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지음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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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건투를 비는 물건

 

  

1983년생인 롯데 빼빼로, 기억이 희미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 과자가 1971년생인 농심 새우깡과 함께 아기 시절 처음 접하고 가장 흔히 먹었던 가공과자였던 것 같다. 쑥하고 아래 앞니 오르고 추접스럽게 이유식을 곱씹으며 어른처럼 야무지게 제 몫의 쌀밥을 먹는 그날을 기다릴 때부터였다. 한손에 꼭 잡히고 녹여 먹을 수도 있는 짭짤한 새우과자와 달리 반드시 오독오독 씹어 먹어야 하는 초코 발린 막대과자를 어른들이 건넨 것은 빨리 이 아기가 이와 턱을 단련시켜 사람구실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걸까. 어쨌든 오물오물한 그 작은 입에도 잘 들어오는 슬림한 몸매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초콜릿이 묻힌 그 과자를 굳이 마다할 일이 없었다.

 

특정 회사의 상품을 전 국민이 대놓고 소비하는 날, 기억이 맞다면 이 괴이한 날은 별의별 궤변을 늘어놓으며 호들갑 떨던 세기말에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뜬금없이 등장했는데 이상하게 온 국민이 별 저항 없이 즐기기 시작하더니 오늘에 이르렀다. 1995년 수능이니 1994년 날씬해지라는 선물 따위의 도시전설은 막상 그해를 겪은 내 기억엔 없고 21세기에 와서 주워들은 소리다. 이상하게 그 전에는 아무 때나 먹던 이 과자를 데이가 생기고 나선 별일 없으면 매년 특정 며칠만 먹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 데이를 별로 의식하는 것도 아니다. 생기면 먹고, 심심하면 만들거나 사고, 가래떡이든 빼빼로든 맛있으면 다 좋고 둘 다 못 먹고 돼지국밥에 부추를 한 가득 넣어 야무지게 퍼먹어도 상관없다.

  

두 형광색의 보색대비가 찬란한 이 물건의 존재를 안 것은 10월 말 열린책들 출판사 카페에 올라 온 한 남자의 1인 시위 현장이라는 대놓고 다른 의도(신간 홍보)가 드러나는 게시글 때문이었다. 그 남자가 사진에서 들고 있던 책 제목 캘리그래피는 그대로 책 표지에 쓰였다. 신인인가, 재밌는 필명이군하며 업데이트되는 추가 정보를 확인해보니 기성작가였다. 본명 대신 새 필명을 지은 <수상한 식모들>의 박진규, 아 그 작가. 지금은 종합출판사지만 열린책들의 출발이자 대표 정체성은 외국’ ‘문학이었다. 외국 문학 번역 전문 출판사에서 종합출판사로 거듭난 이후에도 문학에 있어선 지금껏 한 번도 한국 문학을 다루지 않았다. 출판사에겐 처음 내는 한국 문학책이고, 작가에겐 새 필명으로 처음 내는 소설이다. 잘 되어야 하는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박생강이라는 필명이 무척 친근하였다. 성자saint와 악당gang의 혼성이라거나 생각의 강이라는 그의 진의는 전혀 짐작하지 못하였다. 작가도 처음 생강이 몸에 좋다는 것에 충동적으로 지었다는 것처럼 이 독자에게 생강은 생강이었다. 반가운 이유는 저자와 정반대로 익명성과 무책임성을 드러내는 모든 네티즌 활동에서 굳이 이름을 입력해야 할 땐 무조건 김오뎅이니 김감자니하면서 김씨 성과 두 글자 음식의 조합으로 짓는 나였기 때문이다. 음식 작명 좋아하는구나하며 혼자 반가워라 하고 혼자 엉길 수 있는 것은 대면이 아닌 그가 낳은 책으로 그를 접하는 방구석 독자의 망측한 특권.

  

나는 그럴듯한 소설을 쓸 생각이 없다. 대신 그럴듯함과 그럴듯하지 않음 사이에서 꿈틀대는 어떤 자리들을 발견하고 또 찾아보려 애쓰겠다. (...)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는 이런 발견들에 대한 소설가 박생강의 첫 번째 보고서다. 눈물과 울림의 시약 대신 랑그와 파롤을 으깨 만든 달콤한 독을 페이지 곳곳에 묻혔다. 그리고 앞으로도 정결함과 천박함과 마주하는 은밀하지만 시끄러운 문학의 장소로 당신을 인도할 것이다. 그곳에 엄숙한 성소도 없다. 비빌 언덕도 없다. 어쩌면 세계의 똥 위에 주저앉은 채 실실거리며 웃는, 뿔 위에 꽃 꽂은 소 한 마리쯤이야 있겠지만. - 작가의 말

 

똘기 충만한 이 물건은 한숨에 읽는 것이 가장 맛났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만감과 함께 본문이 끝났음을 확인하고 후식을 즐기기 위해 작가의 말을 읽기 시작했다. 한 장의 그 사족을 읽고 모든 것이 명쾌해졌다. 그리고 그럴듯한 서평을 쓸 생각을 접고 내 식대로의 엉망과 예의 사이에서 꿈틀대는 어떤 독후감으로 답하기로 마음먹었다. <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를 읽으며 느꼈던 지배적인 감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놓고 한국적인 소재와 PPL임에도 소설의 정서가 의외로 한국적이지 않다는 느낌이었고, 다른 하나는 많은 생각들을 생각 없이 썼다는 느낌이었다.

