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 조선의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을까?
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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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한번쯤 궁금했으나 알기 힘들었던 이야기

: 어느 애서한문학자와 출판사의 치열한 의기투합이 만든 첫 책

 

 

책은 곧 인류 역사의 방향을 결정짓는 궁극적 요인의 하나다. 책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p.15) 책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이자 문화의 역사다. 책의 역사를 따라가면 인간이 쌓아올린 문화의 역사를 볼 수 있다.(p.50)

 

있을 법 하지만 없었던 책의 등장

지식의 보고로서 책은 인류의 역사시대와 함께 하였다. 누구나 책과 도서관의 중요성을 긍정한다. 이에 책의 생산이나 관리에 관한 학문에 대한 수요로 관련한 서지학, 문헌학, 인쇄기술학 등이 파생되었고, 특정한 책을 연구하는 논문과 단행본은 쉼없이 쏟아졌다. 그러나 정작 ‘책’이라는 재화 자체에, ‘책의 역사’에 대한 접근은 그리 많지 않다. 20세기 말 사회문화사 영역의 한 갈래로 ‘책과 독서의 역사’ 연구가 시작되었고 , 외국의 책과 독서 및 그 역사를 다룬 책으로는 <독서의 역사>, <독서의 탄생>, <책의 미래>, <읽는다는 것의 역사> 등의 외서와 <책과 독서의 문화사>라는 우리 저자가 쓴 책이 있다. 우리 경우를 다룬 책으로는 조선시대를 다룬 <조선출판주식회사>와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다룬 <속물교양의 탄생> 정도가 있다. 이에 아쉬움을 갖고 오랫동안 준비한 ‘우리 책의 역사’를 다룬 책이 등장하였다.

 

 

왜 ‘우리’의 ‘책의 역사’인가

국사교과서의 첫 장은 ‘선사시대’가 아니라 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 객관성과 주관성을 숙지하는 ‘역사의 의미와 이해’이다. 대부분의 사회가 겪는 인류 보편적 역사 발전의 단계가 있지만, 그 사회만의 독특한 양상들이 있다. 이 두 가지 맥락을 모두 알 때 비로소 그 사회의 구조와 산업이 파악된다. 그래서 이 책은 애서가들을 위한 교양서적으로 쓴 것이지만, 가장 일독을 권하고픈 대상은 출판마케터와 그 쪽 취업을 준비하는 이다. 민간 중심으로 서적의 생산과 유통이 이루어지며 자본주의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금속활자의 발명과 확산으로 인한 지적 혁명이 근대의 포문을 연 서양과 달리 조선의 출판은 국가 주도였고, 책은 지배층의 전유물이었다. 근대사회로 가는 데 가장 기여했던 정조는 문학혐오자였고 문체반정의 정치적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출판의 다양성과 발전을 저해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의 출판과 독서 문화가 서양에 비해 약한 것은 당연하다.

 

 

총 14장으로 구성된 <조선의 책과 지식의 역사>가 다루는 내용은 목차로 갈음하고자 한다. 조선 전기의 책의 생산과 유통, 문화, 시대적 배경에 대해 저자가 얼마나 열심히 연구하고 글을 구성하였는지 목차만 봐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 책머리에
서설 책이 말해주는 것, 책이 말해주지 않는 것/ 왜 책의 역사인가?
1장 고려시대의 책과 인쇄·출판, 고려 말 사대부의 기획
고려의 출판기관 /고려는 어떤 책을 만들었나?/고려의 국가도서관과 장서/고려에서 가장 많이 찍은 책/

고려시대 서적들의 행방/정도전과 신흥사대부의 출판
2장 인쇄·출판 문화의 새로운 시작ㅡ조선의 금속활자
금속활자의 기원/금속활자의 확장/금속활자에 대한 오해와 의의/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조선 금속활자인쇄술의 차이/

목활자와 한글활자/조선은 왜 나라에서 금속활자를 독점했을까?
3장 민중문자의 탄생과 책
문자의 발명, 한글의 탄생/언문은 어떤 용도로 쓰였나/한글 서적, 오로지 번역본으로만 존재하다/

백성에게 읽힐 책을 만들어 유포하다/중종 때『삼강행실도』를 많이 찍은 이유/한글 언해서의 문제
4장 서울의 인쇄·출판 기관ㅡ주자소와 교서관
서적원과 교서관 설립/주자소 독주 시대/교서관 시대의 시작/책방과 주자도감/출판대상의 선정과정
5장 지방에서 만든 책ㅡ관찰사가 독점한 지방의 인쇄·출판
지방에서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목판인쇄/중앙의 명령에 의해 제작된 책/지방의 자체 출판
어디서 어떤 책을 얼마나 찍었나?:『고사촬요』의 책판목록
6장 한 권의 책은 어떻게 탄생했을까?ㅡ원고 집필에서 장정까지
중국 고전을 인쇄하는 두 가지 방식/국내 저자의 원고로 책 만들기/원고의 인쇄과정/원고의 교정/서책의 제본
7장 책을 만든 사람들
고려와 조선의 책 말미에 남은 이름/활자인쇄의 장인/지방의 인쇄장인/인쇄장인의 급료는 얼마였을까?
8장 책값은 얼마였을까?
『대학』이나『중용』은 논 2~3마지기/값비싼 구리와 요구되는 노동력/종잇값은 왜 비쌌을까?/누가 종이를 만들었을까?
9장 책은 어떻게 유통되었을까?
국가에서 인쇄해서 보급한 책/개인 간의 기증과 매매/책판으로 인쇄하거나 필사하거나/

