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품절


로자 아줌마는 바나니아는 빈민구제소에 보낼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 아이의 미소만은 떠나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22쪽

"하밀 할아버지, 나는 영웅 같은 것보다 그냥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47쪽

대기실에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 좋았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하얀 가운을 입은 카츠 선생님이 나와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기분이 좋아졌다. 의학은 바로 이런 때 소용 있는 것이다.-71쪽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붙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95쪽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99쪽

하밀 할아버지는 인정이란, 인생이라는 커다란 책 속의 쉼표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노인네가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소리에 뭐라 덧붙일 말이 없다. 로자 아줌마가 유태인의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볼 때면 인정은 쉽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쉼표가 아니라, 차라리 인생 전체를 담은 커다란 책 같았고, 나는 그 책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 -114쪽

그러나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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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2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 읽다가 덮은 책이네요. 다시 읽으면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인상적인 구절이네요.^^

부엉이 2007-05-2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맹 가리의 새 번역 <가면의 생>이 나와서 보다가, 문득 다시 집어들었어요~^^
 
빗나간 내 인생
주세페 쿨리키아 지음, 이현경 옮김 / 낭기열라 / 2005년 11월
절판


"이 책을 어디서 구했나?"
"국립 도서관입니다."
"이 판에는 다섯 항목이 없네. 칸트는 다음 판에 그 항목을 첨가했지. 초판이 번역되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걸?"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음 학생, 앞으로."-52쪽

나는 살인적인 메커니즘에 짓눌리게 될 것이다. 1년에 휴가는 3주. 하루에 8시간 노동. -56쪽

카를로는 출세를 하기 위해 옷 입는 방식을 바꿀 사람이 아니었다. 은행이나 자동차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엉덩이를 들썩일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물론 그는 그 사실을 몰랐다. -79쪽

일 때문에 사람들은 거의 사람답지 않게 변해간다. 일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머릿속에서 점점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해간다. 일은 그들의 꿈까지도 지배해버린다. 얼마 전에 일을 시작한 나 역시 내게 복사를 시키려 안달인 루포가 나오는 꿈을 꾼 일이 있었다.-85쪽

이렇게 혼자임을 절실하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나는 홀로 태어났고, 지금까지 홀로 살아왔다. 어느 날 이모처럼 혼자 죽을 것이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관계를 맺었다가 이별한다. 신은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몸은 결국 썩고 분해되어 차츰차츰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이다. 우리 존재에 속했던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우리의 꿈조차도. 우리의 웃음과 걸음걸이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109쪽

무슈 보바리. 젊은 베르테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머리. 난 위대한 사랑, 진실한 사랑, 진짜 사랑을 원했다. -118쪽

"자, 춤추러 가자."
"좋아."
"오늘 밤?"
"오늘 밤."-120쪽

선생님, 제발 라이터 하나만, 1천 리라인데, 제발. 1962년 7월 20일 카사블랑카 태생인 무하마드 엘 카림 엘 이드리스가 내 머릿속으로 다시 헤집고 들어왔다. 카사블랑카에서는 1962년 7월 20일이 무슨 요일이었을까?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까, 절망의 눈물을 흘렸을까? 그날 밤 카사블랑카에 바람이 불었을까?-132쪽

지난 2년 동안 내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내가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고,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은 어떤 모습이며, 무의식적으로 거부한 경험들은 어떤 것일까?-139쪽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볼 때도 내 존재를 거의 인정할 수 없었는데 소설을 쓰면서는 그게 가능해졌다. -140쪽

"혹시.... 나를 위해 남겨놓은 비닐 가방 없나요?"-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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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구판절판


그분들이 거느린 직함이야 거창하지만 그 거창함을 다스리는 그분들의 겸손함을 나는 한없이 사랑했다. -23쪽

아무도 없는 연구실의 도서관. 오래된 책들 사이에서 나는 먼지 냄새 같은 걸 맡으며 백년도 훨씬 전에 나온 책들을 읽었다. -28쪽

녹차와 아주 친한 아는 분이 언젠가 물의 상처에 대해 들려주셨다. 물은 서로 부대끼며 흘러가다가 서로에게서 상처를 받는다. 아래로 떨어지면서 또 상처를 받는다. 녹차를 끓일 물은 그러므로 그 상처를 달래주어야 한다. 물을 두서너 시간 전에 받아두어라. 그런 다음 물을 끓이는데, 물은 또 끓을 때 상처를 받는다. 그러므로 끓고 난 뒤 물을 미지근하게 식혀라. 모두 물의 상처를 달래주는 일이다. 그런 다음 차에 물을 부어라.-30쪽

