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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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L'amica Geniale(The brilliant friend;2011;이탈리아)

 

 

[나의 눈부신 친구] 함부로 잔인하게, 우정의 역학 - 엘레나 페란테 나폴리4부작 1권

 

 

넌 아니야.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 p.416

 

 

60년에 걸친 두 여인의 우정과 삶을 다룬 연작 소설 나폴리 4부작. 그 첫 권인 <나의 눈부신 친구>는 주인공인 두 여인 레누와 릴라의 유년기와 사춘기를 그린다. 나폴리 4부작은 현재 43개국에 번역되며 이탈리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은둔 작가(서면으로만 활동)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이란 점에서 소설 좀 읽는 독자라면 몹시 혹하다. 해당 언어 전문번역가도 많지 않고 직역, 중역할 것 없이 잘 번역되지도 않는 이탈리아 현대문학. 나폴리 4부작은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대하소설을 보듯 이국의 수십 년 세월을 볼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분량이나 볼거리는 대하소설에 비견할 수 있지만, 통속극 같으면서 아주 트렌디한 세련미가 공존하는, 기묘하게 잘 읽히는 소설이다.

 

책은 한 번 출간되고 나면 그 이후부터 저자는 필요 없다고 믿습니다.

만약 책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남아 있다면 저자가 독자를 찾아 나서야겠지만  

남아 있지 않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 엘레나 페란테

 

엘레나 페란테는 이렇게 답하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작품만으로 승부하겠다는 고집에 걸맞게 <나의 눈부신 친구>들은 무척 묘한 소설이었다. 한길사에서 번역·출간한 한국어판은 이탈리아어를 전공하고 현재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근무한 김지우의 유려한 직역과 감각적이고 섬세한 표지 디자인으로 국내외적으로 좋은 번역본으로 호평 받고 있다. 그걸 감안하고 보더라도 엘레나 페란테의 문장은 대단히 아름다우면서도 잘 읽힌다. 그래서 450쪽이 넘는 책을 다 읽으며 표시한 구절이 수십 개였는데, 다 읽고 서평을 쓰기 위해 책 내용을 곱씹으니 그 표시가 다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감상은 아주 간명했다. 이런 독후감의 책을 겪어본 적이 거의 없어 어안이 벙벙하였다.

  

   리노 어머니의 이름은 라파엘라 체룰로이다. 하지만 나만 빼고 모두들 그녀를 리나리고 불렀다. 나는 그녀를 라파엘라라고도 리나라고도 부르지 않았다. 지난 60년 동안 내게 그녀는 릴라였다. 만약 내가 그녀를 갑작스레 리나나 라파엘라라고 부른다면 그녀는 우리의 우정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릴라는 30년 전부터 내게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사라진다는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그녀는 도망가거나 신분을 바꾸거나 머나먼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살을 생각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비록 리노 같은 아들이 자신의 몸에서 태어났고 그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에 진저리를 치기는 했지만 말이다.

   릴라가 바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릴라는 말 그대로 증발하기를 원했다. 그녀를 구성하는 세포하나하나가 뿔뿔이 흩어져서 그녀에 대한 그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는 릴라를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잘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녀가 이 세상에 머리카락 한 오라기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 pp.17~18

 