원시적 수준에 그친 조선의 서적 유통구조
10장 서점은 왜 실패했는가?
교서관은 조선의 서점이었나?/서점 설치를 두고 벌어진 논란/어득강의 새로운 제안/서점은 왜 만들어지지 못했을까?
11장 조선의 도서관
국가도서관과 그 기원/조선의 도서관, 홍문관/장서의 관리/누구를 위한 도서관인가?
12장 중국에서 수입한 책
외교적 루트를 이용한 서적 구입/중국 사신을 통해 공식적으로 구매한 책/개인들이 사들인 중국 책/어떤 책을 수입했나?/
국가와 양반을 위한 책
13장 일본으로 수출한 책
일본과의 수입·수출/외교적 주도권을 쥐게 해준『대장경』수출/대장경판을 두고 벌인 외교전쟁/일본에 수출한 대장경은 어떻게 조달했나?/동아시아의 또 다른 중심이 된 조선
14장 전쟁은 책을 어떻게 죽이고 살렸는가?
임진왜란으로 소멸한 국가의 장서/전란 이후의 서적 복구/실록의 운명/임진왜란이 조선·중국·일본에 미친 영향
■ 맺는 글
■ 찾아보기

 

10년의 역작, 절반 혹은 2할의 시현

제목이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이나 임진왜란까지의 조선 전기만을 취급하기에 엄밀히 말하면 반쪽짜리 책이다. 그러나 책의 편집과 저자의 서문을 보고 있으면 속았다는 실망감이 아닌 다음이 궁금한 기대감에 들뜬다. 무려 10년을 준비한, 고려 말에서 을사늑약까지 모두 다룬, 5부작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의 이제 고작 첫 권일 뿐이라는 설명, 그리고 그 첫 권은 수많은 시각자료․주석과 자세한 서술로 가득한 540여 페이지 총천연색 책이다. 무척 힘이 들어 가 있는 책, 저자의 탐구열정 뿐 아니라 출판사의 공들임이 담뿍 느껴진다. 왕조는 바뀌어도, 시대 발전의 속성은 유기적 연속성인데 고려 말에 대한 브리핑 수준의 서술 외에는 시대를 넘나드는 행간은 약하지만, 그런 아쉬움이 지나친 욕심으로 느껴질 만큼 소화하고 즐기기 정신없을 분량의 풍부한 내용을 자랑한다.

 

 

역사전공자가 아니기에 가능한 과감함

최근 불거졌던 교학사 역사교과서 사태는 역사왜곡문제가 주였지만 한편으로 국사교육과 학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콤플렉스와 그로 인한 다양성 거부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에 대한 갈급은 역사교양서에서 자주 표출되는데 ‘18세기 조선르네상스’ 붐을 비롯하여 국문학자와 한문학자들의 집필 증가가 대표적 사례이다.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의 저자 강명관 교수 역시 한문학자(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로 평생 고전을 탐독하고 책을 아끼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문제의식으로 이 책을 썼다. 구텐베르크와 직지심체요절을 조목조목 비교하며 비판적 서술을 하는 대목만 봐도, 그저 세계 최초라거나 세계 문화유산이라거나 등 우리 문화의 우수성에 대한 집착과 단순 교육으로 점철된 우리 국사교육에 대해 아쉬웠던 독자들의 가슴을 좀 뚫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러나 8장에 구리수입국 전락 대목 등 비전공자기에 분석의 맥락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기록의 나라가 선사하는 축복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에 담긴 조선시대 책의 역사에 대한 방대한 내용들은 그만큼 저자의 꼼꼼하고 치열한 집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철저한 기록의 나라였던 조선이었기에 가능한 축복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실록과 그를 보완하기 위해 몇 갑절로 쓴 승정원일기에 조선후기 일성록 그리고 수많은 양반들이 사적으로 쓴 책까지, 전쟁의 문제도 있지만 고려까지의 책 역사와 자료 양에서 단연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다. 그런 나라가 인쇄와 출판을 독점하고 지배 헤게모니를 지키기 위해 문자와 지식의 확산을 막은 것은 성리학적 세계관 때문에 당연한 것이지만 정말 유감이다. 성리학이 있었던 중국과 일본엔 없는 우리만의 특징이고, 후에 중국과 일본의 유학과 사회의 성장과 변화를 보면 쉽사리 통탄이 가라앉지 않는다.

 

 

글 읽는 소리로 시끄러웠던 땅을 일으키는 풀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도경에 '고려는 백성들이 글을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어딜 가든 책 읽는 소리로 가득하다'고 썼다. 각종 책 관련 행사 때마다 자주 듣는 얘기인데 그 정도가 항상 궁금했을 만큼 조선의 출판은 괄목할 기술들만 있을 뿐 산업과 문화는 열악하였다. 국가 독점과 소량 생산의 폐쇄적 시스템은 서적 유통이 가능한 제대로 된 시장을 형성하지 못했고 책값은 천정부지였다. 세종의 훈민정음은 어린 백성을 위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일으키고 지키고 자본주의를 싹 틔운 것은 민중이다. 임진왜란 중 전주사고 안 실록을 통째로 빼돌려 조선의 기록 문화를 지킨 선비들, 문체반정에 굴하지 않고 소설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박지원, 방각본 시장체제를 구축시킨 상인들 등 조선사회의 특수성에도 우리 역시 근현대로 이행할 수 있게 한 수많은 개인들,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도 재밌지만 그 후편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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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 김말봉 애정소설
김말봉 지음 / 지와사랑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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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찔레꽃] 세월을 입은 통속소설은 유산이 된다

조선일보 최초의 여류장편소설이자 김말봉 문학 1기의 대표작

잊힌 옛 우리 어휘들과 1930년대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

하지만 명작의 반열에 오르기엔 부족한 태생의 한계, 더 곰삭으면 극복될까

 

