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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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현실적으로 살아 있는 인간이란 것이 무엇인지,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혼미해져 버렸다. 그 하나하나가 자연의 단 한번의 소중한 시도인 사람을 무더기로 쏘아 죽이기도 한다. 만약 우리가 이제 더 이상 단 한번뿐인 소중한 목숨이 아니라면, 우리들 하나하나를 총알 하나로 정말로 완전히 세상에서 없애버릴 수도 있다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쓴다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리라.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만한 존재이다. 세계의 여러 현상이 그곳에서 오직 한번 서로 교차되며, 다시 반복되는 일은 없는 하나의 점(點)인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떻든 살아가면서 자연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로우며 충분히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누구 속에서든 정신은 현상이 되고, 누구 속에서든 피조물이 괴로워하고 있으며, 누구 속에서든 한 구세주가 십자가에 매달리고 있다. -8쪽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누구든 출생의 잔재, 시원(始原)의 점액과 알 껍질을 임종까지 지니고 간다.
[...]
그리고 사람은 모두 유래가 같다. 어머니들이 같다. 우리는 모두 같은 협곡에서 나온다. 똑같이 심연으로부터 비롯된 시도이며 투척이지만 각자가 자기 나름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뿐이다.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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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을 보다가.
'언제부터인가 동네에서 서점 간판이 사라졌다'

정말이다.
집주변에 전문대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가 몇 개씩 있는 편인데 서점이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중학생 때만 해도 대학교 주변엔 허름한 음식점 몇 개, 구멍 가게, 그리고 문을 열었는지 닫았는지 분간이 잘 안가는 서점이 하나 있긴 했다. 주인 할머니가 인상이 무서워 딱 한 번 참고서를 사러 들어갔었지만 그나마도 학교 인근에 술집이 하나 둘 씩 늘어나면서 자취를 감췄다. 지금은 그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서고 아마도 커피 전문점, 필름 인화소, 컴퓨터 부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바뀐 듯 하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넘어가던 즈음, 집에서 2분 거리에 '월계 서점'이라는 간판을 내걸은 서점이 하나 생겼다. 그때는 몰랐지만 없어지고 나니 서운한 마음이 여간한 것이 아니다.
주인 아저씨는 꼭 조 페시를 닮은 체구가 짤다란 분이셨는데 책값 계산할 때 100원씩 에누리 해주면서 어찌나 생색을 내시던지 서점 문을 나서면서 늘 치사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오롯하다.
웬일인지 그곳에 들어서면 코끝을 자극하던 책냄새가 기억난다. 종이냄새, 잉크냄새, 책본드 냄새 등등.
부모님께 받는 용돈만으로 책 사보는 일이 그리 녹록치 않아서 그때는 책을 많이 못 샀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존경하옵는 에코님의 '장미의 이름'을 샀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다.
요즘이야 솔직히 동네에 서점이 있다고 해도 인터넷 서점의 할인 행위에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겠지만, 90년대 중반에 산 책들만 해도 구입처가 교보,영풍 등 대형서점 일색이 아니라는 사실에 나도 새삼 놀랐다. 지금은 어디인지 기억도 가물한 '천광서점, 인광서점'이 책 안쪽에 쓰여있는 걸 보고 '응? 이게 어디야?'하고 말이다.
대형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은 시쳇말로 쌔끈하고 자극적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광고물로 보인다. 그렇지만 같은 책이라도 동네 서점 서가에 꽂혀 있으면 조금 촌스러워보이긴 해도 다소곳하고 인내가 깃들어 보인다. 반면 도서관의 책들은 너무 진중하고 거만해 보인다.

유브 갓 메일 이란 영화가 생각난다. 무엇이든 구멍가게 형태를 띤 것들은 살아남기 힘든 요즘 세상. '대형'이란 것에 매몰되어 가는 일상들. 슬프지만 기억하고 살자. 작은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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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2005-05-2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 저편에 사라져버린 동네서점들. 마음 한 구석에 좋은 추억 하나가 상실되어버린 느낌. 세상이 변해도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찐한 아쉬움에 한숨이 나오게 되네요ㅜㅜ

