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 지음 / 동문선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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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주인의 외모만큼이나 이력만큼이나 독특한 소설이다. 돈이 없던 학생 시절에는 주로 언니가 사다놓은 책들을 빈대처럼 붙어 읽곤 했는데, 그 중에서 제일 재밌게 읽은 책이다. 그리고 한 5년이 지난 즈음 다시 한번 읽었는데, 한 단어의 단박한 제목 '칼'처럼 내용 또한 명쾌하다.

요즘 세상이 어떤가를 잠시 멈추어 생각해보기도 전에 금방 과거가 되어버리는 총알탄 같은 세상, 옛것을 찾아 일견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찾아 헤매는 세상 속에 이외수님 같은 도인의 이야기랄까. 전설이 사라져 버리고 미신 취급 당하는 세상, 더 먼 미래에 추억할 과거가 없어져 버릴 것에 대한 약간은 한탄조의 소설이란 생각도 든다.

무협지처럼, 혹은 <XX의 제왕>같은 영화에서처럼 전설과 신화가 존재하고, 도인과 협객이 출몰하는 세상이 다시 오면 얼마나 재밌을까. 법이나 이성을 통해 안정을 꾀하는 사회라고는 하지만, 그 안정과 편리가 무미건조한 세상을 만들지는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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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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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책을 고르지 않았다. 그냥 닥치는대로 샀다. 인터넷 할인 사이트에서 대량 주문하고, 읽고 싶은 책보다 읽어야 할 책을 샀다.그러다보니 읽지 않은 책들이 쌓이고, 그것은 안그래도 버겨운 인생에 쌓여가는 짐이 되어 버렸다.

동생이 그랬다, 나는 내가 산책에 대해 절대로 후회 안해. 신중히 고르니까. 난 동생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집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라인을 바꾸어 한 정거장 거리에 작은 서점이 있다. 서점이 작아서 책고르기가 쉽고, 바닥에 앉아 책을 보는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두어서 좋다.

      폴 오스터, 거대한 괴물Leviathan

 내 독서습관을 바꾼 최초의 책이자 첫번째 실험대상이 된 책이다.

폴 오스터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문팰리스>라는 작품이었는데, 역시 줄거리도, 등장인물도 떠오르지 않는다. 작가의 이름과 하수구를 통해 쓸려내려가는 물처럼 나도 그 책속으로 빨려들어갔다는 느낌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작년에 수필 형식의 <굶기의 예술hand to mouth>이라는 책을 봤다. 작가 자신의 개인사 내지는 연대기 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가 성공한 작가라 할지라도 그렇게 되기까지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했어야만 했던 상황들에 대한 적나라한 고백이 담겨있다.

그리고 리바이어던.

   그것은 알고보니 전화 섹스 광고였는데, 바로 그 순간 불현듯 스친 통찰력으로

   그는 의미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른 모든 것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p.348)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이다. 그게 처음부터 몽땅다 알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면서 관계의 사슬이 교묘하게 이어져 나간다. 한 사건의 배후에는 그 사건의 결과쪽으로 몰고가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는데, 그 요인들은 제각각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얽히고 섥혀 기묘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작가가 의도한 정치적, 문학적 메세지는 차치하고라도 구성의 치밀함, 놀라운 우연 등만으로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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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의 탐색
알베르 베갱, 이브 본푸아 엮음, 장영숙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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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형상은 우리들 각자를 그 안에 받아들이기 위해서

  저렇게 팔을 뻗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십시오.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께서도 당신과 모든 죄인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두 팔을 뻗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내게로 오너라, 오너라’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 본문 중에서 -

 

원탁의 기사, 아더왕의 전설, 랜슬롯의 모험등으로 이루어진 성배 이야기에는 원래 종교적인 색채가 없었다. 나쁘게 말하면 당시 중세 교회의 조작에 의해 이 전설과 신화는 각색된 것이다. 어쨌든 성배의 탐색 과정에서 은자가 랜슬롯에게 해 주는 이 말은 구세주의 희생과 예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데미안>의 서문에서처럼 예수님 사랑의 대상은 집단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언제나 ’우리들 각자’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베풀어진다는 것이다. 그래도 역시 나는 그분의 사랑을 머리로만 느낄 뿐이다.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 나는 너무도 무미건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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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칼 세이건이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칼 세이건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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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지 오랜 후에 리뷰를 쓰는 건 기억의 모험이랄 수 있다. 어찌됐든 과학자가 쓴 책을 읽고 눈물이 났던 기억만 남았으니 감동적이었던 건 틀림없다.

독서 편식이 심한 문학도인 내가 과학자가 쓴 책을 돈주고 사다니 나로서도 기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수학이나 과학이라면 한없이 작아지기만 하는 내가 읽기에도 쉬울 정도로, 이 책은 과학에 대한 그닥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지도 않고, 과학자로서 우주와 과학에 대한 사랑을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내고 있어 나같은 문외한에게 신선한 감동을 느끼게 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이런 사람들이 참 좋다. 이공계나 사회과학통이지만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학자들. 혹은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공부 잘하는 사람들. 칼 세이건을 실재로 만나보진 못했지만, 또 세상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많고 진실이 숨겨지는 일이 많지만 칼 세이건은 정말 아름답게 죽었을 것 같아 책 표지에서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쉬워지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그 삶의 에필로그에서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역시 '과학자의 겸손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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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4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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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추리소설만은 아니지만, 난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도 뒤돌아서면 줄거리를 모두 잊고마는 희귀병에 걸렸다. <밑줄긋는 남자>의 꽁스땅스는 로맹가리가 작품을 얼마 남기지 않고 죽어서, 자신이 죽기전에 그의 작품을 모두 읽어버리게 될까봐 노심초사 하는데, 난 정말 그럴 걱정이 없을 것 같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작품수도 많고, 또 내 희귀병 덕분에 읽어도 읽어도 그녀의 소설은 또 다른 재미를 맛보게 해주니 말이다.

일곱 개의 시계와 세븐 다이얼스 클럽의 추리적 암호들, 그것을 풀기 위해 종횡무진하는 귀여운 아가씨 번들양의 활약, 우직한 배틀 총경의 외유내강식 수사법 등, 이 작품은 우리의 '에르큘 포와로'나 '미스 마플'은 등장하지 않지만 젊은이들의 발랄함이 느껴지는 시리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과 '당신이 잠든 사이'적 결말이 흥미로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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