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중위의 여자 Mr. Know 세계문학 11
존 파울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절판


"전 더비 오리예요, 나리. 꽃처럼 활짝 핀 더비 오리라고요."
궁금하게 여길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덧붙이자면, 더비 오리란 이미 요리된, 그러니까 소생할 가망이 전혀 없는 오리를 말한다.-12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텝파더 스텝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1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출판사에 입사에서 처음 일주일 간은 되도 않는 교정실력이지만 하루 종일 원고 보는 일이 즐겁기만 했다. 책의 꼴은 갖추지 못했지만 어쨌든 글을 읽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 초보 편집자에게 문제가 생겼다. 꿀맛 같던 지하철 독서시간이 '오늘은 너무 열심히 일했어', 혹은 '이렇게 글자만 보다간 눈이 나빠질 거야, 좀 쉬어줘야 해' 등등의 핑계로 멍하니 눈을 감고 있는 버려진 시간에 침식당한 것이다.

그렇게 25일 여간 읽은 책이라곤 애거서 크리스티의 <끝없는 밤>과 그리고... 애석하게도 없다. 일과 취미가 뒤섞여버린 생활의 폐단이랄 수 있다. 어쨌든 좋은 책을 만들려면 많은 책을 접하는 수밖에 없을텐데, 이러다간 안되겠다 싶어 어쨌든 읽고 결과물을 토해내야 하는 강제적 수단을 강구했다. 그리고 운좋게 서평단에 당첨이 되었다. 그것도 다시금 책에 대한 재미와 열망을 풀가동시켜주는.

미야베 미유키는 책 만드는 어떤 분 블로그에서 슬쩍 이름을 들어봤을 뿐인데, 처음 접해 본 이 책 때문에 다른 작품도 궁금해지는 매력있는 작가다. 물론 작가의 인격적 측면은 따로 생각하더라도, 어쨌든 작품에 대해서만은 좋아하고 싶다.

이 책은 미스테리와 유머, 교훈과 감동을 한꺼번에 담고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다. 외국인들도 우리 소설을 읽으면, 작가는 달라도 분명 한국적 공통분모를 감지할 것이다. 일본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라 속단하긴 어렵지만 하루키나 온다 리쿠 등과 비교해서 분명 공통적인 어떤 코드를 읽을 수 있다. 편부 편모 가정, 혹은 좀 일상적이지 않은 이유로 부모가 둘 다 부재하는 뒤틀린 가족구조, 그런 상황들을 어른스럽게 받아들이는 조숙하고 기묘한 아이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들, 미신에 대한 숭배 등등.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풍지대, 진공 상태, 무중력 상태에서 느낄 수 있는, 뭔가 공기의 흐름과 행동이 일상에서 뚝 떨어져나온 듯한 먹먹함 같은 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쌍둥이 형제 사토시와 타다시(그런데 난 처음에 무작정 이 애들이 여자애들일 거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래서 나중에 이 애들이 남자애들이란 사실을 알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뭐 대강 남자 이름이 '-시'로 끝나고 여자 이름이 '-코'로 끝난다는 사실을 주워들어 알고 있긴 했지만 암튼 일본 소설은 이런 점에서 내겐 좀 낯설다고 할 수 있다.)는 한쪽은 집안일을 보통의 주부들보다 깔끔하게 처리하고, 타다시는 요리에 있어서 그렇다. 일본의 이 또래 아이들이 정말 이런 능력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애초부터 완벽하게 갖춰져있는 이런 설정들이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실수나 사고 역시 완벽하다고나 할까.