   

순수문학(본격문학)과 대중문학(장르문학)의 구분에 대한 논쟁은 첨예하다. 영역의 범주를 어디까지 둘 지부터 시작해, 후자는 문학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경론도 있고 장르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장르무용론도 꾸준하다. 대중문학에 대한 부정적 목소리의 근원은 상업성·대중성·통속성·인기영합으로 요약되는 태생적 특징으로, 순수문학과 출발(목적)이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집필의 진입장벽도 낮고 수적으로도 많아 순수문학에서보다 좋은 작품을 찾기 더 힘들다. 이러한 대중문학의 대표적 이미지는 신문소설로 상징되는 연재소설이다. 그러나 이들 중 오늘날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이 상당히 많다. 우리문학에서도 이광수, 염상섭, 심훈, 홍명희, 박경리 등 수많은 명작가들이 연재물을 내놓았다.

 

그래서 평소 통속이나 대중이란 단어만 나와도 열에 아홉은 지나치는 독자인 편임에도 아예 외면하지 않고 꾸준히 찾고 있다. 그런 풍토에서 전설로 자리매김한 대중문학의 역작을 읽거나 스스로 뛰어난 작품을 발견했을 때 짜릿함은 더욱 크다. <찔레꽃>도 몰랐던 작가인데다가 통속소설이라는 얘기에 덮어놓고 지나칠 뻔 했던 소설이다. 그 동안 중일전쟁 이후의 일제강점기 후반의 우리 문학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시절이 시절이라 친일문학이 급증하기도 하거니와 시대적 문제의식 없이 유유자적하며 살아갔던 부르주아지 모던걸보이들의 일상(혹은 그런 환상을 심어주는)엔 흥미는커녕 욕지기가 솟기 때문이다.

 

1932년 등단해 작고하는 1961년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김말봉은 소설가이기 전에 한국 최초의 여자 개신교 장로이기도 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친일 작품 청탁을 거부했고 공창폐지운동, 박애원 경영 등 사회운동도 하였다. 1937년 연재한 <찔레꽃>은 193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신문들의 상업주의가 강해지면서 쏟아져 나온 통속소설의 일환으로, 그녀의 문학 1기의 대표작이자 ‘조선일보 최초’의 여류장편소설이었다. 혹자는 이 때문에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아니다. 1917년에 등단한 김명순(필명:김탄실)이 우리 최초의 여성 소설가이며, 신문연재장편소설로 여성 최초는 1932년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박화성이다.

 

지금 <찔레꽃>을 다시 출간하는 이유는 한국 문학사에서 이름만 빛날 뿐 작품이 사라진 슬픈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작품은 작가의 실존적 가치이므로 작가의 생애를 아무리 소상하게 안다 하더라도, 또 작품에 대한 해설이나 연구논문을 읽는다 하더라도 작가의 정신세계를 아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작품을 읽고 작가의 정신세계와 교감을 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 작가는 우리와 더불어 현재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 발행인의 글 中

   

<찔레꽃>을 읽기로 결심한 것은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지와사랑 사장이 개인 블로그에 쓴 <다시 피어난 찔레꽃>이란 글을 읽고서이다(이 글의 전문은 <찔레꽃> 끝에도 담겨 있다). 그의 말대로 김말봉에 대한 연구논문은 수도 많고 근자에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책 자체는 1980년대 이후 발간이 끊긴다. 우리 문학에 대한 애정과 미지의 작가에 대한 호기심에 <찔레꽃>을 펼쳐들었다. <찔레꽃론(책 뒤에 실려 있음)>에서 1930년대 중반 이후 <찔레꽃> 연재가 시작한 1937년을 우리 문학에서 대중소설과 순수소설의 정체성이 이론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시기라 평가한 천상병 시인의 말이 맞는 진 모르지만, 우리 문학사를 고려할 때 현대대중소설의 틀은 이 시기에 충분히 원숙기에 도달했다고 판단했고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김말봉의 작품은 대부분 남녀 간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고 이는 광복 전까지의 1기 작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찔레꽃>은 전형적인 통속치정소설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나이는 제시된 인물도 있고 안된 인물도 있다).

1. 48세의 부호 조만호에겐 아내 정씨와 슬하에 경구(26세), 경애(25세), 경옥, 쌍둥이 영남과 영길(각 6세), 용길을 두고 있다. 정씨가 숙환으로 누워 지내는 탓에 바람기가 동한 조만호는 기생 옥란과 사귀는 중이다.

2. 서울서 여학교 보육과를 졸업한 22세 정순은 고향 밀양에서 유치원 교사를 하다 최근에 해고당했다. 서울에서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교장선생님 김씨 부인의 도움으로 조만호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된다. 그녀에겐 경성제대 수리과 3학년 민수란 남자친구가 있다. 조만호는 정순을 보고 첫눈에 반해 애욕을 품는다.

3. 조만호는 세교를 맺은 집안의 영환과 경애를 맺어주려 하고 경구는 윤희와 여주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경애는 민수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경구는 정순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게다가 정순과 민수가 외사촌인지 알고 있고 민수가 경애를 구해주는 일까지 발생하자 더욱 구애를 하기 시작한다.

4. ○○은행이 매각되는 바람에 파산한 경철은 땅이 죄다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쳐하고 아들 민수와 함께 주주인 조만호에게 사정해 경매를 미뤄달라고 부탁한다. 그 과정에서 도와주려 정순은 경철이 외삼촌이고 민수가 자신과 외사촌이라 거짓말을 한다. 일이 잘못돼 결국 경철의 땅은 매각되고 생활고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민수는 증오심에 불타는데. 설상가상 정순과도 오해가 생긴다.

