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 (Paperback) -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원서
마크 해던 지음 / Vintage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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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

그들을 지칭할 뭔가 좀 더 근사한 말이 없을까. '행동 장애' 혹은 '정신 질환'이라는 혐오스런 병명 말고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무엇도 저 아이들을 몰이해로 점철된 정의 속에 가둬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아이들은 그저 우리와 조금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면 나 역시 그들을 한쪽에서만 바라보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비정상적이고 통제불능이고 폭력적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들의 행동에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되니 그들이 조금은 달리 보인다.

어느 날 밤 주인공 소년이 처참하게 죽은 앞집 개의 사체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주인공이자 화자가 자폐아라는 것만으로도 낯설기만 한데, 그 아이는 보통의 아이들보다 더욱 치밀하게 사건을 파헤친다. 주인공 크리스토퍼 프랜시스 분은 사람과 사람이 만든 세상에 적응하는 것은 힘들어하지만 개나, 그가 기르는 쥐 토비에게는 어떤 거부감도 없이 애정을 느낀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특수한 경우일지 모르지만, 크리스토퍼가 사람이 아닌 동물들과는 자연스럽게 소통한다는 점이 내겐 슬프고도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크리스토퍼가 그토록 신뢰하는 개를 죽인 사람에 대해 분노하고 범인 색출에 그토록 열의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사건을 파헤치는 중간중간 그가 자신의 행동, 즉 자폐아들이 흔히 보이는 행동 장애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그들이 세상에 대해 우리와는 다른 주파수를 주고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줬다.

우리는 세상을 넓게 보는 대신 얕게 보지만, 그들은 시야가 좁은 대신 깊이 파고든다. 그렇지만 그들의 정보 수집 공간에도 한계가 있어서 낯선 장소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마주친다거나, 보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지면 당황하는 거다. 그럴 때 괴성을 지른다거나 귀를 막아 소리를 차단하는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크리스토퍼가 웰링턴을 죽인 범인에 한발짝 한발짝 다가가게 되면서 드러나는 진실은, 어쩌면 이 여린 아이가 차라리 몰랐더라면 더 좋았을 그러한 진실이다. 이렇게 추리의 형식을 띤 소설은 장애아를 둔 부모와 그 가정에 일어날 수 있는 단절을 아이러니컬하게 보여 주는 드라마로 자연스럽게 변모한다.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크리스토퍼는 아무 의미 없는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이다. 그래서 그는 부모와의 관계나 자신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전달은 하되, 그에 대해 크리스토퍼가 실제로 느끼는 것은 독자들과 약간의 괴리가 있다. 어쩌면 크리스토퍼 자신의 몫이어야 할 부모의 슬픔을 독자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기 때문에 더 뭉클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내 짝궁이었던 친구가 생각난다. 그 아이도 산수를 아주 잘했었다. 가끔 지우개도 먹고, 수업시간에도 아랑곳 않고 내 무릎을 베고 드러누워 아기 노릇을 했었는데, 산수 시간만 되면 눈이 초롱초롱해서 손을 번쩍번쩍 들고, 물론 시험도 늘 100점이었다. 3학년 때는 다른 반이 되었는데, 그 아이는 하교길에 만날 나를 교문 앞에서 기다리다 나를 보면 마구 때렸다. 난 만날 그 애를 피해 다니며 울며 집에 돌아오기 일쑤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가 나를 놀리려고 한 줄만 알았던 그 말이 전부 틀린 건 아니었단 생각이 든다. 그것도 일종의 애정표현이었다고. 결국 4학년 즈음엔 학교에서 볼 수 없었고, 어딘가 특수학교로 전학을 갔다는 소문만 바람결에 들은 것 같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가끔 생각이 나는데, 지금은 정말 어떻게 됐을까. 늘 미안한 눈빛으로 나를 보곤 했던 예쁘장한 그 애의 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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