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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예전에는 책을 고르지 않았다. 그냥 닥치는대로 샀다. 인터넷 할인 사이트에서 대량 주문하고, 읽고 싶은 책보다 읽어야 할 책을 샀다.그러다보니 읽지 않은 책들이 쌓이고, 그것은 안그래도 버겨운 인생에 쌓여가는 짐이 되어 버렸다.
동생이 그랬다, 나는 내가 산책에 대해 절대로 후회 안해. 신중히 고르니까. 난 동생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집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라인을 바꾸어 한 정거장 거리에 작은 서점이 있다. 서점이 작아서 책고르기가 쉽고, 바닥에 앉아 책을 보는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두어서 좋다.
폴 오스터, 거대한 괴물Leviathan
내 독서습관을 바꾼 최초의 책이자 첫번째 실험대상이 된 책이다.
폴 오스터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문팰리스>라는 작품이었는데, 역시 줄거리도, 등장인물도 떠오르지 않는다. 작가의 이름과 하수구를 통해 쓸려내려가는 물처럼 나도 그 책속으로 빨려들어갔다는 느낌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작년에 수필 형식의 <굶기의 예술hand to mouth>이라는 책을 봤다. 작가 자신의 개인사 내지는 연대기 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가 성공한 작가라 할지라도 그렇게 되기까지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했어야만 했던 상황들에 대한 적나라한 고백이 담겨있다.
그리고 리바이어던.
그것은 알고보니 전화 섹스 광고였는데, 바로 그 순간 불현듯 스친 통찰력으로
그는 의미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른 모든 것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p.348)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이다. 그게 처음부터 몽땅다 알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면서 관계의 사슬이 교묘하게 이어져 나간다. 한 사건의 배후에는 그 사건의 결과쪽으로 몰고가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는데, 그 요인들은 제각각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얽히고 섥혀 기묘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작가가 의도한 정치적, 문학적 메세지는 차치하고라도 구성의 치밀함, 놀라운 우연 등만으로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