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 김말봉 애정소설
김말봉 지음 / 지와사랑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찔레꽃] 세월을 입은 통속소설은 유산이 된다

조선일보 최초의 여류장편소설이자 김말봉 문학 1기의 대표작

잊힌 옛 우리 어휘들과 1930년대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

하지만 명작의 반열에 오르기엔 부족한 태생의 한계, 더 곰삭으면 극복될까

 

   

순수문학(본격문학)과 대중문학(장르문학)의 구분에 대한 논쟁은 첨예하다. 영역의 범주를 어디까지 둘 지부터 시작해, 후자는 문학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경론도 있고 장르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장르무용론도 꾸준하다. 대중문학에 대한 부정적 목소리의 근원은 상업성·대중성·통속성·인기영합으로 요약되는 태생적 특징으로, 순수문학과 출발(목적)이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집필의 진입장벽도 낮고 수적으로도 많아 순수문학에서보다 좋은 작품을 찾기 더 힘들다. 이러한 대중문학의 대표적 이미지는 신문소설로 상징되는 연재소설이다. 그러나 이들 중 오늘날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이 상당히 많다. 우리문학에서도 이광수, 염상섭, 심훈, 홍명희, 박경리 등 수많은 명작가들이 연재물을 내놓았다.

 

그래서 평소 통속이나 대중이란 단어만 나와도 열에 아홉은 지나치는 독자인 편임에도 아예 외면하지 않고 꾸준히 찾고 있다. 그런 풍토에서 전설로 자리매김한 대중문학의 역작을 읽거나 스스로 뛰어난 작품을 발견했을 때 짜릿함은 더욱 크다. <찔레꽃>도 몰랐던 작가인데다가 통속소설이라는 얘기에 덮어놓고 지나칠 뻔 했던 소설이다. 그 동안 중일전쟁 이후의 일제강점기 후반의 우리 문학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시절이 시절이라 친일문학이 급증하기도 하거니와 시대적 문제의식 없이 유유자적하며 살아갔던 부르주아지 모던걸보이들의 일상(혹은 그런 환상을 심어주는)엔 흥미는커녕 욕지기가 솟기 때문이다.

 

1932년 등단해 작고하는 1961년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김말봉은 소설가이기 전에 한국 최초의 여자 개신교 장로이기도 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친일 작품 청탁을 거부했고 공창폐지운동, 박애원 경영 등 사회운동도 하였다. 1937년 연재한 <찔레꽃>은 193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신문들의 상업주의가 강해지면서 쏟아져 나온 통속소설의 일환으로, 그녀의 문학 1기의 대표작이자 ‘조선일보 최초’의 여류장편소설이었다. 혹자는 이 때문에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아니다. 1917년에 등단한 김명순(필명:김탄실)이 우리 최초의 여성 소설가이며, 신문연재장편소설로 여성 최초는 1932년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박화성이다.

 

지금 <찔레꽃>을 다시 출간하는 이유는 한국 문학사에서 이름만 빛날 뿐 작품이 사라진 슬픈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작품은 작가의 실존적 가치이므로 작가의 생애를 아무리 소상하게 안다 하더라도, 또 작품에 대한 해설이나 연구논문을 읽는다 하더라도 작가의 정신세계를 아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작품을 읽고 작가의 정신세계와 교감을 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 작가는 우리와 더불어 현재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 발행인의 글 中

   

<찔레꽃>을 읽기로 결심한 것은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지와사랑 사장이 개인 블로그에 쓴 <다시 피어난 찔레꽃>이란 글을 읽고서이다(이 글의 전문은 <찔레꽃> 끝에도 담겨 있다). 그의 말대로 김말봉에 대한 연구논문은 수도 많고 근자에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책 자체는 1980년대 이후 발간이 끊긴다. 우리 문학에 대한 애정과 미지의 작가에 대한 호기심에 <찔레꽃>을 펼쳐들었다. <찔레꽃론(책 뒤에 실려 있음)>에서 1930년대 중반 이후 <찔레꽃> 연재가 시작한 1937년을 우리 문학에서 대중소설과 순수소설의 정체성이 이론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시기라 평가한 천상병 시인의 말이 맞는 진 모르지만, 우리 문학사를 고려할 때 현대대중소설의 틀은 이 시기에 충분히 원숙기에 도달했다고 판단했고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김말봉의 작품은 대부분 남녀 간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고 이는 광복 전까지의 1기 작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찔레꽃>은 전형적인 통속치정소설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나이는 제시된 인물도 있고 안된 인물도 있다).

