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읽어주는 남자
장진혁 지음 / 인사이트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장 읽어주는 남자] 11번가 상무에게 배운다 : OM JOB 워너비들의 필독서

 

 

 

‘막연한 동경(p.118)’.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다. 궁금한 건 직접 보고 만져야 직성이 풀리는, 전형적인 몸이 피곤한 성격이었기에 ‘알바’라는 편리한 수단으로 돈을 벌면서, 궁금한 현장을 찾아 다녔다. 3대 마트와 SSM을 찾아가 영업 종료 후 손님 없는 매장과 창고를 돌고 돌았다. 직접 고용과 아웃소싱이 어떻게 돌아오는지, 어떻게 상품이 관리되고 있는지, 기업별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업무 틈틈이 배웠다. 기회가 생기면 티셔츠 한 장을 입고라도 냉장창고에 들어가 보고 혹시 몰라 편의점에 대해서도 어깨 너머로 열심히 보고 듣고 외웠다. 그러다가 의류 브랜드 하나에 한해서지만 백화점으로 파견가기도 하였다. 물류배송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고 무작정 국내 최대 택배회사의 한 영업소를 찾아가 야간 상하차를 하였다. 그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별별 일을 하였다. 몇몇 대기업은 대놓고 ‘이력서에 쓸 수 없는 하찮은 일’이라고 말하는 것들임에도 말이다. 그렇게 무모하게 살아서라도 하고 싶었고,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직업이 MD였다.

 

 

이 책의 저자인 장진혁의 말처럼 MD라는 직군은 ‘뭐M’든지 ‘다D’하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고 막연히 동경하기 쉬운 직종이다. MD 취업을 준비하는 데 있어선 보통 두 가지 접근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영마광(영업·마케팅·광고)적 접근이다. 흔히 마케팅과 기획은 모두가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잘하지 못하는 분야라고 한다. 그래서 스펙도 천차만별인데다가 경험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국의 미친놈들이 죄다 모인다. 회사마다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보니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방계(?) 직군도 고려하는데 그 중 하나가 MD다. 다른 접근은 유통적 접근이다. 현장 친화적이고 업계어를 많이 쓰다 보니 자격증을 차례차례 따며 차분하게 준비하는 이도 있고,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올라가는 이도 있다. 특히 남자보다 여자들이 훨씬 희망하는 진로인데 막상 업무를 해보면 여러모로 남자들이 훨씬 유리하다. 그러다보니 박이 터지는 곳이 온라인 MD.

 

 

어제(12/12) 국내 OM(온라인 마켓)업계에서 깜찍한 이벤트를 시행하였다. 이름하야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올 한해 엄청나게 급증한 해외직구족과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를 의식한 OM연합 세일 행사였다. SK11번가, 현대H몰, 롯데닷컴, 엘롯데, 롯데마트몰, 롯데슈퍼, 하이마트쇼핑몰, CJ몰, AK몰, 갤러리아몰 10개 업체가 참여하였다. 할인품목의 양이 많지 않고 세일 대상 제품이 기존 최저가보다 크게 낮지 않아 소비자들의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첫해고 홍보가 부족해 알지 못하고 넘어간 뒷북 소비자도 대단히 많다. 그러나 업체들의 자평은 긍정적이다. 당초 전체 1000억 매출을 목표로 기획하였는데 1500억을 돌파하였고, 참여 사이트 대부분이 서버 다운되었으며, 적게는 11%에서 많게는 200% 이상 매출이 증가하였다. 최고의 승자는 이번 행사를 주도한 11번가였다.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아이디어는 작년 11번가에서 낸 것이 기원이다.