 

한국소설 중에 톡톡 튀는 단편이야 수두룩하지만 이 책처럼 완결성 있고 긴 호흡으로 똘기를 유지하는 장편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이 책과 가장 정서적으로 가깝다고 느낀 것은 프랑스의 아멜리 노통브였고, 좀 더 확장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와도 접점이 있었다. 자신의 책이 외국이나 100년 후에 어떻게 읽힐까, 문장과 어휘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선별하는 구석도 없었다. 온 책으로 소설은 일단 당장 읽어 재밌는 것이 미덕이라고, 예술과 구조미학보다는 발상과 재미가 우선한다고 포효하는 듯하였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엮으며 열심히 쓴 티를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느껴짐에도 읽는 감을 가볍고 경쾌하게 만들어놓았다. 

 

 

이 시대의 인간은 어쩌면 빼빼로 피플이네. 인간은 태어나기를 딱딱하고 맛없는 존재로 태어났지.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개성이란 달콤한 초콜릿을 묻히지. 타인을 유혹할 수 있는 존재로 특별해지기 위해. 하지만 그 개성의 비율 역시 언제나 적당한 비율, 손에 개똥같은 초코가 묻어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 적정선의 비율로 필요하네. 그게 넘어가면 괴짜라거나 변태 취급을 받기 쉽지. 그렇게 이 시대의 인간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양 착각하지만 실은 모두 똑같은 봉지 안에 든, 더 나아가, 똑같은 박스 안에 포장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초코 과자 빼빼로와 비슷하다네.” - pp.145~146 

어쩌면 21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빼빼로>가 아닐까? 빼빼로라는 소설이 있기에 어쩌면 사람들은 소설을 읽지 않는 게 아닐까?”

빼빼로는 문장 아닌 막대 과자로 구성된 과자 상자에 통과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1111일에 가까워 오면 그 과자를 통해 자신이 상상하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건 대개 사랑에 대한 환상이지만, 그 환상은 얼룩지고 음산해지며 종종 우울하게 가라앉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그때뿐이다. 시답잖은 베스트셀러를 읽은 뒤에 던져 버리듯 빼빼로데이가 지나면 이내 그 과자는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빼빼로라는 소설을 쓴 사람은 누구야? 아니면 이 과자를 만든 제과업체야? 아니면 이 과자를 통해 욕망하는 우리 모두야?” - p.245

 

 

제목에 충실해 처음 중간 끝 모두 골고루 빼빼로와 빼빼로포비아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운다. 빼빼로와 관련된 온갖 들과 철학이 휘돌고, 더러는 뜻밖의 애로나 예상할 수 있었던 농담과 결합하기도 한다. 소설은 19세 연상 빼빼로포비아 애인 때문에 고민인 스무살 대학생을 상담하는 민형기와 그 사실을 알고 3자 대면을 신청한 빼빼로포비아 당사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김만철이란 학생이 학교과제로 쓰고 있는 단편소설의 내용이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실재하는 김만철의 지인들에서 따왔고, 우연히 소설의 설정과 같은 인물이 나타나기까지 한다. 김만철의 소설과 현실이 교차하는 탓에 슬슬 긴장과 집중이 커질 때쯤 지금까지의 전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작가는 기상천외한 본론을 들이민다. ‘3단 반전쯤 있는 액자소설이라고 정의하면 될까.

  

사장님이 외계인이고 첫사랑이 외계인 혼혈이었다는 이야기가 펼쳐질 즈음 정신없이 펼쳐지는 SF활극에 잠시 빼빼로와 빼빼로포비아는 잊게 된다. 아니, 사실 책 전체를 읽으면 빼빼로와 빼빼로포비아를 생각 외로 독서 중에 인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의 입과 글을 통해 읊어지는 빼빼로에 대한 정보들 자체도 사실인지 아닌지 별 중요하지 않다. 빼빼로란 이름은 중요한 걸까. 열병처럼 몰두했다가 금세 식는 애정의 대상, 특별히 맛나고 사랑스러운 것 없이 죄다 비슷비슷한데도 자기는 예외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어떤 가늘고 길며 무언가 발라진 막대과자라는 설명만 있다면 삐삐로나 쿤타킨테 같은 이름이어도 어느 문화권, 어느 시대의 독자들도 소설을 이해하고 즐기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빼빼로를 싫어하고 혐오하는 포비아는 흔치 않더라도, 빼빼로 피플과 빼빼로 데이에 저항하는 이들은 숱하게 많다. 별에서 온 사장님과 강아지와 알약들이 벌이는 사건사고는 얼핏 빼빼로를 고민하는 지구인들을 위축시키는 것 같지만, 결국 이 기막히고 허무맹랑한 스토리텔링은 우리의 존재를 드높인다. 문제의식을 가질 줄 아는 살아 있는 지구인이라면 언젠가 김만철처럼 호송아트와 실리칸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소설보다 작가의 얼굴을 먼저 안 것은 조금 불행이었다. 얼핏 보고 넘어간 그의 얼굴과 책 속에 언급된 프로필이 어우러진 이미지가 소설을 읽으며 민형기, 김만철, 강사, 사장 모두에서 조금씩 나눠진 것 같다고 자꾸 자의적 해석하려 했기 때문이다.