1. 48세의 부호 조만호에겐 아내 정씨와 슬하에 경구(26세), 경애(25세), 경옥, 쌍둥이 영남과 영길(각 6세), 용길을 두고 있다. 정씨가 숙환으로 누워 지내는 탓에 바람기가 동한 조만호는 기생 옥란과 사귀는 중이다.

2. 서울서 여학교 보육과를 졸업한 22세 정순은 고향 밀양에서 유치원 교사를 하다 최근에 해고당했다. 서울에서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교장선생님 김씨 부인의 도움으로 조만호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된다. 그녀에겐 경성제대 수리과 3학년 민수란 남자친구가 있다. 조만호는 정순을 보고 첫눈에 반해 애욕을 품는다.

3. 조만호는 세교를 맺은 집안의 영환과 경애를 맺어주려 하고 경구는 윤희와 여주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경애는 민수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경구는 정순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게다가 정순과 민수가 외사촌인지 알고 있고 민수가 경애를 구해주는 일까지 발생하자 더욱 구애를 하기 시작한다.

4. ○○은행이 매각되는 바람에 파산한 경철은 땅이 죄다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쳐하고 아들 민수와 함께 주주인 조만호에게 사정해 경매를 미뤄달라고 부탁한다. 그 과정에서 도와주려 정순은 경철이 외삼촌이고 민수가 자신과 외사촌이라 거짓말을 한다. 일이 잘못돼 결국 경철의 땅은 매각되고 생활고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민수는 증오심에 불타는데. 설상가상 정순과도 오해가 생긴다.

5. 옥란은 첫 남편 사이에 낳은 수남(6세)이 있고 은행원 근호(25세)와 결혼했으나 생활고에 시달려 근호를 버리고 그 사실을 숨긴 채 조만호의 후처로 들어가려 애쓰는 중이다. 근호를 버리고 그 사실을 숨긴 채 조만호의 후처로 들어가려 애쓰는 중이다. 근호는 민수의 옆방에서 하숙하며 복수를 꿈꾼다.

6. 정씨는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히스테리컬하다. 침모를 시켜 오는 가정교사마다 감시했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쫓아냈다. 여자의 육감으로 조만호가 정순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정씨는 정순을 미친 듯이 구박하는데 죽으면서는 정순이 만호의 후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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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고 꼬인 치정관계가 폭발하고 복수와 음모가 엉키는데! 

정순의 호리호리하고 탄력 있는 뒷맵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던 조만호씨는 무엇 때문인지 후우 한숨을 내쉰다. 잘 익은 과일을 보는 때처럼 그의 눈에서는 어떤 애욕의 횃불이 여름밤의 인광과 같이 흩어졌다. - p.22

 

"그래? 애비 의견을 무시하는 자식이 어디 있어, 응? 어디 있느냔 말야. 그것이 자식의 도리란 말이냐?" (...)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세계가 있는 것과 같이 또 저에게는 제 세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결혼하지 않고도 훌륭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제가 실행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pp.35~36

 

정조란 것도 결국 밥 있고 옷 있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사치품이야. - p.88

 

황금을 가지고 사랑을 사는 사나이의 말은 어디까지 믿어야 좋을까. 또한 자기의 순진한 사랑의 대상을 돈이라는 우상과 바꾸어버린 기생 옥란은 과연 총명한 여자일까. - p.97

 

진실로 약한 자여, 너의 이름은 여자니라. 그보다도 비겁하고 추악한 자여, 너는 질투와 의심의 종이니라! - p.137

 

그는 달렸다. 그저 달렸다. 어디서 배상해올 수도 없는 잃어버린 청춘의 울분을 실은 채 경애는 꿈속같이 아늑하게 뻗친 아스팔트 위를 바람같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 p.162

 

그들은 사양하는 조두취에게 술을 퍼 먹이고 그리고 두취의 좋아하는 기생 옥란이를 불러 그와 한 자동차에 실어 ○○호텔로 보냈었다. 그들은 그것이 친구로서 아내가 죽은 지 불과 반 달 되는 친구를 대접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각하고 서로들 만족한 듯이 빙그레하고 소리를 죽여 웃었다. 그 웃음은 배우자가 죽으면 평생토록 다른 이성을 대하지 아니하여야만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여인이란 동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남자라는 전능의 인간으로 세상에 나온 것을 만족하여 웃는 웃음이리라. - pp.243~244

