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1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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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아홉 단편으로 나타난 사내

 

 

 

어째서 한 가지 외모로만 살아야 하나? 매번 똑같은 인물로 살아가는 위험을 왜 감수해야 하나?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나를 분간해낼 수 있는데 말이네. 아무도 이 사람이 바로 아르센 뤼팽이다라고 단언하지 못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네. 중요한 건 누구나 아르센 뤼팽이 이런 일을 했다라고 확신한다는 것이지. - 아르센 뤼팽(p.28)



2010년과 2011년만 해도 조용해 별 주목을 못 받다가 2012년 출판계를 뒤흔든 문제아가 있다. 미르북컴퍼니의 더클래식 시리즈이다.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유명 작품을 엄청 빠른 속도와 싼 가격으로 번역본을 내놓았다. 일본 책이든 독일 책이든 영미 책이든 모두 영문판을 붙여 어학 학습서(실용서)로 판매함으로써 개정 전 도서정가제에서도 출간과 동시에 마음대로 할인이 가능했고 개정 후 도서정가제에서도 재정가가 가능한 18개월 이상 구간은 재정가를 통해 예전 같은 파격가로 판매하고 있다. 전자책은 더욱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팔았다. 빠른 번역과 낮은 가격 때문에 좋은 번역가를 구하기 쉽지 않아 엉망인 번역본들이 속출했지만, 출판사는 일단 책부터 빨리 내놓고 박리다매로 얻은 수익을 얻은 후 수정쇄를 만들고 다른 책의 번역 질을 높이는 전략을 고집하였다. 많은 출판사들이 번역서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비난하였다. 하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간간히 좋은 번역본도 나왔고, 특히 평소 책을 많이 안 읽고 책값이 비싸다고 투덜대던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더클래식 시리즈와 유사한 시리즈가 또 하나 나타났다. 참돌의 출판브랜드 코너스톤, ‘원전’ ‘완역본원칙을 고수하면서 낱권 당 5900원에서 9900원의 파격적인 가격을 자랑한다. 그로 모자라 세트로 사면 낱권 당 가격이 평균 3000원대에서 4000원대로 떨어지고, 전자책으로 사면 몇 푼 안 되는 가격에 영문판을 끼워주는 기적의 셈법을 자랑한다. 번역은 번역집단 중 가장 신뢰를 많이 받으며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중국어, 이탈리아어 6개 국어 번역이 가능한 바른번역에게 맡겼다. 2012년 셜록 홈즈 전집, 올 초 데일 카네기 전집에 이어 이달 초 아르센 뤼팽 전집 절반 분을 내놓았다. 특히 아르센 뤼팽 전집은 잘 만들어져야 하는 책이었다. 현재 바른번역의 명성은 전적으로 영미번역 때문에 만들어졌다. 영미번역으로 시작했고, 다른 외국어 부문은 아직 약한 편이다. 프랑스어 부문의 경우 번역가 풀 자체가 굉장히 빈약하다. 기존의 까치글방 완역본과 황금가지(민음사) 완역본이 12년 이상 되었기 때문에, 잘만 만든다면 출판사에게도 바른번역에도 보배가 될 수 있었다.

 

 

아직 나머지 절반분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에 나온 1차분만 놓고 보면 일단 합격점이다. 바른번역 자체도 왓북이라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영미번역 그룹에서 2013년 아르센 뤼팽 단편들을 500원짜리 전자책으로 내놓았던 적이 있다. 번역이 거의 번역가 지망생의 연습 숙제 같은 조악한 수준이었는데, 단 한 문장도 쓰지 않고 이번에 완전히 새로운 번역본을 내놓았다. 코너스톤 아르센 뤼팽 전집엔 원전에 대한 정보라든가 작품 해설, 역자 후기가 전혀 없다. 그래서 중역본인지 직역본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은 아쉽지만, 문장이 가독성 좋고 깔끔해서 만족스럽다. 장르문학 전문가인 장경헌과 나혁진에게 감수를 맡겨 비 장르문학 번역가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주석은 그렇게 많지 않고, 본문 상에서 괄호로 처리하였다. 아르센 뤼팽 시리즈 자체가 마니아 코드가 심하다거나 내용이 어려워 주석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품이 아니기에 이 정도의 주석 양도 충분하다.

 

 

모리스 르블랑은 20대 중반부터 작가 생활을 시작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지만 별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리고 40대 초반 편집장의 제의로 신간 잡지 <주 세 투>에 연재한 아르센 뤼팽 단편들이 돌풍을 일으켰고, 죽을 때까지 아르센 뤼팽 시리즈 집필에만 매달린다(오랫동안 아르센 뤼팽 시리즈 마지막 작품은 <아르센 뤼팽의 수십 억 달러>로 알려져 왔으나 그 후에도 써왔고 죽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은 원고가 있다는 사실이 19년 전에 발견되었음.). 모리스 르블랑은 양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는데, 전쟁 중에도 발표 공백이 2년이 넘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래서 아르센 뤼팽 전집은 모리스 르블랑의 출세작이자 그의 전부이다. 모리스 르블랑은 젊은 시절 지금의 아이돌 소녀 팬들처럼 당대 쟁쟁한 프랑스 문인들을 쫓아다녔고 특히 모파상을 열렬히 숭배하였다. 뤼팽은 평생 프랑스적인것을 고민하던 그가 만든 궁극의 프랑스적 슈퍼 히어로였다.