 

다분히 빼빼로 데이를 의식하는 듯한 제목과 소재의 책, 그러나 출간일은 의외로 10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어쩌면 빼빼로 데이 전까지 책을 읽을 시간을 충분히 준, 출판사의 더 둔 한 수일지도 모른다. 김만철과 최향기의 상상처럼 사장은 정말 빼빼로포비아였을까, 어쨌든 그는 빼빼로보다 압도적으로 맛이 좋은 스윗 스틱이라는 막대과자를 만든다. 허구인 줄 알면서도 먹고 한낮 광화문 거리에서 눈물 아롱지고 싶었다. 작가도, 소설도, 캐릭터도 물건이었다. 가볍지만 그런 소설들이 주는 정크푸드 뒷맛이 없다. 실험성과 독창성을 내세우는 작가들이 흔히 저지르는 제 발상 주체 못함도 없다. 영리하고 깔끔하게 이야기와 색깔 모두 지킨다. 건투를 빈다,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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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 경영에서 반드시 직면할 질문과 해답 76가지
제임스 맥그래스 지음, 김재경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119 경영학 ; 역시 제임스 맥그래스 but 조금은 아쉬움

 

 

 

<삐뽀삐뽀 119 소아과>라는 책이 있다. 1,000쪽이 넘어가는 묵직한 분량 탓에 명성에 비해서는 가내 소장 정도가 적은 편이지만(70만부 정도 판매고), 15년 이상 국내 육아서 분야의 스테디셀러로 군림하고 있다. 작년엔 60대 이상 연령대에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화제가 되었으며, 어여쁜 이름과 달리 묵직묵직한 인문사회서를 주로 내왔던 출판사 그린비의 의외의 효자상품으로도 유명하다. 책 제목처럼 이 책이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 받은 것은 아이들이 아픈 수많은 경우에 그때그때 대처할 수 있는 요긴한 응급처방서였기 때문이다. 그런 경영서가 무척 필요하였고, 그래서 이 책의 출간을 무척 기다렸다.

 

경영학과 매우 가까운 전공이었고, 경영학과 교수들과의 교류가 많았음에도 다른 선후배동기처럼 경영학을 복수전공해하지 않았다. 리더십이나 경영관리자 관련 훈련도 대학 시절 꽤 많이 받았고 크고 작은 모임도 많이 이끌어봤기에 자신만만하였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 보니 나름 공부했다고 믿었던 것이 얼마나 일천하고 상당 부분이 삽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올해, 주특기를 틀어야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경영학을 공부해보기로 하였다. 아직은 입문 혹은 취미 수준의 깨작거림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처럼 학문의 얼개를 잡으며 초심으로 임하고 있다.

 

상반기에 읽었던 경영서 중 제임스 맥그래스와 밥 베이츠가 공저한 <모든 경영의 답>이란 책에 무척 많은 도움을 받았다. 경영학이 생각보다 행정학과 굉장히 많이 겹친다는 것을 알고 부담감도 많이 지울 수 있었고, 89개의 넘버링을 통해 경영학의 얼개를 머릿속에 쉽게 그리고 기억할 수 있었다. 천성 자체가 일할 때 주제와 핵심사항만 나열된 보고서를 좋아하는데 깔끔하고 간결한 군더더기 없는 본문과 넘버링, 독자에게 가르치는 바를 깔끔하고 정확하게 짚는 그들의 글쓰기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피로하지 않고 핵심 체크하며 읽기 좋은 책이었다. 그래서 지난 달 저자 중 한명이 쓴 또 다른 넘버링 경영서가 나온다는 소식에 덮어놓고 구해 읽어보았다. 그만큼 크게 신뢰하고 기대하는 저자였다.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의 저자는 맥그래스다. 그의 책을 가장 기대했던 이유는 그가 경영 컨설턴트이자 교육직업발달이라는 교육학과 경영학의 접점의 분야를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30년 이상 경력의 회계사였다는 점이었다.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회계용어로 두는 것을 보고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고, 책을 펼쳐서도 이 부분부터 먼저 읽었다. 회계는 대표적인 회사의 언어이고, 중요하나 모두가 능통하지 못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회계용어에 대한 장의 서술에 앞서 이 장의 내용은 경영자가 회계사와의 대화에서 어려움이 없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빈출 회계용어를 정리했으나 회계사와 많은 경영자에겐 이미 알아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고 못 박았다.

 

저자의 말을 숙지하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펼친 회계용어 장은 기대했던 것과 약간 달랐다. 평소 회계의 회자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이 너무나 친숙한 개념들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답답하였다. 이는 책 번역 전반에 있어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그래서 이 용어 약어가 뭐야, 알려주기 싫으면 영어라도 알려줘. 아무래도 경영서는 전공을 불문하고 많이 읽고 공부하다보니 다른 분야의 책에 비해 비전공자도 별 무리 없이 곧잘 번역을 한다.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역시 패션 전공의 미술 강사 겸 영문 번역가인 김재경이 번역했는데 경영서 번역 경력이 처음도 아니고, 깔끔하고 용어 옮김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뜻풀이를 보며 무슨 개념인지는 대충은 알겠는데 분명 현업에서 이걸 이 용어로 말하지 않았던 것 같은 게 여럿 있었다. 워낙 경제, 경영 용어는 우리말보다 영어 약어가 익숙한 게 많으니. 그래서 책을 보며 이 정도 내용이면 차라리 원서를 볼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의 구성에서 엿볼 수 있듯 영국에서 작년 겨울에 출간된 <모든 경영의 답>과 올 봄 출간된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는 여러모로 서로 상호 보완되는 시너지 책이다(출간 텀도 3개월 정도). 타깃 독자와 학습 목표도 비슷하다. 전자가 경영자나 경영자를 지망자들을 위해 속성으로 경영학의 기본기를 다지도록 돕는 책이라면, 이 책은 그들에게 경영에서 부딪치는 각종 상황별 대처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경영학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한 직장인들에게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는 사랑스러운 ‘삐뽀삐뽀 119’ 경영서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좀 더 경영용어의 원어 병기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 책도 원서도 따로 표시가 없는데 서지사항을 살펴보면 이 책이 1권이라고 되어 있다. 즉 어쩌면 시리즈가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환영이다. 안 그래도 모든 커리어를 정리하고 은퇴해서 여생을 전업 작가로 살겠다는 저자기에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그의 모든 노하우들이 계속 책으로 만들어 쏟아질 것이다. 아무래도 제한된 분량 안에(300쪽 이내) 크게는 7가지, 작게는 76가지 주제를 논하다보니 포괄적인 일반론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꽤 무릎을 치는 대목들이 있었고, 각 장이 시작할 때마다 <논어>를 인용하며 본론을 시작하는 것을 보며 동양인으로서 미묘한 경쟁감과 위기감도 적당히 느낄 수 있어서 즐거운 독서였다. 책을 읽다가 괜찮았던 문장들을 적어보며 서평을 갈음한다.