소설은 60대 후반의 릴라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아들 리노는 어머니의 절친인 레누에게 연락을 하고, 레누는 그것이 릴라의 오랜 소원이었다고 하며 담담하게 자신들의 우정을 회상한다. ‘더 높게 보이고 더 크게 보였지~전람회의 <첫사랑> 첫 가사. 평소 참 좋아하는데 이 노래가 사랑 노래보다 우정 노래로 들릴 때가 많다. 나보다 더 높고 크게 느껴지는 친구, 나의 눈부신 친구, 다들 그런 친구 하나쯤은 있지 않나. 레누에게 릴라는 그런 친구였다. 릴라와 레누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났다. 릴라는 너무나 총명했고 모든 방면에서 레누보다 월등하였다. 하지만 형편 때문에 릴라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채 가업을 이어 신발장이가 되고, 레누는 계속 학업을 이어나가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명석했던 릴라는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않아도 한 동안 레누보다 훨씬 똑똑했지만 점점 둘의 실력은 벌어지고 그 격차만큼 삶의 양상도 달라진다. 릴라는 신발을 잘 짓는 꿈을, 레누는 책을 잘 쓰는 꿈을 꾸게 되고 계속 공부를 하는 레누와 달리 릴라는 너무나 일찍 결혼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의 눈부신 친구>의 핵심 나의 눈부신 친구가 정말 누구인가이며, 독자들은 책의 결말에 전율할 수도 부정할 수도 있다. 다 읽고 나면 너무도 제목에 충실한 간명한 이야기인데, 읽는 내내 쉴 새 없이 펼쳐지며 독자들을 우회하게 하는 별의별 이야기들이 짜증나기보다 흥미진진하다. 아버지와 소년이 한 소녀에게 욕정을 품는다거나 사춘기 소년 소녀의 성적 유희 등 적당히 막장이고 야한 구석이 많은 것도 그렇게 느껴지는 한 이유.

  

흔히 한국인을 아시아의 라틴족이라고 표현한다. 1950년대부터 60여년에 걸쳐 펼쳐지는 이 나폴리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같은 시대 한국과 겹쳐 읽히는 구석이 많다. 특히 1950년대부터 1960년대의 나폴리를 다루는 <나의 눈부신 친구>는 지금보다 낙후된 시절이 아름답고 순박했다고 환상을 품고 싶지만 실은 그랬기 때문에 아주 야만적이고 부조리한 극치를 보여준다. 한국도 시골의 과부가 아무렇지 않게 밭일하다 강간당하고 딸애는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공장으로 취업시켜 미싱밥을 먹인 것처럼, 이탈리아 역시 계집애가 무슨 중학교냐고 폭력을 행사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창녀 손가락질 받으며 이른 약혼으로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딸이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대의 풍경이 현란한 글솜씨로 고스란히 책 안에 전시되어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그제야 드러났다. 나는 릴라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며 어렸을 때처럼 창백해지는 것을 보았다. 신부복보다 하얗게 얼굴이 질리며 두 눈을 갑자기 가늘게 떴다. 릴라 앞에는 와인 병이 놓여 있었는데 눈빛만으로 병을 산산조각 내어 와인을 사방으로 튀게 할 것 같아 겁이 났다. 하지만 릴라는 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은 더 먼 곳에 있는 마르첼로의 구두를 향해 있었다.

   마르첼로는 체룰로 부자가 만든 남성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것도 진열장에 전시된 금색 버클이 달린 모델이 아니었다. 마르첼로가 신고 있는 구두는 예전에 릴라의 남편 스테파노가 구입한 바로 그 신발이었다. 릴라가 수개월 동안 두 손을 망가뜨려 만들었다. 분해하고, 다시 만들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완성시킨 바로 그 신발이었다. - pp.441~442 

 

책 초반부 꼬마 릴라와 레누에게 날카로운 절대악의 표상으로 기억되는 돈 아퀼레의 에피소드가 책을 다 읽고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느껴질 정도다. 이 작가는 다음 권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책을 다시 훑어보며 감상을 정리하며 단 두곳의 표시만을 옮겼다. 이 둘의 관계를 단적으로 암시하는 듯한 초반부와 한없이 스산한 결말부에서. 그런 작가의 묘사 자체가 이 우정의 역학 관계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초반부 레누의 독백은 불안해하는 릴라의 아들 리노와 대비되며 레누가 세상 아무도 모르는 릴라의 모습을 아는 우월함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의 두 여인의 성장이 딱 그런 모습이었다. 이것에 반전이 있을까, 혹시 지금 이것은 레누의 바람은 아닐까. 다음 권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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