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기프트 에디션)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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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덟 단어 기프트 에디션] 능동적 독자를 위한 탁월한 선물

 

 

인생은 몇 번의 강의, 몇 권의 책으로 바뀔 만큼 시시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인생을 두고 이 여덟 가지를 함께 생각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박웅현

 

 

언젠가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던 책이 지난 연말 기프트 에디션으로 나왔다. 아마 많은 소비자들이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연말연시 지인에게 선물할 만한 걸 찾고 있는데 말야. 이거 혹하는데?” <여덟 단어>TBWACCO 박웅현이 20128주 간 20여 명의 20~3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매주 한 단어씩, 인생의 여덟 단어에 대해 강연한 것을 한권의 책으로 다듬은 것이다. 8주간의 강연 내용을 240쪽 정도에 대화체로 잘 정리한 것도 독자 입장에서 대단히 편하다. 기프트 에디션은 그것을 다시 단어별(강연1회별)로 책을 분권하고, 작가의 여덟 단어가 아닌 독자 자신의 여덟 단어를 찾고 그에 대한 글을 써내려갈 수 있게끔 나만의 단어란 제목의 양장본 무지노트를 동봉하였다. 박스세트로 24천원, 원책보다 9천원 더 비싸나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

 

인생은 자존에 달려 있다.

자존의 중심은 본질이다.

고전은 본질적인 것이다.

내가 본 것이 아이디어가 된다.

현재를 집중해 본다.

권위에 저항하고 약자를 존중해라.

소통은 노력이 필요하다.

흘러가듯 사는 인생.

 

우리의 인생의 면면이 다양하지만 결국 한 사람의 한 인생이듯, 이 책도 여덟 단어로 나눠있지만 모든 단어가 연결된다. 작가가 광고인인 게 책 여기저기서 잘 느껴진다. 한책에 40쪽 정도라 대중교통 출퇴근족들에게 참 편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한 단어를 시작할 때마다 그 단어에 대한 작가의 실제 노트를 담았는데, 원책엔 책 한 페이지에 작가 노트 양면을 축소해 실었다. 그게 기프트 에디션에선 신경 쓴다고 책 양면에 작가노트 원본을 그대로 담았는데, 감리 때 별 생각이 없었던 건지 늦게 알아챈 건지 접히는 면을 신경 안 써 노트 내용이 다 보이지 않는다.

 

  강판권 씨는 자기 안의 점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밖에 찍어놓았던 기준점을 모두 안으로 돌려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냈고 점을 다시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의 점들을 연결해 하나의 별을 만들어낸 겁니다. 강판권 씨는 지금 계명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 자존, p.38

  여러분, 답은 저쪽에 있지 않습니다. 답은 바로 지금, 여기 내 인생에 있습니다. 그러니 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를 존중하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자존, p.47

 

  지금끼지 살아남아 고전이 된 모든 것들을 우리는 무서워해야 해요. 하지만 되려 무시하기 일쑤죠. 우리들, 특히 젊은 청춘들에게 고전은 사실 지루해요. 매일 새롭게 터져 나오는 것들에 적응하며 살기에도 바쁘기 때문이겠죠. 계속 변하는 세상의 속도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들인만큼 고전을 되돌아볼 여유가 없어요. 그런제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뭐가 더 본질적인 걸까요? 오늘 나타났다가 일주이, 한 달 후면 시들해지는 당장의 유행보다 시간이라는 시련을 이겨내고 검증된 결과물들이 훨씬 본질적이지 않을까요. - 고전, pp.20~21

  고전을 궁금해하세요. 여기저기 도움도 받고, 책을 통해 발견해내면서 알려고 하세요. 클래식을 당신 밖에 살게 하지 마세요. 클래식은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즐길 대상입니다. 공부의 대상이 아니에요. 많이 아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얕게 알려고 하지 말고, 깊이 보고 들으려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들고 있는 가방은 명품이 아니에요. 그 가방은 단지 고가품일 뿐이죠. 명품은 클래식입니다. 고가품과 명품을 헷갈리지 말고, 진정한 명품의 세계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 고전, p.43

