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태우스 > 타이타닉: 칼이 나쁜가?

 

 

 

 

빙산과 충돌해 침몰해버린 초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 제임스 카메론은 그 소재를 차용해 전혀 색다른 영화를 만들어 버렸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영화의 주 테마는 배의 침몰이 아니라 드카프리오(이하 잭)가 칼로부터 애인(로즈)을 빼앗는 것이었다.

칼은 영화 내내 나쁜 사람으로 그려진다. 비열하고 따분하며 수단방법을 안가리는 나쁜 놈. 반면 잭은 재능있고 재미있으며, 매우 신뢰성 있는 인물인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잭이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로즈를 빼앗는 게 옳지 못한 일이라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과연 그런가? 내가 칼이라고 가정하고, 항변을 해본다.

난 로즈에게 정말 잘해줬다. 세계에서 제일 큰 다이아몬드도 줬고, 일시적인 탈선도 다 눈감아 줬다. 잭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꽤 잘생긴 편이고, 돈많고 지체높은 집안 출신이다. 이만하면 괜찮은 신랑감이 아닌가? 그런데 태생도 미천한 잭이라는 놈이 자꾸 내 약혼녀에게 집적거린다. 여기서 열을 받지 않는다면 인간이 아니리라. 잭을 미워하고 로즈를 붙잡으려고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야. 로즈가 잘생긴 잭을 만나 일시적으로 마음이 흔들린 것도 다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니, 가만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난 잭을 팔에다 수갑을 채워 선실 아래쪽에 묶어둔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잭이 로즈를 포기하지 않자 총을 쏘며 쫓아간 거다. 주머니에 총이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총을 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돈을 주고 구명보트에 한자리를 예약했음에도, 난 그 자리를 포기한 채 로즈를 찾아나섰다. 어떻게 해서든지 로즈의 마음을 다시 돌려보려고. 그런 내가 나쁜놈인가?

로즈 넌 나를 따분해했고, 귀족 부인들과의 대화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 하지만 우리 가진 자들의 삶이 다 그런 거 아닌가? 잭과 선실 밑에서 맥주를 마시며 춤을 춘 게 낭만적으로 느껴진 것은 니가 처음 겪어보는 일이어서 그런 거지, 너처럼 곱게 자란 애가 평생을 그러고 살 수 있겠어? 낭만, 그건 밥을 먹여주지 않아. 잭은 필경 로즈 당신을 고생시킬 거야. 날 보라고. 선원을 매수해 보트에 당신 자리까지 두개를 예약했고, 나중에는 우는 아이를 내 아이인 양 속여서 결국 보트를 탔어. 남들한테는 비겁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게 바로 생활력이야. 반면 잭은 뭘 했나? 로즈 너만 보트에 태웠어. 자기는 그냥 죽겠다고 하는 거지.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 당신은 결국 보트에서 내렸고, 결국은 둘다 죽을 뻔했지.

배가 침몰하는 건 기정사실이었으니, 잭은 당신과 함께 난간에 매달릴 게 아니라 몸을 띄울 널빤지를 구하는 게 우선이었어. 잭은 죽었지만 당신은 겨우 살아난 게, 장롱 문짝에 몸을 의탁했기 때문이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낭만은 밥을 먹여주지 않아. 잭과 결혼했다면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짐작이나 해? 주머니에 다이아가 있었으니 몇 년은 살 수 있었겠지만.

혹자는 그러더군. 여자는 소유물이 아니라 인격을 갖춘 존재이며, 그녀의 결정 역시 존중해야 한다고. 버스는 이미 떠났는데 계속 기다려봤자 소용 없다고. 그런 식이라면, 로즈가 잭이랑 결혼해 잘 살다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드카프리오같은 남자를 만나서 헥까닥 했고, "아 이게 바로 사랑이야!"라고 느꼈다면, 그것도 숭고한 결정이니 곱게 보내줘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아. 권상우가 <천국의 계단>에서 떠난 버스를 열나게 쫓아가 올라탄 것처럼, 마음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이야. 약혼이란 게 뭐야?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잖아? 그렇게 싫으면 아예 약혼을 하지 말던가 할 것이지, 우리같이 지체높은 집안에서 어떻게 파혼을 할 수가 있겠어?

로즈 넌 그러더군. 잭이 "내 영혼을 구해준 존재"라고. 나와 헤어진 뒤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는 바 없지만, 그래, 나랑 결혼해서 사는 것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확신할 수 있나? 미국사회가 당시만 해도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었을 정도로 척박했다는 것도 잊지는 말게. 넌 그랬지. 내가 대공황 때 주식이 폭락해서 자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그거 순 거짓말이야. 이야기를 만들려고 카메론이 지어낸 거라구. 나같이 약삭빠르고 생활력 강한 얘가 주식이 폭락할 때까지 넋놓고 기다렸겠어? 절대 아니야. 로즈, 인생 그렇게 살지 마.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할게. 그 다이아는 왜 바다속에 던지고 그래? 그럴 거면 날 주지...
(이상 저승에서 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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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꿈 2004-01-2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각도로 타이타닉을 보지만 절대로 억지스럽지는 않은 감상평(이라고 내가 감상평을 내렸다;)
하지만 어쩌면 주식이 폭락한 것은 그럴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원래 주식이란 무서운 존재이니까.... 뭐, 주식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나는 끼어들 문제가 아닌가?

마태우스 2004-01-26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 잘 보내셨어요? 억지스럽지 않다고 해주셔서 감사! 주식은 저도 모르지만, 우리의 주식은 쌀이지요! 쌀을 먹읍시다!

만월의꿈 2004-01-26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그렇죠+ㅁ+ 쌀이 좋은거죠;