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12개의 사업을 시작했다 - 시간과 수입의 10% 투자로 흔들림 없는 미래를 완성하는 법
패트릭 맥기니스 지음, 문수민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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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12개의 사업을 시작했다]

10%기업가, 시대맞춤형 창업 모델

 

 


 

결국 극소수를 뺀 21세기 사회인의 천명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안한 저성장 시대에서 밥 먹듯 이직과 창업을 고민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서른한 살 미혼인 한국 여자, 우리 또래가 과도기 세대라고 생각한다. 요즘 주변 85-86년생들이 승진과 이직을 앞두고 죄다 신토익책을 붙잡고 있는데 후자에 대해 부모님은 걱정한다. 주변 여자들의 팔할 이상은 결혼해서 애가 있고, 여전히 선에서는 남녀 막론하고 서로의 안정스펙을 부르짖는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안정은 희망보험이다. 평생직장 개념도 없고, 이직과 창업 계획은 대부분 신입 입사하면서부터 시작한다.

  

 

30대 초중반까지 결혼하지 않았고, 당장 계획이 없는(심지어 연애조차 하지 않는) 남녀들은 그런 생각이 더하다. 대부분 돈 때문에 결혼을 미뤘고, 그러다가 더러는 더 큰 그림이 생겨 비혼주의자가 된다. 가끔씩 연차 몰아 여행가는 것으로 버티며 꿈(결혼이든, 창업이든)을 이루려 죽도록 돈을 모으고 있다. 작가처럼 퇴근 후 사업가는 아니어도 아르바이트는 많이들 한다. 절반 정도 남은 고정관념이 두려움을 촉발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직과 창업을 대하며 산다. 마인드는 과도기지만, 어느 정도 사회 경험을 쌓은 후 창업하는 가장 어린 세대가 우리 또래지 않을까 싶다.

 

 

10%의 가용자원 투자로 직장을 다니면서 12개의 사업을 시작했다는 패트릭 맥기니스, 모두가 이 작가처럼 될 수는 없지만 모두에게 필요한 과제고 배울 점이라 생각하였다. 저자의 페이스북을 먼저 알고 종종 염탐하곤 했는데 그가 올해 낸 책이 비즈니스북스에서 발빠르게 번역되었다기에 얼른 읽어보았다.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할 궁금증어째서 직장을 다니면서사업해야 하는지, 10% 정도만 투자해야되는지부터 풀며 책은 시작한다. 패트릭 맥기니스가 주창한 ‘10%기업가The 10% Entrepreneur’의 핵심은 위험을 최소화한 안정적인 다잡이다. 그래서 사업이 망하더라도 꾸준한 소득이 발생하는 월급 직장이 필요하고, 지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정도의 투자가 필요하다. 유대기독교의 십일조문화에 익숙한 미국이기에, 현지에선 저자의 주장을 더 쉽게 받아들였을 듯싶다.

    

 

저자는 이러한 10%기업가 모델을 기회비용 제로를 달성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아주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런 느낌에 가까워질 수 있지만 실제 그런이 될 수는 없다고, 어떤 경제학적 선택이든 기회비용이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10%기업가의 개념과 원리에 대한 설명을 마친 저자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다른 여러 10%기업가의 사례를 말한다. 군더더기 없이(300쪽 미만) 꼭 필요한 방법론과 서식, 용어 해설만 담아 어떤 직장인이든 피곤하지 않고, 짬짜미 읽기 좋게 구성해놓았다. 검색해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책 속에 저자의 웹사이트, 페이스북, 트위터 주소를 실어놓아 연락할 수 있게 해놓았다.

