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먹과 살살이 방귀 파랑새 사과문고 59
송언 지음, 조가연 그림 / 파랑새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현장감이 물씬 풍긴다고나 할까. 아이들과 진짜로 함께 하는 선생님의 섬세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이제 슬슬 초등학교 교실 풍경이 낯설다 못해 기억 상실증 증세까지 보이곤 하는 나로서는 아이들과 한바탕 놀다 뛰다 울다 웃다 왁자한 소동 그 한복판에 있다 온 것 같은 느낌이 생생하다. 

'조주먹과 살살이방귀' 편은 문득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답 안나오는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조주먹'이라는 권력자와 '살살이방귀'라는  권모술수에 능한 자의 적과의 동침 관계는 애들이 먼저 시작한 걸까 어른이 먼저 시작한 걸까. 가끔 못된 행동을 하는 애들을 보면, '애들 탓할 거 하나 없다, 다 어른들 잘못이다' 하는데, 어쩌면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본능인가보다.

'기쁨이의 엄마 만들기' 편은 가슴이 짠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1,2학년쯤엔 선생님이 거의 엄마를 대신하는 존재였었다. 그래서 저학년 담임 선생님들은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많이 계셨고. 우리 어릴 적엔 지금처럼 이혼이 흔하지 않긴 했지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엄마처럼 찬찬히 보살펴주셨던 선생님들이 여럿 떠오른다. 겨울이면 따뜻한 옷도 챙겨 주시고, 눈이 나쁜데 안경을 쓰지 못하는 친구에게 안경을 주시는 선생님도 계셨다. 옷 챙겨 주셨던 선생님은,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진 그저 무섭고 야단 많이 치는 선생님이었는데, 사실을 알고 나선 무서움이 눈녹듯이 사라졌던 기억이 난다. 비록 지금 이름과 얼굴은 잊었어도 그 마음 씀씀이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기쁨이에게 정말 엄마 같은 사랑을 베푸는 선생님을 보니 어린이든 어른이든 사랑받을 기회는 누구나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이것이 미봉책에 그칠지라도, 기쁨이 같은 조손가정 아이들에게서 그 사랑의 조각이라도 맛볼 기회를 뺏을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나는 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편을 읽으면서 처음엔, 늘 느끼는 것처럼 '요즘 아이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삼십 대가 되어서야 시간을 아무리 쪼개도 늘 부족한 것 같은 압박에 시달리며 사는데 (그동안 좀 게으르게 살았던 건 사실이지만) 이 애들은 너무 어릴적부터 그런 불운을 겪어야 한다니...   하지만 결국엔  "역시 아이들답다!"는 감탄사가 나왔다. 앞에서 권력에 대한 욕구가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 하고 말했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와는 반대로 놀이의 욕구 역시 본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시키는 일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어떻게든 놀이를 찾아내는 아이들의 생명력. 그 마저도 빼앗아 버린다면, 인간은 죽은 것과 다름없을 거다.

하지만 "이 아이들을 모두 사랑합니다"라고 쓰신 작가 선생님 같은 분이 있어서 다행이다. 세상에 아이들을 괴롭히는 어른들이 있긴 하지만, 그 뒤엔 분명히 그 어른들을 막아주는 어른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저 호밀밭 끝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놀 수만 있게 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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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니에서 아침을
트루먼 카포티 지음, 공경희 옮김 / 아침나라(둥지) / 2003년 11월
품절


"[...]그런 마음 없이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지. 낯선 사람으로 간직하는 거야. 친구 사이일 뿐인 남남으로."-19쪽

불안한 고독감이 생활에 스며들었지만, 친구나 지인에 대한 허기가 생기지는 않았다. 이제 그런 사람들은 소금과 설탕을 넣지 않은 음식 같았다.-46쪽

"[...] 그녀는 '진짜' 가짜기에 가짜가 아니요. [...]"-49쪽

"[...] 배우 노릇을 하면서도 분명한 자아를 갖는 것은 힘든 일이에요. 사실 자아를 갖지 않아야 배우 노릇을 할 수 있다고요.[...]"-62쪽