  모든 인생이 최선만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저는 대학도 직업도 차선, 차차선의 선택을 한 사람입니다. 인생의 선택들이 주로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해서 그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습니ᄁᆞ? 때로는 차선에서 최선을 건져내는 삶이 더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차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고,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기필을 버려라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살면서 늘 기필코 이루어내라는 말만 들어본 제게 기필을 버리라는 말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요, 인생은 기필코 되는 게 아닙니다. 뭔가를 이루려 하지 말고 흘러가세요.

  최근엔 젊은 사람들에게 꿈꾸지 말라는 강의를 합니다. 제발 꿈 좀 꾸지 말라는 게 강의의 주요 포인트예요. 제발 꿈꾸지 말고 삽시다. 꾸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잘 살지, 그런 작은 꿈을 꾸면서 삽시다. - 인생, pp.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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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나폴리 4부작 4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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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 엘레나 페란테



누가 어떤 아이를 잃은 것일까.
레누가 가정을 내팽겨치고 니노와 떠나는 것으로 끝났던 3권.
드디어 완역이 되었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급히 읽어본다.
아무래도 이 책은 독자들이 릴라와 레누 둘 중 한명에 마음이 기울어진 채 읽게 된다.
나의 완독은 레누가 별로지만 레누를 이해하려는 여정이었다.
레누는 많은 사람들이 해내지 못한 것을 해냈고, 가졌다.
60년대에 여자로서 대학에 가서 많이 공부해 교수가 되었고, 좋은 집안의 지성인과 결혼하여 아이도 낳았다.
하지만 그렇게 재능넘쳤지만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가 일찍 촌부로 전락한 릴라를 평생 의식한다.
누가 봐도 레누의 스펙이 월등한데도 항상 차분하고 성숙한 것은 릴라의 영역이고 레누는 항상 불안해 보인다.
니노와의 불륜도 마찬가지다.
잃어버린 아이, 잃어버린 인형에 대한 이야기를 지켜보며
나는 자꾸 레누가 잃어버린 것들을 헤아려 보았다.
특히 문단에서 주목 받던, 꽤나 잘 팔리던 작가 레누가 작가로서 잊혀져가는 대목, 그에 대해 좌절하는 대목에 참 공감하였다.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었다. 취향에 맞지 않았고, 나폴리 문화와 이탈리아 현대 역사가 낯설었다.
끝으로 갈수록 마음에 드는 책이었고, 예상치 못한 전체그림이었다.
오래 기억에 남을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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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1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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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1] 철저히 이기적인 투쟁은 만인의 욕망을 자극한다


 

할 수 있는 일이란 글쓰기밖에 없다. -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100%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음악 따위미련 없이 포기하겠습니다(p.39)...세상이 끝날 때까지나는 음악에 뼛속까지 중독되어 있고 싶다.(p.75)” 스물여덟 김윤아가 솔로1집 에세이에 적은 글이다친구와 광화문 교보문고로 달려가 한참 긴 줄을 썼다가 사인을 받고 악수를 청했다태어나서 처음 가본 출간 기념회였고처음 잡아본 유명인의 손이었다빨개진 얼굴허공에서 한참 떨었던 손김윤아는 음악이라면 나는 글이다지금도 글에 안 써질 때 나는 오른손바닥을 펼쳐 한참을 쳐다본다바로, 2001년의 공기와 기분에 휩싸인다. 기억하려는 나만의 의식, 잊지 않으면 멈추지 않을 수 있다.