  

 

먼저 읽은 지인이 이런 서평을 남겼다. 그 역시 직장을 다니면서 몇년째 스타트업 구상 중인 또래이다. 자신이 창업 준비에 투입하는 시간과 비용 얘기를 하며, 한 사업 창업을 하기에도 10%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작가가 남다른 학벌과 직업이기에 가능했지 보통 사람을 위한 모델이 아니라고. 그 얘길 듣고 창업은 아니고 등단을 꿈꾸며 열심히 글 쓰는 필자를 떠올렸다. 작년부터 매일 일:=1:1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자고, 먹고, 쉬는 시간을 그 사이에 넣어야 하는데 대부분 글 쓰는 12시간 안에서 쓰다가, 주말이나 휴가 기간을 거의 글쓰기에 올인하는 식으로 해서 1:1 균형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살아도 등단 시기는 턱없이 아득하고 습작은 당연하고 취재와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빡빡하다. 삶에 한가지 일(꿈)을 추가한다는 것도 참 만만치 않긴 하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12개의 사업을 시작했다> 자체는 당연히 다들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책의 사례를 가만 들여다보면 어떤 사업이나 직장 생활과 병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저자가 예시로 든 것 외에 이 책을 보고 다른 사업군을 개척했다는 독자들의 소식이 계속해서 들리길 간절히 바란다. 이 사업 모델의 지지자이자,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로서. 지인과 달리 필자가 이 책에 주목한 지점은 기회비용을 잘 느끼지 못할 만큼 부담 없이 사업을 대하는 태도, 10%투자하는 만큼 투자효율을 높이기 위해 더 예민하게 자신의 삶과 자산에 집중하는 태도, 월급쟁이가 결핍하기 쉬운 사업가들의 기질이었다. 그걸 가장 배우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직장에서 다니면서 12개의 사업을 시작했다>는 큰 자극이었다. 많은 샐러리맨들이 충분히 품어볼만한 꿈이고 롤모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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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 만화, 가능성을 사유하다
닉 수재니스 지음, 배충효 옮김, 송요한 감수 / 책세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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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사유를 부수고 전진시키는 비범한 만화





내 생각의 형태는 어떨까. 색은? 방식은? 변한 것이 있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있는지. 누군가에겐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엉뚱한 의문일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하였다. 충격적이고 버거웠던 신간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를 읽어내며, 그 생각을 더욱 총체적이고 집요하게 다시 했고, 그렇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며 깨달은 자신의 현황에 적잖이 놀랐다. 필자의 사유세계는 처음 숫자 중심적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숫자와 함수로 변환해 기억하였다. 예를 들어 어떤 지식을 어떤 책 몇 쪽의 좌표 몇으로 위치를 기억한다. 악보를 그래프처럼 읽어낸다. 숫자의 개념을 모른 아기 때부터 손가락, 발가락을 꼽으며 그렇게 생각을 하였는데,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참 자란 후에 알았다. 그 후 이미지적 사유와 언어적 사유가 더해졌다.



2015년 출간된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2016 린드 워드 그래픽노블상, 프로즈상를 수상하고 미국 도서관협회와 각종 언론에서 주목받았다. 책세상에서 발 빠르게 판권을 사 올 9월 번역 출간하였다. 이런 사실을 알기 전에 이 책이 하버드 대학이 출간한 최초의 만화 철학책’, ‘컬럼비아 대학의 논문 심사를 통과한 최초의 만화 철학논문이란 사실을 알았다. 이 타이틀만으로도 덮어놓고 찾아봐야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지성의 실험, 그 개척과 진보의 여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짜릿한 일이니. 이 책을 서둘러, 반드시, 직접 읽고 싶어 안달이 났던 이유가 또 있다. 출판사 홍보자료를 봐도 책이 잘 파악이 안 되어서 외국 서평을 읽고, 공개 컷들을 찾아봤는데도 어떤 책일지 가늠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닉 수재너스는 현재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인문학부 조교수라고 한다. 그런데 남다른 책만큼 이력이 남다른 저자다. 수학을 전공한, 교육학자이자 만화가이자 예술비평가라니(수학,미술 학사,석사/교육학 박사). 하버드 수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 중에 돌연 논픽션 만화가로 진로를 틀은 래리 고닉 같은 전례도 있긴 했다. 하지만 이 책이 저자의 교육학 박사학위 논문이면서 훌륭한 철학책이고, 그 자신은 만화에 가장 집중한다니. 이 책의 교육학적 주제는 가르침과 배움에 있어 시각적 사고의 중요성에 대한 논쟁이다. 그러나 언플래트닝(Unflattening)이라는 새로운 (철학) 개념의 주창으로서, 새로운 논문 형식의 주창으로서, 탁월한 작품성의 그래픽노블로서 등등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를 톺을 관점은 한없이 많다.