  

 

장르문학계에서 아르센 뤼팽 시리즈는 장르문학사의 중요한 고전으로 인정하는 것 외에 크게 평가를 하지도 않고 관심도 별로 없다. ‘오타쿠로서 팔 거리가 별로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가 정교한 트릭을 맞추는 재미를 별로 느낄 것도 없고, 변신에 능하고 로맨티스트이며 기타 등등 성격적으로 엄청나게 매력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허구한 날 잡혔다가 도망갔다가 난리다. 하지만 그런 점들 때문에 아르센 뤼팽 시리즈는 국민 오락 소설이 되었다. 부자들이 가진 온갖 보물들을 훔치지만 순전히 재미로 즐기는 것일 뿐 탐욕이 없다. 길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를 만큼 별별 모습으로 분하며 프랑스 전역을 활보하고, 프랑스인의 온 몸은 낭만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쟁 중에 잠시 현실 도피하게 해준 웃기는 친구였고, 30년 이상 이어지며 당대 프랑스와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으니 어떤 프랑스인이 뤼팽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주 세 투>의 편집장 피아르 라피트은 셜록 홈즈의 대항마를 원했고, 자신의 잡지가 프랑스의 <스트랜트 매거진(셜록 홈즈 시리즈 연재처)>가 되기를 바랐다. 재밌는 것은 모리스 르블랑은 코난 도일도 셜록 홈즈도 전혀 모른 상태에서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내놓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처음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의식은커녕 홈즈 자체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독자들이 뤼팽에 처음 전율을 느낀 것은 허를 찌르는 설정들 때문이었다. 주인공이 도둑인데 정의와 불의의 경계에 있는 애매한 인물이라 선악을 판단할 수 없고,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첫 두 단편 제목은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감옥에 갇힌 아르센 뤼팽이었다. 이미 셜록 홈즈의 인기가 대단했던 프랑스였지만, 뤼팽은 자존심 강한 프랑스인들의 심리 기저-프랑스를 대표하는 새로운 영웅에 대한 갈망-를 건드리며 단숨에 그들을 사로잡았다.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 우연히 뤼펭의 친구가 된 이가 뤼팽에게 직접 들은 체포담. 항해 중인 프로방스 호에 아르센 뤼팽이 타고 있다는 전보에 가니마르 형사 일행은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 마침 승객 넬리 양의 보석 도난 사건이 벌어지는데…….

감옥에 갇힌 아르센 뤼팽 프로방스 호 사건으로 수감 중인 뤼팽, 말라키 성에 사는 카오른 남작에게 그의 보물을 훔쳐 가겠다는 뤼팽의 예고장이 도착하는데…….

아르센 뤼팽, 탈옥하다 말라키 성 사건 이후 가니마르에게 탈옥하겠다고 호언장담한 뤼팽, 정말 감쪽같이 심리법정에서 사라지는데…….

불가사의한 여행객 뤼팽의 회고담. 포박에 가방을 빼앗기는 굴욕을 당한 뤼팽, 그것도 모자라 다들 범인이 뤼팽이라고 생각하는 상황. 뤼팽은 줄을 풀고 가짜 뤼팽을 잡으러 가는데…….

왕비의 목걸이 꼬마 뤼팽과 연관된 왕비의 목걸이 도난 사건. 뤼팽의 가족사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

하트 7 얼떨결에 뤼팽의 전담 연대기 작가가 된 사연. 하트7이란 이름을 가진 잠수함과 그에 얽힌 사람들의 실체와 관련된 기묘한 이야기

앵베르 부인의 금고 아르센 뤼팽이 유명해지기 전, 뤼팽이라는 이름 자체도 없던 시절의 이야기. 뤼팽은 자신의 생애 최초로 어떤 부인에게 보기 좋게 속은 사건을 친구에게 털어 놓으며 흥분한다.

흑진주 흑진주를 훔치러 간 뤼팽, 흑진주는 없고 한 여인이 죽어 있다. 당연히 가니마르는 범인으로 뤼팽을 의심하고, 뤼팽은 직접 진범을 찾아 나선다.

헐록 숌즈, 한발 늦다 뤼팽과 숌즈(홈즈)의 첫 대면. 뤼팽의 정체를 알고 뤼팽을 잡으러 나선 숌즈는 뤼팽을 보고도 놓치는데다가 뤼팽에게 소매치기까지 당하는데…….