5. 옥란은 첫 남편 사이에 낳은 수남(6세)이 있고 은행원 근호(25세)와 결혼했으나 생활고에 시달려 근호를 버리고 그 사실을 숨긴 채 조만호의 후처로 들어가려 애쓰는 중이다. 근호를 버리고 그 사실을 숨긴 채 조만호의 후처로 들어가려 애쓰는 중이다. 근호는 민수의 옆방에서 하숙하며 복수를 꿈꾼다.

6. 정씨는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히스테리컬하다. 침모를 시켜 오는 가정교사마다 감시했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쫓아냈다. 여자의 육감으로 조만호가 정순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정씨는 정순을 미친 듯이 구박하는데 죽으면서는 정순이 만호의 후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긴다.

:

꼬이고 꼬인 치정관계가 폭발하고 복수와 음모가 엉키는데! 

정순의 호리호리하고 탄력 있는 뒷맵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던 조만호씨는 무엇 때문인지 후우 한숨을 내쉰다. 잘 익은 과일을 보는 때처럼 그의 눈에서는 어떤 애욕의 횃불이 여름밤의 인광과 같이 흩어졌다. - p.22

 

"그래? 애비 의견을 무시하는 자식이 어디 있어, 응? 어디 있느냔 말야. 그것이 자식의 도리란 말이냐?" (...)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세계가 있는 것과 같이 또 저에게는 제 세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결혼하지 않고도 훌륭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제가 실행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pp.35~36

 

정조란 것도 결국 밥 있고 옷 있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사치품이야. - p.88

 

황금을 가지고 사랑을 사는 사나이의 말은 어디까지 믿어야 좋을까. 또한 자기의 순진한 사랑의 대상을 돈이라는 우상과 바꾸어버린 기생 옥란은 과연 총명한 여자일까. - p.97

 

진실로 약한 자여, 너의 이름은 여자니라. 그보다도 비겁하고 추악한 자여, 너는 질투와 의심의 종이니라! - p.137

 

그는 달렸다. 그저 달렸다. 어디서 배상해올 수도 없는 잃어버린 청춘의 울분을 실은 채 경애는 꿈속같이 아늑하게 뻗친 아스팔트 위를 바람같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 p.162

 

그들은 사양하는 조두취에게 술을 퍼 먹이고 그리고 두취의 좋아하는 기생 옥란이를 불러 그와 한 자동차에 실어 ○○호텔로 보냈었다. 그들은 그것이 친구로서 아내가 죽은 지 불과 반 달 되는 친구를 대접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각하고 서로들 만족한 듯이 빙그레하고 소리를 죽여 웃었다. 그 웃음은 배우자가 죽으면 평생토록 다른 이성을 대하지 아니하여야만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여인이란 동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남자라는 전능의 인간으로 세상에 나온 것을 만족하여 웃는 웃음이리라. - pp.243~244

 

침모의 딸 영자! 독자 제씨는 일찍 침모 박씨가 정순이와 이야기할 때에 고등여학교 삼 학년까지 다니다가 어느 중학생과 연애를 하고 운운하는 설명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실 줄 믿는다. 정순이와 같이 스물두 살 난 지금은 오라범댁에 눈치 밥을 먹고 있다는 영자가 무슨 까닭으로 정순의 화장품을 도적해서 검사하였는지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으로서 가장 추하고 무섭고 그리고 비꼬아진 한 장면을 구경하게 되는 것이다. - pp.301~302

이 소설에 눈이 갔던 또 다른 이유는 어휘들 때문이다. 400쪽이 넘는 제법 두툼한 소설이어서기도 하지만 <찔레꽃>에 쓰인 어휘들이 다채로운데다가 현재 국어에선 쓰지 않는 우리말들이 많아 즐겁고 그립다. 이런 어휘와 일본어 단어들은 꼼꼼히 주석을 달아두었다. 이번 지와사랑의 <찔레꽃>은 1984년판 <찔레꽃>을 저본으로 현대 국어 맞춤법에 맞게 문장을 다듬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정도는 매우 약하다. 고친 이 책도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빨간펜칠갑을 해야 할만큼 옛 어휘나 맞춤법들이 자주 보인다. 그저 읽는 데 힘들지 않을 정도일 뿐, 원작이 훼손되지 않도록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표지를 옛날 <찔레꽃> 판본들과 비슷하게 만든 센스에도 놀랐다. 

 

찔레꽃 같이 괴로운 그대 맘같이 내 가슴 내 가슴에 품어주게나. 시내 언덕 풀숲에 희고도 고운 찔레꽃 피었다지. - p.430

 

소설 제목은 여주인공 정순이 찔레꽃을 가장 좋아하며 찔레꽃처럼 예쁘게 생겼다는 점에서 붙여졌다. 작가와 연결 지으면 작가가 좋아하는 가곡이기도 하다. 소설 끝에 그 가사가 일부 인용되어 있는데 이 노래의 전체 가사를 알면 작품의 감상이 더 풍부해질지도 모르는데 찾기가 어렵다는 게 아쉽다. 왜냐하면 일본 가곡을 번안한 것이기 때문이다(일본웹에서 원곡을 찾다가 실패). 당시에는 널리 불렸지만 1942년 반일감정과 토속성을 담은 우리식 <찔레꽃> 노래가 등장했고 광복 이후에도 비슷한 정서의 여러 우리 <찔레꽃> 노래가 나오면서 대중들의 기억을 덮었고 우리 스스로도 부르지 않게 되었다.

