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어도 내 인생이니까
백정미 지음 / 함께북스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울고 싶어도 내 인생이니까] 내게 잘못 온 책, 미안합니다

 
 


십 여 년 가까이 최고의 감성작가로 누리꾼들의 사랑을 받은 백정미의 에세이 <울고 싶어도 내 인생이니까>. 이 책은 저자의 치열한 사유에 의해 탄생한 귀중하고 의미 깊은 깨달음을 담았다. 울고 싶어도 슬퍼도 힘겨워도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인생을 가장 행복하게 살아낼 수 있는 비법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긍정적인 생각과 함께 늘 꿈을 간직하고 살고, 시간의 소중함과 사랑의 소중함을 알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지혜를 깨닫고 인생의 주인공인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인생에 책임감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죽음 앞에 이르러서도 후회라는 그늘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중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빨리 완독할 수 있을까와 어떻게 서평을 써야할지를 계속 고민했습니다. 제가 이 책에 대해 최대한 갖출 수 있는 예의는 끝까지 읽는 것입니다. 보통 읽은 책에 대해서 제가 최소한 열다섯 줄 이상 글을 쓰는 것이 이 책엔 누가 될 것 같아 미안합니다. 한편으론 안타깝습니다. 팬카페 회원수만 2만 명을 넘고, 이 책을 좋아할 사람들이 있을텐데 왜 하필 우리 집에 와서 서로 괴로워 해야했는지 말입니다. 아무리 이 책의 장점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으려 해도 제겐 그런 점이 느껴지지 않고 그래서 어떻게 남에게 이 책에 대해 소개할지 갈피가 안 서는 이 모든 상황이 통탄스러울 뿐입니다. 


이 책은 지치고 고민 많은 이들을 어루만져주는 위로의 에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이나 잡지의 '살며 사랑하며'류의 생활칼럼이나 라디오의 '나레이션 에세이'에서 읽고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이 수십 개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의 서술 방식은 좀 살아 본 왕언니가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울지 마라 네 인생이다하며 위로도 해주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식입니다. 이 책을 통해 제가 전혀 위로도 감동도 받지 못한 것은 취향의 문제인 듯 싶습니다. 제게 이 책의 목소리는 매우 일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흔히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와 달리 이 책을 읽을 땐 저를 투영시키며 책 내용과 소통할 수 없어 고독한 시간이었습니다. 작가는 책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목숨을 버리는 일'이라고 표현했는데,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생명의 위협감을 느꼈습니다.  


이 책을 독서했던 시간은 제가 읽었던 책 중에 유일무이한 특별했던 경험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저는 도저히 이 책의 서평을 쓸 수 없습니다. 작가와 개인적인 원한관계도 전혀 없고 조목조목 비판점을 들 수 없지만, 책을 다 읽어도 그 책에 대해 모르겠고 이렇게 거부감이 들고 읽는 것이 힘겨운 적은 처음입니다. 저와 이 책이 최악으로 안 맞는 책이었다는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 같은 독자는 더 만나지 말고, 취향 맞고 책에 대한 이해도 잘할 독자들 많이 만나 사랑받고 좋은 서평 많이 받는 책이 되길.  

 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30732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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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 NFF (New Face of Fiction)
찰스 유 지음, 조호근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

[SF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

이 작가를 주목하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실험성과 참신함을 보여주는 문제작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주목할만한 외국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는 시공사의 NFF시리즈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첫작 <SF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2007년 전미도서재단에서 (주목할만한) 35세 이하 5인으로 선정되었던 작가의 장편 데뷔작이며 작년에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라길래 도서 정보를 읽으며 무척 기대하던 중이었는데, 읽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고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목차(아래 사진 오른쪽 페이지 참조-시간문법학적 도표-)부터 남다른 소설, 장르를 감안하더라도 발상도 독특하고 작법이나 구성 역시 기존의 문학들과는 다른 문법을 취한다. 이 작가를 주목하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실험성과 참신함을 보여줄 것이다.
  