 

 

조직은 점점 더 이미 리더십이 있거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경영자를 찾고 있다. 고위급 직원이나 이사의 빈자리를 채울 사람을 찾을 때는 더욱 그렇다. - p.24

   

만약 한 시간 회의에 여섯 명의 직원이 참석한다고 하면 총 일곱 시간의 업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회의는 업무와 바꿀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회의는 현대 경영자의 삶에서 독과 같다. - p.53

 

<업무를 위임하는 4가지 방법>

지시하기; 업무를 하는 방법에 대한 기술적 지식이 부족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적은 사람에게 지도와 지원을 많이 한다.

지도하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은 있지만 업무 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게 지도를 많이 하고 지원은 적게 한다.

지원하기: 업무 능력에 신뢰가 가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거나 처음 하는 일에 관해 걱정하는 사람에게 지원을 많이 하고 지도는 적게 한다.

위임하기: 기술적으로 숙련됐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많은 사람에게 지원과 지도를 적게 한다. - p.60

 

경쟁하는 사람이 되라. 이직할 생각이 없어도 일 년에 최소한 한 번의 면접을 봐라. 일 년에 두 번이면 더 좋다. 정기적인 면접은 시장에 관한 정보를 얻고 다른 곳에서의 조건을 알 수 있는 기회다. 발전시켜야 하는 영역의 지식 혹은 기술도 파악하게 도와줄 것이다. - p.73

 

경영학이 배출한 최초의 천재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고 주장한다. : 직원 구성, 목표 설정, 직원의 동기부여, 결과를 목표와 비교해 모니터링하고 필요하다면 바로잡는 조처, 사람들과 자기 자신의 계발 – p.78

 

- 가능한 항상 내부에서 승진을 시켜라.

-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증명을 한 사람을 항상 선발하도록 하라. 다음과 같은 사람을 고용하라. : 자존심이 있어 자신을 실망시키는 일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고, 열심히 일하고, 신뢰가 가는 사람,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 상식이 있는 사람, 좋은 결정을 내리는 데 기본이 된다.

- 외부에서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면 자신의 업무에 긍지를 느끼고, 밝고, 붙임성 있고, 열정적이고, 흥미롭고, 공적에 대한 기록이 확실한 사람을 골라라.

 - p.79

 

당신이 싫든 좋든 간에 조직의 정치는 시행될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조직의 정치와 관련해서 두 가지 주요 문제가 있다. 첫째, 조직의 실제 업무를 방해한다. 둘째, 정치와 관련 없는 주변 사람들을 해치는 관습이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조직의 정치에 관심이 없더라도, 권력 게임에서 희생될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게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선 적을 이해해야 한다. 대부분의 주요 정치가는 마키아벨리의 이념을 따른다. 왜일까? 마키아벨리는 행동의 미덕은 목적을 성취하는 데에 있다고 주장하며 잔인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는데, 이러한 정당성은 정치가의 의식을 만족시켰다. - p.191

 

 

오타

p.73 중반부 : 정기적인면접은 → 정기적인 면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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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사과일까? 초등 저학년을 위한 그림동화 3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고향옥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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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정말 사과일까?] 사과, 어디까지 톺아봤니?

 

 

 

 

슬로 리딩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 10월 초에 EBS다큐프라임에서 다룬 바도 있고 신문 기사들도 나온 바 있어 아는 이도 있겠다. 혹자는 우리말로 순화하기 위해 지독(遲讀)이라는 신조어를 고안해 밀기도 한다. ‘슬로 리딩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일본의 교사 하시모토 다케시가 교육 효과를 높이고자 1960년대에 고안한 독서법으로 한 책을 여러 놀이를 하며 오랫동안 읽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음식, 패션 등 생활 전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슬로 운동의 한 양태로 하루에 한두 시간씩 종이책을 천천히 소리 내 읽으며 정신적 안정을 이루는 방법으로 뉴질랜드의 슬로 리딩 클럽이 대표적이다. 더 주목을 받는 것은 하시모토 다케시의 슬로 리딩이다. 도쿄대, 교토대 합격률 1위를 이룬 기적의 학습법으로 알려져 있어서이다. 또 많은 부모들이 어린 자식들에게 책을 물량공세로 승부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아동서의 특성상 두께도 얇고 금방 읽는데 가격은 돈 만원 기본이라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고 교육적으로도 자신의 방법이 바람직한지에 의문을 품고 있기에 솔깃한 독서법이다.

 

   

슬로 리딩에 관심이 많은 부모와 교사에게 요시타케 신스케의 <이게 정말 사과일까?>는 무척 매력적인 그림책이다. 사과를 소재로 아이들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유명 일본 그림책인 다다 히로시의 <사과가 쿵>이 떠오르기도 한다. 눈 앞에 사과가 있다. 연둣빛 아오리 사과도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의 볼처럼 발그스름하다. 빨간 사과, 껍질을 깎아 과즙이 흐르는 새콤달콤한 속살을 한 입 베어 물면 무척 맛이 좋다. 작황이 너무 좋아 보통 크기의 사과를 개당 500원 내외로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개당 1500원 정도는 줘야 그럭저럭 괜찮은 사과를 구하지만 그래도 365일 별로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과일이다. 안전칼로 자르고 요리를 해보며 촉각놀이를 해보기도 하고, 그냥 흔히 먹어서도 아이들이 금방 인지하는 과일 사과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묻는다. 눈앞에 있는 이 둥그렇고 빨간 물체가 정말 사과일까?