부엉이 2005-05-2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마법의 도서관 - 소설로 읽는 책의 역사
요슈타인 가아더.클라우스 하게루프 지음, 이용숙 옮김 / 현암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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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란, 죽은 자를 깨워 다시 삶으로 불러내고 산 자에게는 영원한 삶을 선사하는 작은 기호들로 가득찬 마법의 세계다. 알파벳의 스물여섯 개 철자가 그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합성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철자들이 책으로 가득찬 거대한 서가들과 결코 끝나지 않는,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끝없이 자라나는 어떤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는 것. 이런 일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고 환상적이며 마법 같은 것이다.-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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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9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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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 추억한다라는 단어가 발산하는 의미들을 흠뻑 느끼게 되는 책이다. 그다지 많은 세월을 살지는 않았지만 한 해 두 해 갈수록 달라지는 건 점점 더 추억, 과거, 기억 이런 단어들에 매달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2권 옮긴이의 말까지를 몽롱하지만 나는 듯한 속도로 읽고 난 뒤, 무심결에 떠오르는 과거의 한 장면이 있었다. 그렇게 특별히 기억될만큼 특이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닌데, 아무래도 '변화'라는 것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던가보다. 불과 5년전만 해도 새롭고, 매일 같이 얼굴을 보고, 함께 몰려다니고 했던 그 사람들이 지금은 어떤 관계들은 미묘해지고 또 어떤 관계들은 완전히 단절되어 서로를 잊은 채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추억으로만 웃을 수 있는 서글픈 관계들이다. 또 모를 일이다. 그렇게 단절되고 잊혀졌던 과거 속 관계들이 나도 모르게 '운명의 상처로 남은 우연으로 인해' 건들여지고 되살아날지.

이 책을 고른 건 순전히 이것이 '책'에 관한 이야기라는 어떤 광고문구를 읽었기 때문이다. '책의 역사' 따위를 기대했던 건 결코 아니었지만 이렇게 엄청난 운명의 엇갈림들이 펼쳐질 줄도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책은 기본적으로 그것을 쓴 사람과 그것을 읽은(을) 사람을 전제할 것이다. 정말 세상 어딘가에 '잊혀진 책들의 묘지' 같은 어마어마한 책 저장고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가 일단 책으로 태어난 이상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 조차도 그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책 속의 수많은 활자들은 분명 그것을 쓴 이와는 다른 사람에 의해 '읽혀짐'을 기다리며, 할 수만 있다면 홀로 날개를 펼쳐서라도 누군가의 책상 위에 놓여지기를 고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책을 읽게되는 것은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일이 아닐 거란 확신이 든다. 마치 어떤 운명적 만남을 마주하는 것처럼 인연이 생성되는 것과 비슷한 과정에 의해 그렇게 될 거란 생각이다. 다니엘이 '잊혀진 책들의 묘지'에서 『바람의 그림자』를 집어낸 순간, 멈춰있던 톱니바퀴가 서로 맞부딪히며 움직이기 시작했듯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바르셀로나는 애석하게도 소설 속 바르셀로나와는 정반대로 '빛'으로 가득한 도시였다. 관광객들을 위한 각종 이벤트로 가득한 람블라스 거리와 보는 것 만으로도 속이 달콤해지는 과일 시장,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과 구엘 공원, 몇 쌍의 연인들이 서로의 허리를 두르고 있던 좁다랗고 그나마 쓸쓸한 해변. 덧붙여 바르셀로나 근교의 장엄한 몬세랏 수도원의 소년 합장단이 불러내는 성스러움까지. 스페인이란 나라가 여행객들에겐 그리 친절치 못한 도시여서 밤거리를 돌아다녀보지 못해서였을까. 내 기억들과 이 책의 묘사를 아무리 대조시켜 보아도 결코 '바다 안개의 천사'를 그려볼 수 있는 이미지를 찾을 수 없었다.

참 이상한 게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책을 읽고나선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 말을 글로 풀어내는 데는 너무 힘들었었다. 『바람의 그림자』를 읽고서는 스물 몇 년 내 삶이 한 번 들었다 놓아지는 혼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주책스러울만치 손놀림이 빨라진다. 그냥 한바탕 엉엉 울어야 속이 시원해질 것 같음에도 별 다섯 개에 하나 더 보태주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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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프리마투르
리타 모날디.프란체스코 소르티 지음, 최애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당분간 소설책엔 손대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건만, 일부러 손이 잘 닿지 않는 높은 곳에 꽂아둔 책을 매번 사다리를 놓고서까지 올라가 기어코 끝을 보았다. 머리를 식힌다는 핑계치곤 너무 열심히 읽어버린 것 같아, '소설책을 읽는 나'는 '공부하는 나'에게 좀 미안한 감이 든다.
전공서적이 아닌 이상 제목에 혹해 책을 구입하는 나같은 단순 유형의 독자들 때문에라도, 편집자는 제목을 잘 정해야 할 것 같다. 역시 이 책도 '종교, 역사, 추리'라는 삼합과 '임프리마투르 세크레툼 베리타스 미스테리움Imprimatur secretum veritas mysterium'의 유혹에 가슴이 두근두근하여 긴 고민 없이 주문장을 제출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과감함을 불러일으킨 기대가 대단히 만족됐다고는 할 수 없다. 요즘 세상이야 예수가 결혼하여 그 후손이 다름아닌 성배라는 소설에,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고 시스틴 성당 천장화에 몰래 써넣은 미켈란젤로 이야기까지 나오는 판에, 교황이 추악한 돈거래를 했다는 사실의 고발은 어딘가 맥빠지고 시시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교단의 입장에서 보면 실존인물이며 시복된 교황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이런 소설이 눈엣가시 같긴 했을 것이다.
어떻든 재미있는 사실은 수많은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우려먹은 어찌보면 진부하달 수 있는 이런 주제들이 지금까지도 문학장르의 주제가 되고, 베스트셀러에 오른다는 점이다. '사랑'이라는 주제가 아무리 진부해도 끊임없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선택되듯이, 소설가들에겐 종교의 불가지성이 풍부한 소재들로 환원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걸지 모르겠다.