<SF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의 주인공은 타임머신 수리공이고 작가와 이름이 같다. 그리고 주인공의 어머니는 불교 등 동양 사상에 꽤나 심취해 있다. 이런 설정을 작가가 이민 2세 동양인(대만계 미국인)이라는 점과 연결까지 하는 것까지는 과하더라도, 소설의 내용들 곳곳에 꽤 작가가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느낌을 꽤 받는다. 장르적으로는 SF소설이지만 성장소설 같은 면도 있고, 책 한권에 작가가 상상하는 모든 SF세계와 지금까지 자신이 즐겼던 모든 SF물에 대한 헌정을 담은 듯한 모양새이다. 예를 들어 물리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을 오가면서 각주까지 달아가며 설명하고 있는 공들인 가상이론들 하며 인용이나 모티브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미래의 어느 날로 추측되는 때, 31번 우주에서 타임머신 수리공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찰스 유는 10년째 타임머신 수리공을 하고 있다. 구조공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이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응용SF학 박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실종과 어머니의 건강 악화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아버지는 실험 실패 등으로 실의에 빠져 어느 시간 속으로 투신해 자취를 감췄고, 어머니는 결국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1시간을 영원히 반복하는 타임루프를 선택했다. 수많은 시공간을 오가는 그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전화 부스 크기의 TM-31, 자신이 이 일을 시작한지 얼마인지 알려주는 시계(덕분에 10년이 흐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존재하는 자신 자체이다.

그와 교류하는 대상은 매우 섬세한 감정의 TM-31 컴퓨터 유저 인터페이스(성별을 선택할 수 있어 여성 선택) 태미,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감 충만한 귀여운 개 에드, 관리자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지만 자신이 인간이고 아내와 자녀를 두고 있다고 믿어 가끔씩 찰스가 현실을 각성시켜줄 때마다 침울해지는 상관 필 뿐이다. 소설은 한동안 그의 일상과 그가 사는 SF세계에 대한 묘사에 주력하면서 중간 중간 ‘SF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 중에서’라는 글이 삽입된다. 작가가 왜 이런 구성과 내용을 취했는지는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며 명확해진다. 찰스는 실수로 미래의 자신을 보게 된다. 이것은 SF세계에서 가장 끔찍하며 피해야할 상황, 당황한 찰스는 미래의 자신을 총으로 쏘고 도망친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이 만나며 어그러진 시공체계를 교정하기 위해 태미와 고분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찰스는 미래의 자신이 쓴 책 "SF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발견한다(즉, 앞선 삽입들은 그 책의 내용 일부를 계속 보여줬던 것). 그 속에서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찰스는 자신이 앞으로 쓸 책이지만 쓰지 않은 책을 읽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책의 내용은 고쳐진다. 찰스는 사건을 극복할 수 있을까, 깜짝 놀랄 결말이 기다린다. SF물을 많이 읽은 독자에겐 <SF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독자에겐 굉장히 신선한 충격과 참신함으로 다가올 소설이다.진지함과 해학을 오가는 속에, 메타픽션을 기반으로 한 특유의 ‘시간문법적’ 전개에 읽으면서 다소 머릿 속이 어지러워지기도 하지만 정신없이 빠져들게 만든다.

차기작이 무척 기다려진다. 그런데 찰스 유는 전업작가가 아니라 UC버클리에서 생화학을 전공하고 컬럼비아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이다(어릴 적부터 글쓰는 것을 좋아해서 결국 글쓰기와 작가에 대한 열망을 저버리지 못하고 뒤늦게 잡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데뷔하였다.). 어릴 적부터 이 독특한 이력은 그가 그만큼 문이과적 지식을 겸비하고 있기에 풍부한 글을 쓸 수 있구나 싶고 앞으로가 기대되는 동시에, 빠른 시일내에 차기작이 나오기는 힘들겠구나하는 생각을 심어준다. 실제로 두번째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지만, 인터뷰를 통해 전업작가가 될 의사는 없으며 본업인 변호사일에 충실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그렇다면 일단 다음 작품은 천천히 기다리기로 하고, 전작인 단편집 <3등급 슈퍼영웅>도 국내번역되었으면 좋겠다.   




* 단편 <3등급 슈퍼영웅> 리뷰: http://der_insel.blog.me/12013045235 

 

 

 
 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30382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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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 - 지구를 위협하는 맛있고 빠르고 값싼 음식의 치명적 유혹
파울 트룸머 지음, 김세나 옮김 / 더난출판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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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피자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
냉동피자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현대 식품산업 파헤치기
 

  

