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클럽 2
매튜 펄 지음, 이미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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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단테클럽은 19세기 미국사회에 단테의 '신곡'을 들여오려던 문인들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하버드 기득권층 사이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추리 소설이다.
CSI 과학수사대의 정밀 장비들 덕을 보려면 한 150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했으니, '신곡'의 지옥편에 등장하는 형벌을 모방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롱펠로를 위시한 당대 내로라하는 문인들은 단테 탄생 60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에도 단테의 위대성을 소개하려는 책임감을 가지고 번역을 지속하려 하지만, 끔찍한 연쇄 살인사건이 지옥의 형벌 모티브를 악용한 사실을 알아내고 그때부터 과학수사대 에이전트 못지 않게 몸을 던지는 비밀 수사에 착수한다.
사실 미국 문학사에는 문외한인데다 19세기 시인들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던지라, 초반부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삼 단짜리 이름들 때문에 통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1권 중반부에서 단테클럽 멤버들이 수사요원으로 탈바꿈하면서 소설은 생기를 얻어 나또한 그 속도에 편승하여 달리듯 읽어나갔다.

성서의 일곱가지 죄악을 다룬 '세븐'과 유사한 모티브를 사용한 이 소설은, 북의 승리로 끝났지만 여전히 노골적 인종차별과 노예제가 존재하던 남북전쟁 직후의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신곡을 읽지 않아서 작품 속에 녹아있는 메세지를 충분히 이해하긴 어렵지만, 19세기 미국 사회에서 단테의 의미론을 조금은 짐작하게 해 주었다. 비슷한 소재를 다뤘지만 '세븐'처럼 우울한 분위기는 없고, 오히려 시인들의 다양한 성격과 감수성이 녹아있어 다른 추리소설과는 좀 다른 느낌을 풍긴다. 신곡을 더불어 읽는다면 금상첨화인, 다음에 하려는 쓴소리를 제외하면 손색없는 작품이다.

1권에서는 문학사적 지식이 딸려 속도가 더뎠건만, 2권에 등장하는 그 수많은 오타들이란 뭐란 말인가. 게다가 맞춤법 틀린 건 고사하고, 이탈리아어인지 불어인지 정확히 알아보지도 않고 한국말 음역을 해 놓은 부분에서는 기분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초판 1쇄라도 그렇지 이건 번역자 자신도, 편집부도 교정 한 번 봐주지 않은 내놓은 자식같았다.
'이따위로 책을 만듭니까'라고 황금가지에 버럭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냥 점잖게 세 군데 틀린 부분을 지적해주고, 돌려돌려 책 잘 만들으라 쓰고 나왔다.

이틀 뒤 시정하겠다는 답변을 받고서, 다른 자유게시판에 가보니 어떤 독자가 거의 항의 수준으로 글을 올려놨더라. 그렇게 항의한 효과가 있었는지 그 독자는 수정본을 보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단다. 역시 목소리 크고 도전적인 사람이 이기는 게 한국사횐가보다.
그 독자는 번역 미숙으로 인한 문맥파악 불가를 주장했지만 사실, 난 이해불가할 정도로 이상한 문맥은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렇게 오타가 많았다면 꽤나 서둘러 번역을 했을텐데, 그런 것에 비하면 번역 자체의 질은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기분이 나빴던 건 번역자의 그리고 출판사의 성실성 문제이다. 원저자 매튜 펄이 한국내에서 자신의 책에 대한 이러한 상황을 알면 기분이 어떨까 상상을 해본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이 소설이 얼마나 많은 연구와,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공들인 소설인지를 밝히고 있다. 번역자의 사정, 출판사의 사정이라는 것 - amazon.com의 베스트셀러니 발빠르게 움직여야 시장성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외국어로 된 재밌는 책은 빨리 읽고 싶어하는 독자들의 기대감에 대한 부응. 뭐 이런 뒷사정이 있었겠지 싶다.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누군가의 고백성 발언이 절실히 떠오르는 한편, 책이나마 경제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번역본이라도 오랜 세월 소장가치가 있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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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7-15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번역의 미비함을 모르는 무식장이라 잘 몰랐는데 꽤 항의하시더라구요. 전 그러려니 해요. 알아야 항의도 하는데 알 수가 있어야죠. 그저 출판해주는 것만도 감지덕지 합니다...
 
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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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선물로 받은 문화상품권을 가지고 무슨 책을 살까 들뜬 마음에 책들이 잔뜩 쌓인 서가를 한참 헤매고 다녔다.
코엘료의 책은 약간의 환각성분이 있어서 책을 펼치기 전 늘 경계하게 된다.

'전혀 살 생각은 없어, 그냥 보기만 하는거야.'

다짐을 하고 첫장을 펼쳤다. 물론 책 날개에는 키퍼 서덜랜드를 닮은 그의 뜬금없는 눈빛이 독자를 부른다. 그리고 다음 두 장엔 11분이라는 책 제목이 있다. 그런데 그 다음장과 그 다음장이 문제였다.