중심 줄거리면에서는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할지 모르지만 소설의 구성면에 있어서 끊임없이 이것이 소설인지 아닌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의도적 장치들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큰 재미가 아닐까 한다.
먼저 이 책의 겉표지에 쓰여진 것처럼 리타 모날디와 프란체스코 소르티는 이 소설의 저자이다. 이들 부부는 소설 속에 등장하여 17세기에 쓰여진 어떤 회고록을 바탕으로 소설을 집필한다. '회고록'이라는 형식은 소설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동시에, 저자는 이를 방패막이로 이용하기도 한다. 리타와 프란체스코는 회고록을 바탕으로 집필한 소설을 친분이 있는 고위 성직자에게 보내고 잠적한다. 소설이라고 하기엔 사료와의 일치점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그는 바티칸의 시성성[가톨릭에서, 교황이 시복(諡福)된 복자(福者)를 성인(聖人)의 명부에 올리고 모든 교회에서 그를 공경하도록 선언하는 일을 주관하는 부서] 차관에게 자신이 이 소설에 대해 조사한 자료와 함께 원고를 보내어, 교황의 명령 아래 이 소설이 인쇄되어도(임프리마투르) 될지 여부를 묻는 편지를 보낸다.
액자에 해당하는 추기경의 편지 안에 그림에 해당하는 회고록의 익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아드소와 윌리엄 수도사 콤비처럼 여관 사환인 '나'와 아토 수도사는 소설의 모험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페스트로 인해 여관에 격리된 상황은 일면 소설 무대를 축소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밀실'의 이미지는 죽음과 관련되면서 더불어 두 주인공의 지하세계 모험도 긴장감을 획득한다. 여기서 사환이라는 배역은 자유로움의 상징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쉽게 접근 가능한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 전개에 속도감을 더해준다. 거기다 읽는 것만으로도 뱃속에서 뭔가 올라올 것 같은 지하세계, 그곳에 적응해 사는 무리들, 태양왕 루이 14세의 더러운 야욕과 둘치베니의 입을 통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당시 유럽 사회의 얽히고 섥힌 우아하지 못한 관계들. 고전주의 화려함 이면에는 그 화려함을 충당하기 위한 모종의 음모들이 난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 간간히 흘러나오는 드비제의 론도는 불쾌한 기분들을 일소시켜준다.

역사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묘미는 사실과 허구의 교묘한 결합을 통해 그럴듯한 진실을 폭로하는 것에 있다 할 수 있다. 회고록이 끝나고 다시 이어지는 추기경의 편지에는 이 이야기가 철저한 고증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쯤되면 독자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라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추리소설의 경계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모든 것이 진실이고 자신들은 소설의 형식만 빌렸다고 말한다. 원래 직업이 작가도 아니고 고전문헌학자, 종교학자, 바로크 음악 전공자인 사람들이 왜 소설의 형식을, 그것도 자신들이 주장하는 사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추리소설 장르를 택했을까. 아니, 그들이 실제 회고록을 발견하고 거기서 인노켄티우스의 비밀을 밝혀낸 과정 자체가 추리였다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는 필연적 선택이었을까.

얼마전 요한 바오로 II세 교황이 서거하고, 방금 그 뒤를 이를 새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흰연기가 피어올랐다는 뉴스보도를 봤다. (적어도 국내매체에서는 천주교보다 개신교가 우세하게 비춰지는 실정에서, 교황서거 보도에서부터 뉴스 속보로까지 새교황 선출을 보도하는 현상이 천주교 신자인 나로서도 좀 의아할 뿐이다)  모쪼록 새로운 교황은 가톨릭 교회가 항상 진리의 편에 가까이 설 수 있도록 애써주시길, 또한 그가 성실히 그 임무를 수행해내길 소박한 신자의 소박한 마음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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