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즈의 눈물 - 세계 문호들의 개 이야기
로제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2월
품절


집에서 키우는 동물은 삶의 능욕에 대한 보호요, 세상에 대항하는 방책이며, 확실하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좀 허무한 확신이며, 좀 덜, 혹은 좀 더 외로워지는 방식이다. -56쪽

개는 욕망의 표현, 특히 먹고 싶은 욕망의 표현을 에둘러 하는 법이 없다. 시선뿐만 아니라 전신의 세포가 자석처럼 먹이를 향해 쩌릿하게 통일되는 것이다. 욕망과 사랑에 솔직한 개는 위선을 모른다. -293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2-27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싶어집니다.^^

부엉이 2007-02-27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 '그르니에 씨' 들의 능력인가 봅니다!
 
사랑의 범죄 열림원 이삭줍기 19
D.A.F. 사드 지음, 오영주 옮김 / 열림원 / 2006년 12월
품절


사실 거의 여행을 하지 않고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에 이러한 유래가 형성되기란 상당히 힘들지 않았을까? 어떤 기호화 습속과 취향들은 전수된 것들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것으로 인간과 함께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도 한다. 이러한 종류의 기호와 습속과 취향의 흔적은 인간이 존재하는 곳 어디에서나 발견되기 마련이다.
최초로 신을 인식한 지역에서 소설이 생겨났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의 요람인 이집트에서 소설은 태어났다. 신의 존재를 '추측'하기 시작하자마자 인간은 그들을 움직이고 말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때부터 변신 이야기와 신화와 우화와 소설이 생겨나게 된다. 한마디로, 허구가 인간 정신을 사로잡자 허구의 작품들이 생겨나게 된다. 환영이 문제되는 순간 가공의 책이 생겨난 것이다. -12쪽

"통념에 따르면, 이전에 소설이란 명칭은 이야기를 지칭했다. 그 이후에는 허구의 이야기만을 지칭하게 되었는데, 이는 허구의 이야기들이 이야기에서 나왔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러므로 소설은 모든 언어로 모든 국가에서 씌어졌고, 그 양식과 현상은 각 나라의 풍속과 통념을 따랐다.
인간은 두 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실존과 관련이 있으며 인간의 특성이기도 하다. 즉, 어느 곳에서든 인간은 '기도'해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토대가 된다. 인간은 '탄원'을 올려야 할 존재를 그리기 위해, 또 '사랑'하는 존재를 노래하기 위해 소설을 만들었다. -15쪽

그런데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의 모든 곳에서 인간은 '기도'하고 '사랑'했기에, 소설 즉 허구의 작품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1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HE GAME - 발칙한 남자들의 위험하고 도발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더 게임 The Game
닐 스트라우스 지음, 한정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남성들만을 위한 책?

서평단에 당첨된후, 아... 책을 받아들고 잠시 후회했다. 다른 남자 분께 양보할걸. 솔직히 이 책은 내용으로보나, 더군다나 책 무게로보나 분명한 남성용 책이다. (지하철에서 들고 읽기는 물론, 배꼽 위에 놓고 읽기에도 참 버거운 무게다)

하지만 팔뚝 굵고 남성 심리에 관심있는 여성이라면 도전하셔도 좋다. 한국 남자들이 정말 이런 욕망을 갖고 있고, 까딱하면 '제비'로 오인받을만한 멘트들로 여성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 건 본인의 자유다. 


픽업아티스트란...

이 책은 소위 '픽업아티스트pickup artist'들의 이야기다. '픽업'에는 '우연히 알게 된 연애 상대'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우연히 입수한 싸고 귀한 물건, 횡재'라는 뜻도 있다. 그러니까 이들은 연애 상대로 '찜'한 여성들을 예술적으로 꼬시는 남성들이다. 그 기술엔 실로 많은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하지만, 한 번 성공의 기술을 터득하면 그간의 설움을 모두 보상받을 만큼 횡재하는 거다. 

