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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소녀
카슨 매컬러스 지음, 엄용희 옮김 / 열림원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프랭키, F. 재스민, 프랜시스.
이 모두 저 고딕소녀의 이름이다.
이름이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결정됨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그 이름을 지닌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저 이름들을 입 속으로 가만히 되뇌고 있으면, 욕구불만이 여드름으로 분출되어 터져버릴 것만 같다가, 그런 자신에게도 어쩌면 보석 같은 아름다움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라고 애써 생각한 끝에, 정말로 그런 자신을 발견한 소녀의 이미지가 떠 오른다.
사실 읽기가 만만치 않았는데, 오히려 읽고 난 뒤에서야 프랭키인지, F. 재스민인지, 프랜시스인지, 어쩌면 소녀적 나인지 모를 유령 같은 게 내내 나를 따라다니고 있는 것만 같은, 잔상이 아주 오래 남는 소설이다.
사춘기적, 이유도 모르게 웃음이 나고 울음이 나고 그랬던 것처럼, 외로움과 세상이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라고 뻗대는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프랭키. 그 곁에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존 헨리. 비록 여섯 살 나이 어린 꼬마이지만, 프랭키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몸 안에 코끼리 한마리라도 들어 있을 것만 같은 아이다. 그런 존 헨리가 "존 헨리는 뇌막염에 걸렸고 열흘 뒤에 죽었다."고 했을 땐 단조롭기 짝이 없는 이 문장 속에서 정말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 날카로운 슬픔. 말 그대로이다.
프랭키와 존 헨리와 베러니스, 이 세 사람이 뒤엉켜 보냈던 더운 여름날의 이야기. 이 무료한 일상에 소나기가 되어 줄 오빠의 결혼식을 손꼽아 기다리던 프랭키는, 결혼식 이후 세명의 J(재스민, 자비스, 재니스)와 새로운 '우리'로 함께 살아갈 날을 꿈꾼다. 하지만 소나기가 지나가고 나면 더욱더 지독한 습기와 뿌연 대기만 남는 것처럼, 그 꿈은 프랭키의 억지란 걸 우린 너무 잘 알고 있다. 프랭키는 자비스와 재니스의 진정한 '우리'가 될 수 없다는 것도.
그래도 프랭키의 삶은 산산조각나지 않았다. 이 더운 여름이 지나고 나면, 프랭키는 다시 프랜시스로서 새로운 '우리'를 꾸릴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