그리고 오늘 버스를 타고 오면서, 마구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스포츠 신문을 읽던 한 여고생을 보고 여자들은 신문을 잘 접지 못한다는 소설 속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 역시 지하철에서 (감히 버스에서 신문을 읽을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한다) 신문을 접다가 결국 부피를 몇배로 늘려 뭉쳐버린 경험이 있다. 그래서 생각컨데, 펼친 신문의 너비가 여자들 팔 길이에 비해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했다. 신문을 넓게 쫙 펼쳐야 잘 접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문도 남녀차별입네 뭐네 혼자 구시렁대다가, 내가 요즘 지하철에서 보는 타블로이드 무가지도 잘 접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끔 나와 비슷한 여성들을 목격하는 바, 그게 무슨 신체 구조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결국 정말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우울하고 진지한 거 보다는 유쾌하면서 진지한 걸 좋아하는 편인데, 기발한 아이디어와 설정이 재밌는 소설이다. 아울러 지루한 출퇴근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놀라운 마법도 부린다, 이 책.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6-09-28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쾌하면서 진지한 거 저도 좋아라해요. ^^ 출판사 일은 즐겁고 보람차게 하고 계시겠지요. 처음이라 힘든 일도 있겠지만 잘 해내시리라 믿어요. 근데 지하철에서 하루종일 시달리는 눈을 좀 쉬어주는 것도 좋은 듯하네요^^ 눈이 상하면 안 되잖아요. 앞으로 읽어내야할 책들을 생각해서라도... ^^ 이 책 아주 재미나겠어요.
 
태풍 SE (2disc)
곽경택 감독, 장동건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기대 안하고 봤는데 좋았다. 블록버스터 쪽이라면 <괴물>보다는 이 영화가 더 근접하지 않나 싶다. 최명신이라는 비정하면서도 고독한 인물을 연기한 장동건. 어디선가 잘생겨서 컴플렉스라는 기사를 읽은게 기억난다. 전작 <친구>에서는 나쁜 놈 연기가 어딘지 억지스러웠는데, 이 영화에서는 눈빛이 이글거리는게 진짜 어디서 나쁜짓 수업이라도 받고 온 듯 비열함과 분노가 철철 넘쳤다.

아아.. 근데 그 갸냘프다 못해 똑 부러질 것 같은 손가락은, 막 굴러먹은 최명신의 캐릭터와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비극적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너무나 매력적이고 마음을 끌었을 장동건의 손가락.

남한 땅을 제2의 체르노빌로 만들려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왜 갑작스럽게 접었는가, 원래 실행할 생각이 없었다면 좀더 그 부분을 부각시켜야했지 않나 싶다. 너무 뜬금없이 강세중(이정재)과 마음이 통하는 결말부는 매끄럽지 못했던 것 같다.

들인 돈에 비해 흥행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인가 나는 왠지 <괴물>보다 이 영화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6-09-19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못 보고 지나갔는데 디비디 빌려서 봐야겠어요. 장동건의 연기가 좋았나봐요? ^^

부엉이 2006-09-19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제가 잘생긴 남자를 싫어하나봐요~^^ 망가진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프리랜서와 백수를 가로지르는 엄청나게 자유분방한 그간의 생활을 청산하고,
그 달콤쌉싸래한 시간 동안 유일하게 즐거웠던 독서의 기억들을 밑천 삼아,
출판사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어린이책을 만들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막상 들어와 며칠 일하고보니,
무덤덤한 내 성격에 아기자기한 면을 더해줄 것도 같고,
내 역량에도 딱 맞는 훌륭한 곳이다.
집과 거리가 좀 멀다는 것이 최대의 단점인데,
이참에 독립을 모색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하루 종일 책 읽는 게 일인 건 더할나위없이 좋은데,
그게 점점 일이 되어가는 것 같아 심히 불안하다.
돌아보니 8, 9월 동안 제대로 끝을 본 책이 거의 없다.
지하철에서 틈틈이 읽는 책은 어쩐지 집중이 안되고,
뭔가 날 확 사로잡는 느낌이 없다.