여러모로 께름칙했던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톰 크루즈가 연기했던 역할과 조금 비슷하다. 톰 크루즈는 사이비 교주처럼 열광적으로 '여성 공략법'을 강의하는 남성우위 프로그램 강사다. 그 양성애자 같은 머리스타일하며 의식적으로 자신의 강한 남성을 과시하려는 제스추어는 정말 찝찝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는 컴플렉스로 똘똘 뭉친 남성 같았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건 연기뿐만 아니라 톰 크루즈 자체가 실제로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잘나가는 픽업아티스트들한테서도 약간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이렇다할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자신감이 부족한 남성들이었다. 혹은 어린시절 여성들로부터 심한 정신적 상처를 받고 심리적 불안감을 느끼는 남성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극복하고 여성들을 껌뻑껌뻑 죽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 또는 전수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탁월한 기술은 자신의 깊은 상처를 치료하거나 근본적 자존감을 되찾게 해주지는 못한다. 그들은 수많은 여성들의 전화번호를 따고, 매일 밤 다른 여성들과 잠자리를 해도 한 사람의 깊은 마음을 얻지는 못한다. 그것은 사랑도 아니고, 그야말로 쉽게 얻을 수 있는 싸구려 연애일 뿐이다.

전에 어떤 심리학책에서 남성들의 '거절 공포증'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특히나 여전히 남성중심주의적인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먼저 고백해야 한다는, 이제는 어쩌면 조금은 구시대적인 것이 되어버렸을 그 원칙 비슷한 것에 남자들이 심한 스트레스와 심지어는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어릴 때 읽었기 때문에 약간 놀라긴 했었다. 그때는 그저 남자들이란 다 항상 박력있고 용감하게 좋아하는 여자에게 먼저 다가가는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면서 '꼭 이렇게까지 해서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걸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겉으로 강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속마음은 거절 공포증이나 갖가지 여린 것들로 가득차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러한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조금 특이한 방법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이해가 갔다.

하지만 저자는 쟁취한 여성들의 숫자가 늘어갈수록 삶이 황폐해지고 내부의 중요한 무언가가 갉히는 느낌을 받는다. 그건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마찬가지일거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몸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원하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술은 속삭인다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섬뜩하고 뒤가 서늘한 느낌.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날 아침 꼭 그랬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첫장을 펼쳐 읽기 시작했는데, 신문 기사에 실린 자살보도 사건이 꼭 현실의 일처럼 느껴지는게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그  비릿한 느낌이 더 강해졌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있었던 사상사고 때문일까.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지하철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연방 시계를 봤다. 지하철 객차 내에서 XX역 사상사고라는 짤막한 안내방송을 듣고나니 초조한 마음이 조금 사라지긴 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분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결국 몇초 차이로 회사 셔틀버스가 눈앞에서 떠나가는 걸 망연히 바라봐야 했다. 초조감이 가시고 나니 아까 원망했던 게 괜스리 미안해졌다. 회사에 도착해서 기사를 검색해보니, 90대 노인이었다. 사고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며칠 뒤  검색해봤는데, 여전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죽는다. 자연사, 사고, 자살, 의문의 죽음 등등. 내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에누리 없는 보도기사 형태로 접하면 그 죽음의 강도는 아주 단조롭게 느껴질 뿐이다. 행간에 실린 죽음의 원인, 유족들의 슬픔, 사후처리 상황 등등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유명인이 아닌 이상 불필요한 사항들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그 90세 노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하찮은 지각의 이유로 기억하는 동안에도, 유족들은 그렇게 허망하게 간 망자를 그리워할 것이다. 만약 울어줄 이 하나 없는 외로운 노인이었다면 죽어서도 변치 않는 잊혀지고 외로운 운명은 또 얼마나 기구한가...  

이 소설은 망자의 혼을 달래듯, 죽음의 조각들을 이어붙이면서 그 속사정을 파고든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에고.. 아까운 목숨 하나가 또 저 세상으로 갔군...' 하고 짧은 애도로만 끝나 버릴 보도기사 속의 죽음들이, 아주 비밀스럽고도 무시무시한 이유들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그리고 죽음의 겉모습마저 인위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면? 망자가 눈을 희번덕 거리며 구천을 헤맬 노릇이다.

그런데, 죽은 자가 제대로 눈감지 못하고 죽어 마땅한 짓을 했다면 어떨까. 아마도 이럴 때 '복수'라는 말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관통하는 '인과응보'의 논리는 구구절절한 사연이야 어쨌건 간에 같은 형태의 죽음을 불러 온다. 그야말로 피의 악순환이다.