    

 

매일 무언가를 쓰고 지운다서른을 넘기니책 한권이 없음에도 모든 지인이 나를 글쟁이로 인식한다인정을 받으면 응원을 받는다그때부터 꿈은 간절한 바람이 아니라 존재의 정언명령이 된다매일 일정한 시간을 확보해 그것을 하지 못하는 것에 예민하고그것을 위해 약속을 취소하거나 잠을 안 자는 등의 짓을 기꺼이 한다시간 낭비를 질색하면서 그것에 한창 몰입하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행복해 한다종류만 다를 뿐모든 인간에게 그런 것이 하나씩 있다타인들에겐 이상하지만자신에게는 절대적이고 당연한. 그런 투쟁을 아는 이에게 나의 투쟁은 짜릿한 관음거리다.

 

 

“1. 작가님에게만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입니다. 2. 작가님(의 작품)이 대중이 돈을 지불할 만한 존재인가요?” 출판기획서나 초고를 가져가면 출판사(편집자)는 대개 이 두 가지 잣대를 들이대며 거부한다출판 뿐 아니라 모든 문화예술 장르가 콘텐츠와 생산자가 너무 많다경쟁력은 작품성보다 인지도에서 확보하는 게 압도적으로 유리하다확실한 대중의 수요만 있다면창작을 돕거나 대리할 사람은 차고 넘친다그런 의미에서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은 충격적이다출판사와 글쟁이들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리치며 묻는다당신 출판사는 이런 원고를 망설임 없이 출간할 수 있는가당신은 이런 소설을 시작하고 완성할 수 있는가.

 

잉바르 암비에른센이 쓴 엘링이라는 소설이 있다. 1996년 완간해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지고 수출도 하며 노르웨이에서 히트친 소설인데 거기 이런 대목이 나온다. “노르웨이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의 시집은 평균 몇 부나 팔릴까잘은 모르겠지만 마흔 부 정도가 최고가 아닐까 생각된다출간 직후 주위 친구들에게 뿌린 책은 제외하고 말이다.” 나의 투쟁을 번역한 손화수의 말처럼 노르웨이의 문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고해외로 알려지기 시작했다우리나라에서도 요 뇌스베 등 노르웨이 스릴러가 상당히 인기가 있다크누트 함순 등 꾸준히 번역되는 작가들이 있고 노르웨이어 전문번역가도 등장하였다.

 

 

노르웨이의 총 인구는 530여만 명독서 인구가 많다 하더라도 20여 년 전 잉바르 암비에른센의 지적처럼 글쟁이들에게 결코 안락한 나라가 아니다나의 투쟁은 그런 노르웨이에서 인구의 10%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린 책이다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고, 3,622쪽에 달하는 6부작 대작 소설이다그런데 책을 읽어보면 아주 골 때린다두서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일기장철저한 사소설이다작가 스스로 상업적 성공을 기대하지 않았으며독자를 만족시키려 쓴 작품이 아니며독자가 작가에게 엿 먹었다고 느껴도 좋다고 패기 넘치게 말한다.

 

 

   마침내 엘리베이터를 벗어나면아이들을 유모차에 앉힌 후 모자와 장갑을 씌우고 10분을 걸어 유아원으로 데려간다길에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오후에 아이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와 피할 수 없는 일상의 전쟁을 재개하기까지는 다섯 시간이 있는데나는 이 시간 동안 글을 쓸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내게 꼭 필요하다나는 엄청난 양의 외로움이 필요하며최근 5년의 경우처럼 이 외로움을 얻지 못하면 절망심지어는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버리거나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으로 변해버린다성인이 된 후 정말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집착에 가까운 하나뿐인 야망은 혼자 있는 시간을 얻지 못해 위협을 받게 되었다위협 속에 있던 나의 야망은 시간이 흐르면서 마치 페스트처럼 나를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했다나는 여기서 벗어나야만 했다.