언플래트닝이라는 개념은 빅토리아 시대에 나온 수학소설이자 환상소설이고 SF소설인 에드윈 애벗의 <플랫 랜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모든 것이 납작한 평면의 2차원 세상 플랫 랜드를 다룬 이 소설에서 화자인 정사각형은 플랫 랜드를 벗어나 더 저차원인 라인 랜드와 더 고차원에서 온 구를 겪는다. 정사각형은 구 스승을 통해 3차원 이상의 차원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지만 4차원을 겪어보지 않은 구는 그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사각형은 4차원 이상의 세상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으며 자신의 플랫 랜드로 다시 돌아와 다양한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 여생을 투신한다. 그러나 플랫 랜드 주민 역시 겪어보지 않은 차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저자는 여기서 칼비노, 마르쿠제 등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더하며 개념의 살을 붙여나가고 마침내 완성한다.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가 결국 강조하는 다양한 관점의 사고이다. 평평하고 단순한 사고에서 벗어난 언플래트닝한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유용한 수단은 시각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8개의 장(단조로움/다양한 관점의 중요성/5차원/생각의 형태/생동하는 인간 실체/판에 박힌 길/벡터의 세계/자각)2개의 막간극장(플랫랜드/묶인 줄)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가능하고 보여줄 수 있는 그래픽노블로 독자들의 시각적 사고를 자극한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지식인을 동경하고 평생 지평의 확장을 위해 애쓰듯 저자가 제안하는 시각적 사고, 다양한 사고가 결코 쉽지 않음을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책을 읽고 있는 자세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읽으면서 이 책을 텍스트 논문으로 변환해 읽고 있었으며 이런 태도는 본문 뒤 마련된 작가노트, 참고문헌, 감사의 말, 초기 스케치들까지 다 읽고 있음을 깨달았다(이걸 읽으면 안그래도 남다른 그림이 얼마나 한컷한컷 지독하게 치밀한 구성이었음에 더욱 놀란다).




인간은 겪지 않은 것을 상상하기 힘들기에 고정된 시각을 철저히 전복하려면 노력만으론 불가능하다는 저자의 메시지를 읽으며, 문득 잊고 싶은 고통스러운 과거 하나가 생각났다. 20대 후반 반년 동안 투병했던 원인불명의 난독증. 그게 사고체계를 전복시켰다. 보다 언어적으로 정교하고 언어에 예민해진 대신, 나도 모르게 숫자에서 출발해 이미지로 한없이 유연해진 사고를 다시 언어적으로 축소시키는 후유증이 생긴 것이다. 200쪽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 만화를 보며 머릿속에서 텍스트 논문을 구성하며 책의 그림과 텍스트를 분리해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렇게 읽어 장점도 있었다. 감탄스러운 그림에 가려져 모를 뻔 했는데, 이 책의 텍스트 양이 상당하며 충분히 학위논문의 구성과 내용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심각하고 흥미롭게 이 책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필자의 이력과 관심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숫자에서 이미지로, 다시 언어로, 그리고 혼종으로 다양한 사고체계의 전복과 혼합을 겪었다. 평생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면서 난독증에 걸려봤다. 천성을 믿고 30대에 수학과 컴퓨터언어를 도전하며 문이예 섭렵을 향하는 생고생 중이다. <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는 일반 출간 후 교육학’ ‘논문으로서가 아니라 철학’ ‘그래픽노블로서 존재가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책 속에서, 독자들에게, 다면적으로 사고할 것을 목 놓아 외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을 특정한 프레임으로만 일독하고 그치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가 부디 저자의 바람처럼 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사고체계를 돌아보고 자신의 생각의 형태에 대해 진단해볼 수 있게 하는 자극제였으면 좋겠다. 그 파격과 부정, 전복과 모색의 시간이 행복한 진보의 여정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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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본질
올더스 헉슬리 지음, 유지훈 옮김 / 해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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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본질] 1948년 헉슬리의 신기하고 난해한 미래 전망

 

 