『죄없이 잉태하신 동정녀 마리아여,
당신께 도움을 청하는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소서, 아멘.』

최근 마리아에 대한 사랑에 흠뻑 빠져있는 한 친구가 떠올랐다.


『...나는 기적의 샘물을 구하기 위해 프랑스의 루르드에 갔다.』

그리고 그 다음장엔 그 친구가 최근 다녀온 루르드에 작가가 갔었던 일화가 담겨있었다.

어떤 내용인가 짐작케 해주는 소개글을 읽기는 커녕, 이 책의 퉁명스런 제목 '11분'이 도대체 무엇에 소요되는 시간인가 하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조차 해보지 않은 채 두 줄의 짤막한 기도문과 루르드라는 지명 때문에 '덥썩' 책을 사버리곤, 짧은 순간 오르가슴을 맛보게 해 준 섹스처럼 단숨에 읽어버렸다.


코엘료 소설엔 그의 소설을 몇 권쯤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아주 단순한 도식이 있다. 아직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한 인간(대개는 여자)이 있고, 과거에는 그 존재와 하나였다가 어떤 연유로 분리되었을 법한 또 하나의 존재가 있다. 그 두 존재가 서로를 찾고, 북돋워주어 결합하는 방식은 물론 '사랑'이다. 사랑에 대해 신적인 전능함을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존재는 아직 발견 중에 있는 존재를 도와 그 도정을 단락짓고, 그와 동시에 그 존재는 정체성을 완벽하게 확립한다.

그런데 소설속의 그 두 존재는 너무나 이상적이어서 너무나 완벽하게 서로의 영혼을 알고, 이 책에서는 이제 서로의 육체까지 완벽히 알게 된다. 물론 사랑하는 대상과, 자신과 또 사랑 그 자체로부터 궁극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 속에서 무소유의 사랑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코엘료는 나처럼 메마르고 '현실' 운운하는 소심한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해 이런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이래도 되는 거야, 그걸 자유라 생각해도 되는 거야, 정말?'
읽는 내내 여전히 이런 소심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솔직히 마리아가 살짝 부러웠던 것을 고백해야겠다. 부러움의 대상은 그녀의 풍부함이 아니라 '용기와 솔직함'이다.

엄마에게 이 책을 보여준다면, 엄만 나보다 마리아를 받아들이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들지도 모른다. 그렇게 여전히 매춘과 성은 범죄라는 어두운 측면과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마리아는 '초심자의 운으로' 코파카바나에서 돈도 벌고 사랑도 찾지만, 뭇여성들이 매춘굴(?)을 이상실현의 장소로 삼기엔 너무나 많은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는 슬픈 현실이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의 다빈치 코드에서 힌트를 얻어, 다빈치, 빅토르 위고 등과 함께 파울료 코엘료를 Priory of Zion의 반열에 올려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시스 찬가와 오르가슴의 순간에 신을 만난다는 밀교의식과의 유사성도 그러하고, 여성 자신도 모를 많은 비밀들을 술술 풀어내는 해박함에 있어서도 여성 숭배사상이 엿보인다.
한편 책마다 빠지지 않는 복음서의 인용과 마리아의 등장이 그의 종교적 입장을 반영해 주면서도 왠지 뉴에이지의 냄새가 나는 건 또 무슨 반항심인지.
 
헐리우드 냄새가 짙게 풍기는 결말에선 그러길 바라지 않았으면서도, 어느 책에서도 어느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가막힌 결말을 선사해주길 바랬으면서도 행복했다. 코엘료는 사람들의 이런 모순적 기대감을 간파하고, 어떻게 하든 욕을 먹는다면 차라리 해피엔드를 택하자 했을 것이다.

내게 진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감당하기 힘들었을 여러 사건을 경험하게 해 주는 작가들에게 감사하며, 관음증 = 남의 삶 엿보기 = 독서라는 등식에 너무 빠져들지 않기를 바라면서, 마리아와 랄프에게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감동적인 한 장면을 인용하며 마칠까 한다.

"날 축복해주오."
그가 말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그를 축복해주었다.
나는 내게도 축복을 내려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그가 말했다.
"내가 많이 사랑한 이 여자에게 축복을."
그의 말은 아름다웠다.

Paulo Coelho, Onze minutes,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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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le de danseurs italiens.    

Gaétan Balthazar Vestris (Florence, 1729 — Paris, 1808),

arriva en France en 1740. Élève de L. Dupré, il s'imposa rapidement comme un maître de la danse noble. Il mena une brillante carrière à l'Académie royale de musique, où il fut premier danseur et, de 1770 à 1776, compositeur de ballets. Parmi ses interprétations les plus célèbres, citons Roland (1755) et Emprise de l'amour (1757). Il se produisit également à Turin (1755) et à Londres (1781).
  
Sa sœur,
  
Thérèse Vestris (Florence, 1726 — Paris, 1808),

dansa à l'Académie royale de musique de 1751 à 1766. Elle fut à plusieurs reprises la partenaire de son frère, notamment dans Emprise de l'amour (1757).
  