 

<찔레꽃>은 고전소설적인 요소가 꽤 있다. 전지적 작가시점을 쓰면서 서술자의 독백이 변사나 소리꾼투고 어찌되었든 해피엔딩인 결말 처리 등을 보면 그렇다. 그러면서 혼전 관계나 자유연애, 농촌진흥운동 등의 소재나 열린 결말기법을 쓰는 것은 상당히 현대적이고 세련되었다. 1910년대 이광수의 노골적이고 투박한 계몽성이 1930년대 말 김말봉의 문장에선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렇다고 심각해지지 않고 양념 다루듯 당대의 사회이슈들을 쓰며 장르(통속)적 미덕을 깨지 않는다. 은행매각이나 토지경매 등 전문적인 묘사는 취약하나, 여성 작가이고 장르가 통속소설이다 보니 감정이나 정황 묘사는 섬세하고 탁월하다.  

 

무엇보다 <찔레꽃>은 흔한 통속소설도 시간이 지나면 시대를 증명하는 유산이 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세월이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긴 했지만 75년의 시간으론 <찔레꽃>을 고전의 반열까지 올리기엔 역부족이다. 클리셰 덩어리고 너무도 통속적이다. 분량과 장르가 달라 비교하는 데 다소 무리는 있지만, 같은 막장인데도 김동인의 <감자>에 묻어나는 아름다움과 서슬이 같은 계급갈등과 치정인데도 김기영의 <하녀>가 가진 개성과 예술성이 <찔레꽃>에는 보이지 않는다. 더 곰삭으면 극복될까. 오늘날 읽어도 술술 읽힐 정도로 재밌고 지금의 어떤 막장물과 겨뤄도 지지 않을 만큼 드라마적 요소는 다 들어 있고 자극적이어서 통속소설로는 완벽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기엔 아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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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카페 > 책굽는 마을, 티움책빵 | 책빵지기
원문 http://cafe.naver.com/booknoori/1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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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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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익숙함과 결별할 때 바로 보이는 진실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기원? 대표작은 달랐다
 
세이초는 자신의 추리소설이 사회파라고 불리는 점에 대해서 “사회 구조를 테마로 삼아서 거기에서 비롯된 범죄 등을 써왔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하면서, “사회소설을 쓰는 데 추리소설의 방법을 적용한 것은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그리고 조금씩 진실에 다가가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대담집 <발상의 원점>). 이 말에는 세이초의 추리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가 들어 있습니다. 즉 세이초가 우선 현대사회의 부조리와 그 안에 처한 인간의 삶을 ‘테마’로 잡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추리소설이라는 ‘방법’을 쓰고, 마지막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리얼리티’를 부여합니다. - pp.239~240(역자의 말 中)
작가의 최고 작품은 꼭 연륜(연차)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님을 <점과 선>을 읽으며 또 한번 느꼈다. 물론 <점과 선>을 세이초의 최고 작품이라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1천여 편이 넘는 그의 작품에서 대표작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점과 선>, 읽어보니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 알 것 같았다. <점과 선>은 1958년에 출간한 소설로 비교적 세이초의 초기작이다(세이초는 1950년 등단). “여행”이란 잡지에 1957년 2월부터 1958년 1월까지 연재했다가 단행본으로 낸 소설인데, 연재 당시에는 같은 시기에 함께 연재했던 <눈동자의 벽>이 훨씬 폭발적인 반응이었고 <점과 선>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식출간하면서 공전의 히트를 쳤고, 누적판매 500만부를 돌파하며 대표작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또한 <점과 선>은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기원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정과 통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대중소설의 한계를 세이초는 오히려 문학이 더욱 잘 현실을 반영하고 더 쉽게 대중과 소통하는 강점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의미에서 <점과 선>은 당대를 향한 세이초의 비판의식은 무엇인지, 세이초식 사회파 추리가 무엇인지 살필 수 있는 좋은 견본이다.
 
 
완벽한 사건, 정말 빈틈은 없는가
 
가사이 해변의 동반 자살 사건은 탈도 없고 잡음 하나 없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 흘러갔다. (...) 이 사건에 끼어들 여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 p.51(본문 中)
미하라는 지쳤다. 그는 벽에 포위되어 있었다. 어느 쪽 벽도 깨지지 않았다. - p.197(본문 中)
해변에서 한 쌍의 남녀 시신이 발견된다. 남자는 비리의혹을 받고 있는 ○○성 과장 대리였고 여자는 요정 여종업원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들은 전형적인 불륜지간의 동반자살로 판정하고 심드렁해한다. 유사 이래 이런 류의 동반자살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오토키(죽은 여자)가 낯선 남자와 기차를 타는 것을 본 목격자도 확보되었고 탑승기차, 투숙여관, 이동경로 등 상황 판단도 끝났다. 비리가 밝혀질 것을 두려워한 실무책임자 사야마(죽은 남자)가 애인 오토키를 꼬드겨 함께 음독자살한 사건으로 결론내리고 별다른 추가수사 없이 덮으려 한다. 그러나 관할 형사 도리카이는 수상쩍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성 비리 사건을 수사하다 사야마의 자살 소식을 듣고 의혹을 품은 도쿄 경시청 미하라 경위가 합세해 진실을 찾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혼자만 밥을 먹은 영수증 등 이상한 사실들 몇 개를 발견하지만 사건의 곁가지에 불과하거나 심증만 있지 정확한 물증이 없어 둘은 답답해한다. 아무리 발로 뛰고 머리를 굴려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수사, 철옹성처럼 견고한 시나리오에 농락당하는 기분이다. 정말 숨겨진 비밀은 없는 걸까.
 