<멋진 신세계>는 분명 멋진 문제작이긴 하지만이 작품만으로 올더스 헉슬리를 아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영국의 저명한과학자 집안(친가)와 문학가 집안(외가사이에 태어난 올더스 헉슬리과학자와 의사를 꿈꾸며 의대에 진학했으나 장님에 가까운 시력으로 영문학가로 전과해서 여생을 문예비평과 소설에 투신했다. 20세기 영미문학에서 그처럼 풍부한 지식과 이지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으로치열하게 문학과 과학을 탐구한 작가가 있을까한국인이 좋아하는 외국작가를 조사하면 거의 빠지지 않고 늘 상위권에 있는 조지 오웰그러나 그의 스승이었고 <1984>에 영향을 준 올더스 헉슬리의 인기는 그리 많지 않다그래서일까, <멋진 신세계>를 필독서처럼 취급하면서도 그의 다른 작품들 번역은 활발하지 않은 가운데 올 가을 출판사 해윤에서 <원숭이와 본질>이 번역·출간되어 반가웠다.

 


올더스 헉슬리는 탤리스의 각본을 보여주겠다며 독자들을 자신의 디스토피아 전망으로 끌어드린다원숭이와 본질의 배경은 2108핵전쟁이었던 제3차 세계대전으로 뉴질랜드를 제외한 전 세계가 피폭되어 1세기 넘게 고립되었던 인류는 북미로 탐험대를 보낸다3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20세기 말은 무슨 영문 때문인지 원숭이들이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패러데이파스퇴르아인슈타인 등등 위대한 과학자들과 동명이인이 그 때에도 과학자이다유능한 학자는 원숭이들의 심기를 건드리지만 쓸모가 많은 지성인 포로이다원숭이 위정자들은 인간을 최후 심판(종말)하기 위해 인간을 수단으로 쓴다지성인 포로들이 생화학 무기를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원숭이들에게 완벽하게 조종당한 두 아인슈타인이 마스터 스위치를 누르는 것으로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진다헉슬리는 이를 ‘20세기 과학의 자살이라 표현한다.



1948년 발표한 <원숭이와 본질>은 양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헉슬리의 미래 전망을 엿볼 수 있는얇지만 녹록치 않은 소설이다혹시 피에르 불이 1963년 발표한 소설 <혹성탈출>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궁금해졌다원숭이가 인류를 지배하는 미래를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독특한 것은 분명 소설로 분류할 수 있긴 하지만 초반 30여 쪽을 제외하곤 소설에서 인물들이 읽는 영화 시나리오 전문을 그대로 싣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배보다 배꼽이 더 큰 소설시나리오(희곡)로 분류할 수도 있는 소설이다. <원숭이와 본질>은 간디가 암살당한 1948년 1월 30일의 시점에서 시작한다영화사에서 일하는 와 밥은 시답잖은 수다를 떨다가 소각장행이던 영화 시나리오 대본 더미에서 윌리엄 탤리스가 쓴 원숭이와 본질을 발견한다읽다가 흥미를 느낀 그들은 탤리스를 찾아가지만 그는 이미 6주 전에 죽었다.

 

  

그러나 끈질긴 생명력으로 누군가는 살아남는다하지만 문명은 퇴보된다피폭으로 기형아가 천지고여자들은 모든 악의 근원이라며 부정한 그릇이라고 불리며 멸시당한다그런 때에 뉴질랜드 탐험대가 북미로 떠난 것이고그들이 희망한대로 북미도 같은 영어를 쓰는 살 수 있는 곳이었다(뉴질랜드인들이 몰랐을 뿐같은 생각을 하며 각 대륙에서 누군가는 살아남아 살아가고 있다). 과거 WASP가 개척했던 땅은 벨리알(사탄)을 맹신하는 땅으로 바뀌어 있다. 20세기의 격동적인 인류의 비극과 현재미래 모두 벨리알의 섭리대로 가는 것이다3차 세계대전으로 기존 인간의 종교는 모두 부정된다그런데 탤리스의 시나리오상에 설정된 미래의 이 신흥종교는 신이 창조주 유일신 야훼에서 주요 대악마 중 하나인 벨리알로 주님이 교체되었을 뿐 종교 체제와 노래교리 등이 기독교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미래는 인류의 성생활부터 억압한다는 설정 등 <멋진 신세계>와 이어지고겹치는 설정이 제법 있어 그것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탤리스의 시나리오 대본 원숭이와 본질의 내용 대부분은 북미 개척을 떠났다가 납치된 식물학자 풀의 이야기다그는 인류 생존을 위한 식량 생산 증진의 사명을 받지만현지에서 만난 룰라와 사랑에 빠지고모든 것을 버린 도피를 시도한다흥미로운 발상과 온갖 패러디인용으로 가득한 소설이었다결말 처리도 매우 인상적이다그런데 전개 방식이 독특하다 못해 난해하고 불친절하다는 게 <원숭이와 본질>의 매력이면서 단점이다. 200쪽 조금 넘는 얇은 소설인데 줄거리 파악이 빨리 안 되는 것이 번역의 문제인지작가의 구성력 문제인지독해 역량의 문제인지 답답해하며 일독 후 얼마나 책 전체를 왔다 갔다 하며 다시 훑어보았는지 모른다.