   시간은 나를 비켜 흘렀고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이 손가락 사이의 모래알처럼 스르르 흘러내려 사라져버렸다글쎄내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청소를 하고빨래를 하고저녁밥을 짓고설거지를 하고장을 보고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돌보는 일젖은 빨래를 말리고옷가지를 잘 접어 옷장에 차곡차곡 넣고정리를 하고탁자와 의자벽장을 닦는 일이건 투쟁이다비록 영웅적인 투쟁이라 할 수는 없지만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치워도 치워도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방눈을 뜨고 있는 한 한도 끝도 없이 뒤를 따라다니며 돌봐주어야 하는 아이들 등 내 힘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어떤 지배적인 것들에 맞서는 투쟁인 것이다. - pp.52~53

 

 

철저히 이기적인 책이다투쟁하기 위해 썼고그 자체가 투쟁인 책이다삶을글을. <나의 투쟁1>은 2008년에 쓰기 시작해 2009년에 출간하였다작가는 1968년생우리나라 나이로 마흔에 자신―결혼을 두 번 하고 아이가 셋 있는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작가―을 돌아보고 자신을 써내려간다. 그는 1998년 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했고 2004년 두 번째 소설을 냈다두 작품 모두 호평을 받았으나 첫 책과 두 번째 책 사이의 공백만큼세 번째 책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평생 글쓰기를 야망하고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남자는 고민 끝에 좋은 글을 쓰려는평생 글을 쓰려는 자신의 투쟁을 그대로 기록해나간다.

 

 

모든 창작자에게 자전적 콘텐츠는 큰 유혹이다물론 경험은 모든 작품의 바탕이 된다하지만 사건이나 지인을 그대로 쓰는 것은 가장 쉽지만 위험하다자신과 지인의 삶에 피해를 입힐 수 있고경험한 것에만 의존해 쓰면 창의력을 계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어떤 작가는 책을 내면 낼수록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기도 하고어떤 작가는 일부로 자전소설은 안 쓰려 안간힘을 쓴다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출간 전 나의 투쟁에 등장하는 실재 인물들에게 원고를 보내 미리 읽고 익명이나 가명 처리를 할 것인지 물었다고 한다그럼에도 군나르 삼촌이나 전처 토니에와는 법정까지 갔다고 한다.


그만큼 묘사가 세밀하다. 2장으로 나뉜 <나의 투쟁1>은, 2008년의 시점에서 현재의 일상 묘사와자신의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20대를 거쳐 서른 즈음 겪은 아버지의 죽음을 회상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어린 자녀들과 집안일에 대한 신랄한 스트레스 묘사부터소년 시절 생식기 외모에 대한 고뇌와 첫경험을 향한 시행착오, 윙베 형과의 일 등 한 소재 한 소재에 정성들여 기록한다퍼붓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 집착해 기억해내고 집착해 기록한다특히 태어나서 처음 겪은 시신인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부분은 그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고 싶어했을 만큼 천착했던 주제였던 만큼 1권 안에서 비중이나 서술이 독보적이다.

 



   이렇듯 문학이 일어나고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강렬한 세부적 요소들을 분해하고 해체해야 한다분해하고 해체하는 작업이 바로 글쓰기글을 쓴다는 것은 창조라기보다는 오히려 파괴에 가까운 작업이다. - p.302


 

나의 투쟁의 반응은 폭발적이다전 세계 32개국에 출간되고 자국과 해외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 <나의 투쟁1>을 읽으며현재 독자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희망을 준 집필이고 출판이라고 생각했다독서는 계속 민주화되고 있다그런데 그 방향이 독서 인구와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보다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글쓰기 강좌와 강연자비출판이나 독립출판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많은 작가가 책을 내는 것보다 글쓰기 수업으로 더 돈을 많이 버는 시대다. <나의 투쟁1>에서 읽은 것은 타인의 처절한 이기적 투쟁이었지만, 느낀 것은 만인의 욕망이었다. 남은 다섯권에서, 무엇을 더 마주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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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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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야만의 시절비린 성년식

 

 

 

