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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프리마투르
리타 모날디.프란체스코 소르티 지음, 최애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당분간 소설책엔 손대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건만, 일부러 손이 잘 닿지 않는 높은 곳에 꽂아둔 책을 매번 사다리를 놓고서까지 올라가 기어코 끝을 보았다. 머리를 식힌다는 핑계치곤 너무 열심히 읽어버린 것 같아, '소설책을 읽는 나'는 '공부하는 나'에게 좀 미안한 감이 든다.
전공서적이 아닌 이상 제목에 혹해 책을 구입하는 나같은 단순 유형의 독자들 때문에라도, 편집자는 제목을 잘 정해야 할 것 같다. 역시 이 책도 '종교, 역사, 추리'라는 삼합과 '임프리마투르 세크레툼 베리타스 미스테리움Imprimatur secretum veritas mysterium'의 유혹에 가슴이 두근두근하여 긴 고민 없이 주문장을 제출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과감함을 불러일으킨 기대가 대단히 만족됐다고는 할 수 없다. 요즘 세상이야 예수가 결혼하여 그 후손이 다름아닌 성배라는 소설에,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고 시스틴 성당 천장화에 몰래 써넣은 미켈란젤로 이야기까지 나오는 판에, 교황이 추악한 돈거래를 했다는 사실의 고발은 어딘가 맥빠지고 시시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교단의 입장에서 보면 실존인물이며 시복된 교황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이런 소설이 눈엣가시 같긴 했을 것이다.
어떻든 재미있는 사실은 수많은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우려먹은 어찌보면 진부하달 수 있는 이런 주제들이 지금까지도 문학장르의 주제가 되고, 베스트셀러에 오른다는 점이다. '사랑'이라는 주제가 아무리 진부해도 끊임없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선택되듯이, 소설가들에겐 종교의 불가지성이 풍부한 소재들로 환원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걸지 모르겠다.
중심 줄거리면에서는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할지 모르지만 소설의 구성면에 있어서 끊임없이 이것이 소설인지 아닌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의도적 장치들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큰 재미가 아닐까 한다.
먼저 이 책의 겉표지에 쓰여진 것처럼 리타 모날디와 프란체스코 소르티는 이 소설의 저자이다. 이들 부부는 소설 속에 등장하여 17세기에 쓰여진 어떤 회고록을 바탕으로 소설을 집필한다. '회고록'이라는 형식은 소설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동시에, 저자는 이를 방패막이로 이용하기도 한다. 리타와 프란체스코는 회고록을 바탕으로 집필한 소설을 친분이 있는 고위 성직자에게 보내고 잠적한다. 소설이라고 하기엔 사료와의 일치점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그는 바티칸의 시성성[가톨릭에서, 교황이 시복(諡福)된 복자(福者)를 성인(聖人)의 명부에 올리고 모든 교회에서 그를 공경하도록 선언하는 일을 주관하는 부서] 차관에게 자신이 이 소설에 대해 조사한 자료와 함께 원고를 보내어, 교황의 명령 아래 이 소설이 인쇄되어도(임프리마투르) 될지 여부를 묻는 편지를 보낸다.
액자에 해당하는 추기경의 편지 안에 그림에 해당하는 회고록의 익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아드소와 윌리엄 수도사 콤비처럼 여관 사환인 '나'와 아토 수도사는 소설의 모험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페스트로 인해 여관에 격리된 상황은 일면 소설 무대를 축소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밀실'의 이미지는 죽음과 관련되면서 더불어 두 주인공의 지하세계 모험도 긴장감을 획득한다. 여기서 사환이라는 배역은 자유로움의 상징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쉽게 접근 가능한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 전개에 속도감을 더해준다. 거기다 읽는 것만으로도 뱃속에서 뭔가 올라올 것 같은 지하세계, 그곳에 적응해 사는 무리들, 태양왕 루이 14세의 더러운 야욕과 둘치베니의 입을 통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당시 유럽 사회의 얽히고 섥힌 우아하지 못한 관계들. 고전주의 화려함 이면에는 그 화려함을 충당하기 위한 모종의 음모들이 난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 간간히 흘러나오는 드비제의 론도는 불쾌한 기분들을 일소시켜준다.
역사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묘미는 사실과 허구의 교묘한 결합을 통해 그럴듯한 진실을 폭로하는 것에 있다 할 수 있다. 회고록이 끝나고 다시 이어지는 추기경의 편지에는 이 이야기가 철저한 고증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쯤되면 독자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라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추리소설의 경계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모든 것이 진실이고 자신들은 소설의 형식만 빌렸다고 말한다. 원래 직업이 작가도 아니고 고전문헌학자, 종교학자, 바로크 음악 전공자인 사람들이 왜 소설의 형식을, 그것도 자신들이 주장하는 사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추리소설 장르를 택했을까. 아니, 그들이 실제 회고록을 발견하고 거기서 인노켄티우스의 비밀을 밝혀낸 과정 자체가 추리였다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는 필연적 선택이었을까.
얼마전 요한 바오로 II세 교황이 서거하고, 방금 그 뒤를 이를 새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흰연기가 피어올랐다는 뉴스보도를 봤다. (적어도 국내매체에서는 천주교보다 개신교가 우세하게 비춰지는 실정에서, 교황서거 보도에서부터 뉴스 속보로까지 새교황 선출을 보도하는 현상이 천주교 신자인 나로서도 좀 의아할 뿐이다) 모쪼록 새로운 교황은 가톨릭 교회가 항상 진리의 편에 가까이 설 수 있도록 애써주시길, 또한 그가 성실히 그 임무를 수행해내길 소박한 신자의 소박한 마음으로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