 
일상의 해체와 재구성, 훔쳐보고 상상하는 사람들
 
전국의 여러 지방에는 일제히 기차가 정차해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인생에 따라 기차에 타거나 혹은 내린다. 나는 눈을 감고 그런 정경을 상상한다. (...) 나는 지금 이 순간, 여러 고장에서 펼쳐지는 스쳐 지나가는 인생을 한없이 공상할 수 있다. 타인의 상상력이 만든 소설보다도 자신의 공상이 훨씬 흥미롭다. 꿈이 떠다니는, 고독한 즐거움이다. - pp.137~138(본문 中)
‘점과 선’이란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좌표였다. X축과 Y축이 교차된 평면 위에 점들의 궤적이 함수(관계)가 되고, 축이 추가되면 차원이 높아지고 축을 없애면 1차원이 되며, 그 모든 것의 시작이자 기본은 점과 선이다. 세이초도 비슷한 발상인데, 그가 말하는 ‘점과 선’의 1차적 의미는 기차이다. 점(길)과 선(역)으로 이루어진 기차노선표, 그 위의 여정과 사건을 ‘점과 선’이라 단순화하고 추상화시킨 개념으로 짧게 표현한다. 일상을 해체해 낯설게도 보고 상상도 하면서 재구성하는 것이 <점과 선>의 발상이자 감상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흥미로운 인물인 료코가 등장한다. 오토키가 일했던 요정의 단골 다쓰오의 아내로 폐결핵 때문에 병원과 요양을 전전하는 그녀는 소설보다 기차시간표와 노선표 읽는 것을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점과 선, 숫자의 교차를 보며 가고 싶은 곳을 그려보고 기차 위의 인생들을 상상하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그녀는 평생 엄청난 여행을 했지만 어릴 적엔 가난으로 발이 묶였던 작가의 투영이기도 하고 지금 이 소설을 읽으며 골똘히 추리하는 독자의 투영이기도 하다.
   
 
왜 조직 비리사건의 희생자는 항상 과장 대리급일까
 
과장 대리라는 건 그야말로 실무의 프로. (...) 대신에 출세할 가능성은 없어. (...) 그런 사람들은 상관이 한번 잘해주면 감동하거든. 줄곧 포기하고 있던 출세에 희망이 보이니까, 상관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지. (...) 이번 비리 사건에서도 모든 선이 사야마 과장 대리에 집중돼 있어. (...) 과장 대리들 (...) 사명감에 쉽게 목숨을 버리지. 대형 비리사건에서 자살하는 사람은 꼭 과장 대리급이거든. - pp.186~187(본문 中)
세이초의 소설은 명쾌하다. 콘셉트 하나, 주제 하나, 고발점 하나 등 단출하게 골격을 잡고 기지를 채워가는 식이다. <점과 선>에서 세이초가 주목한 것은 조직의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핵심인사가 아닌 과장 대리급에서 처벌하다 끝나는 불편한 현실이었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과장 대리’가 연차는 쌓여 있는데 과장으로 승진하긴 모한 직원들을 위해 만든 허울 좋은 직급으로 만들어놓는 조직이 많은데 <점과 선>에서의 과장 대리에 대한 묘사들을 보면 세이초 역시 그런 부정적 뉘앙스의 ‘과장 대리’를 말하고 있다. 이용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진급의 희망에 몸을 내던지지만, 역시나 총알받이였음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도리카이의 고군분투에 미하라가 합류하면서 <점과 선>은 동반자살에만 대한 집중에서 동반자살과 ○○성의 비리가 따로 또 같이 만났다 평행선을 그렸다 하며 이야기가 확장된다. 이러한 소설의 후반부 양상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휘말리는 개인의 이야기를 추리소설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세이초식 사회파 추리의 양상이자 결말이 가까워 옴을 알리는 신호다.
 
 
익숙함에 눈 멀 때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
 
기차가 교차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필연이지만, 타고 있는 사람들이 공간적으로 교차하는 것은 우연이다. - p.138(본문 中)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점 (...) 저희는 잘못된 선을 그어서 둘을 묶은 것입니다. - p.222(본문 中)
<점과 선>의 트릭은 결코 복잡하지 않다. 이 소설의 사건 정답을 푸는 열쇠는 트릭에 집착하기보다 맹점에 눈을 뜨는 것이다. 앞서 ‘점과 선’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기차’를 상징화한 것이라 말하였다. 세이초는 왜 굳이 그런 발상을 했을까, 그저 멋들어진 책 제목을 짓기 위해? 익숙하고 전형적인 관념에 빠져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때 눈은 멀기 시작한다. 상식과 신념에 의문을 품을 때, 일상을 해체하고 낯설게 볼 때, 거짓말처럼 답답함이 사라지고 전말이 모두 보인다. 복선을 하나하나 챙겨가며 사건의 조각을 엮을 필요도 없고, 한번만 생각을 틀면 끝난다. 그래서 어떤 이에겐 그냥 작가의 문장을 따라 끝까지 붙을 책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겐 생각할 것도 없이 답을 알고 보는 소설이기도 하다. 추리하는 재미는 별로 없는 소설,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장르적 트릭 기교의 훌륭함보다는 사소한 발상의 전환으로 장편을 이끌어가는 능력 때문이다.  1968년이 있다면 그 10년 전엔 '점과 선의 복합'이 있다. ‘점과 선’의 1차적 의미가 사건의 배경이 되는 기차라면 사건을 풀기 위해 인물과 단서를 나열하고 연결하는 소설 전체가 ‘점과 선’ 자체기도 하다.
  