 

모리스 르블랑은 아홉 편 연속 단편소설로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내놓는다. 그걸 엮은 아르센 뤼팽 전집 첫 번째 권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은 아홉 단편으로 표현한 아르센 뤼팽의 자기 소개서 같은 책이다. 때로는 다른 입을 통해, 때로는 뤼팽 자신이 직접, 때로는 전지적 시점을 통해 뤼팽이 벌인 아홉 개의 사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스스로도 자기 자신의 원래 외모를 잘 모르겠다고 할 만큼 변신에 능한 장점을 살려 신출귀몰한 뤼팽, 특히 그가 날리는 예고장은 이후 수많은 괴도물이 오마주로 이용하는 코드가 되었다. 모리스 르블랑은 아홉 번째 단편 헐록 숌즈, 한발 늦다를 통해 처음 뤼팽과 숌즈(홈즈)를 만나게 한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이기려고 만들었기에 아르센 뤼팽 시리즈에서 숌즈는 뤼팽에게 늘 지고, 독자들은 그걸 아는 상태에서 둘이 어떻게 투닥이는지를 지켜보기 위해 책장을 넘긴다. 헐록 숌즈, 한발 늦다를 읽고 아쉬움을 느끼기도 전에 두 중편 소설로 이루어진 뤼팽과 숌즈의 대결 <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가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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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성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3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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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성] 명불허전 아르센 뤼팽 시리즈 대표작

 

 

 

프랑스 노르망디 북서부 해변에 에트르타(Étretat)라는 도시가 있다. 이 도시 해변에는 에기유 크뢰즈(L'Aiguille Creuse;구멍 뚫린 바늘)라 불리는 독특한 바위 절벽이 있는데 ‘악마의 이빨’이나 ‘코끼리 바위’라는 별칭으로 더 익숙한 곳이다. 코끼리 같은 아치형 절벽이 셋 모여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두 번째 크기의 아치형 절벽. 모리스 르블랑이 속이 비어 해저터널로 연결된다는 상상력으로 아르센 뤼팽의 ‘비밀 창고’의 위치이자 같은 제목의 소설로 만든 장소이기도 한다. 그래서 생김새 자체도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기암성>의 실제 모델이라는 이유로 오늘날에도 관광 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원제도 그렇고 소설 안에서도 에기유 크뢰즈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되는데 왜 제목은 ‘이상한 바위 성’이란 뜻의 <기암성>일까. 일본이 이 소설을 번역하면서 처음 고안한 이 단어를 우리가 그대로 따라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단 두 나라만 아르센 뤼팽 시리즈 세 번째 책을 <기암성>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의 소설가 쥘리앵 그라크는 <기암성>을 “프랑스어로 쓰인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라며 극찬을 하였다. 아르센 뤼팽 시리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자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다. 아예 <기암성> 자체가 아르센 뤼팽의 전부인지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을 만큼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모리스 르블랑은 <기암성>을 발표하던 해 피가로 지에 짤막한 에세이 형태로 자신의 추리소설론을 발표하며 아르센 뤼팽 시리즈에 대한 집필 철학을 완전하게 세운다. <기암성>에는 모리스 르블랑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상상력, 프랑스적 가치의 강조, 헐록 숌즈(셜록 홈즈)에 대한 조롱 등이 모두 담겨 있다. <기암성>의 백미 중 하나는 철가면과 뤼팽의 연결이다. 그 때문에 연재 당시 역사적 서술이 늘어졌던 것을 줄여 1909년 정식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기암성>이다.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1907)>, <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1908)>, <기암성(1909)>는 연달아 나온 작품이다. 그런데 <기암성>은 마치 전작들과 오랜 공백이 있었다고 착각할 만큼 작품성에 있어 현격한 발전을 보인다. 복선도 정교해지고 전개도 복잡해지며, 시공간적 폭이나 주제와 소재도 훨씬 확장된다. 아마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은 단편집이었고 <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는 아르센 뤼팽 시리즈 집필 동기인 ‘반 셜록 홈즈’적 철학에 충실해 홈즈를 공격하는 데 최선을 다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기암성>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된 아르센 뤼팽 소설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기암성>에도 역시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후반부부터 모습을 드러낸 숌즈가 출연한다. 그런데 <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보다 더 무능하다. ‘셜록 홈즈’라기 보다는 동명이인의 악당에 가까울만큼 홈즈스럽지 않아 셜로키언들을 부들부들거리게 한다.