그러나 미야베 미유키가 인위적이다 싶을 정도로 내세우는 가족애는 그 악순환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여기 나오는 가족들은 저마다 상처입고 찢어지고, 어디 한군데 성한 곳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각각의 공백들을 서로 채워나감으로써 살 수 있다.

그리고 소년과 노인의 관계. 때로는 조력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유혹자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노인과 그들의 죽음은 그 악순환이 소년의 세대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임을 시사한다.

시종일관 호흡을 빨라지게 하는 긴장으로 일관된 소설이지만, 곳곳에 작가의 섬세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 (Paperback) -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원서
마크 해던 지음 / Vintage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폐아.

그들을 지칭할 뭔가 좀 더 근사한 말이 없을까. '행동 장애' 혹은 '정신 질환'이라는 혐오스런 병명 말고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무엇도 저 아이들을 몰이해로 점철된 정의 속에 가둬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아이들은 그저 우리와 조금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면 나 역시 그들을 한쪽에서만 바라보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비정상적이고 통제불능이고 폭력적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들의 행동에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되니 그들이 조금은 달리 보인다.

어느 날 밤 주인공 소년이 처참하게 죽은 앞집 개의 사체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주인공이자 화자가 자폐아라는 것만으로도 낯설기만 한데, 그 아이는 보통의 아이들보다 더욱 치밀하게 사건을 파헤친다. 주인공 크리스토퍼 프랜시스 분은 사람과 사람이 만든 세상에 적응하는 것은 힘들어하지만 개나, 그가 기르는 쥐 토비에게는 어떤 거부감도 없이 애정을 느낀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특수한 경우일지 모르지만, 크리스토퍼가 사람이 아닌 동물들과는 자연스럽게 소통한다는 점이 내겐 슬프고도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크리스토퍼가 그토록 신뢰하는 개를 죽인 사람에 대해 분노하고 범인 색출에 그토록 열의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사건을 파헤치는 중간중간 그가 자신의 행동, 즉 자폐아들이 흔히 보이는 행동 장애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그들이 세상에 대해 우리와는 다른 주파수를 주고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줬다.

우리는 세상을 넓게 보는 대신 얕게 보지만, 그들은 시야가 좁은 대신 깊이 파고든다. 그렇지만 그들의 정보 수집 공간에도 한계가 있어서 낯선 장소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마주친다거나, 보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지면 당황하는 거다. 그럴 때 괴성을 지른다거나 귀를 막아 소리를 차단하는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크리스토퍼가 웰링턴을 죽인 범인에 한발짝 한발짝 다가가게 되면서 드러나는 진실은, 어쩌면 이 여린 아이가 차라리 몰랐더라면 더 좋았을 그러한 진실이다. 이렇게 추리의 형식을 띤 소설은 장애아를 둔 부모와 그 가정에 일어날 수 있는 단절을 아이러니컬하게 보여 주는 드라마로 자연스럽게 변모한다.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크리스토퍼는 아무 의미 없는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이다. 그래서 그는 부모와의 관계나 자신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전달은 하되, 그에 대해 크리스토퍼가 실제로 느끼는 것은 독자들과 약간의 괴리가 있다. 어쩌면 크리스토퍼 자신의 몫이어야 할 부모의 슬픔을 독자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기 때문에 더 뭉클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내 짝궁이었던 친구가 생각난다. 그 아이도 산수를 아주 잘했었다. 가끔 지우개도 먹고, 수업시간에도 아랑곳 않고 내 무릎을 베고 드러누워 아기 노릇을 했었는데, 산수 시간만 되면 눈이 초롱초롱해서 손을 번쩍번쩍 들고, 물론 시험도 늘 100점이었다. 3학년 때는 다른 반이 되었는데, 그 아이는 하교길에 만날 나를 교문 앞에서 기다리다 나를 보면 마구 때렸다. 난 만날 그 애를 피해 다니며 울며 집에 돌아오기 일쑤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가 나를 놀리려고 한 줄만 알았던 그 말이 전부 틀린 건 아니었단 생각이 든다. 그것도 일종의 애정표현이었다고. 결국 4학년 즈음엔 학교에서 볼 수 없었고, 어딘가 특수학교로 전학을 갔다는 소문만 바람결에 들은 것 같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가끔 생각이 나는데, 지금은 정말 어떻게 됐을까. 늘 미안한 눈빛으로 나를 보곤 했던 예쁘장한 그 애의 엄마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