   

 

커다란 체리가 아닐까요?

사실은 어떤 동물의 알일지도 몰라요.

혹시 알아요? 키우면 커다란 집이 될지…….

스과, 상과, 슝과…….사과한테 형제나 자매가 있을지도 몰라요. 걔들은 네모나거나 삐죽할지도.

무슨 맛일까요? 어디서 왔을까요? 우리 집까지 오는 동안 사과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사과를 안 먹고 두면 팔다리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본문 中 -

 

 

 

요시타케 신스케는 원래부터 그림책 작가인 것은 아니었다. 미술을 전공하고 광고와 디자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해 온 전형적인 상업미술가였다. 그가 그림책을 만들게 된 동기는 많은 그림책 작가들이 그러듯 부모가 된 후 자신의 아이를 생각해서였다. 두 살 난 자식을 위해 만든 첫 그림책 <이게 정말 사과일까?>는 작년에 출간해 제6MOE 그림책 대상 1, 4회 리브로 그림책 대상 2, 2회 시즈오카 서점 대상 아동서 신간 부문 3, 61회 산케이 아동 출판문화상 미술상 등 각종 그림책 관련 상을 받고 22쇄 이상 찍으며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주 타깃 독자가 2세 정도의 영아인 것은 아니다. 이번에 우리말 번역본을 내놓은 주니어김영사도 초등학교 1-2학년 대상의 사고력, 상상력 계발 그림책으로 이 책을 규정하고 있고, 저자도 유치원생과 저학년 초등학생에게 이 책을 주로 권하고 있다. 저자는 일찌감치 자신의 그림책 공식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ringokamoshirenai)을 만들어 <이게 정말 사과일까?>를 비롯한 자신의 그림책과 함께 쓸 수 있는 학습지나 학습프로그램을 만들어 올리고, 독자들이 활용결과를 올린 인증샷도 전하고 있다. 올 가을에는 두 번째 그림책인 <ぼくのニセモノをつくるには나의 가짜를 만들기 위해서는>이 출간되었다. <이게 정말 사과일까?>와 같은 콘셉트라 조만간 우리말 번역본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현재 네이버책과 각종 온라인서점에 있는 출판사의 책 소개글엔

저자의 페이스북 주소가 https://ja-jp.facebook.com/ringokamoshirena로 되어 있다.

서평자로서 당연히 들어가봤는데 없는 페이지. 주소를 보다가 혹시 원제인 りんごかもしれない를 그대로 발음한(린고카모시레나이) 게

아닐까 하고 검색해보니 맞았다. 絵本(에호우)는 혹시 몰라 같이 검색해 본 그림책이란 단어.

"絵本『りんごかもしれない』(https://www.facebook.com/ringokamoshirenai)가 요시타케 신스케의 공식 페이스북 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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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페이지밖에 되지 않지만 일러스트가 엄청 다채로운 점이 인상적인 그림책이다. 소표지와 본문 앞뒤로 보통 빈 종이로 두는 간지(정확한 용어인지 모르겠다. 틀렸으면 지적해주시길)12가지 사과 사용법을 보듯 익살스러운 그림이 담겨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과로 당구나 볼링을 친다거나, 하늘에서 사과비가 내린다거나 하는 발상들. 사과를 소재로 해서 해볼 수 있는 모든 발상을 담을 기세인 책, 어떤 사물이라도 단순하게 보고 넘기지 않고 만지고 해체하고 관찰하고 상상하고 등 열심히 톺아보는 습관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어른의 입장에서도 이 책을 가지고 어떤 수업을 해볼까 짜낼 생각에 즐겁기도 하고 자신은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를 뽑아낼 수 있을까 저자와 상상력 겨루기를 하며 읽느라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책이었다. 한권을 읽더라도 야무지게 요리조리 살필 구석이 많은 책, 읽고 말하고 생각할 것이 많은 책, <이게 정말 사과일까?>같은 이런 일당백그림책이 계속계속 많이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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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리 2014-11-24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서평 멋지시네요. 꼭 잦아 읽어 봐야겠어요.

이섬 2014-11-26 09:0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0^
 
내일의 경제 - 복잡계 과학이 다시 만드는 경제학의 미래
마크 뷰캐넌 지음, 이효석.정형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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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경제] 경제학에 엿만 열심히 먹인 경제물리학 서론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은 한창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자기 극복 중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퀀트의 시대가 종말하고 다시 정통 경제학이 주목받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으나, 지금도 금융인의 절반이 이공계 출신이며, 그 전공의 면면도 과거 수학과 통계학 일색에서 다양화되고 있다. 때문에 과거 사회과학의 꽃은 경제학이요 경제학의 꽃은 금융(경제학)이라는 말은 과거의 영광이 된 지 오래다. 현재 4년제 대졸자 취업의 경우 인문계가 이공계보다 다섯 배 이상 어렵고 여대 인문계는 더욱 불리하다고 한다. 그 주요인이 금융권 인문계 채용TO의 급감이다. 수많은 경제학도와 경제전문가들이 오늘도 경제학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런 위기감과 문제의식에서 만난 경제물리학서 <내일의 경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어떤 인사이트나 아이디어라도 얻을까 싶어 열심히 읽었다.

