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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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돌려 보니 또 책장들이다. 흡사 책에 환장이라도 한 인간 같다. 책장 한 칸은 축구에 관찬 책들로 채워져 있다. 내가 안 읽은 책, 모르는 책들이 더 많았다. 이놈은 축구마저도 이렇게 책으로 보는 놈이란 말인가.-201쪽

이런 종류의 인간들은 위험하다. 책 속의 세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주어진 현실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들이다. 따지고 보면 책이야말로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가장 위험한 시뮬라시옹의 세계다. -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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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친구하기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구판절판


시끄러운 길거리에서 마음의 평정을 얻으려면 소음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믿어야 한다. 외부의 소음과, 그것을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마음속의 생각 사이에 방화벽을 쳐야 한다.-167쪽

비정상이라는 비난에 대한 또 다른 위안은 친구, 말하자면 다정한 존재를 두는 것이다. 친구란 우리가 가진 많은 것들에 대하여 더 적극적으로 정상이라고 판단해줄 만큼 친절한 사람을 일컫는다. 흔히 사람들로부터 지나치게 신랄하다거나, 외설적이라거나, 절망적이라거나, 어리석다거나, 약았다거나, 취약하다고 비난받았을 법한 것도 친구 사이라면 긍정적인 판단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우정이란 다른 사람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맞서는 작은 음모인 셈이다. -230쪽

그의 책은 특별히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한 말걸기였다. 그는 서점을 찾을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가장 내밀한 자아를 표현하는 행위의 역설을 잘 알고 있었다.-235쪽

우리와 전혀 관계없으면서도 마음을 꿰뚫어보듯 우리들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생각들을, 우리 자신들마저 도저히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심리적으로 정확하게 그려내는 저자들을 만나면 누구나 그들의 글을 인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들은 우리 자신들보다도 우리를 더 잘 아는 것 같다. 그들의 글에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수치심과 낭패감으로 간직돼 있는 것들까지도 우아하고 간결하게 그려진다.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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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척쟁이 경시 대회 작은거인 5
앤드루 클레먼츠 지음, 강봉승 그림, 조병준 옮김 / 국민서관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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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약하고 핸디캡이 있으면 왕따가 되지만, 우리 어릴 적엔 잘난 척, 이쁜 척쟁이들이 왕따를 당했다. 수레가 꽉 차 있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 법이라, 속 빈 자들의 허영심이 어린 눈에도 보기 싫었던 것일 테다.

제이크네 반 케빈과 마샤는 잘난 척쟁이 대왕들이다. 제이크는 남을 깔보고, 무시하는 두 친구가 싫지만, 최신형 컴퓨터를 걸고 열린 과학경진대회에서 1등을 하기 위해서 자신도 모르게 그들과 닮아 간다.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단짝 친구 윌리마저도 경쟁 상대로 의식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우정보다는 최신형 컴퓨터가 중요하니까.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제이크는 오로지 1등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학경진대회가 점점 재미없어진다. 괜히 컴퓨터를 걸고 과학경진대회를 열어서 단짝 친구도 버리게 만든 컴퓨터 회사 사장 아저씨가 밉고, 누가 어떤 주제로 무슨 실험을 하는지 사냥개처럼 냄새를 맡고 다니는 케빈과 마샤도 싫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케빈과 마샤처럼 잘난 척쟁이가 되어가는 게 싫다. 

그래서 제이크는 마음을 고쳐먹는다. 윌리를 파트너로 영입하고, 함께 경진대회를 준비하기로 말이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자기를 잘 이해해 주는 윌리와 함께 하는 경진대회는 정말 너무나 신 난다. 참견쟁이 아빠의 도움도 거절하고, 서로에 대한 믿음과 손발이 척척 맞는 협조 관계 속에서 준비하는 과학경진대회는 이제 제이크와 윌리에게 즐거운 축제가 된다. 

제이크와 윌리는 지적 욕구로 포장된 과시욕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경진대회에서의 진정한 우승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았다. 그건 남을 짓밟고 올라가 정상에 섰을 때, 주위에 아무도 없는 외로운 1등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통하는 동반자와 함께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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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여름방학 중 아이들과 읽어 볼 ..
클로디아의 비밀 비룡소 걸작선 21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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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디아의 가출은 여느 아이들의 가출과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지적 모험이랄 수도 있고, 성장을 위한 여행이랄 수도 있다.
그래서 클로디아는 가출에서 돌아왔을 때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나'가 되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클로디아를 한 단계 성장할 수 있게 해 주는 그 무언가는 바로 자신만의 '비밀'이다. 그 비밀은 미켈란젤로의 천사상에 얽힌 클로디아의 비밀처럼 대단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그건 나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고, 건드릴 수 없는 '정체성'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성장이 멈추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자라게 해 주었던 비밀의 씨앗들이 있었던가조차도 잘 기억나지 않으니 말이다. 어쩌면 지금은 새로운 씨앗이 될 열매를 맺고 있는 중일까. 

어쨌든 나에게 클로디아 같은 성장통이나 비밀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제이미 같은 동생이 있다는 건 사실이다. 가출의 공범자이자 자금책이자 재정 관리자인 제이미가 없었다면 클로디아의 가출은 조금 혼란스럽고 우울해졌을지 모른다. 우리들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들이지만, 다른 존재들을 통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 가며 사는 게 인생이라는 점을 이 형제들은 잘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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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파주 지음, 이상해 옮김, 발레리 해밀 그림 / 열림원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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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하늘이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축복을 내린다.
그래서 더는 성수반이 필요 없다.
우리의 나날은 그로 인해 신성화된다.
비는 종교를 희석시킴으로써 그것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전 지구가 교회가 되고, 우린 어디서나 즐거운 우리 집에 있게 된다.
모든 노래가 신성하고, 몸짓 하나하나가 의식이 된다.
성찬과 기도의 마술이 우리에게 친근한 것이 된다.
숭배해야 할 것이 더는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이 의미를 취한다.
비는 무신론으로부터도 해방시켜준다.
우리는 우리 내부에 교리 없는 믿음이 움트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 비가 자연현상이기에 앞서 사랑이나 너그러움 같은 고귀한 감정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마르탱 파주, '비', 열림원, 19쪽
 
 
읽다 보면 종교적인 것 같기도 하고, 범종교적인 것 같기도 하고, 반종교적인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이 왔다갔다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참,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별 것으로 만드는 재주가 탁월한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일상에 대한 관조와 통찰의 힘일 것이다. 
사소한 것을 낯선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낯설게하기의 즐거움'.
 
이런 낭만적인 비가 지긋지긋해질 지도 모를 장마다.
게다가 지구에서는 점점 이런 낭만적인 비가 퇴출될 위기에 놓여 있다.
개인적으론, 돔구장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비는 야속한 존재로 느껴진다.
하지만, 미친듯이 감수성이 예민해지게 만들어서 작가님들, 화가님들 좋은 작품 나오게도 하는 게 비다.
눈 깜짝할 만큼 짧은 연애를 했을 때 정신나간 여자처럼 비를 맞고 돌아다녔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비가 좋았는지, 비를 좋아하는 척했는지, 비를 좋아하는 내가 좋았는지,
비를 좋아하면 나를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비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내린다. 예보를 무색하게 만들며, 느닷없이.
같은 책,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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