오늘 먹은 우리의 식단을 돌아보자, 단 하나의 가공식품도 먹지 않았을까. 우리의 식생활은 공업화에 지배당한지 오래이다. 불과 반세기만에 우리는 수많은 조상들의 생활문화를, 음식재료를 잃었다. 이런 일련의 현상의 배후엔 식품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시행착오와 변화를 소비자들은 기꺼이 실험대상이 되며 받아들였다. 단적인 예로, 예전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보배 취급을 받았고 그래서 많은 식품에 들어갔던 식품첨가물 중 현재는 사용금지성분으로 규정된 것이 얼마나 많은가. 혹시 가공식품을 구매할 때 전성분표를 확인한 적이 있는지, 자신이 어떤 걸 먹고 있는지 의문을 품은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비단 식품에만 국한되기보다 모든 공산품에 해당되지만) 성분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는 상품도 많으며, 설사 자세히 해놓았다 해도 일반인은 알기 힘든 화학물질의 나열에 골치 아파진다. 많은 소비자들이 별 관심 없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지나치는 가운데, 일부 열심히 보는 소비자들도 아는 성분들을 기초로 음식을 피하는 기준으로 삼거나 그래도 아는 게 힘이라고 자신이 먹을 음식이 어느 정도 몸에 해로울지 대충 가늠하는 정도이다. 그런데 그를 넘어, 퇴근 후 지친 몸으로 귀가해 평소처럼 전자레인지에 데운 냉동피자로 허기를 달래다가 갑자기 식품첨가물 등 자신이 먹고 있는 냉동피자의 모든 것이 궁금해져 기어이 각종 인터뷰와 조사 끝에 340여쪽에 달하는 레포트 형식의 단행본을 완성한 소비자가 있다. 현재 오스트리아에서 경제전문기자로 활동 중인 파울 트룸머이다. 


제목만 보면 피자의 인기와 세계의 피자 등을 소개하는 '피자 A to Z' 같은 느낌이지만 이 책은 (냉동)피자를 대표로 현대 식품산업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는 책이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피자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는 자신이 먹던 피자의 정체에 대해 의문과 의심을 품고 반죽·토마토소스·육류·치즈·양념·운송의 피자의 재료와 생산을 살펴본다음 우리의 미래와 현재 이슈들 그리고 바른 식습관에 대해 고민하는 식으로 목차가 짜여 있다. 물 흐르는 듯한 편안한 목차지만 다루는 내용은 가볍지 않다. 식품첨가물과 식품개발·공장생산에 국한되지 않고 식품산업과 연관된 주변산업과 문제들을 전반적으로 다룸으로써 사회구조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왜 하필 피자일까, 이 책의 저술 동기가 어느날 저녁식사로 먹던 피자여서? 그보다는 오늘날 피자라는 음식이 가진독특한 정체성 때문인데, 미국화·인스턴트화·정크푸드화된 이 이국의 음식은 오늘날 세계의 입맛을 표준화시키는 대표적인 음식이 되었다. 또한 어떤 계층이나 상황에도 잘 어울린다. 이러한 피자의 변신과 확산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식품산업의 발전 양상과 묘하게 많이 닮아 있으며 피자의 재료와 생산과 관련된 것들을 건드려보면 현재 식품산업의 거의 모든 관련 산업과 문제들을 건드리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이 대중적인 음식을 소재로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건강의 양극화(기아와 비만 심화 포함), 저임금노동자 확산, 거대기업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식품산업, 끝없는 변화와 실험을 강요당하는 농축산업, 세계화와 국제문제 등 피자가 세계를 정복해가는 동안, 식품산업이 성장하면서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건강 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최대한 어느 한 편에 경도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쓰고 있다. 예를 들어 부정적인 내용들을 소개하기 앞서 그와 대비되는 긍정적인 방식으로 운영하는 기업이나 농가 사례를 언급하고 왜 모두가 그렇게 하기 힘든지를 설명한다. 분량이 많진 않지만 각주와 표를 실어 이해를 돕고, 본문의 설명도 충실하다. 이 책 한권만으로도 대략적인 반세기 동안의 식품산업의 역사와 냉동피자 뿐 아니라 미국식 피자의 재료와 생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식품부문별 주요 기업들, 우리가 기억해야할 식생활 관련 주요 이슈들이 대략적으로 정리가 된다. 특히 피자에 들어가는 식품첨가물들로 다른 가공식품 전성분표에도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고 기능이 무엇인지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워낙 다루는 범위가 광범위하니 내용을 깊이 들어가진 못한다는 점, 본문이 목차만큼은 깔끔하지 못하고 약간 산만하다는 아쉬움을 조금 받긴 했으나 일반인 독자의 입장에선 꽤 많은 궁금증을 풀어주고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흥미롭고 만족스러웠다. 아쉬운 부분을 조금 틀어서 생각하면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강점으로 다가오는 부분이기도 한데 저자의 끊임없는 경로 추적과 보여줌이다. 즉 이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현상의 배경과 이유를 찾고 서로 연결하며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가 모든 결론을 짓고 정리해서 독자에게 전달하기보다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독자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맛있고·빠르고·편하고·값싼 음식을 원하는 소비자와 파려는 기업의 완벽한 호흡 속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먹는 음식들, <피자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를 통해 뒤늦었지만 한번더 생각하고 조금더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30081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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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과학 - 생생한 판례들로 본 살아 있는 정의와 진리의 모험
실라 재서너프 지음, 박상준 옮김 / 동아시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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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과학]