 

 

복잡계 물리학에서 태동한 복잡계 경제학(경제물리학)과 금융물리학, 경제학에 대한 물리학적 접근은 사실 1990년대부터 이루어진다. 1990년대 말 노벨경제학상수상자 등 내로라하는 경제학 석학들이 정통 이론에 근거해 운용한 롱텀 헤지 펀드의 대실패는 복잡계 이론의 가치를 높이고 기존 경제학에 의문을 갖게 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내일의 경제>는 상당히 기발한 발상으로 대중들에게 경제학과 경제물리학의 차이를 보여주고 경제물리학이 추구하는 바를 보여준다. 경제학이 ‘예측’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하려면 적어도 일기예보만큼의 시스템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상청 소풍날은 비가 온다는 우스갯소리처럼 기상과학의 예측성이 탁월한 것은 아니지만 경제학의 예측에는 없으나 기상과학의 예측에는 있는 것을 경제학이 찾아야 한다는 것이 마크 뷰캐넌의 생각이다.

 

 

 

 

그것은 ‘탈평형’이다. 효율적 시장가설(EMH)로 대표되는 경제학이 일으킨 모든 문제는 학문의 성격이 '평형'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가 꼽는 탈평형적 사고가 강한 학문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 생태학, 대기 과학, 지질학 등이다. 기상학은 평형적 사고에서 탈평형적 사고로 거듭난 학문이란 점에서 상징적이다. 그래서 원제가 ‘Forecast’이다. 부제인 ‘What Physics, Meteorology, and the Natural Sciences Can Teach Us About Economics’를 고려하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이 분명하게 파악된다. 이 직설적인 전형적 영어식 책 제목을 <내일의 경제>로 바꾼 사이언스북스(민음사)의 작명도 일리 있고 감각적이다. ‘탈평형’과 관련하여 양적인 되먹임, 플라즈마, 불안정성, 동역학 등의 개념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강력한 기제가 1990년대 물리학에서 등장한 복잡계 이론이다.  

 

 

"복잡계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복잡계를 모르는 사람과 원숭이의 차이보다 더 크다. 복잡계를 모르는 사람은 금붕어와 전혀 다를 바 없다" - 머레이 겔만

 

대중들에게 가장 인지도 높은 복잡계 물리학자를 꼽는다면 머레이 겔만과 이 책의 저자 마크 뷰캐넌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노벨상 수상 이후 전공을 바꿔 여생을 복잡계 연구에 바치고 있는 머레이 겔만과 달리 복잡계 물리학만 파고 있다는 점, 복잡계 과학의 ‘전도사’라는 별명처럼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문장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이기에 <내일의 경제>에 대한 기대는 높았다. 역시 그였다. 고졸 이하는 약간 버거울 수 있어도 대학 재학 이상이면 경제학이나 물리학에 대해 문외한이더라도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이 없을 만큼 잘 읽힌다. 역자가 두 명인데 둘 다 물리학 박사고 한 사람이 복잡계 전공자지만 두 사람 다 경제물리학과는 별 상관없는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용어들을 제대로 쓰고 이해도 상당해 놀라웠다. 그들의 깔끔한 번역 덕에 더 읽기가 쉬웠던 것 같다. 그런데 그래서 아쉬운 점이 있다. 아래는 이 책을 읽으며 발췌한 것들이다.

 

 

물리학과 집단행동 패턴 사이의 이 놀라운 관련성이 물리학자들이 금융과 경제학에 갑자기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월 스트리트에 있는 회사에 고용되어 돈을 벌기 위해 금융 상품에 가격을 매기는 계산을 하는 물리학자들이 많지만, 명확하게 말하면 나는 매기는 계산을 하는 물리학자들이 많지만, 명확하게 말하면 나는 그런 물리학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 시장이나 경제를 자연적인 시스템으로 보고 이해하려 하는 물리학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 p.39

 

바슐리에의 가설(랜덤위크가설)이 확실하게 틀렸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한 구간에 걸쳐 가격 변화비로 정의된) 시장 수익률 분포는 가우스 분포나 정규 분포가 아니고, 두툼한 꼬리를 가진 분포 곡선이다. 바슐리에는 틀렸다. 하지만 얼마나 틀렸을까? 정규 분포 이외에도, 그는 역사를 가정하지도 않았고 미래 움직임에 대한 가정이 시장에 관해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가? 위아래로 요동치는 신호(또는 주식 가격)의 예측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한 한 방법은, 실제보다 훨씬 복잡하게 들리는, 소위 “자기 상관관계(autocorrelation)”를 계산하는 것이다. 자기 상관관계는 “예측 가능성”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 p.148

 

여기서 메시지는 복잡한 게임에서 동역학은 정말 중요하며, 경제학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동역학 없는 이론을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평형 이론은 결국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처럼 시스템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시장을 효과적으로 모델링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한다면, 매우 복잡한 게임을 분석하는 것이 유망한 방법처럼 보인다. - p.188

 

아서의 모델은 전략들의 경쟁만 남긴 매우 간단하고 추상적인 형태만 남았을 때도 그런 예측을 보여 주었다. 1997년 아서의 연구에 자극받은 2명의 물리학자 이쳉 장과 다미엔 샬레는 아서의 엘 파롤 게임을 전략을 계속 적응시키고 학습하는 부분만 남긴 간단한 지능적인 게임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이 게임을 “소수자 게임(monority game)”이라고 불렀다. 물리학자들은 종종 하나의 전자와 하나의 양성자로 이루어진, 모든 원자 중 가장 간단한 원자인 “수소 원자”를 어떤 상황의 정수를 나타내는 간단한 모델에 대한 비유로 사용한다. 이것은 물리학자들의 수소 원자를 이해함으로써 수십 개의 전자를 가진 복잡한 구조의 원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심오한 통찰력을 얻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수자 게임 역시 시장의 법칙에 대한 수소 원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p.216