 

 

예를 들어디졸브 장치만 두고 아인슈타인과 탐험대의 이야기가 한 내레이션 안에 있다처음부터 끝까지 원숭이의 이야기를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원숭이의 출연 빈도가 낮을뿐더러줄거리 맥락상 위정자 원숭이가 핵전쟁 이전에 존재한다면 원숭이가 무능한 위정자 인간의 비유일 뿐 진짜 원숭이가 아니란 생각도 든다이 원숭이가 그냥 원숭이가 아니고 유인원Ape’이기도 하니 말이다그런 의미에서 원숭이와 ‘and’로 묶이는 본질Essence’의 해석 여지도 매우 다양하다원문으로 꼭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멋진 신세계>와 달리 <원숭이와 본질>은 누구나 즐겁게 읽기는 힘든 소설 같다헉슬리 특유의 젠체함이 훨씬 심하고현대사와 유대기독교 음악·과학 등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읽을 맛이 좋아지는 소설이다문학사적 새로운 형식 제시와 작가의 욕심을 택할 것인가만인에게 사랑받는 불멸을 택할 것인가. <원숭이와 본질>을 읽으며 문학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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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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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을 살아보니] 곧 백세 노교수에겐 버킷 리스트, 어린 독자에겐 새길 인생론

 

 

 

‘#제발늙어서라고하지말아쥬남은여름이많소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여름나기의 힘듦을 토로하며 다음과 같은 해시태그를 달았다. 장수를 확신하고, 삶에 집착함을 드러내는 표현. 서른 이후를 삶이 내게 가져다 준 변화였다. 사회과학 용어 중에 ‘time horizon(시계,시평 정도로 번역하나 원어로 주로 씀)’이란 표현이 있다. 행동함에 있어 내다보는 시간의 범위로, 천성과 직업에 따라 달라진다. 대개 정치인들이 짧다. 천성이 엉뚱하고 별났던 나는 무사히 어른이 되고 오래 살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과연 10살이, 20살이, 30살이 될 수 있을지 아홉수의 마지막 날까지 의심하고 궁금하였다. 천지분간을 하기 시작한 때부터 어떻게 나는 오늘 살아 있는지가 매일 신기하여 신에게 감사하였다. 근거 없이, 서른 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던 내게 서른은 인생의 끝처럼 느껴지는 막막하고 무거운 것이었다. 그래서 서른 넘어서의 삶을 하루하루, 내가 감히 바라지 않았던 선물 같이 귀한 시간들로 살고 있다. 

 

 