서로를 자신의 눈부신 친구로 생각했던 릴라와 레누. 2권은 1966년의 레누가 릴라가 믿을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 보관해달라고 맡긴 일기를 한번 본 뒤 전부 강물에 버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첫 장면부터 세다레누는 조금도 죄책감이 없다그때 우리 관계는 최악이었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했나보다고 하면서자신이 심혈을 만들어 만든 구두를 자신의 결혼식 날 자신의 파혼자의 발에서 본 릴라신랑인 스테파노는 신부의 유년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구두를 그저 사업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릴라는 이상하게 결혼사진을 찍고 결혼사진을 찢고 망가뜨리며 그다운 저항을 한다하지만 현실은 첫날 밤 강간과 구타를 당하고나이가 아직 너무 어린데 빨리 임신하지 못한다고 추궁당하는 불행한 새댁.

 

 

이제 독자가 보기에 릴라와 레누의 관계는 역학 관계는 완전히 역전된다릴라는 그저 그런 촌부로 생계와 가족에 묶여 살아간다가게에서 그의 능력을 펼쳐볼 뻔 하지만 금세 한계에 봉착한다그럼에도 레누는 여전히 릴라를 의식하며 지낸다아니그의 성장은 나폴리에서의 모든 시간과 사람들로부터 떠나려 안달하는 모양새다고향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은 표준어와 고급 그리스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책 내내 강박적으로 독백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그런 과정에서 두 절친이 한 남자와 얽히는 대막장극이 펼쳐진다레누의 연인인 걸 알면서도 그가 자신에게 접근하자불행한 현재의 도피처로 니노와 일탈을 벌이는 릴라급기야 동거까지 하는 두 연놈들의 작당을 보면서도 니노를 놓지 못하는 레누릴라가 죄책감을 가질 틈도 없이 아다와 불륜 중인 스테파노.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릴라와 레누가 성인으로 발돋음하는 새로운 전환의 이야기다비린내가 진동하는 야만적인별로 아름답지 않은. 

 

 

이 모든 광경 위에 릴라의 사진이 군림하고 있었다지나가다 멈춰 서서 흥미롭다는 듯이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고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대놓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나는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사진 속에서 릴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있었다매혹적이면서도 끔찍한 형태만이 남아 있었다멋진 구두를 신은 발을 사람들 쪽으로 쭉 벋은 외눈박이 여신의 형상이었다. - p.171

 

 

처음도대체 릴라와 레누 사이에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였다그리고 무엇을 상상하듯 그 이상을 보여주는 막장 스토리와공산주의와 68 혁명 등 자연스럽게 스며 얽혀 있는 이탈리아 현대사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표현도전개도번역도 유려하지만 당혹스러웠고 감상을 삭혀 시간이 필요하였다감상의 온도차도 시간차도 큰 소설이다누군가에겐 매우 쉽게 인생 소설 혹은 책장이 속살처럼 넘어가는 소설이다그러나 누군가에겐 나폴리 4부작을 읽으면서 왜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이 성지 순례를 일으킬 만큼 오타쿠를 모으고중요한 여성 소설로 페미니스트들의 찬사를 받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그러다가 한참이 시간이 흐르고다음 권을 읽어가면서 깨닫기도 하고 영원히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일독하며 영 재미를 못 느꼈는데이상하게 계속 생각이 나서 붙잡고 있었다김치 담그듯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마구 밀려드는 것들이 있었다다음의 여정들이마지막 권까지 모두 읽었을 때가 기다려진다이런 이상한 감상이 드는 이유는 계속 생각해보는 중이다처음에는 나폴리의 역사문화적 배경지식이나이 세대 나폴리 여인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하였다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다른 문화와 시대의 독자가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작가는 충실히 서술한다지금 시점에서 나폴리 4부작에 묘한 기분으로 집착하고 있는 이유를 말하라면작가와 함께 성장한다고 믿으며 사람에 집중하게 하기 때문이라 답하고 싶다2권 때도 수많은 구절에 마음이 걸려 표시해놓고는 서평에는 단 한 구절만 기록해둔다. 3권 서평은 그 이유에 답을 하는 여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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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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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L'amica Geniale(The brilliant friend;2011;이탈리아)