 

이론은 과학의 창조적 원동력이다. 이론은 새로운 가능성과 숙고, 그리고 그럴듯한 전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론은, 그것이 과학 분야의 이론이라면 실험에 의해 다듬어져야 한다. 현실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이론은 쉽게 희망적인 사고, 또는 현실적 의미를 전혀 가지지 않는 아름답기만 한 이론으로 바뀌기 쉽다. 불행히도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이끄는 주요 거장들에게는 실제 현실에 대한 어떤 혐오가 종종 발견된다. - p.318

 

평형을 가정하는 것은 곧 시간의 역할이나 시장 동역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가정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대학원 경제학 교과서에는 자랑스럽게 “우리는 동역학(dynamics)을 다루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다. 오히려 각 개인이 그들의 모든 미래의 행동을 자신의 미래에 대한 최적화 문제의 해답으로서 지금 이 순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가정 아래, 시간과 동역학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 p.322

 

경제학 이론에서 말하는 미시적 토대는 그 이론을 현실적으로 만드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 p.329 경제학자들이 선호하는 모델들은 미시적 토대에 너무 집착하고 있어 인간 행동의 다른 중요한 모델들은 미시적 토대에 너무 집착하고 있어 인간 행동의 다른 중요한 측면들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p.335

 

 

책을 읽을 때 밑줄을 치며 읽지는 않지만 서평에 인용할 만한 인상적인 대목은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해두는 데 이 책의 경우 스무 개 정도나 나왔다. 그런데 이를 다시 정리하며 경제물리학이나 물리학과 관련된 내용을 추리니 별로 건질 것이 없었다. 그렇다. 이 책은 경제학에 대해 조목조목 엿을 먹인다. 그런데 정작 그 해법이라는 경제물리학에 대한 내용은 ‘개론’도 아니고 ‘서론’에 그쳤다고 느꼈다. 그 이유 추측해보자면, 저자가 대중교양서적 측면을 너무 의식해 너무 쉽게 글을 썼거나 아직 경제물리학이 한창 성장형일 뿐 학부 교재를 만들 만큼의 이론적 체계와 완성도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학문이 태동한 지 거의 20년이 된 지금 복잡계 이론이나 복잡계 경제학이란 용어는 전혀 낯설지 않다. 물리학에서 복잡계 이론이 등장한 것은 시대적 필연이었다. 20세기 말 거의 모든 학문의 주제가 ‘간학문’, ‘통합’, ‘통섭’이었으니 말이다. 복잡계 이론은 ‘통합 학문’이라는 거대한 꿈을 궁극적 목표로 하고 있는 물리학의 지대한 야망이다. 그래서 천문학적인 자본과 엄청난 인재들을 요구하는 분야이며, 전공자도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살아 있는 신화’의 영역이다. 현대물리학은 이미 그런 매력적인 괴물을 세상에 내놓은 바 있다. 어쭙잖은 인문계 전공자부터 약 파는 사기꾼까지 마치 ‘절대무기’. ‘만병통치약’처럼 갖다 쓰는 ‘양자역학’이다. ‘복잡계’는 더 혹하는 개념이며, 유의미성에 대한 논쟁도 첨예하다.

 

 

<내일의 경제>는 마크뷰캐넌이 현재 몰두하고 있는 관심사와 연구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 책이었다. 경제학 전공자로서 어떤 이론이 폐기되어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공부해야할지 이 책을 통해 지각할 수 있었던 것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경제물리학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개설서 수준의 교양서를 원한 독자들에겐 실망스러운 책이다. 마크 뷰캐넌은 2011년부터 금융물리학을 주제로 한 개인블로그를 운영해왔는데 수많은 포스트를 일일이 읽어보는 대신 단행본 한권으로 저자의 현재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그럼에도 충분히 읽을 이유는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얼리어답터의 기분을 만끽해보는 차원에서. 각종 비문학 교양서를 킬링 타임 콘텐츠로 즐기는 독자, 경제학의 미래를 고민하는 경제학도라면 시간 날 때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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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의 기술 - 지금은 쇼핑의 시대, 스마트 쇼퍼를 위하여
이선배 지음 / 넥서스BOOKS / 201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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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의 기술] 나 없이 쇼핑하지 마라

 

 

패션·뷰티·리빙 쇼퍼홀릭이자 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선배의 신간

야심찬 쇼핑 바이블, 쇼핑판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

그간의 그녀의 이력과 쇼핑인생을 갈무리하는 <쇼핑의 기술>

좀 사본 언니(누나)의 깔끔한 쇼핑 개론서, 벌써 다음 책이 궁금해진다

 

전공을 밝힐 때마다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그런 학문도 있었냐는 말과 쇼핑 잘하겠네라는 말이었다. 물론 구매에 관해서 단일 교과목으로 여러 수업을 수강할 수 있긴 하지만, 수많은 상경 전공자가 주식을 말아먹듯 쇼핑의 기술은 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체득하는 것이다. 쇼핑의 노하우를 알려준다는 책은 생각보다 굉장히 많다. 그러나 몇 이론적 고전들이 학기 초 등에 반짝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쇼핑 관련 서적들은 경제경영서에서 비주류이다. 그나마 취미실용서 차원에서는 꾸준하게 출간되는 편이다. 문제는 쇼핑의 이슈와 유행이 빨리 바뀐다는 것이다. 특히 각종 쇼핑의 요령과 추천 제품을 언급하는 쇼핑조언서의 경우 속도감 있게 정보를 정하는 잡지와 신문, 인터넷를 이겨야 하므로 집필이 굉장히 까다롭다.