"[...] 나와 사물이 어울리는 공간을 찾을 때까진 아무 것도 갖고 싶지 않아요.[...]"-63쪽

"[...] '티파니'로 가는 거죠. 그곳에 가면 곧장 마음이 가라앉죠. 그 적막감과 당당한 광경... 거기서는 나쁜 일이 일어날 수가 없어요. 멋진 양복을 차려입은 친절한 신사들이 있고, 은과 악어가죽 냄새가 기분 좋게 풍기는 곳이니까요. '티파니'에 간 것과 비슷한 기분을 주는 집을 찾을 수 있다면, 가구를 사들이고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겠어요.[...]"-65쪽

"사실 내가 내일 어디 살고 있을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래서 '여행중'이란 문구를 넣으라고 했죠.[...]"-68쪽

하지만 기억이란 거짓이기 마련이다.-89쪽

"화장실 몇 번 더 다녀왔죠. 하지만 약속해줘요. 안(새장)에 살아 있는 것을 넣지 안겠다고." -94쪽

"야성적인 것은 사랑하제 마세요, 벨 씨. 그게 그이의 실수였어요. 그는 늘 집에 야생 동물을 데려왔어요. 날개에 상처 입은 매 같은 거요. 한 번은 다리가 부러진 살쾡이를 데려왔어요. 하지만 야생 동물한테는 마음을 줄 수 없는 법이죠. 마음을 쏟을수록 그것들은 더욱 강인해져요. 강해져서 숲으로 달아나죠. 나무 위로 날아가거나. 그 다음에는 더 높은 나무로 가고. 결국 하늘로 날아가죠. 마침내 그렇게 끝나고 만다니까요, 벨 씨. 야성적인 것을 사랑하면 결국 하늘을 쳐다보는 것으로 끝나고 말아요."-116쪽

"[...] 난 그날의 즐거움에 도움이 된다면 보석이라도 훔치겠어요. 25센트짜리 동전이라도 훔칠 거예요. 내 자신에게 정직한 걸 말하는 거예요. 겁쟁이, 허풍쟁이, 감정 이상자, 창녀만 아니면 뭐든 되겠어요. 정직하지 않은 심장을 갖느니 암에 걸리겠어요. 좋은 예는 아니네요. 그냥 현실적으로 생각해봐요. 암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길 수 도 있지만, 정직하지 않은 마음도 문제이긴 마찬가지죠.-130쪽

"그렇다면 유감이네요. 어쨌든 집이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죠. 난 아직도 집을 찾는 중이에요."-157쪽

"[...] 어느 게 자기 것인지는 버린 뒤에야 알게 되니까요.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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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월
구판절판


책방은 한때 너무도 사랑받았지만 더 이상은 아무도 찾지 않는 책들의 안전한 보금자리이다. -25쪽

죽은 자들의 삶은 나의 부업이다. [...]
결국 내가 이 책방에 있는 이유는, 말하자면, 책을 보살피기 위해서이다. -29쪽

지금까지 내가 써온 모든 글들은 정작 중요한 문제를 쓰지 않기 위한 것이다. -31쪽

그것은 바로 한 번뿐인 인생에서 다 읽어내기에는 이 세상에 책이 너무 많기 때문에 어디에서건 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47쪽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을 때 그의 독서 취향을 파악하는 것보다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62쪽

"예의. 만약 예의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가난한 자의 미덕일 뿐이지. 다른 사람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는 것 따위가 왜 그렇게 중요하지?"-67쪽

"한 편의 지어낸 이야기가 더 많은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69쪽

그들이 아침식사로 콩팥 요리를 즐겼는지,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밤마다 촛불을 끄고 난 뒤 그들을 괴롭히는 악몽이 무엇이었는지 따위는 알 길이 없었다. 인명사전에는 사적인 내용은 담겨 있지 않았다. -166쪽

모든 이야기꾼들이 그렇듯이 그는 이야기 자체의 목소리에 길을 내어주고 자신은 물러나려 하고 있었다.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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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28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을 때 그의 독서 취향을 파악하는 것보다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
동감입니다. 부엉이님


부엉이 2007-02-28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타인의 독서 취향을 파악하려면, 또 그만큼 자신의 독서 폭이 넓어야할 것 같아요. 그런 내공을 쌓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죠~^^
 
고딕 소녀
카슨 매컬러스 지음, 엄용희 옮김 / 열림원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프랭키, F. 재스민, 프랜시스.
이 모두 저 고딕소녀의 이름이다.
이름이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결정됨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그 이름을 지닌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저 이름들을 입 속으로 가만히 되뇌고 있으면, 욕구불만이 여드름으로 분출되어 터져버릴 것만 같다가, 그런 자신에게도 어쩌면 보석 같은 아름다움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라고 애써 생각한 끝에, 정말로 그런 자신을 발견한 소녀의 이미지가 떠 오른다.