구성주의적 입장에서 함께 엮어 보는 현대 과학과 법의 쟁점과 이슈들 


<법정에 선 과학>은 풍부한 판례들을 통해 오늘날 과학적 진리와 사법적 정의가 구성되는 정치사회적·문화적 맥락들을 이해하는 데 불가결한 인식론적·지적 전환점들은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과학과 법이 구조적으로 양립불가능하다는 통상적인 진단을 넘어서서, 사회에 깃든 채로 운용되는 이들 두 제도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일정 정도 서로를 구성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중 

책 제목도 인상 깊고 흥미로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읽을지 말지에 대해 무척 고민했던 책이다. 첫째는 영미법(미국)에 입각한 책이라 대륙법계의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논의일지가 의문스러웠고 두번째는 법이나 과학이나 1년이 무섭게 계속 바뀌는 분야인데 15년도 전에 나온 책의 내용이 현재에도 유효한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하지만 목차와 설명을 읽어보니 충분히 우리에게도 적용 가능한 이슈들이고, 미국의 선례는 어떠한지 독서를 통해 탐구하는 시간도 흥미로울 것 같았고, 일단 법과 과학의 만남이란 소재도 독특하고 녹녹지 않은 내용일 듯하지만 그만큼 얻어가는 것이 많은 유익한 책이란 기대에 읽기로 결심했다. 설사 우려가 맞더라도 법역사나 일반론적인 이야기만 취할 수 있더라도 충분히 유용한 책이기에, 다행히 읽고나서 후회는 없었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은  과학기술학이란 학문을 알게 된 것이었다. 과학기술학이란 과학기술에 대해 인문사회학적 접근의 통칭으로 다양한 학문과 얽혀 있다.  <법정에 선 과학>은 구성주의의 관점에서 현대 과학을 구성하는 사회구조적 맥락을 살펴보고 법과 과학을 따로 놓지 않고 함께 맞물려 살펴 보는 책이다. 책의 초반엔 과학과 법의 교차점에서 생기는 갈등과 공존지점을 찾으며 시작한다. 과학은 진보하고 법은 규제하고 재판한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일련의 소송들을 보며 법은 과학의 발전을 발목잡는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한편으론 과학의 발전이 종래에는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들을 야기했고, 그런 혼란과 피해 속에 기준을 잡고 판단하는 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게 과학자, 법조인, 정부의 입장에서 이슈와 담론을 한참 정리하고나면, 지금까지도 중간중간 판례를 소개했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판례들을 보여주고, 앞으로 해결할 과제는 무엇인지 제언하며 책을 마무리 짓는다.

<법정에 선 과학>을 읽고 법적 관점에서 현대 과학을 종합적으로 보고 미국의 판례들을 보며 우리 사회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길 바랐다. 그러나 역시 과학의 범위가 워낙 넓어서일까, 기대한만큼 다루는 영역이 매우 광범위하고 종합적이진 않았고 주로 생명윤리를 중심으로 유전공학이나, 제조물책임, 가족 등 세부 관련 주제를 다뤄서 약간 아쉬웠다. 하지만 현대 과학과 법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전반적인 이해와 기준을 삼는 데는 기대한만큼 만족스러웠다. 출간된지 오래되었다고 문제로 느껴진다거나, 이 책을 바탕으로 한국에 적용과 추가적인 논의를 생각해보는 것은 역시 전공자가 아닌 이상 욕심인 듯 싶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일반인 독자가 보기에 너무 어렵고 딱딱한 책은 아니다. 일반 교양 수준에서 누구나 편하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썼다.  출판사의 자극적인 띠지 카피 같은 느낌의 책은 아닌 것 같고, 현대 과학과 법의 딜레마나 이슈나 담론들을 알 수 있는 기본적이고 종합적인 책을 찾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해본다.  



 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30530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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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와 브루노
루이스 캐럴 지음, 이화정 옮김, 해리 퍼니스 그림 / 페이퍼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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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와 브루노] 앨리스에 가려진 루이스 캐럴의 역작, 드디어 한글 완역되다! 