Son neveu,

Marie Jean Augustin , dit Auguste Vestris (Paris, 1760 — id., 1842),

se forma avec son père, qui le fit débuter à ses côtés dans Endymion (1773). Danseur doué d'une adresse extraordinaire, il connut une brillante carrière à l'Académie royale de musique, où il devint «danseur seul» (1776), puis «premier sujet» (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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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 전2권 세트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오래전부터 신앙과 종교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카톨릭 신자로서 이 책의 개연성있는 스토리는 다분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골치 아픈 문제를 떠나, 다빈치와 그들의 뒤를 이은 Priory of Sion의 다소 익살스런 알레고리를 파헤쳐나가는 것은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가시적이지 않은 것을 믿게끔 만든다는 점에서 종교는 일종의 마술이다. 마술이 속임수이듯 종교도 다분히 그럴 수 있지만, 그 가운데서 무엇을 어떻게 믿느냐 하는 것이 바로 '신앙'의 영역인 것 같다.

"소피, 세상의 모든 믿음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이 바로 믿음의 정의이지요. 우리가 사실일거라고 상상하지만 증명할 수 없는 것 말이예요. 고대 이집트인들부터 오늘날의 주일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교가 은유와 알레고리, 과장을 통해 신을 묘사합니다. 은유는 우리의 믿음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해주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은유를 문자 그대로 믿기 시작할 때 생겨납니다.[...] 종교적 알레고리는 사실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런 현실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서로 돕고 보다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하지요." (p. 341~342)

이 책이 고발하는 것처럼 카톨릭 교회가 권력과 지배를 위해 우리를 기만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아직도 어디에선가 예수의 인성과 신성의 우위를 논쟁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나의 근본적 믿음은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물위를 걷고, 소경을 눈뜨게 한 神 예수보다는, 질투를 느끼고 사랑을 하며, 피를 흘린 인간 예수로부터 더 큰 위안을 느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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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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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천재들의 삶을 보고 있자면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들 중에 하나인 나는 상반적 안도감에 빠져든다. 과거 역사속의 천재들은 지금은 위대한 호칭으로 칭송받지만, 대부분 삶 속에서는 불운했다. 발자크, 모짜르트, 슈베르트, 고흐 등 특히 예술 분야에서 그러한 인물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그 중에서도 발자크는 '위대한 작가로 결정된 운명'이 현실적 삶의 모든 것을 불행하게 만든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견뎌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는 마치 오직 그러한 현실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현실의 진흙탕 속에서 연꽃 같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츠바이크는 발자크가 가진 모든 악조건이 발자크를 글쓰게 만든 원동력이었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는 듯 하다. 즉, 오히려 위대한 작가가 되겠다는 야망을 심어준 초기의 작품들은 차치하고라도, 어머니의 냉대로 인한 불운한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해서 손만 댔다하면 실패하는 모든 사업들, 심지어 희곡조차 허락되지 않는, 『인간희극』의 소설들로서만 빛을 발하고 성공하게 하는 운명이 부과한 굴레까지 그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아닌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고 착수하면 곧 실패했다.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 실패를 경험하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서느냐 아니냐는 단연 '의지력'의 문제이다. 그런 면에서 발자크는 의지력의 대가였다. 오히려 실패 앞에서 더욱 강해지는 것이 그였다. 어쩌면 그 자신이 너무도 소설적이었기 때문에, 오로지 그가 이 세상에 나온 목적은 마치 소설 때문이기라도 한 듯이 현실에 대한 감각이 없었기 때문에 현실에서 숱한 실패를 했을지 모른다. 말년에 그가 육체적 피폐에 도달하기 전까지 그는 정말 삶의 한계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말년의 발자크는 천재가 아닌 한 인간으로 볼때 너무나 불쌍했다. 완결된 『인간희극』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발자크를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써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지만, 모든 기가 다 빠져나가 죽어가는 발자크를 볼 땐, 게다가 그런 순수한 영혼에게 너무나 모질고 계산적이었던 한스카 부인의 무관심한 태도를 볼 땐 천재의 인간적 불운함을 마음 아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츠바이크는 이렇게 한계를 모르는 발자크의 치열한 삶에 대해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처럼 가쁜 호흡으로 세세하게 묘사한다. 이 평전을 집필하는 동안 그는 발자크처럼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발자크처럼 밤낮없이 일하고, 발자크처럼 열정적이었다. 발자크로부터의 그 열정과 의지는 강한 전염성을 지닌 것인지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발자크와 츠바이크처럼 정신없이 읽고 메모했다. 대상 작가와 일치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전기라는 측면에서 츠바이크가 쓴 다른 작가의 전기들도 꼭 읽어보아야겠다. 그리고 이 책은 번역자 안인희씨의 필치 또한 돋보이는 책이다. 번역체의 문장임에도 짧은 호흡과 적절한 단어 선정으로 읽는 내내 긴박감과 자연스런 흐름을 잃지 않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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