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바이 인도차이나 - 어느 글쟁이의 생계형 배낭여행
정숙영 지음 / 부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사바이 인도차이나] 읽는 이를 유쾌하게 하는 생계형 여행기
'어느 글쟁이의 생계형 배낭여행'이란 부제 때문에 눈이 간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정숙영이란 작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책을 정말 재밌게 읽으면서, 그리고 책을 읽고나서 작가에 대해 더 찾아보면서야 알게 되었다. 여행 기자 경력도 있고 유명한 여행블로거이고, 특히 '노플랜, 무대책' 여행으로 유명하단다. 이런 사전 정보가 없더라도 <사바이 인도차이나>는 꽤 두꺼워(450쪽에 달한다) 압박스러웠던 첫인상과 달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게 되어 전혀 두껍게 느껴지지 않았다. 책 속에서 작가는 자신이 돌아다니고 찍은 이런저런 사진을 보여주면서 쉼없이 떠들고 있다. 수다쟁이인데 얘기 한번 참 맛깔나게 하는 언니(누나) 혹은 친구의 여행후기 듣는 느낌의 여행기를 읽고 싶은 독자라면 <사바이 인도차이나>를 적극 추천해본다.
작가에게 회사생활은 너무나 스트레스가 심했고, 그래서 남들은 다 한창 사회초년생으로 한해 두해 경력 쌓고 아둥바둥 사는 나이에 시원하게 회사를 때려치웠다. 하지만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어느 정도의 수입은 필요했다. 영어는 원래 잘하는 편이었고 29살에 빠진 일본 드라마 때문에 일본어도 제법 잘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은 프리랜서 번역가, 그리고 여행을 좋아했고 여행기를 인터넷에 연재하면서 인기를 얻어 아예 여행기자의 일을 하기도 하였다. 작가의 인도차이나 반도행은 극심한 일상 매너리즘 타개를 위한 발상의 전환에 의한 것이었다. 생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것을 하며 행복해지는 방법, 일을 하면서 여행하자!
어쨌든 부러운 인생이다. 30대 중반의 한국 미혼 여성이 자유여행을 제지당하지 않고, 결혼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으며(게다가 작가는 맏이라 한다), 프리랜서로 꾸준히 벌이를 하고, 좋아하는 여행을 하며 쓴 글들이 계속 인기가 많다. 아마 열에 아홉은 작가가 무슨 소리를 하든 이 책을 읽으며(혹은 이 책을 보기도 전에) 작가를 부러워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한참 부러움과 질투심에 눈이 삼각형이 될 즈음, 작가는 때맞춰(마치 '이쯤되면 날 부러워하겠지? 이런 걸 궁금해하겠지'를 다 아는 것처럼) 한 소리씩 한다. 그 점이 <사바이 인도차이나>가 다른 여행기와 다른데, 여행담을 늘어놓는데만 그치지 않고 생계형 글쟁이로 살아가는 어려움, 여행작가나 프리랜서가 되는 방법과 그 직업의 장단점 같은 얘기들을 허심탄해하게 해준다. 자세하진 않지만 작가 같은 삶을 꿈꾸는 독자라면 꽤 도움되는 이야기들이다.
너무 덥지 않고, 물가가 싸며,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란 세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여행지를 찾다가 선택한 곳이 바로 인도차이나 반도(동남아), 일단 방콕에 사는 지인을 믿고 번역할 책과 노트북을 비롯한 여행짐을 싸서 무작정 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렇게 시작된 인도차이나 여행은 태국의 방콕과 빠이와 끄라비, 라오스의 방비엥과 씨판돈, 캄보디아의 라따나끼니와 씨엠립, 베트남의 호치민과 달랏 이렇게 4개국 9지역을 여행하게 된다. <사바이 인도차이나>는 2009년 8월에서 10월까지 약 3개월간 배낭여행하며 돌아다닌 여행기인데, 그 후로 11월에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출국해 태국과 캄보디아에서 반년간 더 살았다고 하니 작가가 한동안 얼마나 인도차이나의 매력에 푹 빠졌을지 짐작된다.
여행자라는 동병상련으로 국적과 나이를 초월해 친구가 되기도 하고,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예측하지 못한 여행을 진행하게 된다. 동남아에서 가장 가난한 여행자가 되기도 하고, 아무리 불쌍함을 증명해도 안타깝긴 하지만 벼룩의 간이라도 뺏어가야겠다는 날강도 현지인을 만나기도 한다. <사바이 인도차이나>를 읽으면서 이 작가는 천상 여행자 팔자로 타고났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같은 여행지 여행기도 이렇게 재밌게 쓸 수 있구나 싶어 글재주가 참 부러웠다. 눈물이 주륵주륵 나올만큼 탁월한 문학성의 미문은 아니지만,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다녀온 여행지 다 가고 싶게 혼을 쏙빼놓는 유쾌한 문장이니 여행기엔 최적합하지 않겠는가. 이 배낭여행 이후 6개월 거주기도 궁금하다. <사바이 인도차이나> 2는 안 나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