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을 보다가.
'언제부터인가 동네에서 서점 간판이 사라졌다'

정말이다.
집주변에 전문대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가 몇 개씩 있는 편인데 서점이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중학생 때만 해도 대학교 주변엔 허름한 음식점 몇 개, 구멍 가게, 그리고 문을 열었는지 닫았는지 분간이 잘 안가는 서점이 하나 있긴 했다. 주인 할머니가 인상이 무서워 딱 한 번 참고서를 사러 들어갔었지만 그나마도 학교 인근에 술집이 하나 둘 씩 늘어나면서 자취를 감췄다. 지금은 그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서고 아마도 커피 전문점, 필름 인화소, 컴퓨터 부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바뀐 듯 하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넘어가던 즈음, 집에서 2분 거리에 '월계 서점'이라는 간판을 내걸은 서점이 하나 생겼다. 그때는 몰랐지만 없어지고 나니 서운한 마음이 여간한 것이 아니다.
주인 아저씨는 꼭 조 페시를 닮은 체구가 짤다란 분이셨는데 책값 계산할 때 100원씩 에누리 해주면서 어찌나 생색을 내시던지 서점 문을 나서면서 늘 치사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오롯하다.
웬일인지 그곳에 들어서면 코끝을 자극하던 책냄새가 기억난다. 종이냄새, 잉크냄새, 책본드 냄새 등등.
부모님께 받는 용돈만으로 책 사보는 일이 그리 녹록치 않아서 그때는 책을 많이 못 샀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존경하옵는 에코님의 '장미의 이름'을 샀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다.
요즘이야 솔직히 동네에 서점이 있다고 해도 인터넷 서점의 할인 행위에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겠지만, 90년대 중반에 산 책들만 해도 구입처가 교보,영풍 등 대형서점 일색이 아니라는 사실에 나도 새삼 놀랐다. 지금은 어디인지 기억도 가물한 '천광서점, 인광서점'이 책 안쪽에 쓰여있는 걸 보고 '응? 이게 어디야?'하고 말이다.
대형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은 시쳇말로 쌔끈하고 자극적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광고물로 보인다. 그렇지만 같은 책이라도 동네 서점 서가에 꽂혀 있으면 조금 촌스러워보이긴 해도 다소곳하고 인내가 깃들어 보인다. 반면 도서관의 책들은 너무 진중하고 거만해 보인다.

유브 갓 메일 이란 영화가 생각난다. 무엇이든 구멍가게 형태를 띤 것들은 살아남기 힘든 요즘 세상. '대형'이란 것에 매몰되어 가는 일상들. 슬프지만 기억하고 살자. 작은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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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2005-05-2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 저편에 사라져버린 동네서점들. 마음 한 구석에 좋은 추억 하나가 상실되어버린 느낌. 세상이 변해도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찐한 아쉬움에 한숨이 나오게 되네요ㅜㅜ

부엉이 2005-05-2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