는 이번 연구를 통해 대내 채무, 대외 채무 모두에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레버드 로스 (프레임워크) 이론(모델)을 주창하였다. 그리고 이 책에서 논의하는 모든 내용의 이론적 기반을 여기에 두고 있다. 빚을 지다leveraged와 지렛대lever의 중의적 의미를 담은 이 이론은 ‘빚 때문에 발생했고 그로 인해 피해가 증폭된 손실’에 관한 이론이다. 한 경제의 구성원은 빚의 유무에 따라 이질적이며, 빚을 진 가계들이 급격하게 소비를 줄이게 만드는 경제 전체에 대한 충격이 있다고 가정한다. 이 두 가지 요인으로 부동산 가격의 하락이 소비에 미치는 효과가 증폭되는데 그 양상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주택 자산의 가치가 변할 때 소비를 가장 크게 변화시키는 계층, 즉 빚진 사람들에게 손실이 집중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압률 인해 집값 하락의 충격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비를 줄이지 않고도 손실로 인한 충격을 더 쉽게 완화시키려면 채무자가 아닌 순자산이 많은 저축자가 되어야 한다.
책 제목이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인 이유는 여러 가지로 해석해볼 수 있다. 먼저 이 책의 출발이 되는 미국의 경제 대침체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대표되는 가계의 무분별하고 폭발적인 주택 대출 때문에 시작되었다. 또 가계부채의 주요인이 주택 대출 때문이다. 가계 경제에 있어 ‘내 집’의 의미와 총자산에서의 비중이 상당한 만큼 가계 ‘경제(개인 소비자)=집’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과장이 아닌데, 그 집이 빚으로 이룩한 것이라면 그 존재가 사상누각처럼 얼마나 위태로운가. 저자는 국가 경제의 탄탄한 기반은 정부나 기업이 아닌 가계에 달렸다고 본다. 그렇기에 ‘빚으로 지은 집’(의 증가)은 크게 해석하면 ‘국가 부실화’의 비유로까지 확장 연결할 수 있다.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가계부채의 요인이 주택 대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제목을 <빚으로 지은 집>으로 지은 것은 이러한 상징성 때문이다.
가계부채의 중요성에 회의적인 경제학자들도 많다. 그들의 시각은 크게 셋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시각은 경제의 펀더멘털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비합리적이고 자주 변하는 기대 때문에 경기 변동이 발생한다는 야수적 충동 가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채의 누적이 문제가 아니라 부채의 흐름을 멈추는 것이 문제로 금융 부문을 강화하여 은행이 가계와 기업들에 계속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자금의 흐름이 원활하다면 경기를 복구할 수 있다는 은행 중심적 시각을 들 수 있다. 앞선 두 시각은 결국 불황은 경제가 자연스럽게 돌아가면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딱히 해결법이 없다. 마지막 시각이 대침체기 동안 정책 입안자들의 주 기조인데 알다시피 그 정책들은 실패하였다. 저자들은 경제적 재앙에 대처하고 이를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 원인을 ‘가계부채’로 보고 책의 전 장에 거쳐 조목조목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2002년에서 2005년 전례가 없을 정도로 모기지 대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평균 소득은 점점 감소하는데 대출은 더해주며 비상식이 횡횡했던 디트로이트 서쪽 지역의 사례는 대침체 전 가계 대출에 대한 금융기관의 행각과 사회 풍조가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빚으로 지은 집>은 이러한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그 해법까지 제시함으로써 완벽한 가계부채 단행본을 목표로 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막연히 위험하다고 느꼈던 가계부채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문제는 흔히 원대한 야망을 품은 연구나 저서들의 공통적인 문제, 해법의 부실함이다. 거시 경제 정책의 기본은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이다. 치밀한 분석 끝에 저자들은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 모두 가계부채 감소에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뾰족한 수가 얼마나 되냐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해법은 단 하나이고, 가계의 주택 대출의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 ‘책임 분담 모기지’라는 새로운 모기지 계약 형태이다. 책임 분담 모기지엔 하방 위험 보호 조항과 자본 이득 공유 조항이 있다. 전자는 주택 가격이 구매 시점보다 떨어질 때 낙폭에 비례해 상환금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연동 국채 등을 생각해보면 아주 터무니없는 시도도 아니다. 후자는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이득의 일부를 채권자에게 지급함으로써 채권자의 위험을 줄인다. 정도를 5%로 두고 비과세로 처리해 채무자도 부담이 적다. 저자들은 책임 분담 모기지가 주택 순자산의 감소를 줄이고 연쇄 효과로 높은 가계 지출과 적은 일자리 손실을 촉발한다고 전망한다. 소비가 증가해 경제가 바닥에 있어도 총수요를 지탱할 수 있다면 그만큼의 일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저자들은 책임 분담 모기지를 통해 시장 거품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다만 지금까지 책임 분담 모기지가 나오지 않은 이유는 그동안 정부가 빚을 이용한 자금조달에 대대적인 정책적 보조(광범위한 세제 혜택)로 대출 제도 개선과 혁신에 게을렀기 때문이다.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위험과 고통을 분담하는, 이타적인 정책이 유일하고 강력한 해법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우리가 책에서 했던 분석들 대부분은 미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빚이 거시 경제와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최상의 미시 데이터를 구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결론과 시사점들은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 지역의 최근 불황은 미국의 경우와 매우 비슷한 경로를 따르고 있습니다. (...) 빚의 무서운 파괴력을 겪은 지역으로 아시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 한국은 대외 채무의 위험성을 잘 관리했지만, 국내의 높은 민간 채무로부터 비롯된 문제에는 여전히 노출되어 있습니다. (...) 동아시아 위기 이후 한국의 가계부채는 급속하게 증가해 왔습니다. 가계부채의 증가세는 가처분 소득의 증가세를 크게 앞질렀습니다.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동아시아 위기 이후 두 배로 증가했습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OECD 국가 평균은 133퍼센트이나 한국은 164퍼센트에 이릅니다. 국내 수요를 증가시키기 위해 가계부채의 증가에 너무 크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200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우려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한국 경제가 당면한 위험은우리가 해외의 여러 역사적 사례들에서 살펴본 경우와 유사합니다. 주택 시장이 침체하기의 총수요는 부정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저자들의 한국어판 특별 서문 中
해법은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막연한 해법 여러 개보다 확실한 해법 하나가 낫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저자들의 글쓰기 취향이 얼마나 깔끔한지 알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해법 제시도 시원스럽다. 다만 읽는 이의 관점에 따라 저자들의 ‘유일 필승법’이 무릎을 탁 칠만큼 감탄스러울 수도 있고 다른 것은 없나 싶어 부실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저자들이 한국어판 특별 서문에서 우리 경제에 대한 분석을 살짝 첨언해둔 것처럼 <빚으로 지은 집>에서 논의하는 가계부채 분석은 미국에만 국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참고하고 따라한 모든 나라들에 적용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가계부채 증가율과 경기 상황은 영 심상치가 않다. 열린책들이 서둘러 이 책을 번역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연말, 각종 트렌드 분석서나 재테크서를 읽으며 내년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다. 당장의 생활에 적용하는 실용서도 좋지만 꾸준히 경제경영서를 찾고 읽는 이유가 시장을 보는 통찰력과 감각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서인 바, <빚으로 지은 집> 같은 책도 함께 읽으면 더욱 뇌가 배부른 겨울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