 

 

소설은 제르브르 백작 집을 울리는 총소리로 시작한다. 괴한이 침입해 백작의 비서를 죽였는데 훔친 물건은 없다. 백작과 함께 사는 백작의 조카 레이몽드가 쏜 총에 범인이 맞지만, 범인은 용케 도주한다. 대장이 죽었다면 레이몽드는 각오해야 할 것이라는 협박편지를 남기고선. 유명 외과의사 들라트르가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사건을 통해 대장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보트를레의 활약으로 금세 사건이 종결되는 듯 하지만 보트를레의 아버지와 레이몽드가 납치되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 <기암성>에서 뤼팽의 적수는 중년의 영국인 숌즈가 아니라 프랑스의 고등학생 보트를레다. 모리스 르블랑은 보트를레를 통해 뤼팽은 ‘셜록 홈즈’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남다른 인물이며, 굳이 뤼팽에 맞설만한 인물이 필요하다면 프랑스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노골적으로 내비친다. 아버지와 레이몽드의 납치로 완전히 국면이 바뀐 사건, 유일한 단서인 암호문을 풀며 보트를레는 뤼팽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마주하는 것이 에기유 크뢰즈에 있는 작은 성 에기유, 영국 왕실에서 프랑스 왕실로 이어져 오며 엄청나게 축적한 보물이 있는 곳이었다. 실제 역사적 사실과 모리스 르블랑의 상상력이 섞여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헷갈리는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기에 정신없이 몰입하게 된다. <기암성>의 이야기판이 얼마나 뒤집히는지, 보트를레에 이입해 함께 암호문을 풀어가면서 얼마나 짜릿함을 느끼는지, 작가가 얼마나 능청스럽게 역사를 이용하는지 꼭 스스로 확인하길 바란다. 강성 셜로키언만 아니라면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저평가하는 독자들도 <기암성> 정도는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아르센 뤼팽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중 하나가 엄청난 로맨티스트라는 점인데, 뤼팽의 손바닥에서 노는 보트를레의 모험 겸 성장소설을 열심히 탐닉하다가 마주하는 그 뜻밖의 로맨스와 인간미란. 명불허전! 역시 대표작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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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안녕하세요. 이섬입니다.

지금 분명 주말 그런 것 모르고, 1일날 오겠댔는데 하시는 분 계시지요?

애독자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네네, 지금은 2015년 3월 2일 새벽 3시. 말똥말똥한 눈으로 타이핑하는 시간

이 페이퍼를 제 개인 블로그에서 보시는 분은 아실텐데요.

제가 3월부로 벌려 놓은 글일이 엄~~청 많습니다. 쓰기 기계되었음.

그리고 지금 상반기 공채가 시작되었지요. 저 완전 큰일났습니다. 으하하.

그래서 오늘 쉬는 대신에 주말 열심히 근로하고 뻗은 관계로

페이퍼, 오늘 배달 왔습니다.

 

moon_and_james-40

중년의 비애라고 인정하긴 슬픈데, 몸이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히히

다이어트 중인데 오늘 11시 30분에 동네 시장에 닭강정 400g 사먹으러 갈 것임.

왠지 그거 먹으면 호랑이 기운 충전될 것 같다고 우기며!!

헛소리 이만 자시고 추천 시작합니다.

 

 

moon_and_james-34

검토한 2월 신간은

인문 250↑+사회 350↑+과학 170↑+예술 150↑+다섯번째 책 선택을 위한 알파 검색

2015년 2월 인문/사회/예술/과학 출간 경향은

- 작은 출판사는 활발하고 큰 출판사는 몸 사리고

- 1월에 이어 대학 교재 및 리더 많이 출간

- 일수가 짧고 설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출간 책 수가 줄었음, 특히 예술과 과학 교양서

- 아들러와 컬러링북 밀기는 계속

틀리든지 말든지 재미로 해보는 2월 최종 결과 예측

이달 출판계와 언론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았던 핫북은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과 <자발적 복종>

갑툭튀 다크호스는 드디어 완역본 나온 주커버그의 찜북 <권력의 종말>

지금 최종 선정 책이 큰 출판사 1종, 작은 출판사 1종이 되고 있는데

워낙 이 달엔 작은 출판사의 좋은 책이 너무 많고,

큰 출판사들이 너무 안전하게 출판들을 해서

작은 출판사 책 2권으로 다 될지 아닐지 대단히 궁금해짐

 

 

 

 

 

 

 

 

 

 

 

 

 

 

 

 

[인문]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스콧F.파커外/따비/2015.02.10

그렇게 '1월'에 나온 책만 추천하라고 했는데 이 책을 추천했던 그룹원이 있었을 만큼 2월 신간 중 가장 출판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은 책을 꼽으라면 이 책과 <자발적 복종>을 꼽고 싶습니다. 따비는 음식과 관련된 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주목해야 합니다. 단순한 요리책보다는 어떤 음식과 관련한 인문사회학적 이야기를 푼 책들을 잘 만들고 잘 번역하는 출판사기 때문입니다. '편집 인문학', '편집 교양' 책들은 생각하기 싫어하는 작금의 트렌드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 역시 커피에 대한 18가지의 담론을 엮어놓은 '편집' 책이긴 한데요. 철학자와 커피전문가가 함께 사유를 나누고 엮어 놓은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던걸요?