사실 읽기가 만만치 않았는데, 오히려 읽고 난 뒤에서야 프랭키인지, F. 재스민인지, 프랜시스인지, 어쩌면 소녀적 나인지 모를 유령 같은 게 내내 나를 따라다니고 있는 것만 같은, 잔상이 아주 오래 남는 소설이다.
사춘기적, 이유도 모르게 웃음이 나고 울음이 나고 그랬던 것처럼, 외로움과 세상이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라고 뻗대는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프랭키. 그 곁에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존 헨리. 비록 여섯 살 나이 어린 꼬마이지만, 프랭키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몸 안에 코끼리 한마리라도 들어 있을 것만 같은 아이다. 그런 존 헨리가 "존 헨리는 뇌막염에 걸렸고 열흘 뒤에 죽었다."고 했을 땐 단조롭기 짝이 없는 이 문장 속에서 정말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 날카로운 슬픔. 말 그대로이다.

프랭키와 존 헨리와 베러니스, 이 세 사람이 뒤엉켜 보냈던 더운 여름날의 이야기. 이 무료한 일상에 소나기가 되어 줄 오빠의 결혼식을 손꼽아 기다리던 프랭키는, 결혼식 이후 세명의 J(재스민, 자비스, 재니스)와 새로운 '우리'로 함께 살아갈 날을 꿈꾼다. 하지만 소나기가 지나가고 나면 더욱더 지독한 습기와 뿌연 대기만 남는 것처럼, 그 꿈은 프랭키의 억지란 걸 우린 너무 잘 알고 있다. 프랭키는 자비스와 재니스의 진정한 '우리'가 될 수 없다는 것도.  

그래도 프랭키의 삶은 산산조각나지 않았다. 이 더운 여름이 지나고 나면, 프랭키는 다시 프랜시스로서 새로운 '우리'를 꾸릴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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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Mr. Know 세계문학 24
제임스 A. 미치너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구판절판


책이 세상에 나왔다가는 곧 날개 찢긴 새처럼 퍼덕거리다가 죽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더욱이 네 번씩이나 그러한 고통을 경험하다니! 정말 불운한 세월이었다. -49쪽

아무튼 작가의 글이란 인쇄돼서 나와야 하는 것이고, 그게 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66쪽

선생님의 소설이지 제 소설이 아니거든요.-78쪽

혹 외부의 독자가 정말 옳은 것은 아닐까? 나는 내 기반을 잃은 것은 아닐까?-79쪽

어떤 때는 글쓰는 일이 마치 무슨 지고한 영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 웃기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했다. 정말 글쓰기란 고된 노동인 것이다.-122쪽

"이 모두가 실제로 일어난 얘긴가요?"
[...]
"그게 바로 소설이란다. 서로의 꿈을 교환하는 것....."-141쪽

그래, 적어도 우리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야.-185쪽

남편감을 고를 때는 말이다, 네가 네 자신의 감각을 완전히 추스를 수 있다고 확신이 설 때 얼른 골라야 한다. [...]
그런 여자들은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그런 남자들을 자신들이 구원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 [...]
네가 구원하지 않아도 될 사람을 말이다. -201쪽

비평가들은 소설을 쓰지 말아야 해.-261쪽

문학의 근간인 실제의 삶은 모두 우리 주위에 드러나 있는데 말일세.-268쪽

그러니 어서 연필심 뾰족하게 깎으시고 생각의 모자를 쓰세요.-281쪽

나는 이제 소설이란 실제의 삶 속에서 잉태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337쪽

협조라니요? 만약 당신이 저에게 한마디라도 해주기만 한다면, 전 모든 걸 다시 쓸 수도 있어요.-351쪽

어떤 작가도 자기 자신의 언어, 인물, 그리고 기교에 대해서 충분히 객관적으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357쪽

그가 어떤 사람에 대해 글을 쓸 때면 그는 그 사람이 되어 있었다.
[...]
나는 그것이 그를 소설가이게끔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4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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