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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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아... 책에는 영화의 엔딩크레딧 같은 것이 없어서 멍하니 앉아 영화의 그 잡힐듯 말듯한 뒷감당을 할만한 장치가 없구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그냥 팔을 베고 엎드려 책을 몇 번 쓰다듬고는 만지작만지작거리며 책이 전해주는 묘한 감동과 기운을 가만히 느릿느릿 느껴보았다.

일본의 고등학생 하면, 가끔 명동거리에서 마주치는 짧은 교복치마나 공포영화 속에 등장하는 엽기적인 모습들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 책 속의 아이들은 극기훈련이나 혹은 도보성지순례를 했던 때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준다. 로드무비 혹은 성장소설이랄까, 그저 무의미하게 학교를 출발해 학교로 되돌아오는 보행제 속에서 청춘의 끝자락에 자리한 불안한 감정들을 일단락 짓는 일. 물론 이건 긴 인생을 놓고 볼 때 첫번째 포스트에 불과하겠지만, 청소년기라는 흐물흐물한 껍질에서 탈피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인생의 어느 순간이든 단 한 번밖에는 겪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순간들은 모두 유치하지만, 지금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건 그만큼 내 시야가 그때보다는 조금 더 확장되어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아무리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바라도, 인생의 그 지점에서는 딱 그만큼의 문제해결 능력밖에는 가질 수 없는 것이니까. 뒤돌아보면 어리석고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후회가 남을지라도 말이다. 

열 여덟살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맘때의 아이들은 모든 것에 민감하다. 단지 일본이나 우리나 상황이 그것을 마음껏 드러내놓고 민감해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지. 그래서 만 하루를 꼬박 걷는 보행제는 이제까지 금기시된 것들을 공공연히 드러낼 수도 있는 말하자면 삼바 축제 같은 것이다. 아이들은 여기서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음을 경험한다. 일상이 아닌 길 위의 공간에서 그들은 오로지 더 잘 치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친구의 상처들을 헤짚어본다. 언제나 임시처방 상태였던 그 상처는 사랑과 우정과 이해로 전보다 더 잘 봉해진다. 감춰뒀던 아픔과 그 상처의 치유방법. 이 소설은 그러한 과정이 곧 삶임을, 그저 함께 묵묵히 걷는 것만으로도 아픔은 치유될 수 있음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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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4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엉이 2006-08-15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그리운 고딩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