 

침모의 딸 영자! 독자 제씨는 일찍 침모 박씨가 정순이와 이야기할 때에 고등여학교 삼 학년까지 다니다가 어느 중학생과 연애를 하고 운운하는 설명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실 줄 믿는다. 정순이와 같이 스물두 살 난 지금은 오라범댁에 눈치 밥을 먹고 있다는 영자가 무슨 까닭으로 정순의 화장품을 도적해서 검사하였는지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으로서 가장 추하고 무섭고 그리고 비꼬아진 한 장면을 구경하게 되는 것이다. - pp.301~302

이 소설에 눈이 갔던 또 다른 이유는 어휘들 때문이다. 400쪽이 넘는 제법 두툼한 소설이어서기도 하지만 <찔레꽃>에 쓰인 어휘들이 다채로운데다가 현재 국어에선 쓰지 않는 우리말들이 많아 즐겁고 그립다. 이런 어휘와 일본어 단어들은 꼼꼼히 주석을 달아두었다. 이번 지와사랑의 <찔레꽃>은 1984년판 <찔레꽃>을 저본으로 현대 국어 맞춤법에 맞게 문장을 다듬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정도는 매우 약하다. 고친 이 책도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빨간펜칠갑을 해야 할만큼 옛 어휘나 맞춤법들이 자주 보인다. 그저 읽는 데 힘들지 않을 정도일 뿐, 원작이 훼손되지 않도록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표지를 옛날 <찔레꽃> 판본들과 비슷하게 만든 센스에도 놀랐다. 

 

찔레꽃 같이 괴로운 그대 맘같이 내 가슴 내 가슴에 품어주게나. 시내 언덕 풀숲에 희고도 고운 찔레꽃 피었다지. - p.430

 

소설 제목은 여주인공 정순이 찔레꽃을 가장 좋아하며 찔레꽃처럼 예쁘게 생겼다는 점에서 붙여졌다. 작가와 연결 지으면 작가가 좋아하는 가곡이기도 하다. 소설 끝에 그 가사가 일부 인용되어 있는데 이 노래의 전체 가사를 알면 작품의 감상이 더 풍부해질지도 모르는데 찾기가 어렵다는 게 아쉽다. 왜냐하면 일본 가곡을 번안한 것이기 때문이다(일본웹에서 원곡을 찾다가 실패). 당시에는 널리 불렸지만 1942년 반일감정과 토속성을 담은 우리식 <찔레꽃> 노래가 등장했고 광복 이후에도 비슷한 정서의 여러 우리 <찔레꽃> 노래가 나오면서 대중들의 기억을 덮었고 우리 스스로도 부르지 않게 되었다.

 

<찔레꽃>은 고전소설적인 요소가 꽤 있다. 전지적 작가시점을 쓰면서 서술자의 독백이 변사나 소리꾼투고 어찌되었든 해피엔딩인 결말 처리 등을 보면 그렇다. 그러면서 혼전 관계나 자유연애, 농촌진흥운동 등의 소재나 열린 결말기법을 쓰는 것은 상당히 현대적이고 세련되었다. 1910년대 이광수의 노골적이고 투박한 계몽성이 1930년대 말 김말봉의 문장에선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렇다고 심각해지지 않고 양념 다루듯 당대의 사회이슈들을 쓰며 장르(통속)적 미덕을 깨지 않는다. 은행매각이나 토지경매 등 전문적인 묘사는 취약하나, 여성 작가이고 장르가 통속소설이다 보니 감정이나 정황 묘사는 섬세하고 탁월하다.  

 

무엇보다 <찔레꽃>은 흔한 통속소설도 시간이 지나면 시대를 증명하는 유산이 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세월이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긴 했지만 75년의 시간으론 <찔레꽃>을 고전의 반열까지 올리기엔 역부족이다. 클리셰 덩어리고 너무도 통속적이다. 분량과 장르가 달라 비교하는 데 다소 무리는 있지만, 같은 막장인데도 김동인의 <감자>에 묻어나는 아름다움과 서슬이 같은 계급갈등과 치정인데도 김기영의 <하녀>가 가진 개성과 예술성이 <찔레꽃>에는 보이지 않는다. 더 곰삭으면 극복될까. 오늘날 읽어도 술술 읽힐 정도로 재밌고 지금의 어떤 막장물과 겨뤄도 지지 않을 만큼 드라마적 요소는 다 들어 있고 자극적이어서 통속소설로는 완벽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기엔 아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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