나는 또 욕심을 내다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 것이라고 표시하기, 얼마나 가소로운 욕심이었는가. 마치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 것이라고 표시되기를 바랐던 그때의 눈먼 나처럼....-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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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에 키스하기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4월
절판


"내일 전화할게, 패트리샤. 지금 가야 돼. 방금 내 과거가 내 옆을 걸어서 지나갔어."-34쪽

기억에 자리한 공간은 자신의 소유라는 느낌이 있다.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도록 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 말이다. -40쪽

"좋은 생각이 있어. 머리를 밀고 '아빠'라고 문신을 새기면 어때? 손톱이랑 진짜 잘 어울릴 것 같아. 네가 그렇게 해 주면 정말로 아빠를 사랑하는구나 생각할게."-42쪽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서로 지긋지긋해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 있으세요?"-85쪽

"정말요!"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가슴 앞에 양 손을 모았다. "멋져요! 한번 안아 드릴까요?"-100쪽

"네 삶의 가치가 뭐냐 이거지. 우러러보는 건 뭐냐? 콩팥을 줘야 한다면 누구에게 주겠어? 뭐 때문에 실패를 무릅쓸 수 있겠어?"
"많지. 하나씩 나열하란 말이냐 지금?" 끝으로 가며 점점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래! 뭘 위해 사는지 다섯 가지만 얘기해 봐. 시시껄렁한 농담은 집어치우고. 얼버무리거나 잔머리도 쓰지 말고. 네 마음에서 우러나는 다섯가지만 얘기해 봐. 생각하지 말고 빨리."-114쪽

어릴 적의 카스는 주변에서 가장 뛰어난 리틀 야구 선수였다. 던지는 것은 프로 선수 같았고, 쳤다 하면 공이 바다를 건너갔다. 더 자라며 상황은 바뀌었지만, 캐치볼 상대로는 여전히 세계 최고였다. 몇 년 전 그 애의 생일 선물로 황당하게 비싼 야구 글러브를 사 준 적이 있었다. 아이는 포장을 열더니 글러브에 얼굴을 묻고, 뺨에 비벼대며 황홀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신이 있다면 이런 냄새일 거야!"-121쪽

무진장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가 된 기분이야.-143쪽

흩어진 신발도, 의자나 침대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속옷도 없었다. 십대 아이와 함께 살아 본 사람은 집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안다. 아이들과 질서는 서로 궁합이 맞지 않는다. 이 집에는 아이가 없었고, 노인과 귀신만이 살고 있었다. -160쪽

절세의 미란 마치 만원 버스에 앉아 있는 뚱뚱한 사람 같다. 뚱뚱한 사람 하나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불편하게 서로 밀쳐대야 한다.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란 뛰어난 취향, 지성, 이해력 등등이다. 나는 미인과 결혼했고, 딸을 낳아 준 것에 대해 영원히 고마워할 것이다. 그 나머지는 침묵하겠다. -193쪽

하지만 누군가를 구원해 주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안 그런가?-216쪽

관객이 없으면 아무것도 진짜가 아니다!-218쪽

같이 지내는 게 만족스러운 사람은 세상에 드물다는 거야. 그런 사람을 발견해서 사귀게 됐으면, 싸워서 만들어야 해.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싸워야 돼.-249쪽

나의 멋진 딸. 내 유일한 오랜 친구. 이제 그녀도 곧 떠나갈 것이다.-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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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 벌레 이야기
이청준 지음, 최규석 그림 / 열림원 / 2007년 5월
품절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나 당국은 아내에게 아무런 복수의 기회도 허용하지 않았다. 범행을 자백한 그 순간부터 위인은 아내의 보복을 피해 당국의 보호를 받게 된 격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참사와는 직접 상관이 없는 사람들끼리 범행의 목적과 과정을 추궁하고, 재판에서 그의 죽음을 결정지어 튼튼한 벽돌집 속으로 그를 들여보내버렸다.
아내는 결국 그것으로 원한 어린 복수의 표적을 잃어버리고 만 셈이었다.-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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