 장장 20년을 공들여 썼지만 대중에게 철저히 외면받았던 저주 받은 걸작 


<앨리스>만큼 분석당하는 동화가 있을까, 19세기 영국이 낳은 이 문제작은 수많은 수학자와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영문학자에 의해 열광되고 분석되어 왔다. 또 수많은 버전의 동화책과, 만화영화, 영화 등으로 각색되고 패러디되었다. 가장 원문 완전판에 가깝게 복원된 것은 엄청난 주석이 달려 판을 거듭하고 있다. 수학과 교수였지만 수학 자체보다 <앨리스>를 쓴 동화작가로 그의 인생과 인간적 면모와 작품들이 연구 대상인 루이스 캐럴, 그러나 그가 생전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역작은 <앨리스>가 아니라 다른 작품이었다?

<실비와 부르노>는 <앨리스> 시리즈 후 20년에 걸쳐 쓴 대작 환상문학이다. 그 어떤 문학보다 새롭고 자신이 한번도 시도하지 않은 글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쓴 이 책은 <앨리스> 이상의 기괴함과 난해함을 보이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앨리스>를 변증적으로 극복했고, 환상과 현실의 비중이 동등해지고 플롯이 더욱 정교해졌다. 그러나 <앨리스>의 엄청난 성공과 관심과 달리 <실비와 브루노>는 대중들에게 처참하게 외면당했으며, 평론가들이나 학자들에게 조명도 훨씬 덜 받았다.   

이번에 최초로 한글 번역, 그것도 완역판으로 출간되는 <실비와 브루노>는 장르문학잡지 <판타스틱>(출판사: 페이퍼하우스)에서 번역 연재해오던 것을 단행본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그리고 1889년 출간한 <실비와 브루노>, 1893년에 출간한 <실비와 브루노 완결>을 모두 엮어 한 권으로 출간하였다. 번역은 다트머스대 비교문학 전공(석사)한 이화정이 맡았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최대한 주석을 달았고 마지막엔 간단하게나마 몇장의 작품해설을 썼다. 삽화는 앨리스 헤이버가 그린 한 장 외에 모두 해리 퍼니스가 그린 원문 삽화를 그대로 실었다. 삽입된 시(노래)는 11장 폴과 피터를 제외하고는 영어원문과 병기하였다. 다른 언어 번역본에 비해 늦은 출간이지만, 최대한 꼼꼼한 구성으로 한글 번역을 오래 기다렸을 독자들을 최대한 만족시키려 한 노력이 엿보인다.

 
내용은 주인공 '나'가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겪는 이야기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친구인 아서를 방문하는 도중 기차에서 아서가 연모하는 뮤리엘 백작 영애를 만나고, 계속 그녀와 교류하며 보고 겪는 일련의 이야기가 현실에서의 '나'의 이야기라면, 환상 속에서는 아웃랜드 총독이 부재한 사이 야욕을 부리는 부총독과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총독의 자녀들인 요정 실비와 브루노를 위해 함께 아버지를 찾으러 떠나는 모험담이다. 기본적으로 현실의 뮤리엘 백작 영애와 환상 속의 요정 실비가 똑닮아 있고, 상황은 다르지만 같은 말을 할 때 '나'가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시점이 된다. 

<실비와 브루노>를 읽는 내내 어렵다란 느낌이 지배했다. 일단 루이스 캐럴 문학 속의 언어유희나 풍자는 당시 유행이나 사회분위기에 기반하고 있기에 현대로 올수록 그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난해하게 받아들여진다고는 하지만 계속되는 현실과 환상의 전환, 부조리극의 스토리텔링, 엄청난 수의 영어 언어유희와 세태풍자에 쉽게 글이 파악되고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도전의식을 강하게 심어주고 매력 넘치는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읽고 있으면 정말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발상을 집대성했고 개인의 취향을 완성했다는 것이 다분히 느껴져, <앨리스>를 읽을 때완 또다른 감흥이 느껴지고 또다른 루이스 캐럴의 모습이 보인달까.

 
특히 언어적인 면이 인상 깊었는데 어려서 단어구사를 제대로 못하는 브루노나 계속 비슷한 단어로 말장난하는 등장인물들을 보며 영문학적 지식이 풍부해서 원어 그대로의 늬앙스와 의미들을 다 이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역자는 볼드체, 각주, 애기말투 등을 써가며 최대한 살리려고 하고 있다) 시나 노래, 삽화 등등 다른 것들도 물론 흥미롭다. 작품에 대한 아쉬움보다 책을 읽는 사람의 능력 부족으로 한번 읽어서 의미들을 다 이해하지 못해 한스러웠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한번 독서 도전하고 싶은 작품.  

 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29724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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