오래 사는 기분, 치열하고 체계적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 그것이 궁금했다. 겪어보지 못한 것이고, 일부는 이미 지났기에 영원히 겪지 못할 것이기에. 김형석 박사를 처음 안 것은, 작년, 집에 있다가 어머니께서 애청하시는 MBN <동치미>에서 특강하시는 것을 우연히 보면서였다. 98세쯤에 연애를 다시 하고 싶다며, 정년퇴직한 지 30년이 지났어도 강연과 저술을 멈추지 않고 계속 미래를 계획하며 삶이 전진하는 그를 보며 고개가 숙연해졌다. 어머니도 감동 받고 팬이 되었다. 이달 초 나온 그의 신작 에세이 <백년을 살아보니>를 어머니 선물로 드리기 위해 들여서는 어머니보다 먼저 읽었다. 그의 저작 중 가장 읽기 쉬운 인생 에세이(인생론)’ 류지만 그에 대해 가장 궁금한 점이었다. 아무리 평균 수명이 늘었다지만, 아흔 넘어서까지 사는 것은 드문 일이고, 그 나이에 완벽한 의사소통과 거동 뿐 아니라 저술까지 가능한 것은 더더욱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백년을 살아보니>는 행복론, 결혼과 가정, 우정과 종교, 성공명예, 노년의 삶 다섯 가지 주제()로 한 장당 예닐곱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생 회고와 학문적 담론, 인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이 책이 말하는 것은 결국 하나다. ‘인생’. 책장은 술술 넘어갔으나 정신없이 인덱스로 표시하였다. 표시한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책 전체를,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선언적인 내용이었다. 그는 자신을 삶이 행복했다고 하면서 사랑을 강조하였다. 그는 독서하는 조국을 바랐다. 별거 없는데 별거인 교육철학이 있었다. 이 책은 인생 버킷 리스트의 일환이다. 표시한 두 번째 방향은 근 100년을 살며 굳혀진 나이에 대한 생각이었다. 대표적으로 적어도 사람은 75세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보다 수십 년 더 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고, 가질 수 있는 여유이다. 표시한 마지막 방향은 책 군데군데 박혀 있는, 아포리즘 삼을만한, 한두 문장의 표현들이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공통적으로 부정한 것이 있다. 노인의 가치.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존경받을 가치 없는 꼰대라고 별별 이유와 별별 예시를 들어 노인을 존중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사람이 훌륭한 젊은이가 아니고 훌륭하게 삶을 살아내지 않듯 모든 노인이 훌륭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인간의 연륜을 부정하는 것은 이념은 갈려도 결국 기저 공통분모는 경제 논리 때문이다. 이 소외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세월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끔찍한 것임에도, 아직 늙어보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생각한다. 김형석 박사의 이 신작 에세이를 읽으며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치부하는 귀한 것, 인류 역사와 정신의 근간인 연륜을 새기고 존경한다. 특히나 격동의 한반도 백년을 온몸으로 겪은 그가 육필로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역사기록과는 또 다른, 전율마저 느끼게 하는 별스러움이 있다. 98세 연애담도, 진짜 100세 이야기도 들을 수 있길. 멋진 어른을 알아 신명이 한참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백년이 늙은게 아니라 세월이 흘러간 것이라던, 몇달 전 SBS 뉴스 인터뷰가 깊게 인상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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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프리다 칼로 지음, 안진옥 옮기고 엮음 / 비엠케이(BMK)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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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절절 끓는, 프리다 칼로의 맨흔적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할 줄을 몰랐던, 한없이 젊고 건강할 뿐 제 청춘을 가늠하고 감당할 줄 모르던, 스무 살 때, 프리다 칼로를 처음 만났다. 부서진 여자였다. 온몸이 산산조각났으나 살아 견디는 느낌은 무엇일까. 2000년대 중반 대학가, 프리다 칼로를 여성해방과 사회주의의 투사의 프레임을 씌어 조명하는 시도가 많았다. 프리다 칼로를 그렇게 읽으려는 사람들은 프리다 칼로가 천재지만 바보라 하였다. 디에고 리베라는 너무 어린 프리다 칼로를 잡아먹어 그의 온 정신과 삶을 뒤흔든 천하의 나쁜 남자, 그에게 평생을 휘둘린 천치 같은 프리다 칼로. 역시 페미니스트나 공산주의자가 될 일말의 싹수가 없었던 걸까. 열강을 뒤로 하고 귀가 먼 채 그의 그림만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세상에 단둘만 있는 느낌이 들던 그때, 나는 다른 시공을 살았던 그가 몹시 궁금했고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가 수없이 그린 자화상 중에 가장 마음을 파고들고 떠나지 않았던 1944년 작 <부서진 기둥>.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처럼 나는 그 사람이 아픈느낌을 알게 한 여자, <부서진 기둥> 그 자체로 가슴에 새겨진 사람 프리다 칼로. 

