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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은 속삭인다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1월
평점 :
섬뜩하고 뒤가 서늘한 느낌.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날 아침 꼭 그랬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첫장을 펼쳐 읽기 시작했는데, 신문 기사에 실린 자살보도 사건이 꼭 현실의 일처럼 느껴지는게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그 비릿한 느낌이 더 강해졌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있었던 사상사고 때문일까.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지하철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연방 시계를 봤다. 지하철 객차 내에서 XX역 사상사고라는 짤막한 안내방송을 듣고나니 초조한 마음이 조금 사라지긴 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분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결국 몇초 차이로 회사 셔틀버스가 눈앞에서 떠나가는 걸 망연히 바라봐야 했다. 초조감이 가시고 나니 아까 원망했던 게 괜스리 미안해졌다. 회사에 도착해서 기사를 검색해보니, 90대 노인이었다. 사고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며칠 뒤 검색해봤는데, 여전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죽는다. 자연사, 사고, 자살, 의문의 죽음 등등. 내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에누리 없는 보도기사 형태로 접하면 그 죽음의 강도는 아주 단조롭게 느껴질 뿐이다. 행간에 실린 죽음의 원인, 유족들의 슬픔, 사후처리 상황 등등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유명인이 아닌 이상 불필요한 사항들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그 90세 노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하찮은 지각의 이유로 기억하는 동안에도, 유족들은 그렇게 허망하게 간 망자를 그리워할 것이다. 만약 울어줄 이 하나 없는 외로운 노인이었다면 죽어서도 변치 않는 잊혀지고 외로운 운명은 또 얼마나 기구한가...
이 소설은 망자의 혼을 달래듯, 죽음의 조각들을 이어붙이면서 그 속사정을 파고든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에고.. 아까운 목숨 하나가 또 저 세상으로 갔군...' 하고 짧은 애도로만 끝나 버릴 보도기사 속의 죽음들이, 아주 비밀스럽고도 무시무시한 이유들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그리고 죽음의 겉모습마저 인위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면? 망자가 눈을 희번덕 거리며 구천을 헤맬 노릇이다.
그런데, 죽은 자가 제대로 눈감지 못하고 죽어 마땅한 짓을 했다면 어떨까. 아마도 이럴 때 '복수'라는 말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관통하는 '인과응보'의 논리는 구구절절한 사연이야 어쨌건 간에 같은 형태의 죽음을 불러 온다. 그야말로 피의 악순환이다.
그러나 미야베 미유키가 인위적이다 싶을 정도로 내세우는 가족애는 그 악순환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여기 나오는 가족들은 저마다 상처입고 찢어지고, 어디 한군데 성한 곳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각각의 공백들을 서로 채워나감으로써 살 수 있다.
그리고 소년과 노인의 관계. 때로는 조력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유혹자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노인과 그들의 죽음은 그 악순환이 소년의 세대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임을 시사한다.
시종일관 호흡을 빨라지게 하는 긴장으로 일관된 소설이지만, 곳곳에 작가의 섬세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