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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ㅣ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평점 :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야만의 시절, 비린 성년식
서로를 자신의 눈부신 친구로 생각했던 릴라와 레누. 2권은 1966년의 레누가 릴라가 믿을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 보관해달라고 맡긴 일기를 한번 본 뒤 전부 강물에 버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첫 장면부터 세다. 레누는 조금도 죄책감이 없다. 그때 우리 관계는 최악이었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했나보다고 하면서. 자신이 심혈을 만들어 만든 구두를 자신의 결혼식 날 자신의 파혼자의 발에서 본 릴라. 신랑인 스테파노는 신부의 유년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구두를 그저 사업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릴라는 이상하게 결혼사진을 찍고 결혼사진을 찢고 망가뜨리며 그다운 저항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첫날 밤 강간과 구타를 당하고, 나이가 아직 너무 어린데 빨리 임신하지 못한다고 추궁당하는 불행한 새댁.
이제 독자가 보기에 릴라와 레누의 관계는 역학 관계는 완전히 역전된다. 릴라는 그저 그런 촌부로 생계와 가족에 묶여 살아간다. 가게에서 그의 능력을 펼쳐볼 뻔 하지만 금세 한계에 봉착한다. 그럼에도 레누는 여전히 릴라를 의식하며 지낸다. 아니, 그의 성장은 나폴리에서의 모든 시간과 사람들로부터 떠나려 안달하는 모양새다. 고향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은 표준어와 고급 그리스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책 내내 강박적으로 독백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런 과정에서 두 절친이 한 남자와 얽히는 대막장극이 펼쳐진다. 레누의 연인인 걸 알면서도 그가 자신에게 접근하자, 불행한 현재의 도피처로 니노와 일탈을 벌이는 릴라. 급기야 동거까지 하는 두 연놈들의 작당을 보면서도 니노를 놓지 못하는 레누. 릴라가 죄책감을 가질 틈도 없이 아다와 불륜 중인 스테파노.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릴라와 레누가 성인으로 발돋음하는 ‘새로운 전환’의 이야기다. 비린내가 진동하는 야만적인, 별로 아름답지 않은.
이 모든 광경 위에 릴라의 사진이 군림하고 있었다. 지나가다 멈춰 서서 흥미롭다는 듯이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고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대놓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진 속에서 릴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있었다. 매혹적이면서도 끔찍한 형태만이 남아 있었다. 멋진 구두를 신은 발을 사람들 쪽으로 쭉 벋은 외눈박이 여신의 형상이었다. - p.171
처음, 도대체 릴라와 레누 사이에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무엇을 상상하듯 그 이상을 보여주는 막장 스토리와, 공산주의와 68 혁명 등 자연스럽게 스며 얽혀 있는 이탈리아 현대사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표현도, 전개도, 번역도 유려하지만 당혹스러웠고 감상을 삭혀 시간이 필요하였다. 감상의 온도차도 시간차도 큰 소설이다. 누군가에겐 매우 쉽게 인생 소설 혹은 책장이 속살처럼 넘어가는 소설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나폴리 4부작을 읽으면서 왜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이 ‘성지 순례’를 일으킬 만큼 오타쿠를 모으고, 중요한 여성 소설로 페미니스트들의 찬사를 받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한참이 시간이 흐르고, 다음 권을 읽어가면서 깨닫기도 하고 영원히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일독하며 영 재미를 못 느꼈는데, 이상하게 계속 생각이 나서 붙잡고 있었다. 김치 담그듯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마구 밀려드는 것들이 있었다. 다음의 여정들이, 마지막 권까지 모두 읽었을 때가 기다려진다. 이런 이상한 감상이 드는 이유는 계속 생각해보는 중이다. 처음에는 나폴리의 역사문화적 배경지식이나, 이 세대 나폴리 여인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다른 문화와 시대의 독자가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작가는 충실히 서술한다. 지금 시점에서 나폴리 4부작에 묘한 기분으로 집착하고 있는 이유를 말하라면, 작가와 함께 성장한다고 믿으며 ‘사람’에 집중하게 하기 때문이라 답하고 싶다. 2권 때도 수많은 구절에 마음이 걸려 표시해놓고는 서평에는 단 한 구절만 기록해둔다. 3권 서평은 그 이유에 답을 하는 여정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