 

 

이미지로 기억된 대상은 스위치를 켜고 끄듯 한 순간에, 그에 대한 모든 시간과 감정들이 살아난다. 5, 동아일보사를 지나치다가 걸음을 멈췄다. 사벽에 커다란 <부서진 기둥>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10여 년 전의 덩어리가 속을 찢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올해도 프리다 칼로 전시회가 열린다고? 작년에 소마 미술관에서 멕시코 정부 특별 허가로 프리다 칼로 국내 최초 전시회가 있었기 때문에 다음 전시회까지 한참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한가람 미술관 전시회는 프리다와 디에고의 그림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멕시코 올메도 미술관의 소장작품 초대전. 작년에 100여 전시품 중 프리다 칼로 그림은 단 6개밖에 없었으니, 60여 전시품 규모의 올해 전시도 큰 기대는 접어야겠지만 2년 연속 한국에서 그의 그림과 물건들을 접할 수 있다니 설레고 또 설렜다.

 

그러던 차에 지난 6월 프리다 칼로가 죽기 전 10년 동안 쓴 일기를 모두 엮은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BMK에서 출간되었다. 번역을 맡은 안진옥 우리나라에서 라틴 미술 전시하면 이 분과 마주치지 않기 힘들 정도로 국내 라틴 미술 통으로 유명한 스페인라틴 미술 전문 기획자(언어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아르헨티나 유학파)이자 큐레이터고 미술관장이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10여권 책을 낸 출판사라는데 잘 몰랐다. 그럼에도 책을 제대로 훑어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책을 선택한 것은 역자 안진옥에 대한 신뢰 때문이기도 하였다. 큐레이터도 미술 전공자도 아닌, 먹고 살기 바쁜 평범한 월급쟁이라 그의 활동은 기사로만 접했었는데도 호기심과 존경심을 일으키는 분이었다. 물론 구하기 힘든, 프리다 칼로가 직접 그리고 쓴 프리다 칼로 자료란 점에서도 무조건 집을 가치는 충분하다. 2004년에 다빈치 출판사에서 프리다 칼로의 편지와 일기, 강연자료들을 발췌해 엮은 책이 나온 적이 있는데 현재 절판 상태라 이 책이 현재 국내에서 유통 중인 유일한, 프리다 칼로의 책이다.

 

디에고 시작

디에고 제작자

디에고 나의 아이

디에고 나의 남자친구

디에고 화가

디에고 나의 애인

디에고 나의 남편

디에고 나의 친구

디에고 나의 어머니

디에고 나의 아버지

디에고 나의 아들

디에고 = =

디에고 우주

일관성의 다양성 - .p.113 

 

 

 

 

여러모로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책이었다. 서지사항부터 특이했다. 역자가 직접 책 판권에 참여했으며, 편집 등 책과 관련한 연락처가 북디자인을 맡은 아르떼와 연결되어 있으며, 출판사 비중만큼 공급처(일원화)가 다루어져 있다. 그런 그들이 만든 책이 어떤 책인지 열심히 살펴보며, 원서를 찾아보았다. 1995년 출간된 원서(2005년 한 차례 개정)의 제목은 그냥 프리다 칼로의 일기El Diario De Frida Kahlo’이다. 프리다 칼로의 일기장 자체도 굉장히 전시와 연구 가치 높은 작품으로 봐도 손색이 없는데, 그 사본을 직접 훔쳐보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책이다. 그러나 언어의 장벽상 우리가 그걸 그대로 볼 수 없는 일. 비엠케이의 번역본이 대단히 섬세했던 대목은 원서에 일기의 번역을 더하며 원문의 지워놓은 표시나 색깔 구분, 글자의 크기 같은 것까지 최대한 살려놓았다는 점이다.