 

[사회] 권력의 종말/모이제스 나임/책읽는수요일(KPI콘텐츠그룹)/2015.02.28

금연, 다이어트, 어학과 함께 식상한 새해 4대 다짐인 '독서', 정초에 새웠던 찬란한 독서농사 계획 3월이 시작된 지금도 잘 지키고 계신지요. 많은 분들이 주커버그의 "2주 북클럽" 선정서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시고, 실제 실천하고 계신 분도 계셨을텐데요. 모이제스 나임의 <권력의 종말>은 번역서가 안 나왔더랬습니다. 그래서 많은 온라인 서점들이 수입도서는 도서정가제 제외인 것을 이용해서 <권력의 종말> 원서를 무척 싸게 팔고 있지요. 그.런.데!! 2월의 마지막 날 드디어 완역본이 출간되었습니다. 급번역은 아닌가 번역 상태가 궁금하기도 하고 욕서평이든 찬양서평이든 서평쟁이라면 글쓰고 싶어 놓칠 수 없는 신간입니다.  

 

[역사] 책의 문화사/데틀레프 블룸/생각비행/2015.02.16 

20세기 말 사회문화사 영역의 한 갈래로 ‘책과 독서의 역사’라는 세부 전공이 생겼습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가 이 분야 초기 연구서 중 대표적인 책이죠. 그러나 그 동안 관련 책이 손꼽을 만큼이었는데 한 2, 3년 전부터 자주, 꾸준히 출간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용들이 비슷비슷하다는 것인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다른 뭔가를 더 알기 위해 책쟁이들에겐 이런 책은 참새가 멈추는 방앗간 같습니다. 

 

 

  

 

 

 

 

 

 

 

 

 

 

 

 

[과학]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조던 스몰러/시공사/2015.02.02

인류의 역사 중 한 방향은 '차이의 인정과 정상의 확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비정상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이해할 수 있는 차이 혹은 완전한 정상으로 인정받게 되었죠. 저자는 현대 정신의학이 '비정상'에만 관심을 갖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그렇다면 '정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이 책을 썼습니다. 정신의학, 진화생물학, 신경과학, 유전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 접근한 ‘정상성’에 대한 탐구의 여정. 저만 혹한가요?

 

[예술]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카롤린 라로슈/윌컴퍼니/2015.02.24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오마주와 패러디, 표절과 모방에 무척 예민합니다.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는 명화도 '베끼기'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신간인데요. 누가 누구의 영향을 바꿨는지 미술사를 '베끼기'의 관점에서 재밌게 접근해보는 책입니다. 두께도 두껍지 않고 수록 그림 수도 200여장에 불과한데 총천연색으로 만들었고, 수요가 폭발적인 책은 아니다보니 단가가 좀 쎄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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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5-03-04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좋아요. 저처럼 그냥 책만 골라 올려 놓는 사람이랑은 너무 비교되네요. 아는 게 없어서리.. 정상비정상.. 커피 요 두 개 꼭 읽고 싶네요. 아 내가 왜 딴 반 와서 이럴까요. 문학 책 읽기시작도 안했는데

이섬 2015-03-04 01:18   좋아요 0 | URL
ㅋㅋ 저도 그렇습니다. 종합그룹으로 뽑는 곳이 좀 있었음 좋겠어요. 잡식성이라 특정 분야에 매어 있는 게 참 힘들더라구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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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_and_james-15 

저는 금토일에 글 쓰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러나 저 오늘 눈 뜨자마자부터 지금까지 주구장창 글만 쓰고 앉아 있음-_-; 뻔지르를 욕망한 대가ㅋ

토요일에 오백년 만에 놀기로 했는데 못 놀까봐 지금 엄청 스트레스 받는 중ㅠ

 

 


sally_and_friends-1에, 아무튼, 2월 25일 늦은 오후 드디어!!

알라딘 신간평가단 15기 - 2015년 1월의 신간이 선정되었습니다~~

명절이 있었던 것도 있고 선정을 놓고 각종 시련(?)을 좀 겪느라 많이 늦어졌습니다.

짬이 이제야 나서 늦게 후기 올립니다. 죄송ㅠㅠ



지난 번 개인 페이퍼 때 보고했다시피

이번 달에 저희 인문/사회/과학/예술팀 검토한 2015년 신간 수는

인문 270↑+사회 330↑+과학 300↑+예술 200↑+다섯번째 책 선택을 위한 알파 검색

해서 중복 포함 1,100 종 이상입니다.


이번 달은 20명 팀원 모두 참석했으며

첫 달보다 크게 줄었으나, 여전히 1월이 아닌 2월에서 뽑힌 책이 7권 있었고

이를 집계에서 제외해 총 제외하기로 하였습니다.

 

 

 


 

 

 

 

 

1월 저희 그룹 추천 취합 결과를 평해보자면!!