 

이선배가 쓴 <쇼핑의 기술>을 읽으며, 떠오른 것은 화장품비평가이자 화장품기업 폴라초이스의 CEO인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였다. 화장품 다이어트와 피부 관리에 있어 큰 도움을 준 이인데 지난 달 출간한 <쇼핑의 기술>을 읽으며 쇼핑판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 같은 책을 발견한 것 같아 무척 반가웠다. 패션·뷰티·리빙 쇼퍼홀릭이자 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라는 그녀의 대학 전공은 의외로 화학이다. 원단과 부자재 소재나 화장품 성분 등에 있어 전공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광적으로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대한 몰두가 얼마나 중요한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모범 사례다. 잡지나 일간지에 쇼핑 칼럼을 쓴 적은 있지만 책은 지금까지 여성패션, 남성패션, 화장품 등 한 종류씩에 집중하여 써왔다. <쇼핑의 기술>은 그간의 그녀의 이력과 쇼핑인생을 총정리 하는 책이다.

   

 

여성패션과 남성패션, 홈데코가 책에서 각 3분의 1씩 비중을 차지한다. 홈데코 부문의 경우 인테리어와 각종 가정용품, 디저트와 차 등을 다룬다. 가방, 구두, 선글라스 등 각 제품군별로 역사적 상식도 쌓고 작가의 수다도 들을 겸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살펴보는 방법도 좋다. 하지만 관심 있는 제품군에 대한 부분만 필요할 때마다 발췌해 보는 것이 더 좋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든 추천 브랜드와 온오프 쇼핑몰을 알 수 있는 ‘생생정보통’이다. 가장 강점은 역시 ‘콤팩트’하다는 것이다. 전체로 보면 360여 쪽이지만 각 제품군별로 보면 짤막짤막하다. 최대한 꼭 필요한 정보만 간추려 큐레이팅한 듯한 책이다.

그래서 읽고 있노라면 집필과 편집에 있어 작가와 편집자가 얼마나 고민하고 고생했을 지가 훤히 보인다. 특히 생각보다 텍스트가 많고 목차가 복잡해서 편집자의 고충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군은 쇼핑몰이 온오프가 섞여 있거나 해외와 국내가 섞인 경우가 있는데 어떤 꼭지로 묶을지(매장? 쇼핑몰? 사이트?) 애매하고 한 가지 제목으로 통일하기도 모해서 제품군마다 편집이 얼핏 봐선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각 본문에 맞춰 일일이 다르게 해두었다. 초판 오타도 좀 있다. 혹시 그런 독자가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교열 상태도 신경 쓰며 읽으면 단순히 읽고만 있어도 눈이 뱅뱅 돈다. 딴 길로 샌 말이지만 출판관계자들이 참 존경스러웠다.

 

선글라스: 90% 이상 할인가에 구매할 수 있다. - p.47

 

파티웨어: SPA브랜드에서 마련할 수 있다. - p.56

 

디자이너 브랜드: 컬렉션 드레스 대부분은 90% 세일까지 가서도 안 팔려 패밀리 세일, 아웃렛 시즌 오프 세일에 나온다.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가장 실용적인 아이템은 아주 단순한 무릎길이 원피스, 세트인 재킷, 블라우스 등이다. - p.62

 

넥타이 선물 함부로 하지 마라 : 정말 애정을 가지고 관찰해서 선물하지 않는 한, 남이 고른 타이가 그 사람 고유의 스타일이나 가진 옷과 어울릴 확률은 굉장히 낮다. - p.189

 

빈티지라는 말이 들어오기 전에는 ‘구제’에 익숙했다. 구제라는 말은 슬프게도, 오래될 ‘구(舊)’, 지을 ‘제(製)’가 아니라 한국 전쟁 이후 물자가 없는 난민들을 구제(救濟)한다는 데서 연유했다. - p.91

립 제품 하나를 히트시키면 브랜드의 영업 실적이 크게 좋아진다. - p.124

 

남성 코트 : 시중 브랜드 남성 100% 캐시미어 코트 중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태반(16.5%~90.2%) - p.224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안 사실들을 몇 가지 적어보았다. 사람마다 취향과 니즈, 배경지식이 다르기 때문에 독자마다 도움 얻은 정보가 다를 것이다. 위에 언급을 하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브래지어에 평소 불만이 많았다. 너무 특정 사이즈 생산에 편중되어 있어 맞는 사이즈 찾기도 어렵고 찾았다 해도 가슴 모양을 살려주는 제품을 살면서 거의 못 봐서 돈 먹는 가슴이라고 괜히 자아비판해왔다. 그런데 <쇼핑의 기술>을 보니 에메필, 라에르바, 피치존, 키드블루 등 가슴둘레에 비해 컵이 앞으로 몰려 있고 볼록한 편인 일본 브랜드를 잘 공략하면 되겠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쇼핑의 기술>만 읽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해외직구를 당장 능숙하게 한다거나, 책에서 다룬 제품군들에 대한 쇼핑 기술을 모두 마스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책이 있다면 글로 연애를 배우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패션과 생활 제품 쇼핑에 있어 누구라도 기본적인 갈피는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훌륭한 개인과외 선생이란 점에서 충분히 읽을 가치 있는 매력적이고 유용한 책이다. 스마트 시대, 쇼핑도 예외가 아니라 스마트 쇼핑·쇼퍼를 외친다. 당신의 쇼핑 능력과 감각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요즘 한창 갖고 싶어 안달 난 물건이 있다면 책장에서 반짝이는 이 핫핑크 책을 찾아보시길. 유통 기한이 끝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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