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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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삶을 보고 있자면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들 중에 하나인 나는 상반적 안도감에 빠져든다. 과거 역사속의 천재들은 지금은 위대한 호칭으로 칭송받지만, 대부분 삶 속에서는 불운했다. 발자크, 모짜르트, 슈베르트, 고흐 등 특히 예술 분야에서 그러한 인물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그 중에서도 발자크는 '위대한 작가로 결정된 운명'이 현실적 삶의 모든 것을 불행하게 만든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견뎌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는 마치 오직 그러한 현실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현실의 진흙탕 속에서 연꽃 같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츠바이크는 발자크가 가진 모든 악조건이 발자크를 글쓰게 만든 원동력이었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는 듯 하다. 즉, 오히려 위대한 작가가 되겠다는 야망을 심어준 초기의 작품들은 차치하고라도, 어머니의 냉대로 인한 불운한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해서 손만 댔다하면 실패하는 모든 사업들, 심지어 희곡조차 허락되지 않는, 『인간희극』의 소설들로서만 빛을 발하고 성공하게 하는 운명이 부과한 굴레까지 그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아닌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고 착수하면 곧 실패했다.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 실패를 경험하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서느냐 아니냐는 단연 '의지력'의 문제이다. 그런 면에서 발자크는 의지력의 대가였다. 오히려 실패 앞에서 더욱 강해지는 것이 그였다. 어쩌면 그 자신이 너무도 소설적이었기 때문에, 오로지 그가 이 세상에 나온 목적은 마치 소설 때문이기라도 한 듯이 현실에 대한 감각이 없었기 때문에 현실에서 숱한 실패를 했을지 모른다. 말년에 그가 육체적 피폐에 도달하기 전까지 그는 정말 삶의 한계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말년의 발자크는 천재가 아닌 한 인간으로 볼때 너무나 불쌍했다. 완결된 『인간희극』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발자크를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써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지만, 모든 기가 다 빠져나가 죽어가는 발자크를 볼 땐, 게다가 그런 순수한 영혼에게 너무나 모질고 계산적이었던 한스카 부인의 무관심한 태도를 볼 땐 천재의 인간적 불운함을 마음 아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츠바이크는 이렇게 한계를 모르는 발자크의 치열한 삶에 대해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처럼 가쁜 호흡으로 세세하게 묘사한다. 이 평전을 집필하는 동안 그는 발자크처럼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발자크처럼 밤낮없이 일하고, 발자크처럼 열정적이었다. 발자크로부터의 그 열정과 의지는 강한 전염성을 지닌 것인지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발자크와 츠바이크처럼 정신없이 읽고 메모했다. 대상 작가와 일치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전기라는 측면에서 츠바이크가 쓴 다른 작가의 전기들도 꼭 읽어보아야겠다. 그리고 이 책은 번역자 안인희씨의 필치 또한 돋보이는 책이다. 번역체의 문장임에도 짧은 호흡과 적절한 단어 선정으로 읽는 내내 긴박감과 자연스런 흐름을 잃지 않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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