"나올 만한 책"이 거의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주 마이너 취향이고 뜻밖의 추천 도서는 손꼽을 정도

제가 개인 페이퍼를 쓸 때 마음 속으로  

이번 달 유력 출판사로 김영사, 문학동네를

이번 달 유력 책으로 <한자의 탄생>, <시간 연대기>, <지대넓얕>, <예술 수업>

그룹 사심 책으로 <불평등의 창조>를 그룹 사심 저자로 미셸 푸코를 뽑았는데요.

결과 보시죠ㅋㅋㅋ 아 이 정도 예측률이면 재미 삼아 3월 페이퍼부터는 '밑져야 본전, 찍기' 문단을 하나 둬볼까요?^^

 

<지대넓얕>을 단 한명도 안 뽑고, 1월 예술 신간의 절반 이상인 컬러링북을 단 한명도 안 뽑고

발터 벤야민과 미셸 푸코와 비고츠키를 붙잡은 이번 결과를 보며 저희 그룹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불평등의 창조>는 가격이 너무 비싸 비문학 서평단이라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모이고, 선정될 확률은 희박했던 책

 

집계할 때 가장 힘든 것은 역시 임프린트(혹은 임프린트까진 아니어도 준독립 브랜드 이상) 구분하는 것입니다.

저도 다 외우고 있진 않아서 매번 찾고 확인할 곳들이 있거든요.

대형 출판사 입장이야 임프린트별로 색깔이 다르고, 임프린트 하나 규모가 웬만한 작은 출판사보다 큰데?라고 하겠지만 저희는 출판생태계의 다양성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대중들이 모르는 출판사를 찾아서 소개하는 입장이기에 물론 제가 통계변태이고 저런 철학이 강해서도 있지만 임프린트들은 죄다 골라 모회사와 병기하여 표로 작성하였습니다.

 

 

아!! 그래서 저희가 3월 활자노동할 2권의 최종 선정 신간 발표해야지요^-^ 두구두구두구sally_and_friends-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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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1000종 이상 쏟아지는 비문학 신간 중 단 두권만 소개하는 게, 아쉬워서

지난 달에 전체 추천 도서를 올렸는데, 그래도 아쉬워서

 

이번 달엔!!! 이런 뒷얘기들을 해보지요. 에헴

출판계의 불황해도 이달에도 나타난 "신생 출판사"가 있습니다. 그들이 계속 좋은 책을 낼 수 있도록 앞날을 축복해주세요.

옐로브릭 <폭력국가>, 이마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이달에 추천하는 주목할 작은 출판사는 불철주야 단단한 과학책을 만들고 있는 과학전문출판사 에이도스 <시간 연대기>

남다른 북디자인 등 요즘 알라딘이 밀고 있는 출판사 중 하나인 워크룸프레스 <마이크로 타이포테라피>

웅진의 미술전문 임프린트 예경에서 일반 미술 책이 아닌 책에 대한 책을 낸 것이 특이했습니다. 푸른지식의 과학 그래픽노블 <뉴로노믹>은 알라딘 북펀딩 도서입니다.

 

 

sally_and_friends-8그러면 뭐 더 빠진 거 없는 거죠? 다음 달 서평으로 뵙겠습니다. ㅋㅋㅋmoon_and_jame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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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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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 당황스럽고 낯선 어느 동시대인의 이야기

 

 

 

그의 파란만장하고 위험천만한 인생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모노프, 그 자신과 러시아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우리 모두의 역사에 대해서 말이다.” - 엠마뉘엘 카레르


여러모로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던 독서였다. 소설의 대상이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밀접한 러시아의 대표적인 야권 인사임에도 그간 우리가 알고 있는 바가 별로 없었음을 깨달아 당황스러웠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력이 당황스러웠다. 러시아의 생존인사를 소재로 500쪽 넘게 써내려 간 이 책이 프랑스 작가가 쓴 프랑스 소설이라는 점도 당황스러웠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렇지 않을까. 한때 프랑스와 미국에서 시와 소설로 이름을 날렸던 작가였고, 지금도 자주 국제 뉴스에 등장하는 정치인이지만, 그의 문학 작품은 단 한권도 우리나라에 번역된 적 없고, 푸틴 외의 다른 러시아 정치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당장 언론 기사만 보더라도 어떤 기자는 리모노프를 급진 좌파라고 어떤 기자는 극우라고 기사를 쓴다. <리모노프> 우리말 번역본을 낸 열린책들과 역자가 내린 결론은 극우. 이렇게 평가가 갈리는 이유는 무지 때문도 있지만, 그만큼 리모노프가 정체성도 인생도 혼란스러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에두아르드 리모노프는 몰라도 엠마뉘엘 카레르를 아는 애독가는 꽤 많다. 페미나 상 수상자이고, 현재 프랑스 문단의 중요 작가 중 한 사람이며, 열린책들에서 작품을 꾸준히 번역하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번 번역도 역시 카레르 작품 번역을 일임해오던 전미연 역자가 번역하였다. <리모노프>로 국내 애독가들 사이에서 카레르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연초에 이 책을 선물 주려하고 읽기를 강요하던 지인들이 얼마나 많던지. 겨우 겨우 말려 한권만 받고 등 떠밀려 읽으면서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이 책이 뭔지는 알고 권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 리모노프는 쥐뿔도 모를 텐데 하며 말이다. 그만큼 녹록지 않은 소설이다. 현대 러시아의 정치사와 문학사를 어느 정도 알아야 재미를 붙일 수 있다.