 
우리식 <점과 선> 특별판
 
<점과 선>의 배경은 도쿄를 중심으로 해서 북쪽으로는 홋카이도, 서쪽으로는 규슈지방에까지 이릅니다. (...) 점과 선에는 수많은 지명에다가 여러 철도 노선까지 등장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모비딕 편집부에서 틀림없이 뭔가 해주실 테니까요. -p.241(역자의 말 中)
반백년 전 외국소설을 오늘의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영화나 드라마로는 알게 모르게 접했지만 정작 원작을 읽어본 적 없는 이들을 위해 세이초월드를 만드는 출판사는 매번 고심했다. <점과 선> 자체도 이미 특별하다. 작가가 소설 중간 중간 강조하고 싶은 구절에 계속 방점을 찍고 노선도와 플랫폼 배치, 시간표들을 삽입했다. 그런데 일본에선 세이초 탄생 100주년을 맞아 분게이슌주에서 새로 낸 <점과 선>이 등장한다. 컬러 삽화가 담은 특별판 개념의 책이었다. 고분샤의 <점과 선> 판권을 산 모비딕판 <점과 선>은 원래 <점과 선>과 그대로 방점과 그림을 옮겼지만 분게이슌주의 컬러삽화는 없다. 대신 27개의 흑백삽화를 새로 넣어 나름 우리식 <점과 선> 특별판 을 만들어냈다. 비교적 짧은 분량으로 세이초의 스타일을 파악하고 싶다면, 방점과 그림이 있는 '조금 특별한' 세이초 소설을 읽고 싶다면 <점과 선>을 읽어보라 추천한다. 한편 <점과 선>은 '점과 선2'로 불리는 <시간의 습속(1962)>이란 속편이 있다. ○○성 비리 사건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도리카이와 미하라가 다시 합심해 새로운 사건을 해결한다고. 이 작품도 모비딕에서 한창 번역 중인데 <점과 선>만큼 재밌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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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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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동화를 찾아서

소담한 글이 품은 강한 힘과 울림

등단 이후 발표한 산문과 시를 추리고 한 편의 동화를 더한 故권정생의 산문집

 

 

영국의 극작가인 버나드 쇼에게 덴마크의 한 소녀가 편지를 보냈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동화 작가가 될 수 있겠는지 가르쳐 달라고 했다. 쇼는 답장에 이렇게 썼다. “첫째로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질 것, 둘째도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질 것, 셋째 역시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질 것”  *본문에도 나오는 구절(p.200)*

 

 

 

어린 내게 동화는 귀한 것이었다. 도서관도 책대여점도 없었다. 부자든 가난하든 어미의 마음은 같아서 자식에게 책을 주려고 어머니는 부단히 발품을 팔았다. 남의 집 잔치에 요리를 해주고 품삯 대신 그 집 아이들의 책을 빌려오고, 이웃네 친구네 놀러갈 때 나를 데리고 가 책을 읽혔다. 나는 어머니랑 보물 찾는 날이 참 좋았는데 폐지 버린 더미에서 책을 주워와 깨끗이 닦는 걸 우린 그렇게 불렀다. 사정을 들은 친척들이 책을 물려주기도 했다. 속이 없어 집안일과 부업에 지친 어머니가 목이 쉬고 입이 부르트도록 밤마다 책을 읽어 달라했고 한권 두권 외우다보니 글씨를 알게 되었다. 까막눈이었을 때부터 책을 볼 수 있을 땐 무조건, 빨리, 많이 보는 게 습관이 된 탓에 유치원에 입학해선 그곳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아무 친구도 안 사귀다가 선생님의 요주의인물이 되기도 하였다.

 

나는 동화를 읽으면서 글과 세상을 알았고 동화 삽화를 베끼며 미술을 익혔다. 7살쯤부터는 읽을 책이 없으면 동네 애들을 앉혀놓고 되도 않는 이야기를 지어내며 어떠냐고 묻고 다녔다. 나는 말을 안 들으면 발목이 잘리고, 아이들이 할머니를 삶아 죽이고, 못된 계모를 젓갈로 만드는 전래 동화들보다 고운 말로 지금 우리의 얘길 하는 창작동화들을 좋아했다. 이상교, 권정생, 이오덕 등의 동화를 읽으며 그들처럼 누군가를 위해 재미지고 예쁜 글을 쓰는 어른이 되길 꿈꿨다. 그런데 나를 키운 그 많던 동화들이, 꿈을 꾸며 부풀었던 마음이 지금은 어딜 갔을까. 휘발되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잃어버렸다. 별것 없는 잡문의 모음인데 <빌뱅이 언덕>은 끊임없이 기억을 두드리고 가슴을 울리며 나의 상실과 생채기를 일깨워주었다.

 

권정생의 동화와 소설 몇 권을 읽었지만 그의 생애를 관심 있게 찾아본 적은 없었다. 올해는 그의 귀천 5주기이다. 선생은 천상병 시인과 함께 귀천이란 말이 어울리는 삶을 살았다. 수많은 베스트셀러 동화를 썼지만 한 번도 풍족한 적이 없었다. 마을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로 살다가 30년 전에야 강아지 같은 빌배산의 강아지 꼬리 같은 빌뱅이 언덕 아래에 강아지 똥 같은 작은 제집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유언은 인세를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는 것이었다. 전쟁과 가난 그리고 때를 놓친 치료로, 스무 살에 얻은 폐렴과 늑막염으로 망가진 몸은 영영 회복되지 않았다. 남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자취 없이 죽을 생각을 했던 젊은이는 세월이 지나 사람의 삶은 수많은 타인에게 신세를 지며 이루어짐을 깨닫지만 그 때의 마음을 모두 잊진 않았던 건지 끝내 가정을 이루지는 않았다.