 

 

[나의 눈부신 친구] 함부로 잔인하게, 우정의 역학 - 엘레나 페란테 나폴리4부작 1권

 

 

넌 아니야.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 p.416

 

 

60년에 걸친 두 여인의 우정과 삶을 다룬 연작 소설 나폴리 4부작. 그 첫 권인 <나의 눈부신 친구>는 주인공인 두 여인 레누와 릴라의 유년기와 사춘기를 그린다. 나폴리 4부작은 현재 43개국에 번역되며 이탈리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은둔 작가(서면으로만 활동)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이란 점에서 소설 좀 읽는 독자라면 몹시 혹하다. 해당 언어 전문번역가도 많지 않고 직역, 중역할 것 없이 잘 번역되지도 않는 이탈리아 현대문학. 나폴리 4부작은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대하소설을 보듯 이국의 수십 년 세월을 볼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분량이나 볼거리는 대하소설에 비견할 수 있지만, 통속극 같으면서 아주 트렌디한 세련미가 공존하는, 기묘하게 잘 읽히는 소설이다.

 

책은 한 번 출간되고 나면 그 이후부터 저자는 필요 없다고 믿습니다.

만약 책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남아 있다면 저자가 독자를 찾아 나서야겠지만  

남아 있지 않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 엘레나 페란테

 

엘레나 페란테는 이렇게 답하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작품만으로 승부하겠다는 고집에 걸맞게 <나의 눈부신 친구>들은 무척 묘한 소설이었다. 한길사에서 번역·출간한 한국어판은 이탈리아어를 전공하고 현재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근무한 김지우의 유려한 직역과 감각적이고 섬세한 표지 디자인으로 국내외적으로 좋은 번역본으로 호평 받고 있다. 그걸 감안하고 보더라도 엘레나 페란테의 문장은 대단히 아름다우면서도 잘 읽힌다. 그래서 450쪽이 넘는 책을 다 읽으며 표시한 구절이 수십 개였는데, 다 읽고 서평을 쓰기 위해 책 내용을 곱씹으니 그 표시가 다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감상은 아주 간명했다. 이런 독후감의 책을 겪어본 적이 거의 없어 어안이 벙벙하였다.

  

   리노 어머니의 이름은 라파엘라 체룰로이다. 하지만 나만 빼고 모두들 그녀를 리나리고 불렀다. 나는 그녀를 라파엘라라고도 리나라고도 부르지 않았다. 지난 60년 동안 내게 그녀는 릴라였다. 만약 내가 그녀를 갑작스레 리나나 라파엘라라고 부른다면 그녀는 우리의 우정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릴라는 30년 전부터 내게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사라진다는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그녀는 도망가거나 신분을 바꾸거나 머나먼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살을 생각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비록 리노 같은 아들이 자신의 몸에서 태어났고 그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에 진저리를 치기는 했지만 말이다.

   릴라가 바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릴라는 말 그대로 증발하기를 원했다. 그녀를 구성하는 세포하나하나가 뿔뿔이 흩어져서 그녀에 대한 그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는 릴라를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잘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녀가 이 세상에 머리카락 한 오라기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 pp.17~18

 