 

원서의 경우 일기 사본을 다 보여준 후 책 뒤에 각 일기에 대한 해설을 달아놓았다. 그러나 비엠케이의 한국어 번역판은 그 해설을 원문 번역 다음에 놓음으로써 일기 원문-일기 번역-일기 해석을 함께 볼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원서가 독자 스스로 프리다 칼로에 집중하고 일기 사본 그대로 열람하게 해놓았다면, 한국어 번역판은 독자가 프리다 칼로의 일기를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재편집한 상태이다. 다만, 1쇄의 경우 원문과 일일이 대조해보면 오타가 몇 개 나오는데 웬만해선 찾기 힘들다. 프리다 칼로가 가장 육체적으로 쇠약했던 말년에 썼던 일기, 아주 사적인 기록인 만큼 찢고 더하고, 지우고를 반복해놓은 일기이기에 스페인어에 유창하더라도 완벽하게 독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글마저 그림처럼 느껴져 일기 자체가 작품처럼 느낀다고 앞서 표현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첫 번째 신념은 동조하지 않는 것이다. 반혁명-제국주의-파시즘-종교-어리석음-자본주의-부르주아가 꾀하는 계략의 전 범위에 억압받는 계급을 위한 조화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계급이 없는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혁명에 동참해야 한다. 두 번째, 혁명의 동지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레닌-스탈린-을 읽어야 한다. 내가 혁명 운동에 있어 가치 없는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혁명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죽지 않고, 절대 무익하지 않다. - p.166

 

 

사실 이 책의 기획과 존재는 프리다 칼로에게 대단히 잔인하다. 유명한 그를 조금이라도 더 탐하고 싶어 기어이 죽기 년 10년간의 일기를 책으로 펴낸다는 것, 분명 예의 있는 행동은 아니다. 그 책을 소중하게 여기며 탐하는 독자 역시 예의 있지는 않는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삶과 예술이 고통 그 자체였던 화가를 잔인하게 더듬고 장렬하게 신음한다. 10여 년 전 감히 품었던 소원을 푸는 시간이었다. 그와 그의 그림에 조금의 감흥과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우스운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처음 그의 삶과 그림을 접해 꽂혔던 스무 살의 여자아이는 그를 너무 사랑해서 그의 고통까지 함께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이미 죽은 그의 고통이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그를 더 알고 최선으로 마음을 건네고 싶었다.

    

마치 원서의 제목인양 한글과 영어로 영혼의 일기Diary of the Soul’라고 표현한 것은 국내 대표적인 미술 스테디셀러 중 하나인 예담의 <반 고흐, 내 영혼의 편지>를 의식한 것도 있는 것 같다. 이 책이 프리다 칼로의 일기이든 내 영혼의 일기이든 상관없다. 그저 남(출판사)이 붙인 것이니. 중요한 것은,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프리다 칼로의 일기장 사본을 읽으며 그의 마지막 10년을 함께 걸어보는 시간이었고, 일기가 뿜어대고 있는 한 사람(일기장의 주인) 그 자체였다. 프리다 칼로는 프리다 칼로이다. 한 사람을 처절하게 사랑했고, 공산주의에 빠졌으며, 장애와 사고로 평생을 아팠지만, 여성으로서의 자신에 천착했지만 그 어떤 것도 프리다 칼로를 규정하는 전부일 순 없다. 변태처럼 집요하게 그의 일기를 훔쳐 읽으며, 그의 취향이나 사상, 고민, 작품세계들을 깨닫고 머릿속에서 조합하며 그를 좀 더 깊게 이해하려 애썼다. 물론 이것도 일기로 기록된 10년 동안의 프리다 칼로일 뿐 프리다 칼로 전부는 아니지만.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자랑이다. 그의 그림은 국보로 분류하여 까다롭게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생전의 그를 처음 발굴한 것은 프랑스였고, 처음으로 개인전을 가진 곳은 미국이었다. 그렇게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린 지 12년 만에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가 아닌 화가 프리다 칼로로 살기 시작하였고 죽기 1년 전에야 멕시코에서 개인전을 하였다. 멕시코 최고의 국립학교의 의학도였을 만큼 명민한 그였지만 시대와 육체가 비극이었다. 그 역시 수없는 사랑에 빠졌지만 사랑스러운 뚱뚱보 코끼리 리베라를 평생 아꼈던 여자, 그토록 아기를 원했지만 기형으로 3번이나 유산하며 끝내 엄마가 되지 못한 여자,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그리고 아름답게 자신의 삶을 이어나간 여자. 프리다 칼로의 이 일기는 절절 끓는, 그의 맨흔적이다. 변태 같은 뒤틀린 애정이라 손가락질하더라도 기꺼이 삼켜볼 용광로이다. 그럴 수 있어 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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