SK에서 운영하는 OM 11번가는 여러모로 연구할 거리가 많은 흥미로운 대상이다. 상당한 후발주자였고, 기존에도 SK에서 여러 번 OM 사업을 벌였지만 성과가 별로였기에 시장에서 큰 기대를 받지 못하였다. 주요 유통업계가 통합 멤버십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체 계열사 브랜드와 제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초기 11번가의 고속 성장엔 SK텔레콤이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 1위인 것을 이용, T멤버십 반값 데이 등 공격적인 가격차별 정책이 1등 공신이었다. 뒤이어 OK캐쉬백과 오포인트도 멤버십에 적극 연계하면서 다른 통신사 고객의 박탈감을 해소하고 포섭하였다. 그리고 110% 보상제나 11%할인쿠폰 발급 등 11과 관련된 다양한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행함으로서 이용자들에게 브랜드를 세뇌시켰다. 해를 거듭할수록 자기 진화하는 11번가의 마케팅은 언젠가부터 누구에게나 눈에 띌만한 괴물들을 내놓고 있다. 작년이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라면 올해는 단연 ‘쇼킹딜11시’다. 이러한 11번가의 모든 역사엔 OM 총괄 상무 장진혁이 있었다. 그가 책을 냈다는 소식에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그 동안 11번가 이용자로서 혼자 생각해왔던 바에 대해 답안과 해설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처음 신간 목록을 살펴보다 <시장 읽어주는 남자>라는 제목을 발견하고 경제전망서류인지 알았다. 혹시라도 그런 생각으로 책을 집으려는 독자가 있다면 말리겠다. 이 책은 타깃 독자가 분명하다. OM에 관심이 있고 현직 셀러나 MD거나 그를 희망하는 독자에게만 한 줄 한 줄 천금 같고 흥미진진한 책이다. 그렇지 않으면 재미도 유용성도 현저히 반감된다. 책은 11번가에 대한 이야기, OM 셀러와 워너비들을 위한 조언, OM MD와 워너비들을 위한 조언, 자신의 MD 이력과 철학 해서 네 장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11번가에 대한 내용에 있어서는 몰랐던 부분들을 빠르게 찾고 숙지하는 재미가 쏠쏠하였는데 예를 들어 11번가는 차별적 혜택이나 공격적 마케팅이 아닌 신뢰에 운영 중점이 있다. 그리고 요즘 국내 모바일 산업의 핫이슈가 옴니 채널과 아마존·알리바바·해외직구에 대한 대응인데 업체 노하우와 직결되는 민감한 부분이라 자세한 언급은 피하고 있지만 상당한 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 쇼킹딜11시와 애플리케이션과 관련한 자체 분석과 평가 부분을 보며 배운 바가 참 많았다.

 

대학에서 창업 강의를 개설하면 십중팔구가 과제에서 오픈마켓 셀러를 포함해 쇼핑몰 창업안을 내놓는다. 그만큼 누구나 손쉽게 떠올리고 시도하는 영역인 만큼 경쟁도 피 터지고 실패하기도 쉽다. 수많은 셀러들의 플랫폼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오픈마켓 창업과 운영 노하우를 알려주는 장은 주옥같은 조언들로 가득하다. 역으로 보면 MD 입장에서 셀러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많이 배울 수 있는 장이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MD에 대해 논하는 3장인데 4장에 앞서 자신의 경험담을 적절히 예시로 써가며 특히 MD 취업준비생들이 MD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뭣도 모르고 지원’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일깨워준다. 그래서 <시장 읽어주는 남자>가 가장 유용한 독자는 역시 OM MD와 MD 워너비다. 모든 장이 MD로서 역량 기르기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장진혁 상무에 대해 알고 있었던 독자라면 그가 70년대생 기업 임원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갔을 수도 있겠다. 그런 마음에 두근두근하며 마지막 장을 펼치면 좌절과 희망 두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는 일단 타고난 유복한 배경에 상경전공은 아니지만 미국 명문대를 졸업한 영어 능통자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를 파악하는 묘미는 그에 대한 본론은 앞 세 장에 이미 언급이 되어 있다는 점인데 4장과 에필로그를 다 읽었을 때 모든 퍼즐이 한꺼번에 맞춰진다는 점이다. 처음 까르푸에서 입사 면접을 보며 자격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청년이 어떻게 입사했고, 좋은 첫 사수를 통해 오프라인 유통업에서 어떻게 경력을 쌓아 온라인으로 넘어가는지, OM에 젬병이었던 대기업을 어떻게 성장시켜나가는 등등 길지 않은 사담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모르겠다. 한편 모든 직장 생활에 두루 적용되는 일반론들도 빼놓지 않는데(이 부분 때문에 OM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없더라도 성공한 샐러리맨 자서전 정도로는 책을 즐길 수 있다) 아무래도 이 책이 20대 구직자와 사회초년생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책인 만큼 그 즈음 겪게 되는 갈등과 고민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 주고 있다.

 

OM MD나 BM직을 여러 번 지원하고 떨어진 바 있기에,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런 책이 좀 더 일찍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고 잠깐 상상을 해봤다. 그리고 매우 반성했다. 천성적으로 큐레이션을 좋아하고, 열다섯부터 밥 먹고 물건 팔고 소개하는 것만 생각했으며, 직접적으로 관련된 전공을 하였지만, 정작 그것이 직업이 되지 않았다면 정말 적성이고 주특기일까. 얼마나 많은 인생을 낭비하고 노력이 부족했나.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헝클어댔다. 책을 소개하다 보면 종종 책의 우수성과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어 혼자만 알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책들을 만나곤 한다. <시장 읽어주는 남자>가 그랬다.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며 가슴을 치고,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볼 만큼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독자에게 구성으로도 내용으로도 가볍게 읽을 만한 평이한 경제경영서 혹은 에세이다. 욕망과 관심의 크기만큼 읽게 되는 책이다. 그래도 적어도 셀러든 MD든 OM JOB을 꿈꾸는 이들에게만큼은 필독서라고 자신 있게 권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