소설은 60대 후반의 릴라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아들 리노는 어머니의 절친인 레누에게 연락을 하고, 레누는 그것이 릴라의 오랜 소원이었다고 하며 담담하게 자신들의 우정을 회상한다. ‘더 높게 보이고 더 크게 보였지~전람회의 <첫사랑> 첫 가사. 평소 참 좋아하는데 이 노래가 사랑 노래보다 우정 노래로 들릴 때가 많다. 나보다 더 높고 크게 느껴지는 친구, 나의 눈부신 친구, 다들 그런 친구 하나쯤은 있지 않나. 레누에게 릴라는 그런 친구였다. 릴라와 레누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났다. 릴라는 너무나 총명했고 모든 방면에서 레누보다 월등하였다. 하지만 형편 때문에 릴라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채 가업을 이어 신발장이가 되고, 레누는 계속 학업을 이어나가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명석했던 릴라는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않아도 한 동안 레누보다 훨씬 똑똑했지만 점점 둘의 실력은 벌어지고 그 격차만큼 삶의 양상도 달라진다. 릴라는 신발을 잘 짓는 꿈을, 레누는 책을 잘 쓰는 꿈을 꾸게 되고 계속 공부를 하는 레누와 달리 릴라는 너무나 일찍 결혼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의 눈부신 친구>의 핵심 나의 눈부신 친구가 정말 누구인가이며, 독자들은 책의 결말에 전율할 수도 부정할 수도 있다. 다 읽고 나면 너무도 제목에 충실한 간명한 이야기인데, 읽는 내내 쉴 새 없이 펼쳐지며 독자들을 우회하게 하는 별의별 이야기들이 짜증나기보다 흥미진진하다. 아버지와 소년이 한 소녀에게 욕정을 품는다거나 사춘기 소년 소녀의 성적 유희 등 적당히 막장이고 야한 구석이 많은 것도 그렇게 느껴지는 한 이유.

  

흔히 한국인을 아시아의 라틴족이라고 표현한다. 1950년대부터 60여년에 걸쳐 펼쳐지는 이 나폴리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같은 시대 한국과 겹쳐 읽히는 구석이 많다. 특히 1950년대부터 1960년대의 나폴리를 다루는 <나의 눈부신 친구>는 지금보다 낙후된 시절이 아름답고 순박했다고 환상을 품고 싶지만 실은 그랬기 때문에 아주 야만적이고 부조리한 극치를 보여준다. 한국도 시골의 과부가 아무렇지 않게 밭일하다 강간당하고 딸애는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공장으로 취업시켜 미싱밥을 먹인 것처럼, 이탈리아 역시 계집애가 무슨 중학교냐고 폭력을 행사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창녀 손가락질 받으며 이른 약혼으로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딸이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대의 풍경이 현란한 글솜씨로 고스란히 책 안에 전시되어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그제야 드러났다. 나는 릴라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며 어렸을 때처럼 창백해지는 것을 보았다. 신부복보다 하얗게 얼굴이 질리며 두 눈을 갑자기 가늘게 떴다. 릴라 앞에는 와인 병이 놓여 있었는데 눈빛만으로 병을 산산조각 내어 와인을 사방으로 튀게 할 것 같아 겁이 났다. 하지만 릴라는 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은 더 먼 곳에 있는 마르첼로의 구두를 향해 있었다.

   마르첼로는 체룰로 부자가 만든 남성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것도 진열장에 전시된 금색 버클이 달린 모델이 아니었다. 마르첼로가 신고 있는 구두는 예전에 릴라의 남편 스테파노가 구입한 바로 그 신발이었다. 릴라가 수개월 동안 두 손을 망가뜨려 만들었다. 분해하고, 다시 만들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완성시킨 바로 그 신발이었다. - pp.441~442 

 

책 초반부 꼬마 릴라와 레누에게 날카로운 절대악의 표상으로 기억되는 돈 아퀼레의 에피소드가 책을 다 읽고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느껴질 정도다. 이 작가는 다음 권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책을 다시 훑어보며 감상을 정리하며 단 두곳의 표시만을 옮겼다. 이 둘의 관계를 단적으로 암시하는 듯한 초반부와 한없이 스산한 결말부에서. 그런 작가의 묘사 자체가 이 우정의 역학 관계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초반부 레누의 독백은 불안해하는 릴라의 아들 리노와 대비되며 레누가 세상 아무도 모르는 릴라의 모습을 아는 우월함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의 두 여인의 성장이 딱 그런 모습이었다. 이것에 반전이 있을까, 혹시 지금 이것은 레누의 바람은 아닐까. 다음 권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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