에이. 너무 욕심 부리지 말자.
뭐든지 적응기라는 게 필요한 법이니까.
그래도 이건 걱정된다.
좋은 책을 만드는 비법은 역시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접하는 것이 지름길인데.
나만의 독서를 게을리하는 건 자의든 타의든 빨리 일과 생활에 적응해서 없애버려야겠다.

욕심은 부리지 않으련다.
내가 평소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부분들이 좀 덜하도록만 책을 만들자,
이게 나의 초짜 편집자 생활의 모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6-09-14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09-14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부엉이님, 어린이책출판사에서 일하시게 되었나봐요. 축하드려요^^ 어린이책을 늘 봐야하는 전 무척이나 반갑네요. 그런 곳에서 편집일을 하시게 되었으니 부럽기도 하구요^^ 님, 차츰 그곳 소개 좀 해주세요. 책도 소개해주시면 좋구요. ^^

부엉이 2006-09-14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없는 악조건을 뚫고.. 정말 운이 좋았던 거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네요. 배혜경님 서재에서 들러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저는 파랑새어린이 출판사에서 외서팀을 맡게 됐어요. 좋은 책 나오면 가끔 보내드려도 되죠? ^^

프레이야 2006-09-15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파랑새어린이라면 제가 참 좋아하는 출판사 중의 하나에요. 어린이도서들이 참 좋더군요. 외서팀이라면 더욱 매력있네요. 국내에 쉽게 소개되지 않는 좋은 책들이 많이 번역되어 소개되면 좋겠어요. 보내주시면 전 너무너무 좋지요. *^^*
보람있는 하루하루 엮어가시길 빌어요^^

부엉이 2006-09-15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득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아... 책에는 영화의 엔딩크레딧 같은 것이 없어서 멍하니 앉아 영화의 그 잡힐듯 말듯한 뒷감당을 할만한 장치가 없구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그냥 팔을 베고 엎드려 책을 몇 번 쓰다듬고는 만지작만지작거리며 책이 전해주는 묘한 감동과 기운을 가만히 느릿느릿 느껴보았다.

일본의 고등학생 하면, 가끔 명동거리에서 마주치는 짧은 교복치마나 공포영화 속에 등장하는 엽기적인 모습들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 책 속의 아이들은 극기훈련이나 혹은 도보성지순례를 했던 때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준다. 로드무비 혹은 성장소설이랄까, 그저 무의미하게 학교를 출발해 학교로 되돌아오는 보행제 속에서 청춘의 끝자락에 자리한 불안한 감정들을 일단락 짓는 일. 물론 이건 긴 인생을 놓고 볼 때 첫번째 포스트에 불과하겠지만, 청소년기라는 흐물흐물한 껍질에서 탈피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인생의 어느 순간이든 단 한 번밖에는 겪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순간들은 모두 유치하지만, 지금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건 그만큼 내 시야가 그때보다는 조금 더 확장되어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아무리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바라도, 인생의 그 지점에서는 딱 그만큼의 문제해결 능력밖에는 가질 수 없는 것이니까. 뒤돌아보면 어리석고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후회가 남을지라도 말이다. 

열 여덟살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맘때의 아이들은 모든 것에 민감하다. 단지 일본이나 우리나 상황이 그것을 마음껏 드러내놓고 민감해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지. 그래서 만 하루를 꼬박 걷는 보행제는 이제까지 금기시된 것들을 공공연히 드러낼 수도 있는 말하자면 삼바 축제 같은 것이다. 아이들은 여기서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음을 경험한다. 일상이 아닌 길 위의 공간에서 그들은 오로지 더 잘 치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친구의 상처들을 헤짚어본다. 언제나 임시처방 상태였던 그 상처는 사랑과 우정과 이해로 전보다 더 잘 봉해진다. 감춰뒀던 아픔과 그 상처의 치유방법. 이 소설은 그러한 과정이 곧 삶임을, 그저 함께 묵묵히 걷는 것만으로도 아픔은 치유될 수 있음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08-14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엉이 2006-08-15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그리운 고딩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