 

머리말을 읽다가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발상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아찔했다. 여러 출판사가 함께 먹고 살아야 하며 당신의 전집이 나오는 것을 반대했다는 얘기였다. 선생의 뜻을 지키겠다는 재단(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엄밀히 말하면 그의 뜻이 아님에도 굳이 엮어낸 이 책은 어떨지 궁금해져 재빨리 본문으로 책장을 넘겼다. 생전 선생은 산문집을 낼 생각이 없었지만, 여러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묶어 남의 뜻으로 낸 산문집이 두번 있었고 모두 절판되었다. 세 번째 <빌뱅이 언덕>도 남의 뜻이다. 절판된 두 산문집을 추리고 1975년부터 2006년까지 잡지에 발표했으나 단행본화된 적 없는 글을 재단과 출판사가 새로 찾아 43편의 산문을 담았다. 또 단행본으로 내기엔 분량이 애매했던 시 7편과 동화 1편도 담아 한 권의 책을 꾸렸다. 그래도 채 담지 못하고 남긴 글은 다음을 기약하며.

 

산문은 총 3부로 나누어 1부엔 선생의 자전적 산문들을, 현재의 세태에 대한 성찰을 담은 산문들을 1990년대~2000년대의 산문은 2부에 1970년대~1980년대의 산문은 3부에 담았다. 시와 동화는 부록으로 처리했고, 머리말은 재단 사무처장이자 시인인 안상학이, 책 끝의 발문은 문학평론가 염무웅 교수가 맡았다. 또렷한 기억의 편린이지만 곳곳의 구멍으로 부정확한 사실들은(ex.연도) 각주를 통해 차이를 밝히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겼다. 지배국에 사는 식민지인이 받는 처우와 그들의 생활, 가족을 갈라놓고 인도를 잃게 하고 몹쓸 병을 퍼뜨리는 전쟁과 가난, 어제처럼 추억이 생생해 더욱 그리운 친구와 사랑했던 이, 어여뻐 하는 아이들과의 웃고 우는 일, 그리 순한 성품에도 역성을 들며 비판하는 것들, 쌓이는 인생의 나날만큼 깊어지고 늘어지는 수많은 상념들. 두런두런 선생을 닮은 글에서 선생의 삶과 철학이, 그리고 우리들이 살던 수십 년이 뚝뚝 묻어난다.

 

슬프지만 절망이 없는 이야기, 우리가 겪은 고난이기에 세대를 초월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누구를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인간이 인간답고 아이가 아이답길 바라며 쓴 이야기. <빌뱅이 언덕>을 읽으며 나름대로 선생의 동화론을 정리해보면서 무척 공감하였다. 어린 날 이런 동화를 읽다가 할매는, 아저씨는 이랬어하고 물으면 무뚝뚝하고 말주변이 없던 어른들마저 술술 입을 열며 꼬마와 수십 년을 허는 친구가 되었다. 고통스러웠던 경험들이 안주거리 추억이 되고 더 큰 상처도 이겨낼 수 있음은 물론 한마저 사라지는 것에서 나이 듦의 장점, 슬프지 않은 슬픔을 알았다. 아무리 남녀노소 즐길 수 있다 해도 선생의 동화는 역시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면, <빌뱅이 언덕>은 아이를 지나 시간의 켜들을 맞으며 다 커버린 어른들을 위한 책이다. 아이인 적이 있었기에, 귀천한 선생이 산 궤적을 밟으며 매일 늙어가고 있기에 더욱 파고들고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방끈이 긴 자는 자신이 배운 지식으로 이성과 논리에 입각해 사리를 따진다. 이런 이들에게 선생이 전쟁이나 통일 등 시사적인 주제에 대해 쓴 글은 비판할 구석이 여럿 보인다. 그러나 경험과 감정에 입각한 이 주장들을 수준 낮고 그르다고 과연 단언할 수 있을까, 오히려 아는 만큼 눈이 머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한편 새삼 신선했던 점은 20대에 개신교에 귀의한 이래 평생 교회 일을 했던 선생이 경향이나 생활성서 같은 천주교 잡지에 글쓰기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나 담임목사부터 개신교 전체까지 조목조목 통렬히 꾸짖는 것이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그 동안 책으로 안 나온 것이 원통할 정도로 빼어난 문학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교가 있는 문장도 아니다. 권정생이란 이름을 지우고 보면 옆집 할아버지가 쓴 것도 같다. 그만큼 평범하고 수수하다. 하지만 염무웅의 표현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내는 가장 맑은 목소리’가 무엇인지 통감하고 읽는 이의 가슴을 알캉이게 하는 힘이 있는 책이다.

   

우리 아동출판의 황금기는 1990년대였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표현은 더욱 자유로워졌고 끝없는 호황으로 더욱 여유로워져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다. 더 많고 질 좋은 아동서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만큼 많이 사고 많이 읽었다. 그 혜택을 받은 90년대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거짓말처럼 나라가 파산한다.  돈의 무서움을 온몸에 아로새긴 그들은 신자유주의에 동물처럼 반응하고 수많은 가치를 버리며 살아남기 위해 처절히 경쟁했지만 돌아온 건 88세대니, 3포세대니 하는 낙인이었다. 재산과 경력이 보잘것없고 힘든 것은 20대에 당연한 것인데, 절망에 휘감기며 자라다 벌써 지친 건지 패기도 적고 정말 3포의 유혹을 느끼기도 하고 누가 조금만 위로해줘도 동요한다. 어떤 어른보다 어린 시절 좋은 책을 읽었지만 자라면서 독서가 사치가 되어버린 90년대의 아이들, 하지만 이전 세대가 그랬듯 그들도 대부분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며 동화를 다시 찾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멈출 수 없고 희망을 믿기에. 

 

http://der_insel.blog.me/120170736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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