   

  

대조적인 두 유명 인사의 삶. 알렉산드르 솔제니친과 에두아르드 리모노프 모두 1974년 봄에 고국을 떠났지만, 세상은 솔제니친의 출국 소식에 더 떠들썩하게 반응했다. - p.139


리모노프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2년을 보내고 귀국한 직후였다. - p.229


리모노프는 다름 아닌 펜을 든 다르타냥이었다. 인생을 살려면 패거리가 필요해, 파리에 이보다 더 생기 넘치는 패거리는 없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 p.276


에두아르드에게는 다른 계획들이 있었고, 발칸 반도 농사꾼들의 싸움보다는 조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훨씬 관심이 많았지만, 나이 오십을 코앞에 두고 여태 참전 경험도 없었고, 남자라면 언젠가 한 번쯤 꼭 필요한 경험이라는 생각에 좋다고 말했다. 그는 들뜬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 p.322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장중한 대결에서 프랑스는 시종일관 전자의 편을 들었는데, 프랑스인들이 이렇게 끝까지 감정적으로 고르바초프의 편을 들었다는 사실이 나는 놀랍기까지 하다. - p.356

 


중학생 때 무척 재밌게 읽은 단편 소설 중에 전광용이 쓴 <꺼삐딴 리>라는 작품이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이인국은 출세에 눈 먼 기회주의자로 기가 막히게 시류에 영합해 친일에서 친소로 다시 친미로 입장을 바꾸며 살아남는다. 우리 문단에도 이인국과 같은 기가 막힌 처세로 평생 애증의 원로로 묵직한 위치를 지킨 작가들이 여럿 있었다. 리모노프는 기질이 좀 더 소년스럽고 충동적이기에 완전히 같은 맥락으로 놓기는 힘들지만, 그도 러시아의 이인국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는다면 우리 독자도 이 책에 조금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리모노프>의 번역을 마치며 역자가 이렇게 많은 인명이 나오는 작품은 처음이다. 아마 앞으로도 다시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고 할 만큼 이 책은 러시아 현대사의 거목들이 대거 등장한다.

 

 

우크라이나 하급 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깡패, 거지, 작가, 집사, 군인, 정치가를 모두 경험한 1943년생 사내. 뾰족하고 전투적인 성격을 고려해 레몬(리몬)과 수류탄(리몬카)에서 딴 가명 리모노프처럼 그의 인생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만큼 거침없고 대책 없다. 카레르는 상종할 가치가 없는 이상한 인간이지만 그만큼 굴곡진 러시아 현대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보고 리모노프에 집착한다. 그러나 단순한 전기소설에 그치지 않고 소설 속에 자신 역시 등장시킨다. 그래서 살아 있는 작가가 쓰는 살아 있는 작가의 전기로서 주인공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나란히 서술하고 기본적으로 두 가지 시점에서 소설이 전개되게끔 만들어 두었다. 이러한 작업은 <러시아 소설>과 함께 카레르의 뿌리 찾기탐구 일환이기도 하고(카레르의 어머니가 러시아계 역사가), 운명공동체인 동시대인으로서의 고민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읽는 이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현대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에 빠지고, 긍정적인 방향은 아니지만 조국의 역사를 온 몸에 아로새긴, 너무나 러시아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사내에게 인간으로서 연민을 느낀다.

 

 

에두아르드의 정치관은 혼란스럽고 피상적이었다. 두긴의 영향을 받으면서 혼란은 더해졌지만 피상적인 면은 줄어들고 인용은 풍부해졌다. 두긴은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대립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똑같이 숭배했다. 그가 숭배하는 위인 목록에는 레닌, 무솔리니, 히틀러, 레니 리펜슈탈, 마야코프스키, 율리우스 에볼라, , 마시마 유키오, 게오르그 그로덱, 에른스트 윙거,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안드레아스 바더, 바그너, 노자, 체 게바라, 스리 오로빈도, 로자 룩셈부르크, 조르주 뒤메질, 기 드보르가 뒤죽박죽 올라 있었다. 한계를 시험할 심산으로 에두아르드가 찰스 맨슨도 추가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면 옆으로 조금씩 밀어 자리를 내줄 것 같았다. 친구의 친구도 친구니까. 빨간색이나 흰색이나 갈색이나 매한가지니까. 중요한 것은 니체의 지적처럼 오로지 엘랑 비탈이므로. 에두아르드와 두긴은 자신들의 동지인 야권 인사들이 큰 인물들이 아니라는 데 금방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 p.372

 

그는 특히 대단하다끔찍하다는 두 단어를 즐겨 썼다. 무조건 대단하거나 끔찍하거나 둘 중 하나지, 중간은 없는 사람이었다. 리모노프를 처음으로 만나고 나서 자하르는 생각했다.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하르는 리모노프가 쓴 글을 모조리, 심지어 유소년의 상큼하고 설익은 세계관이 드러나 있다고 그 스스로 평가하는, 리모노프가 젊은 시절에 쓴 시들까지 찾아 읽었다. 이제 리모노프에게는 더 이상 유소년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고, 세계를 떠돈 긴 세월동안 과거에 품었던 환상은 다 깨지고 말았다. ‘타인의 적대성을 전제로 삶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리모노프는 말했다. 이야말로 유일하게 현실적인 세계관이며, 타인의 적대성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여차하면 죽이겠다는 각오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용감해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그와 단 몇 분만 같이 있어도 날을 세운 단단한 근육질의 몸이 뿜어대는 기운이 느껴졌고, 그가 이런 덕목을 모두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선량함의 흔적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있는 사람이다. 언제나 호기심이 살아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선량함, 부드러움, 무방비 상태, 이런 것은 없다. 때문에 리모노프를 존경하고 그의 측근이라는 자리를 세상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자하르였지만 정작 리모노프와 함께 있을 때는 불편했다. - p.413

      

에두아르드가 평생을 꿈꿔 오던 것이었다. 어릴 때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읽으면서. 간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들려주던 용감하고 침착하고 주체적인 사형수의 얘기를 엿듣고는 그를 청소년기의 우상으로 삼으면서. 소설의 주인공을 자처하는 사람에게 감옥은 놓쳐서는 안 되는 인생의 한 장이었고, 에두라르드는 괴로워하기는커녕 순간순간을,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영화 속에서 이미 수없이 본 장면들 모두를 즐겼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 p.461

 

 

몬테 크리스토처럼 감옥에 간다는 사실 때문에 설레고, 남자라면 인생에 한번쯤 전쟁이라며 인종 청소 하러 자진 참전하는 것만 보고 그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물론 소설은 소설인지라 <리모노프> 속 리모노프의 대사나 사생활 묘사 등과 관련하여 리모노프가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디테일은 카레르의 상상의 발로라 하더라도 굵직굵직한 행보들은 뉴스로도 확인할 수 있는 실제 사실들이다. 다시 서론의 논의로 돌아와 그의 현재 정치적 입장을 평가한다면 급진 좌파 민족주의가 맞다. 그가 이끄는 민족 볼셰비키당이 극우 민족주의 이론가였던 두긴과 함께 창당했기 때문에 오해를 받는 것인데 두긴은 당을 떠나 푸틴 진영으로 합류했고, 현재의 민족 볼셰비키당은 반푸틴, 좌파민족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러시아의 미래를 걱정하고 강한 러시아를 꿈꿨으며 장기간 조국을 떠났다는 점에서 카레르는 리모노프(민족주의로 극복)와 솔제니친((제대로 된)공산주의)로 극복)를 비교한다.

 

 

극우든 극좌든 현재 러시아의 민족주의 바람은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세계인들이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소련 붕괴의 패닉과 냉전 시대의 강한 러시아(소련)에 대한 향수도 있고, 현재 러시아가 직면한 각종 사회적 어려움을 잊을 도피처나 극복할 대안으로 민족주의 만큼 좋은 구실이 없다. <리모노프>2011년 출간된 책으로 그 해 자국(프랑스)에서 르노도상과 문학상의 상을 수상하고 2012년 네덜란드에서 유럽문학상을 받았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리모노프는 여전히 정치인으로서 건재함을 과시하며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을 통합해야한다는 등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극단적 민족주의자로 살아가고 있다. 작년 우리 출판계의 유행 이슈 중 하나는 문학, 비문학 모두에서 나타난 개인적 관점에서의 역사 읽기였다. 그래서 <나의 한국 근현대사>, <소년이 온다>, <투명인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이 선전하였다. 카레르의 작가적 입지도 있지만 <리모노프>가 올초 번역된 것도 이 이슈의 연장선인 감이 없지 않다. 재작년과 작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대박을 쳤던 열린책들이 올해 <리모노프>로도 선전을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P.S.- 정치인으로서의 리모노프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아래 링크한 박노자 교수의 블로그 글을 읽어보시길. 2011년에 쓴 글이지만, 리모노프와 좌파 민족주의에 대해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지금도 참고 삼아 읽기 괜찮은 글이다.

>>> 보편적 현상으로서의 좌파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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